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ount Hua Sect RAW novel - Chapter 1346
1345화. 구하러 갈 것입니다. (5)
그믐에 가까워 달빛도 없는 밤, 십만대산은 한 치 앞도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어둠에 잠겼다.
그 험한 산맥 속에 도깨비불과도 같은 형형한 눈빛이 수두룩하게 빛났다.
저벅.
도를 든 만인방도들이 살기와 독기가 넘실대는 눈으로 주변을 경계한다.
바스락.
“누구냐!”
옆쪽에서 희미한 소리가 나기 무섭게 만인방도의 도가 일말의 주저도 없이 휘둘러졌다. 도기는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쇄도해 틀어박혔다.
콰각!
도기를 날린 이가 단숨에 달려갔지만, 보이는 거라곤 목이 잘린 채 경련하는 토끼 한 마리뿐이었다.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제길.”
“쯧쯧. 대단한 사냥꾼 나셨군.”
등 뒤에서 비아냥거리는 소리에 사내가 매섭게 반응했다.
“주둥이 조심해라.”
“괜히 힘 빼지 말고 주변이나 잘 살펴.”
아직 온기가 가시지 않은 토끼의 사체를 홧김에 걷어차 버린 그는 도를 제 허리춤에 찼다. 그리고 어둠 속에 드러난 칼처럼 보이는 산을 물끄러미 보았다. 하늘을 찌르는 듯한 산세(山勢), 과연 역천(逆天)의 땅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광경이다.
‘불길하게.’
사내는 불안한 눈길로 주변을 살폈다.
짙은 어둠이 내려 고요하기 이를 데 없다. 누군가에게는 더없이 평화로운 모습일지 모르겠지만, 이곳에 있는 이들에게는 그저 을씨년스럽게만 느껴졌다.
입 밖으로 뭔가 소리를 내기에도 조심스러웠다. 특히 이 땅에 어린 과거를 알고 있는 이들에게는 더더욱 말이다.
사내가 짜증 어린 얼굴로 발을 내디딜 때였다.
“윽.”
갑자기 발에 뭉툭한 통증이 일었다. 내려다보니 발밑으로 창날이 삐죽이 솟아 있었다.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녹이 슬다 못해 거의 문드러져 있었다.
저 창날 주변의 흙을 걷어 보면 저 창의 주인도 백골이 되어 묻혀 있을 것이다.
“제길.”
그 창의 형태가 정파 놈들이 쓰는 것보다는 사파인들이 쓰던 것과 닮아 있었다. 사내가 슬쩍 얼굴을 찌푸렸다. 백 년 전에 죽은, 얼굴도 모를 사파인에게 안타까움이야 느끼겠냐마는, 기분이 더러워지는 것만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다쳤나?”
“아니. 이딴 녹슬어 빠진 창에 베이기라도 할까 봐?”
우둑.
삐죽이 솟아난 창을 밟아 부러뜨려 버린 사내는 옆에 우거져 있던 수풀을 발로 걷었다.
아니나 다를까 정파 놈들이 주로 쓰는 검도 그 주변에 널브러져 있었다.
만일 이곳이 평범한 전쟁터였다면 주변에 사는 이들이 이미 주워 간 지 오래였을 것이다. 적당히 팔아먹든가 녹여서 농기구를 만들었겠지.
하지만 이곳은 십만대산이다. 강호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양민들조차도 접근하기를 꺼리는 죽음의 땅.
그러다 보니 과거 전쟁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기분 더럽군.”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고 주변이나 잘 살펴. 그러다 놈들을 놓치기라도 하면 목이 날아간다.”
바른말을 늘어놓는 이를 한번 노려본 사내는 땅에 침을 퉤 뱉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빌어먹을, 쉬지도 못하고.”
“그런 말은 입 밖에도 꺼내지 마라. 분위기 몰라서 그래?”
“제길.”
이번에도 틀린 말은 아니라 사내는 결국 욕지거리를 했다.
“도대체 얼마나 죽었대?”
“빌어먹을, 셀 수나 있나⋯⋯. 혈검단은 전멸했고, 혈검단이 아닌 놈들도 무수히 죽었어. 앞을 막고 있던 조무래기 놈들까지 포함하면 시체로 산을 쌓아도 될 지경이야.”
“⋯⋯꼴 좋게 됐군.”
고작 이백밖에 안 되는 놈을 잡아 내는 데, 이렇게 많은 희생이 발생한 건 만인방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 분명하다. 그 많은 희생을 치르고도 적을 완전히 섬멸하지 못했으니, 그 침착한 군사의 눈이 뒤집힌 것도 이해가 간다.
이런 상황에서 놈들을 놓치기라도 한다면, 한두 놈의 목숨이 끊어지는 걸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놈들의 종적을 찾아내야 했다.
“놈들이 벌써 대산을 빠져나간 게 아닐까?”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기껏해야 동굴에 숨어든 걸 텐데, 몇백 리가 넘는 동굴이 있다는 말은 내 생전 들어 보지도 못했다.”
“그렇겠지?”
그렇다면 이곳 어딘가에 놈들이 웅크리고 숨어 있다는 의미.
어쩌면 지금 그의 발밑에 있을지 모른다. 그 괴량과 혈검단을 전멸시킨 화산검협이 말이다.
“⋯⋯그럼 이 앞에서 화산검협이 튀어나올 수도 있다는 소리잖아?”
“거, 씨발! 불길한 소리 하고 있어!”
담담히 그의 말을 받아 주던 동료의 눈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순간 그 기세에 눌린 이가 입을 다물었다.
생각해 보면 우스운 일이다. 지금 그들은 화산검협의 종적을 어떻게든 찾아내려고 악을 쓰고 있다. 하지만 또 동시에 절대 그들의 앞에는 화산검협이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두렵기 때문이다.
그놈이 싸우는 모습은 모두가 똑똑히 지켜봤다. 그러니 그 사파보다 더 사파 같은 악귀 놈과는 누구도 칼을 섞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매화검귀 놈도 사람이지 않나. 그만큼 다쳤는데 무슨 수로 벌써 자리를 털고 일어나겠는가?”
“그, 그렇겠지?”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지. 아니, 아니지. 죽었을 거야, 분명히.”
그 목소리에는 힘도, 확신도 없었다.
화산검협이 제발 죽었기를 바라지만, 또 동시에 그가 절대 죽지 않을 것 같다는 묘한 확신이 들면서 공포가 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매화검귀라니? 그건 또 뭐야?”
“몰라? 화산검협 놈을 그렇게 부르고 있다잖아.”
“⋯⋯뭔⋯⋯.”
“말이야 바른말로, 검협이니 나발이니 하는 별호가 그 미친놈에게 어울리기나 하냐 이 말이지. 벌써 방 내에는 쫙 퍼진 모양이야.”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청명에게는 화산검협이라는 기품 있는 별호보다는 매화검귀 쪽이 훨씬 더 어울린다. 아니, 사실 매화검귀라는 별호조차 부족하다.
“매화검귀는 썩을. 혈화마검(血花魔劍)이 낫겠군.”
“⋯⋯그래도 정파 놈인데.”
“정파는 얼어 뒈질. 그놈이 어딜 봐서 정파야? 마교 놈들도 그렇게 악랄하진 않겠다.”
“그건 그렇지.”
“아냐, 마교가 훨씬 더 악랄하지.”
“뭔 소리야. 마교 놈들도⋯⋯.”
즉각 반박하려던 이가 문득 입을 다물었다. 그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또옥. 또옥.
전신이 얼어붙어 버린 그의 귓가에, 무언가 점도 높은 액체가 방울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코끝으로 너무도 익숙한,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결코 맡고 싶지 않은 냄새가 밀려왔다.
피냄새.
사내의 어깨가 잘게 경련하기 시작했다. 외면하고 싶다. 고개를 돌리고 싶지 않다. 머릿속에 떠오른 끔찍한 상황이 현실임을 굳이 고개를 돌려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급박한 상황일수록 인간은 머리의 지시를 무시하고 본능에 따른다. 그의 몸은 이미 뒤를 돌아보며 뒤에 선 이를 확인하고 있었다.
흑의를 입은 상대는 이 칠흑 같은 밤에 녹아 버린 듯 어우러졌다. 확연히 보이는 것이라고는 누군가의 피로 붉게 물든 검과 새파란 광망을 흘리는 두 눈뿐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내는 돌연 나타난 이자가 누구인지 너무도 잘 알 수 있었다.
“화, 화산검⋯⋯.”
서걱.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목에서 화끈한 통증이 번졌다. 단숨에 목뼈와 성대까지 끊어 버린 서늘한 감각은 금세 그의 목을 빠져나갔다.
쉬이익.
목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사내는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숨이 끊기기 전에, 동료의 목이 허공으로 치솟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허공에 치솟는 붉은 피가 마치 붉게 핀 꽃과 같았다. 그 사이로 보이는 차가운 안광을 보며 사내는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역시⋯⋯. 별호가 잘못⋯⋯.’
채 이어지지 못한 생각을 뒤로 하고 사내의 육신이 서늘하게 식어 갔다.
서걱.
또 하나의 만인방도를 처리한 청명은 시신의 가슴에 검을 박아 넣었다.
푸욱!
심장이 꿰뚫리며 붉은 피가 검을 적셨다. 재 대신 피로 검의 빛을 감춘 청명은 어둠 속으로 다시 스며들었다. 파공음조차 없는 은밀한, 하지만 더없이 신속한 움직임이었다.
스으으읏.
어둠 속에서 검은 물처럼 움직인 청명은 앞쪽을 경계하며 이동하는 만인방도들의 등 뒤로 파고들었다.
“뭐⋯⋯.”
서걱!
반쯤 갈라진 목에서 피가 차례차례 솟구쳤다. 비명을 지를 여유조차도 주어지질 않았다. 그저 경련하며 앞으로 풀썩풀썩 쓰러질 뿐.
“끄륵⋯⋯.”
그들은 아마 숨이 끊기는 순간까지도 자신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청명의 눈빛은 차갑기 이를 데 없었다.
‘아직인가?’
슬슬 발견할 때가⋯⋯.
“누, 누구냐!”
마침 들려온 목소리에 청명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저 멀리에서 만인방도들이 당황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즉시 땅을 박찬 청명은 먼 거리를 단번에 좁히며 달렸다. 그리고 가장 앞에 선 이의 목을 그대로 쳐 날렸다.
콰각!
뼈 으스러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만인방도의 목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미처 눈 감지 못한 이의 얼굴이 희미하고 창백한 달빛에 드러났다가 떨어져 내렸다.
“헉!”
서걱!
연이어 적들의 목을 날린 청명의 검이 마지막 남은 이의 목에 닿았다.
턱!
신호용 호각을 입에 문 이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겁에 질린 눈이 지진이라도 난 듯 덜덜 떨렸다. 만일 여기서 그가 배에 힘을 주어 호각을 불려고 하는 순간, 저 날카로운 검은 여지 없이 그의 목을 갈라 버릴 것이다.
어둠 속으로 보이는 서슬 퍼런 눈빛이 마치 그를 감시하듯 노려보고 있었다.
삽시간에 쏟아져 나온 땀으로 사내의 전신이 젖었다. 그때, 화산검협이 짧게 말했다.
“불어.”
당최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굳이 머리를 굴릴 필요 따윈 없었다. 그가 주저하자 청명의 검이 그의 피부를 뚫고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안 들리나?”
스슥.
검 날이 얇은 피부를 가르며 목을 저며 내는 끔찍한 감각이 일자 사내는 그만 두 다리가 풀리고 말았다.
“불어.”
더는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럴 여유도 없었다. 사내는 덜덜 떨며 호각을 쥔 손에 힘을 주고 있는 힘껏 바람을 불어넣었다.
삐이이이이이이익!
높고 날카로운 호각 소리가 어두운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그 순간 청명의 한쪽 입꼬리가 씨익 올라간다.
“그래야지.”
서걱!
사내의 몸이 쓰러졌다. 하지만 호각 소리는 이곳에 있는 이의 종적을 모두에게 확실히 알렸다.
“이쪽이다!”
사방이 소란스러워지며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청명의 입가가 섬뜩하게 비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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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각 소리가 났다!”
“달려! 저쪽이다!”
“예!”
모두가 그 소리에 반응하여 전력으로 달렸다.
“서둘러!”
악에 받친 이들이 짓밟고 지나간 수풀은 잠시 후 길게 누웠던 몸을 서서히 다시 일으켰다. 요란한 소리가 지나가며 잠잠해지고 사위가 다시 고요로 물들 무렵.
한쪽에 우두커니 있던 커다란 나무둥치 아래서 한 무리가 조심스레 모습을 드러냈다.
가장 먼저 빠져나온 백천이 긴장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신호했다.
“가자.”
모습을 드러낸 무리는 일백에 달했다. 그들은 마치 한 몸처럼 숨을 죽인 채 만인방도들이 비워 둔 북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