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ount Hua Sect RAW novel - Chapter 1572
1571화. 고작 여우는 아니지. (1)
일그러진 흑룡왕의 두 눈이 시퍼렇게 번뜩였다.
“이⋯⋯!”
차오르는 노화 때문에 말을 이어 가는 것도 힘겨운 듯, 목소리를 가까스로 쥐어짠 흑룡왕이 언월도를 쥔 손에 콱 힘을 밀어 넣으며 튕겼다.
쿠우우웅!
양손으로 언월도를 막아 내던 혜연이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애송이 놈들이!”
콰아아아아아아아!
곧이어 시커먼 묵기로 칭칭 무장한 흑룡왕의 도가 백천을 향해 폭발적으로 쏟아져 내렸다. 마치 검은 이무기가 세상의 모든 악의를 품고 날아드는 듯 폭력적인 광경이다.
백천의 얼굴에서 순간 핏기가 사라졌다.
“으아아아아아압!”
그 도를 막아 낸 건 백천이 아닌, 전력을 향해 그 앞으로 뛰어든 화산의 젊은 검수였다.
콰아아앙!
“윤종아!”
윤종의 입에서 붉은 피가 울컥 쏟아졌다.
화산의 검은 더없이 가볍고 경쾌하며 매섭다. 하지만 그건 달리 말하자면 무언가를 막아 내는 데는 그리 적합하지 않다는 의미도 된다.
“죽어라!”
흑룡왕이 악에 받친 고함을 내지르며 도를 내리눌렀다. 윤종의 검이 태풍에 휩쓸린 것처럼 떠밀리고 튕겨 오르려는 찰나.
쿠우우웅!
섬전처럼 날아든 또 한 자루의 검이 윤종의 검과 함께 흑룡왕의 언월도를 가로막았다.
윤종의 매화검과는 확연히 다른 형태다. 매화검에 비해 조금 더 묵직하고, 조금 더 짧다. 그렇기에 단단해 보이는 검이었다.
“큭!”
“이 소협!”
이송백의 입술이 살짝 찢기며 피가 배어난다. 하지만 그의 검은 흔들릴지언정 확실하게 흑룡왕의 언월도를 막아 내고 있었다.
그리고!
파라라락!
옷자락이 바람에 펄럭이는 듯한 소리와 함께 흑룡왕의 머리 위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이윽고 그림자는 먹이를 노리는 매처럼 강하했다. 유이설이었다.
파아아앗!
연이어 쏟아지는 붉은 검기의 비!
흑룡왕 적세광이 얼굴을 일그러뜨리고는 언월도를 거두며 땅을 박찼다.
콰득! 콰득! 콰득!
그가 자리하던 곳으로 아슬아슬하게 쏟아진 검기가 박혀 든다.
채 다 피하지 못한 검기는 흑룡왕의 가슴팍 옷자락을 길게 갈랐고, 이내 그곳에서 선혈이 스며 나오기 시작했다.
“감히!”
“뭐라고 지껄이는 거냐, 사파 놈이.”
흑룡왕이 노호성을 다 터뜨리기도 전에 등 뒤에서 차갑고 오만한 목소리가 날아왔다.
화아아아악!
흑룡왕의 전신으로 눈처럼 흰 검기가 쏟아졌다. 커다란 언월도로도 다 막아 낼 엄두조차 나지 않을 만큼 화려한 움직임의 검기였다.
쿠웅!
그 순간, 흑룡왕은 좀 더 단순한 방법을 택했다.
“오오오오오오!”
언월도가 횡으로 크게 그어졌다.
기다란 창과도 같은 언월도의 끝, 넓적한 날에서 시커먼 경기가 줄기줄기 뿜어졌다. 몰아치는 눈보라를 뒤덮어 버리는 검은 산사태 같았다.
콰아아아아아아!
화려하고 매서운 검기를 일거에 날려 버린 흑룡왕은 안색이 희게 질린 진금룡의 가슴에 곧장 창대 끝을 박아 넣었다.
카앙!
검을 들어 가슴이 꿰뚫리는 것만은 가까스로 막아 낸 진금룡이 뒤로 주룩 밀려났다.
“⋯⋯이놈이.”
진금룡의 차가운 두 눈에 살짝 당황한 기색이 어렸다. 무시무시한 힘이었다. 잠깐의 충돌이었을 뿐인데, 검을 잡았던 그의 손목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만일 한순간만 늦게 검을 뻗었더라면 손목이 부러지며 창대가 가슴을 꿰뚫어 버렸을 것이다.
‘이게⋯⋯ 흑룡왕.’
진금룡의 얼굴이 굳어졌다. 지금 누구와 싸우고 있는지 이제야 확실히 실감이 되었다.
과열되었던 공기가 잠깐의 소강을 틈타 조금 가라앉았다.
숨 가쁘게 휘몰아친 격전 뒤에 실낱같은 여유를 찾은 흑룡왕은 적이 아닌 곁에 선 이를 바라보았다.
“네놈⋯⋯.”
“자, 잠시! 흑룡왕! 저자의 출현은 누구도⋯⋯!”
“닥쳐라!”
파아아아앙!
흑룡왕의 언월도가 휘둘러졌다. 공포에 질렸던 이의 머리가 대번에 몸에서 분리되고 말았다. 하늘 위로 왈칵 치솟았던 피가 허무하게 땅으로 흩뿌려졌다.
“⋯⋯쓸모없는 놈 같으니!”
애초부터 호가명 그놈이 보낸 이를 곁에 둔 게 실수였다.
그들에게 있어 흑룡왕 적세광이 한낱 노름패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이를 뿌득 갈았다. 목을 베어 버리고도 분이 풀리지 않아, 널브러진 시신을 걷어차 날려 버렸다.
퍼억!
걸리적거리는 걸 처리해 버렸으니 이제 그를 막을 이는 없다.
흑룡왕이 흉흉한 광기를 뿜으며 그를 에워싼 이들을 노려보았다.
‘화산⋯⋯. 그리고 종남.’
애송이들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흑룡왕은 알고 있다. 애송이의 칼이라 해서 그의 몸에 박히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강자가 꼭 더 강한 자에게 죽는다고 믿는 건 강호를 겪어 보지 못한 이들의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너희 따위가 내 목을 따겠다고?”
“아미타불.”
혜연이 반장 하며 입을 열었다.
“시주께서는 너무도 많은 죄를 지었소이다. 이제는 그 죗값을 치를 때요.”
“죄? 죄라 했느냐? 하하하하하핫!”
흑룡왕이 커다랗게 광소를 터뜨렸다.
“그래, 그렇지! 나는 죄인이지. 손에서 피비린내 풀풀 풍기는 승려 놈에게 듣자니 배알이 뒤틀리긴 하지만 말이다!”
흑룡왕의 말에 혜연의 안색이 굳어졌다.
이 순간에도 그의 손이 수적들의 피로 젖어 있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므로.
“하지만 이 애송이 놈들아! 죄라는 건, 단죄할 수 있는 이가 있을 때나 의미가 있는 법이다. 죄를 짓고도 단죄당하지 않는 이를 두고 세상이 뭐라 부르는지 아느냐?”
흑룡왕이 언월도 창대 끝을 땅으로 쾅 내리치며 소리쳤다.
“바로 왕이다!”
동시에 어마어마한 기운이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소림의 정순한 내력을 연공해 온 혜연이 창백해질 정도의 내력이었다.
“내가 왕이거늘! 누가 감히 나를 단죄한단 말이더냐!”
실로 장강의 주인이라는 칭호에 걸맞은 위세였다.
“그래 봐야 승냥이 새끼에 불과한 것들이! 내가 팔 하나 잃었다고 너희 따위에게 잡힐성싶으냐?”
새파란 안광이 무서운 기세로 뿜어진다.
“모조리 죽여 주마!”
콰아아앙!
흑룡왕이 땅을 박차고 진금룡을 향해 일자로 쇄도했다.
뒤틀리듯 돌아갔던 허리가 맹렬하게 튕기며 제자리를 찾자, 그 탄력까지 더해진 언월도가 무서운 기세로 공기를 찢어발겼다. 금방이라도 진금룡을 갈라 버릴 듯했다.
“큭!”
진금룡이 전력을 다해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흑룡왕의 언월도는 강한 동시에 더없이 빠르기까지 했다. 저만한 중병을 저런 속도로 휘두를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이대로는 허리가 갈리고 말 거라 판단한 진금룡이 내력을 모조리 끌어 올려 검에 불어넣었다.
카아아아앙!
언월도의 끝과 진금룡의 검이 허공에서 충돌하는 순간, 진금룡의 몸이 포탄처럼 튕겨 나간다.
“사형!”
이송백의 입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고, 백천의 두 눈에서 노화가 솟구쳤다.
“방심하지 마! 상대는⋯⋯.”
하나 그 순간, 백천은 말을 다 잇지 못했다.
진금룡을 날려 버린 흑룡왕이 슬쩍 그들을 돌아보더니, 달려드는 대신 열린 길을 향해 몸을 던졌기 때문이다.
이곳의 모두를 당장에라도 찢어 죽일 듯 올리던 기세가 무색하게.
“잡아!”
백천의 얼굴에 당혹감이 어렸다.
저자는 지금도 도주를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그게 아니라 치더라도, 적어도 그들에게 에워싸인 채 싸울 생각은 없는 것이다.
“뭐 하느냐! 이 쓸모없는 것들!”
흑룡왕의 우렁우렁한 외침이 울리자 수적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그러더니 흑룡왕의 뒤로 따라붙는 윤종의 앞을 목숨 걸고 막아섰다.
“흑룡왕을 지켜라!”
“못 간다!”
“하압!”
윤종의 검이 마치 조걸의 검처럼 허공을 쾌속하게 날아 수적들의 목을 뚫었다.
하지만 그 순간.
윤종은 알아챘다. 조금 전까지 등을 보이고 달아나던 흑룡왕의 거대한 육체가 어느새 그의 바로 앞까지 돌아와 있음을.
‘뭐⋯⋯?’
파아아아아아아앙!
흑룡왕의 언월도가 횡으로 휘둘러졌다.
윤종이 필사적으로 검을 회수했지만, 수적의 목에 박혔던 검이 뼈에 걸리며 찰나 간 반응이 늦어졌다.
“큭!”
콰드드득!
허물어지고 있던 수적들의 허리를 단숨에 가른 언월도가 윤종의 옆구리로 파고들었다.
한 호흡 늦은 윤종의 검이 어찌어찌 그 앞을 가로막았지만, 제대로 된 힘이 실렸을 리 없었다.
쾅!
짧고 강한 폭음과 함께 윤종의 몸이 튕겨 나갔다.
“사혀어어어어엉!”
조걸이 악을 쓰며 윤종을 향해 몸을 날렸다.
“이 새끼⋯⋯. 적에게서 눈 떼지 마!”
구르며 엉망진창이 된 윤종은 되레 그런 조걸을 향해 호통쳤다. 하지만 조걸의 귀에 그 목소리는 조금도 들어오지 않았다. 길게 갈라져 피를 쏟고 있는 윤종의 옆구리만이 보일 뿐.
“그 와중에도 말은⋯⋯!”
조걸이 이를 악물며 재빨리 윤종의 옆구리를 지혈했다. 당소소가 잔소리로 욱여넣었던 지식이 어찌어찌 떠오른다.
억지로 챙겨 왔던 붕대까지 꺼내 드는데, 윤종이 조걸의 손을 잡고 밀어내더니 비척비척 몸을 일으켰다.
“사형!”
“나중에!”
조걸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수적들 사이에서 모두를 노려보는 흑룡왕의 모습이 보인다. 다른 이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대단한 풍채였다.
윤종은 속으로 욕을 짓씹었다.
‘⋯⋯빌어먹을.’
비겁하다고 욕하고 싶다. 제 수하들의 시신마저 미끼로 삼는 모습을 비정하다고 손가락질하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도 이제는 이해하니까. 서로 목숨을 걸고 싸우는 전장에서 정당함과 비겁함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저건 비겁한 게 아니고 노련한 것이며, 또한 영리한 것이다.
흑룡왕이 조롱하듯 웃음을 흘렸다. 조금 전까지 살벌한 기세를 내뿜으며 쏟아내던 노화는 모두 거짓이었다는 듯이.
그러더니 입을 열었다.
“공격해라! 목표는⋯⋯.”
흑룡왕은 주위를 천천히 훑었다. 그 시선은 이내 조걸에게서 멈추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그 등에 업혀 있는 남궁도위에게.
“다 죽어 가는 저놈이다.”
그 즉시 수적들이 악다구니를 내지르며 돌진했다.
“제길!”
“걸아!”
한 손으로 남궁도위를 업고 있어야 한다. 그런 상황에 사방에서 눈이 돌아 달려드는 수적들을 모조리 막아 내기란 불가능하다.
백천과 유이설이 반사적으로 조걸을 향해 뛰어드는 그때였다.
“멍청한!”
허공에 발이 뜬 유이설의 앞으로 흑룡왕이 벼락처럼 날아들었다.
“사고오오오!”
콰앙!
그녀의 몸이 뒤로 튕겨 나갔다. 하지만 유이설은 유이설. 그 와중에도 검을 휘둘렀고, 흑룡왕의 손목에서 피가 울컥 뿜어졌다.
“사고!”
공중에서 몸을 돌린 유이설이 자세를 낮추어 내려섰다. 흰 턱을 타고 핏줄기가 흘러내렸다. 일격에 내부가 진탕된 것이다.
“흥!”
흑룡왕은 손목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흘끗 보고는 거칠게 털어 내었다.
“나를 따라잡기만 하면, 죽이는 것쯤은 별게 아닐 줄 알았느냐?”
“⋯⋯.”
“이 흑룡왕 적세광이 고작 그 정도로 보였느냐? 세상이 너희를 칭송했던 게 정말 너희의 능력 때문인 줄 알았느냐? 주제도 모르는 놈들 같으니!”
명백한 조롱과 비웃음이 내걸렸다.
이제 모두가 알았다. 이곳에 선 건, 제 감정도 주체하지 못해 악만 쓰는 한낱 마두(魔頭)가 아니다.
숱한 전장에서 악착같이 살아남아 마침내 이곳까지 올라선 강호의 노장이다.
“등 뒤의 호랑이를 잃은 여우 새끼가 어떤 꼴이 되는지, 내가 똑똑히 알게 해 주마!”
살기를 끌어 올린 수적들이 검은 밀물처럼 꾸역꾸역 밀려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