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ad Demon RAW novel - Chapter 425
425화. 광승과 나.
아무도 광승의 말에 대답하지 못하고 있을 때.
요란이는 밝은 얼굴로 걸어 나오는 귀마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났다.
“둘째 사부님.”
“요란아.”
스승과 제자가 오랜만에 재회하는 모습을 구경하는 와중에 아침 산책에서 복귀하는 모용백과 공손심까지 탁자로 와서 광승과 인사를 나누자 분위기가 제법 어지러웠다.
어쨌거나 대부분 광승이 마시고 있는 술에 시선을 떼지 못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나는 광승이 번잡한 것을 싫어해서 곧 떠나리라 생각했다.
“스님.”
“말씀하시오.”
“바다를 보러 가신다면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광승이 나를 쳐다봤다.
“요란이 때문에 그런 것이라면 괜찮소. 어차피 문주를 보기 위해 혼자서라도 화산에 올 생각이었지. 요란이 덕분에 심심하지 않게 온 셈이오. 뜻밖에도 요란이가 강호 소식에 밝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꼭 요란이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럼 다른 이유가 있소? 여기서 바다는 굉장히 멀다고 하던데.”
솔직하게 대답했다.
“이참에 바다를 보지 않으면 언제 보겠습니까?”
“그래도 일문의 문주이신데. 한낱 어리석은 중의 동행으로는 과분하오.”
나는 맏형을 바라봤다.
“……맏형, 다 같이 갈까?”
맏형이 웃었다.
“아니다. 스님의 말을 듣고 보니 바다를 보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만 우리가 전부 가면 요란이도 따라가야 할 테고. 바다로 가는 동안에 벌어지는 일은 굳이 요란이가 보지 않아도 될 일이 있을 것이다. 셋째야.”
“응.”
맏형은 꼭 해줄 말이 있다는 것처럼 나를 바라봤다.
“너는 다녀와라. 하오문 일도 잠시 잊고. 광마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 날뛰어야 했던 일도 잊고. 기왕 스님이 바다를 보러 가신다니……너도 이번 기회에 너 자신을 돌보면서 여행을 다녀오도록 해. 문주도 아니고, 광마도 아니고, 이자하의 여행이다. 잡다한 일은 우리 셋이 처리하고 있으마. 그것이 하오문의 일이든 강호의 일이든 간에.”
솔직히, 함께 가자고 하면 세 사람과 요란이도 함께 갈 줄 알았다.
맏형이 이렇게 길게 말하는 것은 드문 일이어서 잠시 고민해봤다.
“나를 위해?”
맏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교주가 저렇게 돌아갔으니 그의 성향상 문제는 없을 것이다. 약조는 지키는 사내니까. 은퇴하겠지. 이제 마도에 문제가 생기면 교주에게 연락을 취하고. 백도가 문제를 일으키면 임 맹주에게 서찰 한 통을 보내면 되는 강호가 되었다. 서생이나 흑도가 날뛰면 천악에게 연락하면 될 일이고. 앞으로 무슨 일이 있겠느냐?”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광승이 끼어들었다.
“듣자 하니 중원에서는 교주, 개방 방주, 천악이 가장 강하다던데 혹시 교주가 문주에게 패했소?”
결과를 알지 못하는 모용백과 공손심, 귀마도 있었기 때문에 맏형이 다시 한번 확실하게 설명했다.
“화산에 올라가서 일대일을 했는데 패배하면 은퇴하기로 했었던 교주가 다른 삼재에게 은퇴 소식을 전하겠다고 천악과 떠났소. 비록 우리가 비무를 보진 못했으나 교주는 언행이 확실한 사내라서…… 문주에게 패배한 것이 확실하오.”
광승이 놀랍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문주의 성취가 대단하오. 이 젊은 나이에…… 그렇다면 중원제일이오?”
우리는 깜짝 놀라서 광승을 바라봤다.
생각해보니까 천하제일이 아니라 중원제일이다. 천하가 어찌 중원만 있겠는가.
맏형이 말했다.
“스님 말씀대로 중원제일이 맞겠소.”
광승이 말했다.
“정말 문주가 나와 함께 바다를 보러 가겠다면 중원제일과 동행하는 셈이로군. 실로 영광이오. 어리숙한 사제가 문주 이야기를 시도 때도 없이 했는데 그 이유가 합당했군.”
요란이가 물었다.
“대사부님, 함께 가면 안 될까요?”
맏형이 요란이를 바라보더니 슬쩍 웃었다.
“요란아, 네 경공 실력으로는 사부들의 걸음도 따라갈 수 없다.”
“아, 경공으로 가야 하는 거예요?”
“때로는 걷겠지만 때로는 경공도 펼치겠지. 강호인들은 대부분 성질이 급해. 네가 적어도 사부들에게 크게 뒤처지지 않는 경공 실력을 지니게 되면 그때 다 함께 보러 가도록 하자. 그것이 더 의미 있는 일이야.”
요란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대사부님.”
나는 광승에게 내가 동행해야 할 마땅한 이유를 설명해줬다.
“스님, 저와 함께 가시지요. 도움이 될 겁니다.”
“무슨 도움이 있겠소?”
나는 전낭 부분을 손으로 툭 쳤다.
“돈이 좀 많습니다. 이참에 온갖 술을.”
광승이 바로 대답했다.
“확인했소.”
“예.”
확인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색마가 급히 웃음을 참았다.
광승이 우리를 둘러보더니 끝으로 요란이를 바라봤다.
“요란아.”
“예, 스님.”
“네 말대로 훌륭한 사부들이다. 나는 셋째 사부와 바다를 보고 올 테니 기회가 되면 또 보자꾸나.”
“알겠습니다.”
광승이 웃으면서 말했다.
“네가 바라는 천하제일은 하루하루를 허투루 보내선 도달할 수 없는 경지다.”
“명심하겠습니다.”
광승은 요란이의 다섯 번째 사부처럼 말하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족보가 또 꼬이는 것일까? 대체로 내 주변은 족보가 엉망이라서 큰 상관은 없었다. 광승은 실제로 요란이를 가르칠 마음이 있는 모양인지 이런 말을 꺼냈다.
“넷째 사부의 무공을 익힐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뭐라고 했지?”
요란이가 대답했다.
“완벽하게 끝을 보는 겁니다.”
“그렇게 끝을 봐야 또 다른 시작을 할 수 있다. 네가 넷째 사부의 빙공을 완성하면 그와 정반대되는 극양 계열의 무공을 가르쳐주마. 내게 배울 날이 올 것 같으냐?”
요란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꼭 배우겠습니다.”
요란이를 대하는 광승의 태도는 그냥 큰 사찰에서 무공 좋아하는 스님을 보는 것처럼 부드럽기 짝이 없었다.
광승이 우리에게 말했다.
“큰일이 있을까 하여 급하게 달려왔소만. 이렇게 평화로운 줄은 몰랐소. 꼴에 중이라는 놈이 술이나 마시는 추태를 보였으니 갑작스럽겠지만 이만 떠나리다.”
예상대로 광승은 번잡한 곳에서 탈출하려는 성향이 있었다.
나도 내뱉은 말이 있는 터라 광승과 함께 일어났다.
광승이 내게 물었다.
“문주, 정말 갈 참이오?”
“스님, 동쪽으로 가는 동안에 인간이길 포기한 흑도 무리가 많을 겁니다.”
“나도 무공을 꽤 험하게 익혔소만?”
“함께 두들겨 패자는 뜻이지요.”
광승이 웃었다.
“젊은 문주에게 질 수는 없지. 갑시다. 바깥에서 경치 좀 감상하고 있을 테니 작별의 말이라도 더 나누고 나오시오. 그럼, 여러분. 오가다가 다시 만납시다.”
광승이 선장을 붙잡더니 매화장 바깥으로 나갔다.
사람들이 곧 여행을 떠나는 내 주변으로 촘촘히 모였다.
모용백이 물었다.
“문주님, 하오문에 전할 말 있으십니까?”
“없다. 대신에 차성태는 붙잡아 와서 맏형을 비롯한 사부들 밑에서 고생 좀 하라고 전해라. 수련도 검사 맡고. 정신 나간 놈, 제대로 수련하는지 모르겠네.”
“전달하겠습니다.”
이번에는 공손심이 내게 물었다.
“문주, 임 맹주에게 전할 말이 있으면 내가 방문해서 알리겠네. 어차피 소식을 전해야 하는 터라.”
나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에 대답했다.
“소백 형님에게 이 아우가 천하제일이 됐음을 좀 알려주시오.”
“스님 말로는 중원제일 아닌가?”
“거, 번잡하니 그냥 강호제일로 합시다. 대신에 서열을 좀 낮춰달라고 하면 무슨 말인지 맹주께서 아실 거요.”
“그야 나도 알고 있네.”
천하제일, 중원제일, 강호제일, 점소이 제일이고 나발이고 하여간 전부 나다. 나는 형제들과 동지들을 둘러본 다음에 한쪽 무릎을 꿇어서 요란이와 시선을 맞췄다.
“요란아.”
“예, 사부님.”
“천하제일이 되겠다고 불효까지 내던지면 안 된다. 무슨 말인지 알지?”
“예.”
“그렇게 하면 사부들에게 된통 혼날 거다.”
“명심할게요.”
“이 사부가 만장애보다 위험하다는 것은 이제 증명했다. 하지만 네 사부 중에서 마음이 가장 못나고 편협한 편이니 넓은 바다를 보면서 반성 좀 하고 오마. 사부는 반성할 게 많아.”
“사부님, 그런데.”
“응.”
“왜 그렇게 항상 바쁘세요?”
“허튼 시간을 너무 많이 보냈더니 이렇게 바빠지는구나. 못난 놈이라 그런 것이니 너는 따라 하지 말아야 해. 간다.”
“잘 다녀와라.”
“갑자기 동쪽이 불쌍해지네. 미리 조심들 하라고 연락 넣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매화장주가 끝까지 따라와서 작별을 건넸다.
“문주님, 살펴 가십시오.”
“장주도 고생 많았소. 다녀와서 봅시다.”
대체로 내 걱정보단 아예 동쪽을 걱정하는 걸 보아하니 이게 맞나 싶다가도 틀린 말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입구에서 동지들을 둘러본 다음에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을 광승에게 갔다.
…광승은 당장 동쪽으로 떠날 사람처럼 걷다가 내게 근처에 사찰(寺刹)이 있는지를 물었다. 나도 아는 바가 없어 사람들에게 물어본 다음에 조그만 사찰을 찾았다.
정작 낮은 산을 올라 살펴보니.
사찰이라 부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허름한 절이 나왔다. 흔히 볼 수 있는 불상이 지붕도 없는 곳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는데 광승과 나는 나란히 서서 불상을 잠시 쳐다봤다.
광승이 불상을 보면서 말했다.
“문주.”
“예.”
“떠나기에 앞서 그대와 나는 살생(殺生)을 많이 저질렀으니 부처님 앞에서 참회하면 좋겠소. 참회란 별거 아니요. 우리가 죽인 자들의 죄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저 그 생명의 왕생(往生)을 비는 것일 뿐. 형식도 없고 그저 마음으로만 명복을 빌면 되겠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봤다.
“스님은 제가 많은 살생을 저질렀다는 것을 어찌 아십니까.”
광승이 나를 바라봤다.
“문주, 천하제일이 쉽게 되었겠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보는데. 요란이 말을 듣다가 내가 가장 놀란 이야기는 문주가 본래 객잔을 운영하던 사람이라는 말이었소. 문파나 세가가 아닌 곳에서 천하제일에 올랐으니 그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을 거요.”
“그렇긴 합니다.”
“명복을 빌어봅시다. 선 채로 눈을 감으면 어지럽기 마련이니 이럴 때는 편히 앉는 게 좋소.”
나는 광승과 나란히 앉아서 불상을 보다가 눈을 감았다.
광승의 말대로 내가 죽인 자들의 명복을 잠시 빌었다. 이렇게 눈을 감은 채로 생각하고 있으려니 내가 죽인 자들이 한둘이 아니어서 뜻밖에도 혼란스러웠다.
‘죄가 깊구나.’
참회의 시간은 얼마나 길어야 하는 걸까. 전생의 광승과는 이런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제법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이내 광승의 목소리가 들렸다.
“……문주, 적당히. 억지로 할 필요는 없소.”
나는 눈을 뜨면서 물어봤다.
“벌써 끝나셨습니까?”
“내가 문주보단 살생을 덜 했을 테니 내가 먼저 끝나야지. 더 하시겠소?”
“일어나시지요. 예상하지 못했는데 제법 어지러웠습니다.”
“그렇겠지.”
광승은 불상을 마치 동네 형처럼 대했다.
“……그럼 갑니다.”
부처님과 호형호제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살짝 어리둥절한 참회의 시간을 마친 다음에 광승과 함께 다시 하산했다.
광승이 문득 숨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후련하다는 것처럼 말했다.
“이제 좀 속이 후련하군.”
“그러십니까?”
“문주는 그렇지 않소?”
“저는 뭐 똑같습니다.”
광승이 중원에 오기 전에 어떤 살생을 했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기 때문에 넌지시 물어봤다.
“그런데 어떤 살생을 하셨습니까? 잡부밀교 근처에도 강호인이…….”
광승이 말했다.
“죽일 놈은 어디에나 있소. 불자들을 괴롭히는 것도 모자라서 재물에 욕심을 내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창을 던져 죽이고, 몸을 꿰어 이미 죽은 자들마저 조롱하는 놈들도 있었고. 대체로 짐승 같은 놈들은 말이 안 통하는 법. 이런 자들이 무리를 짓게 되면 서로 경쟁하는 심리가 있어 더욱 잔인해지는 법이고. 이를 오래 외면하면 저희끼리 전통이라는 게 생겨서 더욱 잔혹한 방법으로 강도와 노략질, 살인을 일삼게 되오. 적절한 시기에 그저 모조리 죽이는 게 무승의 역할인데…….”
“그런데요?”
“노승들과 뜻이 맞지 않아 안팎으로 어려웠소. 내가 죽이지 않으면 민생이 괴롭고. 그렇다고 매번 나서서 해결하면 노승들이 괴로워하고. 실은 나도 적절한 방안을 찾지 못했지.”
나는 걸음을 멈춘 다음에 광승을 바라봤다.
어쩐지 내가 강호에서 한 일이나 광승이 서장에서 벌인 일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래서 이 사내가 광승이고, 내가 광마다.
전생과 다르게 어쩌면 이 사내가 다시는 잡부밀교로 돌아가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괴로워하는 자들은 이곳에도 많기 때문이다. 넓게 보면 이 사내가 바로 하오문에 속하는 승문(僧門)의 문주이기도 했다.
광승은 빤히 쳐다보고 있는 내게 말했다.
“문주.”
“예.”
“동쪽으로 가면서 잔혹한 놈들은 그때그때 때려죽이거나 다시는 무고한 자들을 괴롭히지 못하게 팔다리를 분질러 놓는 게 어떻겠소. 실은 그것이 바다를 보는 것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일 텐데.”
“방금 함께 참회하셨지 않습니까.”
광승이 나를 보다가 씨익 웃었다.
“……그러니까 새로운 마음으로.”
나는 슬쩍 웃다가 손을 내밀었다.
“그 석장 좀 줘보십시오.”
나는 광승이 건네는 황금빛의 석장, 부러지지 않는 신념을 붙잡은 다음에 내 어깨에 걸쳤다. 광승이 지니고 있었던 마음의 짐을 내 어깨에 올려놓은 다음에 말했다.
“가시지요. 바다 보러.”
…사부와 나는 바다로 향했다.
본편 완결.
***후기 및 외전 공지***
안녕하세요. 유진성입니다.
2020년 2월에 선보였던 광마회귀 이야기를 1년 6개월 만에 마무리했습니다.
제가 가장 길게 썼던 것은 칼에 취한 밤을 걷다, 250편이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유난히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주화입마 상태에 많이 빠진 채로 적었습니다.
하지만 봐주시는 독자분들 덕분에 제게도 특별한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이야기가 더 남지 않았냐고 하실 분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휴식의 시간을 가졌다가 복귀해서 외전으로 다루겠습니다.
놀랍게도 이번 연재 기간에 몸살 한 번 오지 않아서 휴재를 안 하는가 싶었는데, 심마 때문인지 불면에 많이 시달린 채로 연재를 해서 뜻하지 않게 휴재가 몇 차례 있었습니다. 사과드립니다.
덤덤하게 후기를 적겠다고 다짐하면서도 쉽지 않네요.
이자하가 동쪽 바다를 보고 와서 복귀할 때쯤, 함께 복귀해서 외전을 적어보겠습니다.
425편의 이야기,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때로는 힘들고, 때로는 웃고, 광증에 내내 사로잡혀 있었던 여정이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함께 해주셔서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유진성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