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Death Knight RAW - chapter (82)
방금 전.
죽음인도자로 레비아탄을 쓰러트린 직후. 김우진은 그를 죽음에서 불러왔다. 그리고 그를 복속시키려고 했다.
고위 언데드일수록 정신지배가 잘 먹히지 않았으니까. 레비아탄이 반항할 것을 예상하고, 그를 복종시킬 준비를 했다.
그런데 되살아난 레비아탄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나. 살아났다. 너 능력?
“그래.”
-….
레비아탄은 잠시 상황을 파악하더니 의외로 침착하게 말했다.
-너 나 이겼다. 강한 사람 섬긴다.
“호오?”
예상보다 더 깔끔한 반응이었다.
-안 섬긴다. 그럼 맞는다. 맞는 거 싫다.
우진은 전투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그걸 안 걸까. 레비아탄이 그렇게 말했다.
우진은 혀를 내둘렀다.
“보기보다 상황 파악이 빠른데.”
-나 똑똑하다.
말이 좀 어눌하긴 해도 머리 돌아가는 것만큼은 꽤 비상했다. 의외의 일면이었다.
‘하긴. 능력을 숨길 정도로 영악한 놈이었지.’
어쩌면 말을 어눌하게 하는 것도 눈속임 아니었을까 의심이 됐다.
“자존심 때문에라도 저항할 줄 알았는데.”
-나. 강한 적과 싸운다. 싸움 좋다. 만족한다.
강한 적과 싸우며 전투의 희열을 즐기는 것.
그를 이룰 수만 있다면 레비아탄은 누군가를 섬기는 것도 개의치않았다.
“싸움이라면 질리도록 시켜주지.”
-좋다.
그렇게 레비아탄은 우진의 권속으로 들어왔다.
*
-으흐흐. 싸움이다.
흥분한 레비아탄이 바다를 휘저었다. 일본 헌터협회의 전투함들이 하나둘 무너져내렸다.
“어디 한 번 보자고.”
우진은 그런 레비아탄의 머리 위에 자리잡은 채 중얼거렸다.
“정말 너희들끼리 레비아탄을 잡을 수 있는지.”
보여서 증명해라.
우진의 얼굴에 짙은 미소가 떠올랐다.
일본 헌터협회의 헌터들은 공황에 빠졌다.
“레, 레비아탄은 죽었잖아! 왜 아직 살아있는 거야?”
“그보다 방금 뭐, 김우진이랑 싸운다고 했던 건 어떻게 된 거지?”
혼란스러운 상황 때문에 지휘 체계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주축이라고 할 수 있는 두 사람 중 하나.
만신전 길드의 타마키는 진즉에 항복했다.
그리고 야마토 길드의 다나카는 레비아탄을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크흑!”
다나카가 창을 정신없이 휘둘렀다. 파직! 레비아탄이 쏘아보낸 전격이 함선 위로 화살비처럼 떨어졌다. 다나카는 창으로 전격을 막았다.
미처 막아내지 못한 전기 때문에 팔이 저릿거렸다. 다나카가 억울함을 담아 소리쳤다.
“제길! 말이 안 되잖아. 전투 직후에 레비아탄을 되살린 데다가, 언데드 주제에 생전의 전투력과 똑같다고?”
아무리 김우진이라도 레비아탄은 강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레비아탄급 언데드를 되살릴 힘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그게 다나카의 예상이었다. 일본 헌터협회의 다른 임원들도 똑같이 예상했다. 그것이 상식적이었으니까.
그런데 우진의 능력은 상식적이지 못했다.
“김우진…! 저 괴물 같은 놈.”
일본 헌터협회가 이런 짓을 벌인 이유는 김우진의 아성을 잠재우기 위해서였다. 그가 더 유명세를 얻고 성장했다간 한일 헌터력의 균형이 깨지리라 여겼기 떄문이다.
하지만 다나카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
“이미 균형은 한참 전에 깨져있었던 건가….”
행동에 나서려면 이보다 더 전에 나섰어야 했다.
그가 고개를 들었다. 다나카가 타고 있는 전투함. 그와 비슷한 크기의 레비아탄이 전투함 앞에 머리를 들이밀고 있었다. 그 위에 선 채, 팔짱을 끼고 이쪽을 내려다보는 오만한 청년의 얼굴이 보였다.
고작 20대 중반이나 되었을, 다나카보다 더 어려보이는 외견이었다. 하지만 마주친 눈에서 느껴지는 위압감은, 모든 것을 힘으로 찍어누르는 지배자의 그것이었다.
“어때.”
그가 입을 열었다.
“계속할까?”
“….”
아득! 다나카가 이를 깨물었다.
‘여기서 물러나면 내 권위는 추락한다.’
이 작전의 책임자는 다나카였다.
그런데 일본 앞바다에서 레비아탄을 김우진에게 뺏기고, 심지어 추하게 항복까지 한다?
-한국인에게 무릎 꿇은 다나카.
-일본의 수치.
그런 소리가 나돌 게 귀에 선했다. 그리고 다나카의 자리를 노리는 하이에나들이 그를 물어뜯겠지. 권력이란 그런 것이었다.
그리고 예로부터 권력자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확률 낮은 도박에 목숨까지 내걸곤 했다. 자신의 목숨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의 목숨까지도.
다나카도 그런 권력자 중의 한 명이었다.
‘내 자리를 잃을 바에, 여기서 다 함께 죽는 게 낫다!’
그의 아집과 명예욕이 이글이글 불타올랐다. 그는 김우진에게 삿대질을 하며 외쳤다.
“나. 야마토 길드의 다나카와 우리 일본 헌터협회의 헌터들은 사력을 다해 네놈을 상대할 것이다. 김우진!”
그가 다시금 전투 의사를 밝혔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씨익.
우진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등골이 서늘했다. 뭔가 큰 실수를 한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나와야지.”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는 마치 지옥의 구덩이에서 흘러나온 악마처럼 사악했다.
“…뭐하냐. 어서 저놈을 쓰러트려라!”
다나카가 악을 썼다.
부관이 난처한 듯 그에게 말했다.
“저…. 대표님. 만신전의 타마키가 항복 의사를 표했습니다. 그 외에도 쇼군의 사카모토와 다른 몇몇 길드도 참전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젠장. 그래서 뭐 어쩌라고! 아직 절반은 남아있지 않냐. 놈도 겉만 멀쩡하지, 속은 지쳤을 거다. 공격해!”
“….”
부관은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봐도 전황은 절망적이다. 그런데 다나카는 눈에 핏발이 선 채 전투 속행만을 외쳐댔다. 그 모습에서 이성은 느껴지지 않았다.
‘야마토도 운이 다했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역시나 다나카가 바라던 역전극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으. 배. 배가 침몰한다!”
“항복! 우린 항복하겠습니다!”
남아있던 길드와 헌터들도 한둘씩 항복 의사를 표했다.
‘더 싸워봤자 우리 길드 헌터만 다칠 뿐이야.’
‘다나카의 욕심에 희생될 수는 없지.’
세계 제일의 단합력을 지녔다고 자찬하던 일본 헌터협회가 와해되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항복을 받아들이죠.”
우진은 항복한 이들에게 손을 대지 않았다.
오히려 언데드를 써서 물에 빠진 이들을 구해주기까지 했다.
게다가 상처를 받은 이들에게는 빛의 치유까지 내렸다.
“가, 감사합니다.”
“설마 물에서 건져주고 치료까지 해주실 줄이야.”
적임에도 불구하고 생명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대하는 모습!
“과연 빛을 섬기는 용사….”
“우리는 저런 분을 적대하려고 했던 건가.”
일본의 헌터들마저 감탄을 금치 못했다.
띠링!
“음.”
우진은 뿌듯하게 미소 지었다.
“역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지.”
선행은 역시 보람차다.
*
“다나카 저 새끼 장단 맞춰주는 것도 더는 못해주겠군. 항복한다.”
“저. 저희도…!”
항복하는 이들은 점점 더 많아졌다.
그 중에는 심지어 야마토 길드의 길드원들도 있었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그의 부관마저 항복을 택했다.
“더는 가망이 없습니다.”
“….”
그의 말이 옳았다.
이제 남은 것은 오직 다나카 한 명뿐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몸상태 역시 최악이었다.
“어째서….”
다리가 부들부들 떨린다. 마력은 고갈됐다. 창을 쥔 손에서 힘이 빠진다.
그럼에도 다나카는 레비아탄의 비늘에 생채기 하나 내지 못했다.
“나는 이렇게도 약했던 건가…?”
일본 제일의 헌터라고 칭송받던 세월이 무색하게, 그는 지금 누구보다도 무력했다.
-이게 끝이다?
레비아탄의 목소리는 마치 그를 비웃는 것만 같았다.
‘…죽기 싫어.’
다나카는 입술을 깨물었다.
더는 가망이 없다.
그 외에는 모두 항복했다. 다나카 혼자서 김우진을 이길 수 있을 리 없다. 아니. 그러기는커녕 레비아탄 하나 이기지 못했다.
저항을 이어가봤자 의미는 없었다.
“크. 크윽.”
항복해야 한다. 그걸 알고 있지만 자존심이 그를 방해했다.
“하….”
하지만 자존심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지 못했다.
“항복한다.”
다나카가 고개를 푹 숙였다.
최후의 발악은 실패했다. 이 소식은 곧 일본 전역에 퍼질 것이다.
그럼 길드의 주주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터. 그들은 모든 책임을 다나카에게 물을 것이다.
한때 영웅이자 전설이었던 그는 퇴물이 되고, 뒷방으로 물러나게 될 터.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쌓아올렸던 그의 권력은 모래성처럼 흩어질 게 뻔했다.
“…권력은 허망한 거였군.”
그런데 어째서일까. 하늘을 바라보는 다나카의 눈은 어쩐지 후련했다.
그때였다.
“뭘 갑자기 깨달음을 얻은 현자 흉내야?”
“…음?”
우진의 목소리였다. 동시에 레비아탄이 다나카에게 전격을 퍼부었다.
“무, 무슨! 크으윽…!”
다나카가 힘겹게 공격을 막았다. 그러면서 외쳤다.
“이, 이게 무슨 짓이냐. 김우진! 나는 분명 항복한다고 말했다!”
자존심을 전부 내려놓았다. 자비를 빌었다.
그럼에도 레비아탄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마치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듯이.
“…젠장.”
하는 수 없이 다나카는 비굴하게 말을 높였다.
“내가…. 아니. 제가 미련했습니다. 당신의 말이 맞았습니다…!”
우뚝. 그제야 레비아탄이 공격을 멈추었다. 다나카에게는 그게 마치 계속 말해보라는 말처럼 느껴졌다.
그가 서둘러 말을 이었다.
“다, 당신이 없었다면 저희는 레비아탄을 잡지 못했을 겁니다.”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하지만 죽는 것보단 나았다.
보라. 레비아탄의 저 흉악한 이빨을.
저기에 잘근잘근 씹히고 싶지 않으면 자존심을 굽혀야 했다.
“이. 일본을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김우진 님의 도움을 기억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다나카는 고개를 숙였다.
“그…. 그러니 항복….”
“응? 뭐라고?”
그 순간이었다.
쏘옥.
우진은 귀에서 통역 아티팩트를 뺐다. 그리고 손에 힘을 줬다.
콰직!
아티팩트가 그의 손바닥 안에서 가루로 변했다.
히죽.
그가 입에 미소를 가득 머금으며 말했다.
“미안. 통역기가 고장나서 무슨 말을 하는지 못 알아듣겠는걸.”
통역기가 부서진 탓에 다나카는 우진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했다.
“기, 기, 기….”
하지만 그 뜻만은 전해졌다.
“김우진. 이 개자식!”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는, 절대 항복하지 않는 일본의 기개 있는 진짜 사나이.
다나카의 싸움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
“구, 국장님!”
시마네현 앞바다에서 벌어진 레비아탄 토벌전. 그 소식은 대한민국 헌터관리국 국장실에도 전해졌다.
물론 그 이후 김우진과 일본 헌터 사이에 일어난 소요사태에 대한 소식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거 어떻게 합니까? 아무리 김우진 씨라 해도 이건 문제가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박준혁 팀장이 걱정하는 목소리를 냈다.
“따지자면 김우진 씨가 허가 없이 일본 영해로 들어간 게 맞기도 하고요….”
헌터가 무단으로 타국의 국경을 넘은 것은 확실히 문제의 소지가 있었다.
이 부분을 걸고 넘어지면 꽤 머리 아픈 일이 벌어질 게 뻔했다.
박준혁 팀장이 걱정하는 이유였다.
“그렇군.”
하지만 국장. 오강수는 태연하게 자리에 앉은 채 머그잔을 기울일 뿐이었다.
그 태연한 태도가 박준혁은 이해되지 않았다.
“국장님은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어쩌면 한일 외교 갈등으로 비화될 수도 있다고요!”
“그래. 그럴 뻔했지.”
“네?”
그럴 뻔했다니. 이건 현재진행형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었다.
“역시 아직 자네도 배울 것이 많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국장님?”
오강수가 헛헛 웃었다.
“나도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는 깜짝 놀랐다네. 하지만 김우진 헌터가 막무가내로 일을 벌일 사람인가?”
‘네. 그럴 것 같은데요….’
박준혁 팀장이 말을 삼켰다.
“김우진 헌터가 하는 일에는 전부 이유가 있다네. 그렇게 생각하니 새로운 것이 보이더군.”
“그게 뭐죠?”
“잘 생각해보게. 만약 김우진 헌터가 일본으로 가지 않았다면 그들만으로 레비아탄을 잡을 수 있었겠나?”
“…아뇨. 힘들었겠죠. 만약 성공했더라도 일본 헌터협회는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을 테고요.”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그야, 당연히 우진 씨가 되살린 레비아탄에게 일본 헌터협회가 졌으니까 그렇죠.”
당연한 것을 묻는다는 듯, 박준혁이 곧바로 대답했다.
오강수가 눈읏음을 흘렸다.
“그래. 그런데 만약 소요사태가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예?”
“그랬다면 놈들은 계속 우겼겠지. 자기들도 할 수 있는 건데, 김우진 헌터가 국경까지 침범하며 사냥감을 뺏어갔다고. 그럼 그야말로 국제 문제가 될 만하지.”
“아…!”
그제서야 박준혁도 머리가 띵한 느낌을 받았다.
“그럼 설마 우진 씨는 소요사태를 의도했던 건가요?”
“아마도. 애초부터 일본은 레비아탄을 소탕할 수 없으리라는 걸 알고 계셨던 거겠지.”
그래서 레비아탄을 막기 위해 국경을 넘은 것이다.
“김우진 헌터가 국경을 넘어서라도 도움을 주지 못했다면 일본은 큰 피해를 입었겠지. 김우진 헌터는 이번 소요사태로 그걸 증명한 셈이야.”
“일본에서도 국경을 넘은 것을 문제 삼기는 힘들겠군요.”
왜 자기들이 위험에 빠진 것을 구해줬냐고 따지는 꼴이었다.
“소요사태는 일본 쪽에서 먼저 시작했다지. 김우진 헌터는 그저 자기방어를 했을 뿐이니 책임을 묻지는 못할 거야. 무엇보다도, 거기서 죽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하지 않았던가?”
“네. 그랬죠.”
일본 헌터협회의 헌터들은 한 명도 죽지 않았다. 시비를 건 것도 일본 헌터협회가 먼저였다. 그러니 문제 삼기도 애매했다.
“그렇다면 설마 김우진 씨는 이 모든 걸 계획하고…?”
“그래서 말하지 않았나. 그가 하는 일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아….”
그제서야 박준혁은 깨달음을 얻은 듯 탄성을 내뱉었다.
일견 막나가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상은 무섭도록 차가운 결정이었다.
“…정말 대단하네요. 그런데 국장님은 어떻게 그런 뜻을 다 읽으신 거예요?”
“허허. 별 것 아니네. 나이가 들면 통찰력이 생기기 마련이거든. 연륜이라는 거지.”
그들이 주거니받거니 말을 나눴다.
“…맞다.”
그때 박준혁 팀장이 문득 떠올랐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죽은 사람은 없지만 부상자가 딱 한 명 있다고 했는데….”
“야마토의 다나카 말인가?”
“예. 역시 들으셨군요.”
“끝까지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고 레비아탄과 전투를 벌였다지. 심지어 마력이 고갈되는 걸 넘어 폭주할 때까지 말이야.”
마력 폭주. 마력을 한계까지 끌어서 사용했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자칫 죽을 수도 있었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내상이 심했다고 합니다.”
“그럴 만도 하지. 쯔쯔. 앞으로 헌터 활동은 하기 어렵겠어.”
오강수가 끌끌 혀를 찼다.
“사람이 때로는 고집을 꺾을 줄도 알아야 하건만.”
83. 신고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