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Death Knight RAW - chapter (24)
과거의 기억이다.
-나는 죽은 자의 군주다. 내 명령을 따르라.
그 말에 우진은 일어났다. 무기를 들고 적을 죽였다. 사람이고 몬스터고 가리지 않았다.
정신 지배. 사령왕은 우진을 비롯한 언데드의 군세를 손짓 한 번, 말 한 마디로 조종했다.
어느 정도 격이 높아진 뒤에는 정신 지배에 저항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모자랐다.
“이대로는 안 돼.”
사령왕에게 반기를 들려면 그 수족인 불사의 군단부터 빼앗아야 한다.
우진은 정신 지배를 파훼할 수법을 강구했다.
그리고 찾아냈다.
사령왕이 지구로 향하는 차원문을 개발하겠다고 바쁜 동안, 우진은 그 방법으로 불사의 군단을 자기 세력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만든 권속들은 사령왕의 정신 지배도 견뎠다. 오직 우진의 명령만을 따랐다.
그 비법은 바로.
“일단 맞자.”
먼저 죽도록 패는 것이다.
그리고 언데드의 회복력으로 다시 회복하면 또 팬다.
그러다 보면 말을 잘 듣게 된다. 영혼 깊숙이 복종심이 새겨지는 것이다.
-건방진…! 감히 이 황금왕 아바돈에게 그런 망발을!
아바돈이 뿌득뿌득 턱을 갈았다. 그럴 때마다 쇠사슬이 출렁거리며 불안한 소리를 냈다.
쩡!
쇠사슬과 벽을 이어놨던 나사가 풀렸다.
“이런…!”
오윤아가 경악했다. 아바돈의 괴력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녀는 다급하게 원소 마법을 준비했다.
“우진 씨. 일단 제압하고 재정비를….”
“괜찮습니다.”
“네?”
우진이 오윤아를 말렸다. 그리고 팔을 교차하며 몸을 풀었다.
“저번에는 빠르게 끝내느라 오래 못 싸웠지.”
비교적 속전속결로 끝냈다.
하지만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게 있다.
죽음의 기사는 장기전에 더 강했다.
챙. 우진은 준비해둔 검을 뽑았다. 동시에 아바돈이 그를 덮쳤다.
-병사들의 원한을 갚아주리!
아바돈은 어느새 온전해진 집게를 사정없이 휘둘렀다. 하나하나에 묵직한 원한이 실려있기 때문일까?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마치 망자의 비명 같았다.
물론 기분 탓이다. 그 망자는 우진의 안에 있었으니까.
우진은 검을 들어 그 공격을 막아냈다. 겉보기에는 수비에 급급한 것으로 보였다.
-…네놈.
하지만 아바돈은 기뻐할 수 없었다.
-어째서 공격하지 않는 것이냐.
반격의 기회는 많았다. 아바돈 스스로 인정하기는 싫었지만, 감정에 치우친 공격일변도라 빈틈이 숭숭 뚫려있었다.
그런데 우진은 그저 막는 것에만 집중했다.
봐주는 것만 같은 모양새였고 실제로도 그랬다.
왜 그랬느냐. 이유는 간단했다.
“속도는 살짝 줄었지만 힘이 그만큼 세졌군. 내구력은 그대로고….”
-….
“이 정도면 합격이다.”
언제나 언데드 소환이 성공하는 건 아니었다. 가끔은 실패도 했다.
언데드가 되고서 특수능력이 사라지거나 스펙이 크게 약화되는 경우도 존재했다.
특히 고위 언데드에서 자주 그랬다.
하지만 아바돈은 우량품이었다. 부러진 집게도 재생했다. 우진이 기꺼운 웃음을 머금었다.
-…감히 짐을 평가하다니!
아바돈은 격분하며 다시 공격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우진도 맞아주고만 있지는 않았다.
-…!
어느새 아바돈의 등위에서 나타난 우진이 주먹을 들어올렸다.
-멍청하기는. 짐의 등갑은 가장 단단한 바위요, 성벽이다.
아바돈이 비웃었다. 이윽고 우진의 주먹이 떨어졌다.
와지끈!
-!!?
주먹질에서 나는 소리라고는 믿을 수 없는 굉음이 울렸다. 순간 등갑이 내려앉을 정도의 충격이었다.
-크악!
아바돈이 몸을 뒤틀었다. 우진은 그걸 예상한 듯 가볍게 뛰어내려 땅에 착지했다.
하지만 그런 무식한 짓을 한 우진의 주먹도 멀쩡하지는 않았다. 피부는 예진작에 찢어지고 주먹부터 팔까지 뼈가 아작났다.
전투를 속행하는 것도 힘들 정도의 부상이었다.
-크, 크흐흐. 나약한 몸뚱아리로군. 보았느냐. 이것이 종(種)의 차이라는 것이다. 짐은 왕으로 예정된 고귀한 피를….
“생명력 전환.”
우진의 마력이 순식간에 생명력으로 변환되었다. 우두둑. 뚜둑. 뼈가 달라붙고 살이 차올랐다.
“….”
지켜보던 오윤아가 멍하니 입을 벌렸다.
어째서일까. 그녀는 옛날에 봤던 B급 호러 영화가 생각났다. 거기에 나오던 괴물이 딱 저랬는데.
“자. 계속할까?”
우진이 상쾌하게 웃었다.
다섯 시간 뒤.
아바돈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사지가 부러지고 뒤틀린 탓이었다.
그뿐이라면 모를까. 그가 5시간 동안 겪은 고통은 생전 평생에 겪은 고통을 다 합친 것보다 끔찍했다. 차라리 정신을 놓고 싶을 정도였다.
우진은 그런 아바돈의 옆에 걸터앉았다. 그 역시 온몸이 푸르고 붉은 피로 범벅이었다. 하지만 아바돈과 달리 그 얼굴은 평온했다.
“처신 잘해. 네가 하는 거에 따라서 나는 천사도 악마도 될 수 있는 거야.”
부들부들. 아바돈은 답할 힘도 없는지 몸만 떨었다.
“나라고 힘들고 고통스럽게 이러고 싶겠어? 괜히 힘 빼지 말고 편해지자고.”
악마의 속삭임처럼 달콤한 목소리였다.
“그럼 다음에 보자.”
우진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때까지 쭉 지켜보던 오윤아에게 말을 걸었다.
“대충 이 정도입니다. 이렇게 몸으로 치고박고 싸우면서 서로를 이해하다 보면 뼛속 깊이 유대감이 스며드는 거죠.”
옛날 무협 영화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우진이 설명했다.
왜. 고수들이 합을 겨루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둘도 없는 동료가 되지 않던가.
그런 원리였다.
오윤아가 참지 못하고 한 마디 지적했다.
“…요즘은 그런 걸 가스라이팅이라고 해요.”
“오. 이미 많이 쓰는 방법인가 보네요.”
역시 좋은 방법은 어디에서나 통하는구나.
*
며칠 후. 신수철이 알아봐주겠다고 했던 기부 날짜가 잡혔다. 장소는 보육원이었다. 박은주가 1년 전부터 간헐적으로 기부를 했다던가.
기부라고 해봤자 대단할 건 없었다. 그냥 가서 인사하고 기부금 전달하고, 사진 찍고, 애들이랑 적당히 놀아주면 끝이었다.
“어흠. 가끔은 이런 것도 나쁘지 않군요.”
근데 신수철 회장은 왜 여기 있는 걸까.
속이 뻔히 보였다. 우진한테 한 번이라도 말을 더 붙이기 위해서겠지. 이 정도면 짜증나는 걸 넘어서 감탄스럽기까지 했다.
“보육원에 아이가 많네요.”
우진은 아이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점심시간인지라 옹기종기 모여서 밥을 먹는 애들의 수가 보육원 규모에 비해 꽤 많았다.
“대격변 때문이죠. 그때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많이 생겼으니까요.”
신수철은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저었다. 과거의 참사를 떠올리자 이마의 주름이 깊어졌다.
그때였다. 아이들이 무언가를 손바닥에 잔뜩 모아둔 채 김우진에게 쪼르르 달려왔다.
“헌터 오빠. 테레비에서 봤는데요. 해골 조종할 수 있다고 했잖아요. 닭뼈도 조종할 수 있어요?”
맨앞에 선 여자아이가 당돌하게 말했다.
“보고 싶어요!”
아이들이 그렇게 졸라댔다. 손에 올려둔 것은 깨끗하게 씻어둔 닭뼈였다. 그러고 보니 오늘 메뉴가 삼계탕이었지.
보육원 직원들은 그런 애들을 말리려 했다.
“애들아. 후원자님 귀찮게 굴면 안 되지.”
“괜찮습니다.”
그게 뭐 어려운 거라고.
우진은 닭뼈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닭뼈가 스르르 움직이며 하나하나 형체를 되찾았다.
“움직인다!”
“와!”
아이들이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뭐야, 뭐야?”
“뭔데 그래?”
소란스러운 소리에 밥을 먹던 다른 아이들도 관심을 가지고 몰려들었다.
“와, 신기하다…!”
초롱초롱 눈을 빛내는 애들의 모습을 보니 괜히 뭐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싶었다.
“형이 옛날 이야기 해줄까?”
“네!”
“좋아요!”
역시나 열렬한 반응이 돌아왔다. 우진은 닭뼈를 꼭두각시 인형삼아서 인형극을 하며 아이들과 놀아줬다.
인형극의 주제는 그가 겪었던 일을 동화틱하게 각색한 것이었다. 어쨌든 옛날 이야기였으니까.
그리고 얼마 뒤. 봉사 시간이 끝났다. 아이들은 보육원 마당까지 나와서 손을 흔들었다.
“안녕히 가세요!”
“다음에도 또 와야 해요!”
우진은 마주 손을 흔들어주며 차에 올랐다. 옆에 앉은 신수철이 창문 밖을 힐끔거렸다.
“반응이 좋네요. 어린 아이 놀아주는 데에 익숙하신가 봅니다.”
“뭐. 어릴 때 동생이랑 많이 놀아줬으니까요.”
“아무튼 오늘은 좋은 장면이 많이 찍혔습니다.”
신수철이 흐뭇하게 말했다. 벌써 인터넷에는 김우진의 선행이 담긴 기사가 올라갔다. 물론 그 기사에는 신수철도 꼽싸리를 끼고 있었다.
“특히 언데드로 아이들과 놀아준 게 신의 한 수였습니다. 언데드를 불길하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아무래도 언데드는 부정적인 이미지일 수밖에 없다.
원래는 몬스터의 일종으로 분류되었으니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닭뼈로 어린이 앞에서 인형극을 하는 모습은 무해하고 친근하게만 보였다.
덕분일까. 커뮤니티에 올라간 김우진의 기사에 달린 댓글은 호평일색이었다.
-김우진 헌터 개호감이네 ㅋㅋ
-닭뼈 커엽
-목소리 왤케 좋음? 중저음 ㅁㅊㄷ
-실력에 인성까지… 이런 사람 욕한 애들은 머리 박고 반성해라
우진은 댓글을 읽으며 약간 놀랐다.
“생각한 것보다 훨씬 반응이 좋네요.”
“아마 반전매력 때문일 겁니다.”
“반전매력이요?”
“지금까지는 싸움광…. 실례. 파괴전차 같은 이미지 아니었습니까.”
파괴전차도 그리 좋은 어감은 아니었지만, 사실이 그랬다.
귀환하자마자 S급 헌터와 대련해서 깨부수고, 빌런 조직을 찾아서 깨부수고, 군산 마켓에서 몬스터의 뚝배기를 깨부수지 않았던가.
덕분에 몇몇 사람들은 김우진이 이세계에서 극악무도한 악당이었고, 지구에서도 폭력적인 성향을 버리지 못하는 것 아니냐며 우려를 표했다.
헌터가 빌런으로 뒤바뀌는 것은 그야말로 한순간이었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보육원 아이들과 놀아주는 모습이 공개된 것이다.
적에게는 가차없는 S급 귀환자가 사실은 아이들을 좋아하는 인격자?
그리고 사람들은 의외성에 끌리는 법이다. 지금까지의 우려가 오히려 관심과 매력으로 바뀌었다.
“첫 시도치고는 효과가 매우 좋습니다.”
“잘 됐네요.”
우진은 그렇게 말하며 보육원을 슬쩍 돌아봤다.
‘여기는 아무것도 없었군.’
그는 아이들과 놀아주는 한편, 닭뼈 몇 마리를 써서 보육원 곳곳을 살폈다. 하지만 딱히 걸리는 것은 없었다. 태초의 뱀이나 다른 악신의 기운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곳은 평범한 보육원이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여론이 좋아졌다니, 나쁘지 않은 수확이었다. 보람은 덤이었다.
*
“선행이란 것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더라.”
우진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에 대답하듯이 철그렁거리는 쇠사슬 소리가 울렸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냐, 아바돈?”
-….
아바돈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몸상태는 껍질 속까지 너덜너덜했다.
회복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 반대였다.
처음 김우진에게 먼지나게 맞았던 날. 먹이로 지급된 생고기를 먹으니 금방 갑각이 아물고 살이 차올랐다. 처음 부활했을 때와 같은 만전의 상태였다.
그리고 김우진이 찾아왔다.
-네놈! 이번에야말로 복수를 갚아주마!
일곱 시간 동안 처맞았다.
생고기를 씹으며 울분을 다졌다. 다시금 몸이 회복됐다.
김우진이 찾아왔다.
-너의 강함은 인정하마. 그러나 짐을 굴복시키기에는 부족함이야!
여덟 시간 동안 처맞았다.
어제보다 한 시간 늘었다. 이번에는 무슨 피안개 같은 게 퍼지더니 두 배로 아팠다.
회복했다. 김우진이 찾아왔다. 처맞았다.
며칠 동안 이게 계속 반복됐다.
계속되는 고통에 아바돈의 굳건한 자존심이 조금씩 허물어지려고 했다.
-…인정하겠다. 그대는 짐보다 강하다.
“알아줘서 고맙군.”
그리고 또 처맞았다.
-왜…?
“호칭이 마음에 안 들어.”
-….
결국 오늘, 아바돈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했다.
-나는 그대를 주인으로 인정하겠다.
아바돈이 육중한 무릎을 꿇었다. 충성을 맹세하는 아바돈의 모습은 마치 서사시의 주인공 같았다.
속마음은 심히 달랐지만 말이다.
‘언젠가 틈을 타서 네놈을 죽여버리고 말겠다.’
이렇게 맞고만 있어서는 바뀌는 게 없다. 당장은 머리를 숙이더라도, 훗날을 기약하는 게 현명하다.
그런 판단이었다.
그런데 돌아온 김우진의 대답은 황당스러웠다.
“음. 좋아. 1단계는 통과했네.”
-…1단계? 주인이여. 그게 무슨 말이지? 1단계라니?
우진은 대답 대신 언제나처럼 아바돈을 때려눕혔다.
하지만 아바돈은 몸이 아픈 것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게 있었다.
‘…그럼 대체 몇 단계까지 있는 거지?’
25. 이중 던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