Return of the Death Knight RAW - chapter (20)
사방이 깜깜한 지하공간 속에서 벽에 박힌 마정석만이 암울한 푸른빛을 내뿜었다. 빛은 녹이 슨 우리의 쇠창살을 비추었다.
쿵! 쿵!
머리 위 지면에서 연이어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언데드와 몬스터가 각축전을 벌이는 소음이었다.
CCTV 화면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검은 후드 차림의 무리가 욕설을 내뱉었다.
“이런 씨발…! 우리 소중한 몬스터들이 해골 놈들한테 죽어나가고 있잖아!”
“어디서 갑자기 언데드가 튀어나온 거냐!”
그들은 악신의 계약자가 모인 비밀결사의 일원이였다. 태초의 뱀이 알려지면서 더 이상 비밀이 아니게 되었지만 말이다.
얼굴에 검버섯이 핀 노인이 삐쩍 마른 손가락을 들며 지시했다.
“그래봤자 더 많은 물량으로 밀어붙이면 그만이다! 몬스터를 풀어라!”
덜컹!
우리의 문을 열자 갇혀있던 몬스터들이 빠져나왔다. 악신의 권능으로 강화된 놈들은 몸이 잔뜩 달아오른 채 하얀 입김을 내뿜었다.
놈들은 눈이 분홍색으로 물든 채, 검은양의 계약자들이 지시하는 대로 지상으로 올라갔다. 꾸역꾸역 움직이는 걸 보다 보면 눈이 어지러워질 만큼 수많은 몬스터들이었다.
노인이 손가락을 거미처럼 꼼지락거리며 음산하게 웃었다.
“키히히. 소환할 수 있는 언데드의 숫자에도 한계가 있겠지.”
어디서 언데드가 나타난 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고작 언데드 몇 마리 가지고 달라지는 건 없을 것이다.
“…계속 살아나는데요?”
“이잉?”
근데 몇 마리 수준이 아니었다.
수십에 달하는 언데드 군대가 몬스터를 도륙냈다. 놈들은 골이 비었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탱커, 딜러, 서포터 3인 1조로 움직이면서 각자의 역할을 정확하게 수행했다. 매혹에 걸려서 막무가내로 공격하는 몬스터들은 강화된 상태임에도 합공 앞에서 처참하게 무너졌다.
몬스터의 무리가 야금야금 갉아먹혔다. 게다가 그렇게 죽은 몬스터는 언데드가 되어 적군에 합류했다.
불사의 군대.
그 앞에서 비밀결사가 몇 개월에 걸쳐 모은 몬스터들은 속수무책으로 쓰러져나갔다.
마켓은 어느새 몬스터의 도축장으로 변해있었다.
“끄, 끄으으. 박은주, 그 년은 뭐하고 있는 거냐!”
청천 길드 부대표. 그 권위와 매혹 능력을 활용하여 헌터들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게 교란하는 게 박은주의 역할이었다.
그러나 박은주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신수철의 지휘 아래 헌터들은 체계적으로 저항을 이어나갔다.
그게 아니었다면 언데드가 이렇게 늘어나기 전에 상황을 정리할 수 있었을 텐데.
“죄송합니다. 김춘배 지부장님. 연락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떼잉. 하필이면 이럴 때…!”
“모아놓은 몬스터가 벌써 반 이상. 소진되었습니다! 어떻게 하죠?”
“…하는 수 없지. ‘아바돈’을 깨울 수밖에.”
김춘배라고 불린 노인이 그리 명령했다. 그러자 비밀결사 조직원들이 눈을 부릅떴다.
“괘. 괜찮겠습니까? 아바돈은 자의식이 너무 강해서 우리 명령이 먹히지 않는데요.”
“녀석을 지배하기 위해 제물을 모으는 것 아니었습니까?”
비밀결사가 마켓에 몬스터를 풀어놓은 것은 비단 신수철 회장을 실각시키기 위해서만이 아니었다.
헌터들이 품고 있는 양질의 영혼. 이를 제물로 바쳐서 아바돈을 정신지배하기 위함이었다.
김춘배는 지팡이로 바닥을 딱 짚으며 이를 갈았다.
“어쩔 수 없지 않느냐. 이러다간 제물을 확보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당할 거다. 풀려난 녀석이 활개치는 동안 언데드를 조종하는 자를 찾아서 없애! 그만한 놈이면 쓸 만한 제물이 될 테지.”
그럼 그 다음에 아바돈에게 정신지배를 시도하면 그만이다.
따라서 김춘배는 지하공간 가장 안쪽. 삼엄하게 보관한 거대한 우리 쪽으로 다가갔다.
“각성 의식을 시작한다.”
“네…!”
슈우욱. 무릎꿇고 기도하는 계약자들의 머리 위로 검은 기운이 흘러나온다. 김춘배는 그들 가운데에서 힘의 조율을 담당했다.
그러자 온몸이 팽팽하게 부풀어오르며 검은색으로 변하더니, 양의 뿔이 머리뿐만 아니라 신체 곳곳을 뚫고 나왔다. 흡사 악마의 형상처럼 변한 김춘배는 숨을 들이마시며 우리쪽으로 두 손을 내밀었다.
“검은 양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깨어나라. 아바돈!”
쿠구구.
지하에 가득 찬 어둠이 우리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그리고 그 가운데 황금색 광채가 번쩍였다.
동시에 흉흉한 살기가 위협적인 기세로 뿜어져나왔다.
“으읏….”
“과연 고비 사막의 악몽답군.”
고비 사막에 열린 A급 게이트. 각국의 이해관계 및 사막이라는 지형의 특수성 때문에 몽골과 중국은 제때 대처하지 못했다. 그 탓에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고, 게이트가 가둬두고 있던 악몽이 풀려나왔다.
그 과정에서 중국의 S급 헌터가 목숨을 잃기도 했다. 그게 바로 이놈. 아바돈의 소행이었다.
철그렁.
쇠사슬 소리와 함께, 악몽의 주인공이 지금 막 몸을 일으켰다.
-이곳은 짐의 영지가 아니군.
아바돈이 그렇게 말문을 열었다. 목소리에 묻어나오는 살기에 피부가 저릿저릿했지만, 김춘배는 약간이나마 안도했다.
‘저쪽에서 먼저 대화를 시도했군. 어쩌면 설득도 가능할지 몰라.’
그러므로 그는 급하게 입을 열었다.
“아바돈이여! 우리가 그대를 깨웠다. 그대가 우리의 요구를 들어준다면, 기꺼이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주겠다!”
-요구라.
아바돈의 낮은 목소리가 지하를 울렸다.
-이곳 사람들은 일국의 왕을 감옥에 가둬둔 채 교섭을 진행하는 건가?
툭툭. 어둠속에서 황금색 집게가 창살을 두드렸다. 그러자 창살이 푸른색 파장을 내뿜었다.
항마석으로 만든 창살이었다. 빌런이나 몬스터를 수감할 때 주로 사용하는 소재로, 마력의 운용을 방해하는 성질을 갖고 있었다.
아바돈이 혹여나 깨어났을 때를 대비한 조치였다. 달리 말하자면 이것이 최후의 방어선이었다.
“…열어줘라.”
“지부장님…!”
그러므로 김춘배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비밀결사 조직원들은 쉬이 움직이지 못했다.
그러자 김춘배가 닥달했다.
“지금까지 내 말을 뭘로 들은 거냐. 어차피 아바돈이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다. 지금은 따르는 수밖에 없어.”
“…알겠습니다.”
결국 조직원들은 열쇠를 들고 우리의 문을 열었다.
끼긱…! 쿵!
육중한 문이 열리며 아바돈이 우리 밖으로 발을 내딛었다.
툭. 투둑.
6개의 다리가 지면을 밟았다. 그 중 앞쪽의 두 집게는 사마귀의 양팔처럼 날카로웠다.
거대한 딱정벌레 같은 생김새였다. 두터운 황금색 갑각이 온몸을 휘두르고 있었다. 거대한 얼굴에는 뾰족한 갈퀴가 수염처럼 돋아나있었다.
딱정벌레처럼 두꺼운 황금색 갑각이 온몸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 얼굴에서 역시 황금 투구와 같은 갑각을 두른 채 세상을 오연히 내려다보았다.
그 웅장한 모습에 몇몇은 상황도 잊고 경탄을 흘렸다.
-드디어 풀려났군. 길고도 지루했다.
아바돈이 가슴을 펴며 중얼거렸다.
그런 가운데, 김춘배가 아바돈 앞에 나섰다.
“우리는 약속을 지켰다, 아바돈! 이제 너의 차례다!”
-약속? 아아. 교섭에 대한 거였지.
그 순간이었다.
아바돈의 날카로운 집게가 번뜩이는 것과 함께 김춘배 양옆에 선 비밀결사 조직원이 목이 툭툭 떨어졌다.
“아. 아아아.”
김춘배는 피를 뒤집어쓴 채 신음했다.
-교섭은 결렬됐다.
히죽. 아바돈의 턱이 호선을 그렸다.
*
쿠웅! 쿠웅! 해방된 아바돈이 마켓을 휘저을 때마다 굉음이 울려퍼졌다.
“아, 아아….”
“이젠 끝났어.”
헌터들이 절망스러운 음성을 흘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황금색 광채를 흘리며 지상을 휩쓸고 있는 거체 앞에서 전의를 불태울 수가 있을 쏘냐.
아바돈 앞에서는 언데드도 속수무책이었다.
-제대로 죽지도 못한 버러지들이 감히 짐의 앞을 막는 것이냐.
아바돈이 집게를 한 번 휘두를 때마다 해골 네댓 마리가 산산조각이 났다. 심지어 중간에 끼인 몬스터들도 억울하게 희생되었다.
-전부 먹어치워라.
아바돈이 날개를 떨었다. 그러자 손바닥만한 황충의 무리가 퍼져나갔다. 황충은 살아있는 것과 죽은 것을 가리지 않고 물어뜯었다.
그 광경에 신수철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설마 아바돈…? 중국에서 실종된 놈이 왜 여기에 있는 게야…!”
아바돈의 악명은 그 역시 알고 있었다. A급 게이트의 보스 몬스터인 만큼 지극히 위험한 녀석이었다.
이길 수 없다. 신수철은 냉정하게 전장을 파악하고 패색을 인정했다.
“…현 시간부로 군산 마켓은 포기한다. 인근의 생존자를 대피시켜라. 더 이상의 전투는 희생만 늘릴 뿐이야.”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회장님도 함께 대피하시죠.”
호위가 신수철을 잡아끌었다. 신수철은 분하다는 듯 주먹을 꾹 쥐면서 호위의 뒤를 따랐다.
“모두 대피하세요!”
“전투는 포기합니다. 저희를 따라오세요!”
청천 길드원들이 지시에 따라 헌터들을 이끌고 출입구를 찾았다.
그러나 그들은 한 가지 실수를 했다.
“…추, 출입구가.”
호위는 마켓을 둘러싼 외벽의 출입구를 보며 경악했다.
출입구가 거미줄로 봉쇄되어 있었던 것이다.
평범한 거미줄도 아니었다. 마력을 담은 칼날로도 제대로 끊이지 않을 만큼 질기고 튼튼했다.
-짐의 허락 없이 어디를 가려는가.
“!”
그들은 아바돈의 지력을 과소평가했다.
폭군이라는 이명처럼, 아바돈은 일국의 왕에 걸맞은 지성을 갖추고 있었다.
탈출하기에는 늦었다. 그 사실은 모두를 절망케 하기에 충분했다.
-기뻐하라. 너희의 시체는 새로운 왕국의 요람이 될 것이다.
아바돈의 곁에서 황충들이 붕붕대며 날아다녔다. 그 말과 모습이 의미하는 바를 어렴풋이 짐작한 헌터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다각.
죽음이 한 걸음 다가왔다. 신수철은 최후를 직감하며 눈을 감았다.
‘이렇게 죽는 건가. 나, 신수철이…!’
퍼억!
도끼로 장작을 패는 것만 같이 둔중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 소리의 정체를 추측하는 것도 두려웠다.
“회, 회장님!”
“됐다.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아.”
“그, 그게 아니라. 벽이.”
“벽?”
호위의 재촉에 신수철은 눈을 떴다.
그러자 보인 것은 균열이 일고 있는 외벽. 그리고 벽 사이에 꽂힌 도끼날이었다.
퍼억! 퍼억! 쩌억!
도끼날은 콘크리트와 철근을 심은 외벽을 나무판마냥 쪼개버렸다.
그렇게 벌어진 커다란 틈새로 한 명이 얼굴을 내밀었다.
“…김우진 헌터?”
“찾았다.”
우진은 아바돈을 발견하고는 눈을 희번득하게 떴다. 그의 등장에 헌터들이 떠들썩해졌다.
“김우진이라면 최근 핫했던 S급 헌터잖아.”
“우리를 찾으러 오셨나 봐!”
“설마 아까 그 언데드도 저분의 능력인가?”
“그럼 소환계 직업 아냐? 이제 되살릴 시체도 없을 텐데.”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아바돈의 기세는 압도적이었다. 설령 S급 헌터라도 혼자서 쓰러트릴 만큼 만만한 적이 아니었다.
실제로 아바돈은 중국의 S급 헌터가 포함된 공략팀을 패퇴시킨 전적이 있지 않던가.
그러므로 신수철은 말했다.
“김우진 헌터. 이 노인네가 염치없는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잠시만 시간을 끌어주십쇼. 대피가 끝나고, 지원이 올 때까지만요.”
진짜로 염치가 없었다. 어쩌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적을 두고 이런 부탁을 해야 한다니….
그런데 그때, 마켓 안으로 넘어온 김우진이 그를 바라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회장님도 계셨네요.”
마치 지금까지 있는 줄도 몰랐다는 듯한 말투였다.
“근데 꼭 시간을 끌어야 합니까?”
“윽.”
그 말을 거절의 표현으로 받아들인 신수철이 낙담했다.
‘아무리 그라도 단신으로 아바돈을 상대하는 건 역시 힘든 건가.’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그냥 죽여버리면 안 됩니까?”
“예?”
“굳이 시간을 끌 필요가 있나 싶어서요.”
당황스러운 답변이었다.
설마 김우진 헌터는 아바돈의 저력을 얕보고 있는 건가? 그렇게 미련한 성격일 줄은 몰랐는데.
“방심하면 안 됩니다. 아바돈은 무려 A급 게이트의…”
-천한 버러지들이 조잘조잘 시끄럽구나.
아바돈이 둘의 대화를 끊었다.
-그 만용이 어디까지 가나 하여 들어줬거늘, 짐의 인내심을 시험하는구나. 자비는 여기까지다.
그리고 그가 슥 집게를 들었다.
중국의 S급 헌터 왕첸, 그리고 그밖의 수많은 헌터의 목을 앗아간 집게가 날카로운 예기(銳氣)를 흩뿌렸다.
꾸웅-!
아바돈의 참격은 굉음을 동반했다. 모래구름이 피어오르며 마켓에 설치된 유리창이 와장창 소리를 내며 깨져나갔다.
실로 가공할 만한 위력이었다. 몇몇 헌터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벌벌 떨기까지 했다.
-이것이 불경(不敬)의 대가다.
아바돈이 반으로 잘린 집게를 들며 웃었다.
-…잠깐.
집게가 잘렸다고?
왜?
아니. 그보다 어떻게?
아바돈은 김우진이 있던 쪽을 바라봤다.
동시에 모래가 가라앉았다. 그 속에서 김우진은 부러진 집게를 들어올리며 중얼거렸다.
“속도가 빠르네. 탈 것으로 딱이겠어.”
21. 대적하면 안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