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Genius Photographer RAW novel - Chapter (292)
292화
1.
“훌륭하군….”
한은 내가 촬영한 사진을 보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산행하며 틈틈이 찍은 사진들은 물론.
한이 알려준 명소의 풍광과 정상의 전경.
그리고 그 위에 선 우리의 모습까지.
보름이 넘는 일정이 담겨 있는 사진들.
한은 그것에서 눈을 뗄 줄을 몰랐다.
“너무 아름답소.”
“마음에 드시나요?”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말도 못 하게 아름답습니다. 당신 보통 실력이 아니군요.”
“하하, 감사합니다. 한이 알려준 장소가 너무 멋있는 곳이라서 그래요. 내려가서 인화하면 더 예쁠 거예요.”
“그렇다면 내, 내게도 사진을 줄 수 있겠소?”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선 한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걸 말이라고.
한에게는 그 무엇도 아깝지 않지.
“물론이죠.”
“정말이요? 정말 고맙소!”
그러자 한은 잇몸을 환하게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산을 오를 때도 그리 감정 표현이 많지 않던 사람이었는데 사진이 마음에 든 걸까?
의문에 고개를 살짝 갸웃거려 그를 바라보자 한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크흠! 우진의 사진이 아주 마음에 들어서 그럽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사진이라면 내 아이도 좋아할 것 같소.”
그러고 보니 내가 절벽에 떨어질 뻔하고 난 뒤에 정상에 오르며 아이가 있다고 말했었지.
아이에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되고 싶다고.
제 일을 아이가 좋아했으면 좋겠다고.
한은 그렇게 설명했었다.
“아버지가 이리 아름다운 곳에서 일한다는 걸 알면 기뻐하지 않겠소?”
“도움이 될 수 있어서 다행이네요.”
난 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아이를 사랑하시나 보군요. 아이가 아주 어린가요?”
“올해로 딱 열 살이요.”
“세상에 관심이 많을 나이군요.”
“그렇소. 언제 그렇게 컸는지 시간이 참 빠릅디다.”
사랑하는 아이의 모습을 떠올리기라도 하는 양.
사진을 들여다보던 아버지의 얼굴에는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내가 촬영한 사진을 가져가려는 것도 아이에게 전해주기 위해서인 모양.
그의 반응이 너무 좋아서인지 마음 한편으로는 뿌듯한 마음이 드는 것 같았다.
한데….
전생에서는 아들 이야기는 듣지 못했단 말이지.
그때에도 나름 한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도 그의 입에서 아들과 관련한 이야기는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저렇게 아들을 생각하며 웃음이 나오는 사람인데 그럴 수가 있었을까?
아니면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자연히 호기심이 든다.
“한, 그럼 아이도 나중에 한을 따라 이 일을 하게 되는 건가요?”
산악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인 셰르파들은 어떤 삶을 살게 되는가.
그런 의문에 말을 걸자 순간 한의 얼굴이 굳어지는 게 느껴졌다.
“모르겠소….”
“네?”
그리곤 이어지는 깊은 한숨.
“우진이 알지는 모르겠지만 산에 사는 셰르파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리 많지 않소. 마을을 떠나 도시로 가는 게 아니라면 농사를 짓거나 나처럼 산에 오르는 수밖에 없지.”
“그렇군요.”
“따지자면 태어날 때부터 선택지가 없는 셈이요. 뭐, 그렇다고 그 삶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조금 아쉬울 뿐이요.”
내게 상황을 설명하는 한의 표정은 아까와는 달리 내내 어두웠다.
아마도 이건 아버지의 고뇌이리라.
사랑하는 자식이 모든 가능성을 잃고 그저 상황에 순응하며 살아야 한다는 미래를 알고 있는 슬픔.
한이야 지금의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좋아한다지만.
아직은 어린 그의 아이가 무엇을 좋아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
그 가능성을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게 돕는 게 아버지라면 당연한 바람이지 않을까.
그리고 그거라면 내가 도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어두운 이야기를 해서 그런지 날이 곧 어두워지겠소.”
이야기를 이어가던 한은 하늘을 한차례 바라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늦기 전에 내려갑시다.”
아직은 밝은 하늘.
하지만 뒤죽박죽인 날씨처럼 산의 밤은 순식간에 찾아온다.
그 전에 가까운 베이스캠프까지 가려면 서둘러야지.
난 한을 따라 서둘러 짐을 챙기고는 곧바로 하산을 시작했다.
2.
내려가는 길은 오를 때보다 훨씬 수월했다.
오를 때와 마찬가지로 험준한 경사로 인해 하산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었으나.
마음에 짐을 덜었다고 해야 하나.
목표로 했던 일들을 모조리 성공적으로 마친 덕분에.
발걸음과 마음은 한없이 가벼웠다.
그렇게 하산을 이어가며 중간중간 롯지에서 머무르기를 며칠.
완전히 아래로 내려와 산행을 마치게 된 건 열흘도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동안 즐거웠소.”
산에 가장 아래 등산객들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롯지에 도착하자 한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이제 내일이면 비행기가 올 거요 그걸 타고 포카리로 가면 됩니다.”
처음 만났던 포카리로 향하는 나와는 달리, 산악 거주민인 그는 다시 고향 산으로 돌아간다.
즉 오늘이 마지막으로 그와 함께하는 날인 것.
“네. 한 덕분에 너무 좋은 산행을 했습니다.”
“내 탓이 아니요. 우진이 산의 허락을 받은 덕분이지요.”
난 그에게 감사를 표하며 손을 맞잡았다.
잔 상처로 가득한 거칠고 투박한 손.
그와 너무 오랜 시간을 함께 있었던 탓일까.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사실이 너무 아쉽다.
“이번 등산은 결코 잊지 못할 것 같아요.”
“하하하, 그리 생각해주니 고맙소.”
하지만 등산객과 셰르파라는 이미 이별이 예정된 만남.
떠나는 것을 아쉬워하기보단 함께한 시간을 즐기는 것이 맞겠지.
셰르파의 말을 빌리자면….
“한을 꼭 기억할게요.”
추억을 이야기하며 기억에 남기는 것이야말로 서로를 위하는 일이니, 말이다.
“나 또한 우진을 기억하겠소.”
“감사합니다. 아 참, 사진을 드려야죠.”
그렇게 이별을 앞두고 서로에게 덕담을 나누는 와중, 잊고 있었던 게 생각난 난 한에게 사진을 내밀었다.
“마침 이곳에서 인화할 수 있더라고요.”
히말라야에 올라 사진을 촬영하려는 사람은 수두룩할 테니.
그 수많은 촬영자를 위해 프린터기를 마련해 뒀던 모양.
그 덕에 다행히 어제 내려와 묶은 마지막 롯지에서 사진을 인화할 수 있었다.
이로써 저번에 했던 약속은 지킨 셈이다.
그렇게 살짝 씁쓸한 마음을 숨기고 말하자.
“정말 아무리 봐도 아름답소. 어떻게 말해야 할지 감탄밖에 안 나오는군요….”
내가 내민 사진을 조심스럽게 받아든 한은 다시금 감탄사를 내뱉었다.
“혹시 우진은 유명한 사진작가입니까?”
“네?”
“아니지, 분명 유명한 사람인 게 틀림없소. 내 눈에도 이렇게 아름다운 사진을 찍는 사람이 유명하지 않을 리가 없으니까.”
연이은 극찬에 민망한 기분이 들 정도.
“어떻소? 내 말이 맞지 않소?”
그러고 보면 그때도 한은 내 사진을 참 좋아했었지….
그저 삶의 희망을 주기 위해서 한 거짓말이었는지는 몰라도.
내게 건넨 응원의 말이 참 고마웠던 기억이 난다.
“아, 네…. 조금 유명합니다.”
“역시! 내 처음 볼 때부터 그럴 줄 알았소.”
내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여 답하자 한은 자신이 정확히 알아맞혔다며 즐거워했다.
“우진 당신같이 뛰어난 사진작가와 함께 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소. 이 사진은 오래 간직하리다.”
“네! 저도 영광이었습니다. 한, 언젠가 또 볼 수 있기를 바랄게요.”
그때였다.
저 멀리서부터 굉음을 내며 롯지를 향해 다가오던 경비행기가 인근에 착륙했다.
이제는 가야 할 때라는 소리.
“우진이 가는 것까지 보고 가겠소.”
내 곁에서 한 발짝 물러선 한은 살짝 손을 흔들었다.
동시에 빠르게 비행기 안으로 사라지는 행렬.
내 차례도 곧이다.
“고마워요. 한! 그리고 이건 선물이에요.”
다른 이들의 뒤를 따르려던 찰나.
잊고 있던 것이 생각난 난 가방에서 봉투를 꺼내 그의 손에 쥐여주었다.
“이게 뭡니까?”
“약간의 팁이라고 생각해요.”
“예? 대금은 중개인을 통해 이미 치르지 않았습니까? 그것도 시세보다는 많이 낸 걸로 알고 있는데….”
“아뇨, 그건 중개인 비용까지 포함되잖아요. 그걸로는 마음을 표현하기엔 모자랄 것 같아서요.”
“아니 그래도….”
얼떨떨해하는 그가 거절하기 전에 난 손을 떼고는 비행기를 향해 뒷걸음질 쳤다.
“두 번이나 절 도와줘서 감사해요.”
그리고 떠나기 직전 그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건넨다.
“두 번…? 우진 그게 무슨….”
의문스러운 말에 셰르파는 곧바로 물었으나.
이미 비행기에 탄 내게 그 말은 닿지 않았다.
마지막 인원까지 탄 것을 확인한 경비행기는 곧바로 굉음을 내며 하늘을 날았다.
내 인생 최고의 사진.
그것을 몸과 마음에 품은 채 나의 산행은 막을 내렸다.
3.
“여보, 다녀왔소.”
산행을 마친 셰르파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아내를 부르며 허름한 소파 위에 몸을 기댔다.
그러자 순식간에 몰려오는 산행의 피로.
“고생했어요. 이제 며칠은 쉴 수 있겠네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한 대신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아내는 그의 짐을 끌러 정리하기 시작했다.
한 달 만에 만난 아내이건만 반가운 티도 내기 힘들다니.
산행은 이게 문제다.
한이 하는 산행은 셰르파들이 하는 일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동시에 가장 힘든 일이었다.
등산과 하산을 포함해 한 번 산행을 떠날 때마다 한 달은 족히 걸리는 것은 물론.
늘 죽음의 위험까지 도사리고 있었으니까.
“아이는 잘 있소?”
“네. 지금은 자고 있어요.”
그리고 한 번의 산행이 끝났다고 해도 며칠이 지나면 또다시 산을 오르길 반복하니 집에 있는 시간도 그리 많지 않다.
심지어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자식조차 한을 보면 어색해할 정도.
한이 그토록 사진을 구하려는 것도 자식이 조금이나마 자신의 얼굴을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에베레스트로 갔다고 했죠? 이번엔 어땠어요?”
“이번 산행은 날씨가 안 좋아서 특히 고됐어. 심지어 일행이 죽을 뻔했지.”
그는 찌뿌둥한 몸 구석구석을 주물럭거리며 아내의 물음에 답했다.
산행을 오를 때마다 온몸이 쑤시는 감각.
과연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흔히들 높은 산에 오를수록 수명이 닳는다고들 하는데.
그것을 업으로 삼는 한이 언제까지 산에 오를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무리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한들, 몸에 한계는 그와는 별개의 이야기.
날로 고통에 삐걱대는 몸을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이 일을 때려치우고 싶지만.
사랑스러운 가족을 생각하면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이 목숨을 거는 일조차 달러로 치면 고작 400달러.
한국 돈으로 치면 단돈 50만 원에 오르는 데만 보름이 넘는 산을 오르내리길 반복하는 것이다.
고작 그 돈으로는 먹고사는 것조차 버거운 것은 물론.
점차 커가는 아이를 생각하면 턱없이 모자라지.
돈, 돈….
그놈의 돈이 문제다.
“빌어먹을….”
암울한 생각에 한은 눈을 감았다.
잠이라도 청하며 생각을 지울 참이었다.
하지만 그때.
“아악!”
옆에서 들려오는 아내의 비명.
“여, 여보!”
이윽고 그를 부르는 목소리에 한은 놀라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
“이것 좀 보세요!”
그러자 대답 대신 봉투를 내미는 아내.
저런 봉투가 있었던가.
아 맞아, 우진이 마지막으로 건넨 봉투였지.
확인하는 걸 잊고서 그대로 가방에 집어넣었던 모양이다.
팁을 넣었다고 듣기는 했는데 그걸 보고 왜 비명을 지른단 말인가.
의문이 생긴 한이 봉투를 받아들자.
“이런 말도 안 되는…!”
“여보! 이 돈이라면 우리 아이도 학교에 갈 수 있어요! 아니, 그 이상도…!”
그는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우진이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작고 하얀 봉투.
그 안에는….
―당신의 후원자가 되겠습니다.―
―우진.
우진의 편지와 함께.
그가 상상할 수 없는 금액이 들어있었다.
그가 평생을 벌어도 볼 수 없는 막대한 양의….
그것이 우진이 건네는 보답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