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ad Demon RAW novel - Chapter 59
59화. 일단 색마처럼 생겼다.
날씨가 좋아서 그런 것일까.
수하들의 꽃잎 베기가 나흘이나 이어져서 소군평을 부를 수밖에 없었다.
“소 각주.”
“예.”
“너랑 홍 사매는 꽃잎과 놀면서 얻는 게 있을 테지만 수하들은 아직 아니야. 금 사제 말대로 이것은 지랄하는 거밖에 안 된다. 방향은 잡았을 테니, 이제 네가 좀 말려라.”
소군평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워낙 이놈들이 빠져들어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이었습니다.”
“네가 총교두를 맡았는데 수하들이 말을 안 들으면 더 편하지 않아?”
“어떤 점이요?”
“더 힘들게 굴리는 거지. 매화향에 취한 놈들 네가 목검으로 좀 패도 되고. 본인들이 무언가 깨달음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알다시피 어림없다. 실력 차이를 보여주도록.”
“제가 괜한 걱정을 했군요. 오늘 곡소리 좀 들려드리겠습니다.”
이때, 벽 총관이 다가왔다.
“방주님, 벽 총관입니다.”
“벌써 수배했나?”
벽 총관이 대꾸했다.
“본래 이룡노군의 거처는 일정했습니다. 그러나 돈을 쓴 것인지 지인을 모으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그제와 어제도 화화산장(花花山莊)에 낭인으로 보이는 자들과 여러 강호인이 드나들었다고 합니다. 일단 간부들을 다 불러서 한꺼번에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잠시 후에 간부들이 대청에 들어섰다.
그사이에 벽 총관은 백지 한 장을 상황판처럼 판자에 붙여 세운 다음에 붓을 들었다. 마치 평생 발탁되지 못했던 늙은 군사가 오랜만에 전시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들뜬 것처럼 보였다.
간부들이 모이자, 벽 총관이 정중앙에 묘(卯)를 적고 우측에 이룡노군과 같은 별호를 적으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은귀자(銀鬼子) 유사청(柳思靑)이 보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돈만 주면 사고를 대신 치는 유성낭인(流星浪人)들 외에도 당장 신원을 알 수 없는 강호인이 다수입니다. 이렇게 모이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근래 일대에서 변고가 발생한 것은 우리가 유일하니까요. 남화가 약해졌을 때 치려는 자들이 뜻을 모으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십이신장 일부와 대나찰이 죽었다는 소식이 많이 퍼졌을 테니까요.”
내가 대꾸했다.
“대나찰을 죽인 놈이 있다는 뜻인데 어찌 남화가 약해졌으리라 생각하지? 바보들인가.”
벽 총관이 웃으면서 말했다.
“욕심은 종종 냉철한 판단보다 급이 높아집니다.”
벽 총관이 큰 동그라미를 그린 다음에 수선생이라 적더니 줄을 그어서 이룡노군과 연결했다.
“저는 이렇게 봅니다.”
“수선생도?”
“예. 이룡노군은 대나찰과 친했고, 수선생은 사이가 나빴습니다. 수선생은 대나찰을 치고 싶었는데 이룡노군의 마음을 얻지 못했고. 이룡노군은 대나찰에게 받아먹은 게 많은데 대나찰을 잃었습니다. 그런 두 사람이 뜻을 합치는 것은 남녀가 만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지요. 되도록 많은 사람을 모아서 일을 벌인 다음에 남화를 양분해도 두 사람에겐 큰 이득입니다. 당장은 누가 총대장인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상황판에 적힌 이름을 바라봤다.
아는 이름도 있고 모르는 이름도 있다.
일단 유성낭인은 유성추라는 병장기를 빙빙 돌리는 놈들이다. 많게는 백 명, 적게는 오십 명까지 들쑥날쑥 줄어드는 낭인 세력으로 흑도의 이권 다툼에 자주 끼어들어서 오늘만 사는 놈들이었다.
은귀자 유사청은 처음 듣는 이름이었으나 수선생이나 이룡노군보다 눈에 더 들어오는 존재감이 있었다.
“유사청은 누구냐?”
벽 총관이 대꾸했다.
“겉으로는 중재 전문가이지만. 실제로는 큰판만 찾아다니는 도박꾼입니다. 문제 확산 전문가랄까요. 세력 없이 홀로 다니는데 흑도의 분쟁에 끼어서 제법 돈을 많이 버는 놈입니다. 그럴 실력도 있고요.”
내가 모른다는 것은 흑도의 분쟁에 끼었다가 어딘가에서 비명횡사했다는 뜻이다.
이때, 대청에서 행상인 복장을 한 수하 두 명이 나타나서 각자 알아 온 것을 보고했다.
“수선생이 직접 수하들을 이끌고 화화산장으로 들어갔는데 뒤이어서 무악문(茂嶽門)의 제자들도 화화산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철섬부인(鐵蟾夫人)이 제자들과 함께 화화산장으로 향하는 것을 봤습니다.”
나는 이런 보고를 계속 듣는 것도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
“너희는 가서 쉬어라.”
“예.”
어쩐지 내가 대나찰의 악행에 대한 죗값을 대신 물어줘야 하는 분위기랄까. 벽 총관이 수선생보다는 약간 작은 동그라미를 그리더니 그곳에 무악문과 철섬부인을 적었다.
“수선생은 예상했는데 무악문과 철섬부인은 저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무악문은 그럴 수도 있지.”
무악문은 정파와 사파의 중간쯤 되는 놈들이다. 강호에서는 이런 놈들에게 정사지간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그냥 박쥐 같은 놈들이라 보면 된다. 철섬부인은 철섬여(鐵蟾蜍)라는 암기를 날리는 흑도의 중년 여고수였다.
벽 총관이 말했다.
“일단 십이신장에게 연락을 넣겠습니다. 이룡노군이 남화 지역을 쪼갠 다음에 나눠 가지겠다는 전략이라면 십이신장들도 안전하진 않겠지요.”
나는 상황판의 동그라미들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사신장 세력, 흑묘방 인원까지 전부 셈하고. 이룡노군 측 인원도 대략으로 합쳐서 비교해보자.”
“예.”
벽 총관이 붓을 들고 상황판에 수를 계속 더했다.
홍신과 금해는 직속 수하가 없어서 셈할 것이 없었다. 홍신은 본래 혼자 움직이고, 상단의 병력이 동원될 만한 일도 아니었기 때문.
벽 총관이 파악하고 있는 사신장의 병력이 추가되고 흑묘방까지 더해도 총 이백오십이 넘지 않았다.
그러나 이룡노군 측은 셈을 하자, 사백 명이 훌쩍 넘었다.
“내가 혼자 지랄 염병을 떨면 어떻게 감당은 할 수 있겠는데. 수가 많이 부족하니 수하들의 사기가 떨어지겠군. 일단 수적인 것도 밀리면 안 되겠지.”
나는 흑묘방의 간부들을 둘러보다가 말했다.
“한 사람은 일양현으로 가서 사마비 일행과 차성태에게 전해라. 심심해서 죽을 거 같은 놈들만 모아서 합류하라고. 다른 간부는 흑선보에 가서.”
소군평이 대꾸했다.
“흑선보요?”
“독고생이라는 놈에게 정예 추려서 일백 정도 데려오라고 해.”
“그럼 흑선보가 올까요?”
“하오문주가 부른다고 전해. 올 거다. 이러면 얼추 수는 비슷할 거 같은데. 전면전이 벌어져도 수하들이 기죽지 않겠지. 참고로 흑선보 놈들은 완전 미친놈들이라서 우리끼리 시비가 붙지 않도록 너희도 주의해라. 정신 나간 놈들이다.”
소군평이 대표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간부들…….”
“예, 방주님.”
“이룡노군 측에 혹시 내가 죽이지 말아야 할 사람이 있나? 재수 없게 일가친척이 섞여 있다든가, 옛 친구가 끼어있다거나 이런 일이 발생할 수도 있으니까. 미리 나한테 말해라.”
간부들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는 동안에 내가 말을 덧붙였다.
“다 죽이고 나서 원망하지 말고.”
소군평이 간부들의 분위기를 살핀 다음에 대답했다.
“없습니다.”
나는 회의를 파했다.
“다들 일 봐라. 십이신장 사제들부터 불러와. 소집에 응하지 않는 놈들부터 찾아가서 때려죽일라니까.”
강한 놈들이 설쳐야, 약한 놈들이 덜 죽는다.
나는 간부들을 보낸 다음에 탁자에 두 발을 올려놓고 잠시 졸았다.
요새 운기조식에 매달리다 보니, 수시로 잠이 쏟아졌다. 체력과 심력을 빠르게 소비하는 느낌이랄까.
잠이 들기 직전에 이런 생각이 들 때가 간혹 있다.
아, 어쩐지 잠들면 개꿈 꿀 것 같은데?
정신을 차리자니 피곤하고, 계속 잠을 청하자니 어딘지 모르게 불쾌한 그런 느낌.
내 기분이 지금 그렇다.
개꿈을 꿨다.
* * *
광승이 웃으면서 달려오는 광경이 보였다. 죄 없는 자들이 광승의 어깨에 부딪혀서 양옆으로 날아가고 있는데도 광승은 계속 웃고 있었다.
“하하하하하…….”
나는 잽싸게 걸레를 쥔 다음에 탁자를 닦았다.
‘제기랄.’
속으로 제발 그냥 지나가라고 기원했으나, 경공을 멈춘 광승이 내게 물었다.
“이봐, 점소이.”
점소이라는 말에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예?”
“절강이 어느 쪽이야.”
당황한 와중에도 나는 침착하게 대꾸했다.
“계속 동쪽으로 가시면 되지 않을까요?”
광승이 큼지막한 눈을 껌벅이면서 대꾸했다.
“무조건 동쪽으로 가란 말이냐?”
“일단은 그렇습니다.”
“무조건 동쪽으로 가다가 절강이 안 나오면 네가 책임질 테냐?”
순간, 나는 어떤 대답을 하더라도 빠져나갈 구석이 없는 것처럼 느껴져서 호흡이 불편해졌다.
“책임지겠습니다.”라고 대답하면 “좋아, 책임져라.”라는 말과 함께 끌려갈 것 같고.
“제가 왜 책임을 져야 합니까?”라는 식으로 대답하면, 기분 나쁘다고 끌고 갈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도대체 어떤 대답이 정답일까. 나는 슬슬 열이 받기 시작한 마음을 한 번 억누른 채로 대꾸했다.
“절강에는 무슨 일로 가십니까?”
“절강 앞바다에 대붕처럼 큰 물고기가 있다고 한다. 죽은 사제는 거짓말을 하는 놈이 아니었으니 그 말은 사실일 거야.”
“저도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네가 봤어?”
나는 탁자에 걸레를 툭 던진 다음에 대꾸했다.
“안 봤습니다. 왜요.”
“이놈 말투가…….”
꿈이라서 그런 것일까. 나는 평소처럼 막 나갔다. 소매를 걷어붙인 다음에 광승에게 말했다.
“시비를 걸려나 본데, 한 번 붙어봅시다.”
붙어보자는 말에 광승이 껄껄대면서 웃었다. 웃음은 이내 사자후로 이어졌다. 한참을 사자후로 내 내공을 가늠하던 광승이 콧방귀를 끼면서 말했다.
“제법 웃긴 점소이네. 날 웃겼으니 봐주겠다. 수련 열심히 하고 있어라. 또 만나게 될 것이니.”
광승이 먼지 바람을 일으키면서 멀어졌다. 나는 광승이 사라지고 나서야 씨익 웃었다.
“쫄기는…….”
그간 무공 수련을 열심히 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 객잔에서 귀에 익숙하면서도 불쾌한 목소리가 들렸다.
“점소이, 거기 병신처럼 서 있지 말고 술 좀 빨리 가져와라.”
“뭐?”
고개를 돌려보니 마교의 광명좌사가 웬 아리따운 여인과 함께 탁자에 앉아 있었다.
“이 미친 새끼가 여기가 어디라고.”
나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면서 광명좌사의 가슴에 오른발을 내질렀다. 당연히 광명좌사의 실력이라면 반격이 나와야 정상인데, 광명좌사는 비명을 크게 지르더니 땅바닥을 여러 차례 굴러다녔다.
분위기가 싸늘했다.
“왜 그러세요!”
여인이 놀라서 나를 뜯어말리는 와중에 내 몸이 공중으로 갑자기 떠올랐다.
고개를 돌려보니 나보다 머리 하나가 더 컸던 광승이 내 뒷덜미를 붙잡고 있었다.
광승이 히죽 웃으면서 말했다.
“이놈, 아주 못된 놈이었네?”
“뭔 개소리야? 저놈이 색마(色魔)라고. 나중에 광명좌사가 되는 놈이라고. 이거 안 놔?”
“네놈이 먼저 발차기를 해놓고선 헛소리를 하는구나. 일단 좀 맞자.”
“맞기는……제기랄. 예전의 내가 아니다.”
주변 풍광이 급격하게 바뀌면서 나는 광승과 수백 합을 겨뤘다. 천옥의 힘을 바탕으로 금구소요공, 흡성대법, 매화검법까지 사용하자 광승도 매우 놀라는 눈치였다. 그러나 쌓아뒀던 힘을 일순간에 개방하듯이 기파를 터트린 광승의 분위기가 점점 부동명왕(不動明王)으로 변하고 있었다.
‘아, 제기랄.’
이때, 나는 골목 어귀에서 실실 웃는 표정으로 싸움을 지켜보는 사내를 발견했다. 일부러 내 발차기를 맞고 나가떨어졌던 광명좌사가 히죽대면서 구경하고 있었다.
순간, 나는 딱밤을 한 대 맞은 것처럼 경련을 짧게 일으켰다.
그제야 잠이 확 깼다.
눈을 뜨자마자, 한숨이 절로 나오는 상황.
감히 나를 꿈에서까지 괴롭히다니.
나는 호흡을 가다듬다가 소리를 버럭 내질렀다.
“벽 총관!”
오래지 않아 벽 총관이 허둥지둥 뛰어오면서 대꾸했다.
“아, 예. 방주님. 시키실 일이라도.”
나는 흥분한 탓에 손을 이리저리 흔들다가 생각을 정리해서 말했다.
“그러니까 좀 어려운 일인데, 내가 말로만 설명해도 용모파기를 한 장 그릴 수 있겠나?”
벽 총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해보겠습니다.”
“반드시 찾아야 할 놈이다.”
“아, 그런 놈이 있습니까? 제가 어떻게 해서든 찾아드리겠습니다.”
이름을 알면 수월했을 것이다. 그러나 놈은 그냥 광명좌사였고, 나는 광마였다. 서로의 본명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나는 벽 총관에게 생각나는 대로 읊었다.
“일단 색마처럼 생겼다.”
“예?”
“느낌을 말한 거야. 색마 같은 느낌. 무슨 느낌인지 알겠어? 반반하고 피부 하얗고 왜 그런 느낌 있잖아. 눈웃음 살랑살랑 잘 치고.”
벽 총관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감 잡았습니다.”
“벌써?”
“예, 걱정하지 마시고 설명하십시오. 제 그림이 색마를 잡게 될 겁니다.”
벽 총관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