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ad Demon RAW novel - Chapter 51
51화. 웃어서 좋았다.
병을 고치고 사람을 살리던 사내가 원한을 품으면 얼마나 무서워질 수 있는가.
그것을 입증한 사내가 독마다.
신체와 약에 대한 지식으로 강해지고, 그것도 부족해서 독을 연구했다. 의원에서 병이 깊어 힘겨워하는 자들을 위해 분주히 돌아다니던 두 발은 험지를 누비면서 독을 찾아다니는 두 발로 바뀌었다.
그것도 부족했는지 독마는 대나찰을 단신으로 죽이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자신의 신체에 독을 시험했다. 중독과 치료를 거듭하다가 사람이 달라진 의원은 와신상담의 세월을 보내다가 결국 대나찰을 죽였다.
복수를 이룬 자의 마음은 흡족했을까?
전생에 우리가 만났을 때는 이미 독마가 대나찰을 죽인 이후였다. 그러나 독마는 대나찰의 제자들도 가만히 두지 않았다. 추적해서 죽이고, 찾아내서 죽이고, 한때 십이신장의 제자였다는 정체성을 버린 채로 평범하게 살아가던 십이신장도 결국 모두 찾아내서 죽였다.
내가 그를 만났을 때, 독마는 강호인들뿐만이 아니라 인간 자체를 혐오했다. 그가 그동안에 많은 병자들을 치료했기 때문이다. 그가 미쳐가는 동안에도 대나찰이 무서워서 아무도 도와주는 이가 없었다.
그렇게 신의 모용백은 강호에 점점 스며들었다.
그 혐오의 근원은 독마와 술을 마시다가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평범한 의원이었던 시절에 중상을 입었던 대나찰을 치료해 준 적이 있고, 목숨이 오락가락하던 십이신장도 여러 차례 살려준 적이 있다고 한다.
결국, 모용백은 이 배은망덕한 환자들을 찾아다니면서 독으로 모조리 죽였다.
내가 만났었던 독마의 표정은 참으로 공허했다.
모두 죽여 없앤 다음, 활활 불타오르던 복수심이 사그라지면.
그다음에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 걸까.
사랑하는 사람도 곁에 없고, 죽여야 할 놈도 사라졌으니 말이다.
독마는 답을 얻지 못한 채로 독을 연구하고 무공을 수련했다. 대나찰의 복수를 하겠다고 찾아오는 자들이 있을 것이라 상상하면서 세월을 보냈다.
내가 이런 독마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다시는 사람을 살리지 않겠다는 자신의 맹세를 저버리고, 그가 잊지 않고 있었던 옛 의술로 나를 주화입마에서 구했기 때문이다.
서서히 미쳐가고 있던 사내는 예전부터 이미 미쳐있었던 나를 동정했던 모양이다. 미친놈끼리만 통했던 동병상련의 마음이랄까.
나는 대기하는 장소에 홀로 앉아서 이런 옛일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 * *
환자들을 살피고 나온 모용백이 다시 자리에 앉으면서 환자의 상태를 설명했다.
“큰 부상은 아닙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나는 염려하지 않고 있었으나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모용백은 내가 두 환자의 보호자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모용백의 말이 이어졌다.
“신기하게도 두 분의 부상은 가벼운 편이나 오히려 심리적으로 불안한 증세가 있습니다. 특히 홍신 신장께서는 며칠 잠을 이루지 못한 것 같습니다. 계속 사형은 뭐하고 계시는지 묻기도 하고. 설사 때문에 괴롭다는 말도 하시더군요. 비몽사몽의 상태에선 말이 이렇게 솔직해집니다.”
모용백은 이게 어떻게 된 노릇인지 설명해달라는 것처럼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설사가 중한 병이오?”
“때에 따라서는 그렇지요.”
“어떤 부분이?”
“강호에 계시지 않습니까. 적수를 만나면 설사 때문에 질 수도 있습니다. 목숨이 달린 일이니 무거운 병이지요.”
“음.”
과거로 돌아와서 한때 독마라 불리던 무시무시한 사내와 설사에 대해 이리 깊은 대화를 나눌 줄이야.
나는 모용백의 성격을 알기 때문에 그의 궁금증을 풀어줬다.
“실은 홍 사매에게 고독이라 속이고 설사약을 먹였소. 십이신장 중에서 횡포가 심한 녹술, 황오, 백자를 죽이라고 시켰지. 홍신이 내게 계속 저항했다면 흑묘방주처럼 죽일 수밖에 없었소. 그러니 설사약은 홍신을 죽이고 있는 게 아니라 살리고 있는 거요.”
나는 설사학개론(泄瀉學槪論)으로 반박했다.
사태를 파악한 모용백은 웃음을 애써 참다가 잠시 콧구멍을 벌렁거렸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제가 설사를 멈추게 하는 약을 처방하면.”
나는 손가락을 튕기면서 대꾸했다.
“고독을 치료했다는 명성이 추가되겠지. 기가 막히는군.”
“그건 사양하겠습니다.”
“어쨌든 녹술을 처리했기 때문에 약조한 대로 치료해주기로 했소. 모용 선생이 좀 도와주시오.”
“알겠습니다. 어렵지 않은 일이니 제게 맡기십시오.”
뭔 놈의 설사를 멈추게 하는데 분위기가 이렇게 진중해진 것일까. 나는 잠시 모용백과 눈을 마주치면서 고개를 한번 끄떡거렸다.
“똥 얘기는 이쯤에서 마무리합시다.”
“그러시지요. 그나저나 금해 신장의 경우에도 정신적인 충격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나는 모용백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놈이 가장 좋아하는 게 뭔지 아시오?”
“뭐 비난하자는 말은 아니나 돈, 영약, 식탐 정도가 있겠지요.”
“잘 보셨소. 나와 겨루다가 내공을 꽤 잃었고, 돈도 빼앗겼소.”
“그렇군요. 본래 승승장구하던 분들이 실패에 대한 충격을 더 크게 받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환자실 쪽을 가리켰다.
“일단 수렁에 빠진 홍신부터 빼내고 다시 오시오.”
“다녀오겠습니다.”
나는 모용백의 등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계속 성공만 하던 자들이 실패에 대한 충격을 더 크게 받는다는 말은 너한테도 적용된다고 말이다.
그러나 내게 적용되는 말은 아니다.
나는 성공해본 기억이 매우 드물다.
객잔이 망했고, 무덤지기를 하다가 고용주에게 쫓겨났으며, 비무도박에서는 연전연패를 기록한 적도 있다. 무공을 익히다가 영 좋지 않은 길로 빠져서 주화입마에 시달렸고, 하오문은 만들자마자 금세 망했다. 무공을 배우든, 영약을 먹든 간에 나는 항상 순조롭지 않았다.
실패로 점철된 인생, 그것이 내 전생이다.
그렇게 쫄딱 망한 인생이었기 때문에 무림맹에게도 쫓기고, 마교에게도 쫓긴 것이다.
그 결과, 나는 천옥을 삼키게 되었으니…….
실패라는 것은 과정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자해하지 않고 버티는 것이다.
환자실 쪽에서 갑자기 홍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감사합니다!”
그러하다. 감사히 살면 되는 것이다.
설사가 멈출 것이라는 희망과 굵직한 똥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감. 홍신의 입에서도 이제 “선생님.”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모양이다.
저렇게 존경을 받던 모용백이 환자들에게 끔찍한 배신을 당했으니.
신의라는 별호가 사라지고, 독마가 탄생한 것이다.
고로, 대나찰은 모용백이 미치기 전에 내 손에 죽어야 한다.
그나저나 나는 혼자 심심하게 앉아서 상념에 빠져 있다 보니 의식의 흐름이 자꾸만 기승전똥으로 연결되는 것 같아서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어여쁜 의녀들이 가끔 지나갈 때마다 내게 고개를 살짝 숙였다.
얼굴도 하얗고, 복장도 순백인데 내 머릿속에는 똥만 가득 차 있으니 의녀들에게 새삼 미안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못난 놈.’
안쪽에서 모용백이 의녀들에게 주의사항을 전달한 다음에 다시 걸어 나왔다.
“문주님, 아무래도 홍신 신장께서는 잠을 좀 자야겠습니다. 금해 신장께서도 운기조식이 길어지기 때문에 대기하는 시간이 길어지실 것 같군요. 내일 다시 오셔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선생은 바쁘시오?”
“그렇진 않습니다.”
나는 맞은편을 가리켰다.
모용백이 앉는 것을 본 다음에 나는 금자가 든 상자를 밀면서 말했다. 모용백이 상자를 보면서 물었다.
“이게 뭡니까?”
“치료비요.”
“열어봐도 되겠습니까?”
“물론.”
모용백은 상자를 열자마자, 통용 금자가 가득 들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
“너무 많군요. 전부 몇 개입니까?”
“금자 오십 개.”
“왜 이렇게 많이 주시는지 여쭙니다.”
“실은 나도 운기조식을 좀 해야 할 시기요. 사제들의 치료를 기다릴 겸, 내게도 조용한 침상 하나 내주시오.”
“그것은 어렵지 않으나, 그럼.”
모용백은 상자에서 금자 세 개를 꺼낸 다음에 상자를 내게 밀어냈다.
“이렇게만 주셔도 너무 과합니다.”
실랑이가 잠시 벌어졌다.
“받으시오.”
“거절하겠습니다.”
나는 잠시 전생의 독마가 고집도 지독했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모용백이 다소 편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문주님, 저는 의원이기에 사람을 가리지 않고 치료했습니다. 그러나 저도 사람인지라 미워하고 좋아하는 구분은 있습니다. 이 돈은 하시려는 일에 쓰십시오. 오십 개를 제가 받았으나, 다시 마흔일곱 개는 군자금으로 쓰시라고 돌려드립니다.”
돈은 벌어서 꽃잎처럼 뿌리는 것인데.
모용백은 그 꽃잎을 쓸어 담아서 내 얼굴에 다시 뿌렸다.
또한, 말의 의미를 세세히 살펴보면 대나찰을 죽이는 돈으로 사용하라는 의미도 담겨 있었다.
“계속 거절할 것 같아서 그럼 내가 쓰리다.”
“예.”
“하지만 이것은 받아줘야겠소.”
이차전이 시작됐다.
나는 백염초 네 뿌리가 들어있는 상자를 모용백에게 내밀었다. 그가 무슨 말로 거절하든 반격할 말을 준비하면서.
“선생께서 건강해야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소.”
모용백은 백염초 상자를 열어보지도 않은 채로 웃었다.
“문주님.”
“말씀해보시오.”
“이 백염초를 제가 온전하게 흡수하려면 열흘 이상은 운기조식에 매달려야 합니다. 매일 찾아오는 환자들이 있는데 굳이 제가 이것을 먹고 자리를 비울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문주님에게 필요한 약이 아닙니까? 보잘것없는 동네 의원을 좋게 봐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지금 당장 여기서 복용하시고, 운기조식을 시작하시면 저는 문주님이 빠르게 몸의 균형을 되찾을 수 있도록 탕을 준비해보겠습니다.”
내가 이런 놈이다.
말싸움도 졌다, 이 말이다.
“…….”
대답할 말이 궁색해서 멋진 말이 뭐가 있나 고민하는 사이에 모용백은 의녀들을 불러서 이것저것을 시켰다.
“문주님은 가장 안쪽으로 모셔라. 영약 복용 이후에 운기조식을 하실 것이니 각별하게 조심하도록.”
“예.”
“그리고 내일 오전까지는 내가 부재중이라는 푯말을 걸어두고 오늘은 일찌감치 문을 닫아라. 나도 할 일이 있다.”
“알겠습니다.”
의원과 의녀들의 손발이 척척 들어맞는 동안에 나는 환자처럼 가만히 있었다.
“문주님? 들어가시지요. 이제.”
“이것 참, 금자 세 개 주고 이래도 되는가 싶어서.”
모용백이 웃으면서 말했다.
“흑묘방주보다 강한 고수를 손님으로 알게 되었으니 오히려 저희에게도 좋은 일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문주님.”
결국, 머리에 똥만 찬 사내는 순백의 의녀들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갔다.
* * *
잠시 홀로 남은 모용백은 뒷짐을 진 채로 분주히 돌아다니는 의녀들을 바라보다가 집무실로 들어갔다.
모용백은 땀에 젖은 머리띠를 풀어낸 다음, 손과 얼굴을 씻고 나서 깨끗한 머리띠를 이마에 다시 둘렀다.
이어서 약재가 다양하게 보관되어있는 서랍에서 재료를 하나씩 꺼내어 탁자에 올려놓았다. 그 사이에 하오문주의 말투, 눈빛, 혈색, 호흡을 떠올리고, 백염초의 기운을 중화시킬 수 있는 재료도 고민하다가 중얼거렸다.
“……기본적으로 울화병이 있으신 거 같은데.”
환자의 말은 온전하게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게 모용백의 생각이었다.
일부 재료는 곱게 빻아서 가루로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모용백은 책상에 앉아, 집기를 손에 들고 직접 재료를 잘게 다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꽤 오래 걸리는 작업이기도 하다.
하지만 약의 효능은 이런 사소한 행동과 정성에 따라 더 높일 수 있다.
평소에는 의녀에게 맡겼던 일이었으나, 오늘은 오랜만에 손수 약재를 준비했다.
당연하게도 약을 만들면서 환자의 상태를 곱씹을 수밖에 없었다.
모용백이 보기에 하오문주는 감정의 폭이 매우 좁아서 인상적인 사람이었다. 제법 농담을 많이 내뱉긴 했으나 그것은 겉모습일 뿐.
본질은 크게 기뻐하는 법도 없고, 크게 화를 내는 법이 없는 냉철한 감정의 소유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용백은 그간 공부했던 내용과 다양한 책에서 봤었던 인간 군상과 자신만의 생각을 토대로 하오문주를 이렇게 생각했다.
잘 풀리지 않으면 세상을 적으로 돌려서 전쟁이라도 벌일 사내.
잘 풀리면 많은 사람을 이끌어서 보호해줄 사내.
요점은, 전쟁을 벌이든 보호를 해주든 간에 평범하고 얌전하게 지내는 사람은 절대 아니라는 점이었다.
이를 인간의 유형으로 구분하자면 전쟁 중인 사내, 즉 장수(將帥)형.
어떻게 풀리든 간에 군사를 거느리는 우두머리 형태의 인간이었다.
그래서 모용백은 더 열심히 약재를 준비했다.
하오문주가 돈도 더 의미 있는 곳에 쓰고, 울화병도 잘 이겨내고, 향후 발병할 우려가 있는 심마(心魔)도 더 잘 이겨내고, 대나찰도 이기고, 승승장구해서 우리 모용의가도 보호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좋은 약재를 모아서 정성스럽게 가루로 빻았다.
한참을 집중해서 재료를 준비하던 모용백은 문득 입꼬리가 위로 살짝 올라갔다. 그러다 결국 홀로 웃음이 터진 모용백은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아, 그놈의 설사 이야기가 자꾸 생각나네. 곤란하게.”
전생에 독마였던 사내가 환한 얼굴로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