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ount Hua Sect RAW novel - Chapter 1574
1573화. 고작 여우는 아니지. (3)
쇄애애액!
번뜩이는 세 개의 작살이 조걸을 노리고 일직선으로 날아든다.
장강수로십팔채라는 이름이 허명이 아님을 증명하듯, 그들이 내지른 작살은 뭍에서도 독사처럼 빠르고 날카로웠다.
하지만 거무튀튀한 작살과 대비되도록 흰빛을 띤 검은 작살보다 두 배는 더 빨랐다.
탕! 탕! 탕!
작살과 작살 사이를 하늘에서 내리꽂히는 뇌격처럼 내달린 검은 이내 세 작살을 동시에 튕겨 내고 수적들의 가슴에 박혔다.
콰득!
근육을 찢고 심장을 파고든 검은 한순간의 지체도 없이 뒤로 빠져나와 다음 상대를 노렸다.
“비켜!”
조걸은 숨이 끊어진 이들의 몸을 어깨로 들이받았다. 생기가 빠져나간 이들이 쓰러지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조차 아까워서다.
쿠웅!
들이받힌 몸뚱이는 허공으로 떠오르며 튕겨 나갔다. 그 시신을 방패 삼아 빠르게 달리며 조걸은 당황한 수적들을 향해 수십 갈래 검기를 쏘았다.
파아아아앗!
심장을 뚫리는 순간까지도 제 죽음을 인지 못 할 만큼 지독한 쾌검이다. 일검분광(一劍分光)이라는 별호가 괜히 붙은 게 아님을 보여 주는 듯했다.
“이노오오옴!”
그러나 적들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앞으로 튀어나온 조걸을 향해 수십 개의 기다란 쇠줄이 살아 있는 뱀처럼 날아든다. 줄 끝에 달린 흉측한 갈고리가 쏟아지는 햇빛 아래 섬뜩하게 빛났다.
철구삭(鐵鉤索). 사파가 강자를 잡기 위해 쓰는 기형 병기다.
수십 줄기의 철구삭이 조걸을 향해 쏟아지는 모습은, 흡사 뱀굴에 떨어진 범을 향해 수십 마리의 독사가 몸을 날리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조걸은 철구삭에 눈길조차 주지 않고, 그저 앞으로 치고 달렸다. 대신 익숙하게 조걸의 머리 위로 솟구친 윤종이 허공에서 검을 펼쳤다.
쇄애애액!
순식간에 수십 개로 갈라진 검이 부챗살처럼 퍼진다. 그리고 꿈틀대며 날아드는 쇠줄을 모조리 휘어잡았다.
“하아압!”
동시에 윤종의 검이 강하게 아래로 그어졌다.
쿠우우웅!
땅을 부술 듯 강한 일격!
검에 엮인 쇠줄들이 커다란 낙석을 얻어맞은 호수처럼 요동쳤다. 그리고 그 힘을 버텨 내지 못한 수적들이 줄 끝에 매달린 채로 땅에 처박혔다.
“커헉!”
오장육부가 동시에 진탕되고 터지는 듯한 충격이 전해졌다. 하지만 수적들이 그 고통에 몸을 옹송그리기도 전에 조걸의 검이 날아들었다.
“계속 가!”
“예!”
생생하다.
검 손잡이에 새겨진 문양의 굴곡이 커다란 골짜기처럼 깊게 느껴진다. 적이 내뿜는 호흡은 천둥소리처럼 크게 들린다.
조걸은 한없이 날카로워진 감각을 한층 더 예리하게 갈아 내고 곤두세웠다.
파아아앗!
그의 검격이 다시 쏘아졌다. 방어를 도외시하고 공격에 모든 것을 걸었다.
발작처럼 날아드는 작살과 조걸의 검기가 허공에서 교차했다.
사아악!
거센 바람 앞에 놓인 울창한 숲에서 가지들이 서로 스치는 듯한 소리가 울렸고, 조걸의 검기가 수적들의 육체에 연이어 박혔다.
고통에 찬 비명과 단말마가 곳곳에서 터졌다.
단 한 번의 검기가 만들어 낸 광경이다. 실로 가공할 공격이었으나, 그 대가로 조걸은 제게 날아드는 작살을 단 하나도 막아 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의 두 눈에 두려움 따위는 한 점도 어리지 않았다.
“저⋯⋯!”
뒤로 따라붙던 이송백이 기겁한 그 순간.
“망할 놈이 또!”
카가가강!
윤종이 있는 힘을 다해 뛰어들었다. 그리고 조걸에게 날아드는 작살들을 단번에 걷어 내었다. 조걸은 그런 윤종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앞으로 치고 나갔다.
이송백은 순간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어떻게⋯⋯.’
어떻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목숨을 저렇게 타인에게 내맡길 수 있을까? 만일 윤종이 한순간만 늦었어도 조걸은 이미 산 사람이 아닐 텐데.
제정신으로는 가질 수 없는 신뢰다. 사람이 저 지경으로 누군가를 믿을 수 있단 말인가?
그 지독한 신뢰 관계가 만들어 낸 힘은 말 그대로 대단했다.
“아아아아악!”
“끄윽!”
사람과 악의로만 이뤄진 숲이 들불이라도 만난 듯 스러져 간다.
‘큭!’
이송백의 얼굴이 절로 일그러졌다.
앞서가는 이들은 적을 쓰러뜨리고 있고, 그는 내달릴 뿐이건만 따라붙는 게 고작이었다. 경공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저들이 순간적으로 나아가며 보이는 폭발력에 반응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희망이 보였다.
‘이거라면!’
이번엔 정말로 흑룡왕을!
이송백이 희망을 품으며 앞을 바라보는 그 순간이었다.
“흥!”
조걸과 그 무리를 본 흑룡왕이 비웃음을 흘리더니 뒤로 훌쩍 뛰어올랐다.
“아⋯⋯.”
이송백이 두 눈을 부릅떴다.
달려오니 물러난다. 뻔하디뻔한 대처다.
하지만 그 순간 이송백은 느껴야 했다. 고작 달아나는 것에 불과한 후퇴(後退)를, 어째서 숱한 병법에서 입을 모아 하나의 전술로 다루는지를 말이다.
상대를 최대한 끌어들인 뒤 보여 주는 단 한 번의 물러섬. 그 시의적절하다 못해 절망적이기까지 한 일수(一手)가 이송백의 의지를 일순간이나마 꺾어 버렸다.
흑룡왕이 물러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들이 보인다. 아니, 그거로도 모자라 그 자리로 수적들이 더 몰려든다.
누런 흙먼지를 일으키며 밀려드는, 푸른색 옷차림의 수적들. 이송백의 뇌리에 찰나 한 단어가 떠올랐다.
강(江). 마치 거대한 강과 같다.
이곳은 분명히 뭍인데도, 흑룡왕은 제 수하들을 이용하여 이곳을 가장 익숙한 형태의 전장으로 바꾸고 있는 것이다.
압도되는 듯한 느낌마저 드는 광경에 이송백이 헛숨을 들이켜려는 순간이었다.
“걸아!”
“압니다!”
두 사람이 그 강으로 뛰어들었다. 거센 파도 같은 수적들을 향해, 그저 올곧게.
거칠게 내달리는 수레를 향해 사마귀가 앞발을 들어 올리는 것과 같은 광경이다. 하지만 저도 모르게 주춤한 이송백과 달리, 두 사람의 움직임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무모합⋯⋯!”
“아―미―타―불―!”
그때 이송백의 옆에서 우렁찬 불호가 터져 나왔다.
“오오오오오오오!”
혜연의 무복이 터질 듯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소림을 상징하는 황포도 아니며, 그렇다고 온전한 화산의 무복도 아니다. 화산의 검은 무복을 뜯어고쳐 만든 승포.
혜연이 묵직하게 손을 뻗었다.
우우우우우우우웅!
이윽고 황금빛 불광이 조걸과 윤종을 감싸듯 뻗어 나갔다.
무상대능력(無上大能力).
소림 무학의 절정에 이른 장력이다.
장력이 윤종과 조걸을 덮치려던 수적들을 부드럽게, 하지만 단호하게 밀쳤다. 황금빛 광휘가 장강의 탁류를 밀어 내는 것처럼.
“으헉!”
“미, 밀린⋯⋯. 으윽!”
예상도, 상상도 하지 못한 공격에 적들이 나뒹굴었다. 그 틈에 조걸의 검이 번뜩였다.
콰득!
삽시간에 가슴을 뚫린 이들이 피를 뿌리며 나가떨어졌다.
‘될까?’
아니. 그런 생각을 할 이유도, 의심할 필요도 없다.
그저 나아간다. 그의 검이 흑룡왕에게 닿지 못한다 해도 상관없다. 만일 그가 지쳐 쓰러진다면 뒤를 잇는 이들이 반드시 남은 길을 열어 낼 테니까.
그러니 더!
파아아앗!
조걸의 몸이 점점 더 빨라진다.
신검합일(身劍合一). 검과 육신이 하나 되는 경지.
그 경지조차 초월한 조걸의 육신이 그가 움직이는 검처럼 빨라지기 시작했다. 따라붙는 윤종이 버거울 정도였다.
파아아앗!
검기가 한순간에 수십 개로 쪼개진다.
화산의 흩날리는 검기가 아니다. 매화처럼 흩어지되 휘날리지 않고 쏘아지는 검기. 화산의 검이되, 또한 조걸만의 검이다.
일순 얼굴을 굳힌 흑룡왕이 다시 뒤로 멀찍이 몸을 빼내려는 찰나.
화아아악!
조걸이 거기서 다시 한번 가속하더니, 마치 자신의 검기처럼 쾌속하게 흑룡왕을 향해 쇄도했다.
“흡!”
흑룡왕이 기겁하여 언월도를 쳐들었다.
콰드득!
그 순간 조걸의 검이 허공에 몸을 띄웠던 흑룡왕의 발목을 뚫었다. 날아오른 독수리를 향해 쏘아진 화살같이!
“큭!”
흑룡왕이 움찔하며 퍼드득 몸을 틀었다. 작살에 맞은 물고기 꼴이다.
“노옴!”
투웅!
흑룡왕이 언월도를 대각선으로 올려 쳤다. 발목께에 달라붙은 조걸을 퍼 올린 것이다.
조걸의 몸이 허공으로 부웅 떠올랐다.
그 순간!
“타아압!”
조걸의 등 뒤에서 그림자처럼 존재하던 윤종이 불시에 솟아올랐다. 튕겨 날아가는 조걸의 발목을 한 손으로 붙잡는 동시에 흑룡왕을 향해 수십 줄기 매화검기를 쏘아 날렸다.
흑룡왕이 언월도를 크게 휘둘러 날아드는 검기를 모조리 튕겨 내려 했지만, 윤종의 매화검기는 둔중한 언월도가 채 막아 내지 못하는 빈틈을 안개비처럼 파고들었다.
서걱! 서걱! 서걱!
거대한 육신 곳곳이 베여 나가며 핏줄기를 허공으로 흩뿌렸다.
“이 쥐새끼 같은 놈이!”
흑룡왕이 악을 쓰며 언월도를 당겼다. 곡선 형태의 거대한 도 날에 시커먼 묵기가 구름처럼 들러붙었다.
“오오오오오오오!”
이내 흑룡왕의 언월도가 팽팽하게 당겨졌던 활시위가 놓인 것처럼 공기를 찢어발기며 윤종과 조걸을 향해 날아들었다.
“으아아압!”
두렵다. 전신의 털이 쭈뼛 곤두설 만큼.
하지만 이송백은 그 두려움을 모조리 끌어안고 오히려 정면으로 몸을 던졌다.
그의 역할이다. 부러질지언정 달아나서는 안 되는 그의 길이다.
콰아아아아아앙!
이송백의 검이 흑룡왕의 언월도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순간적으로 칠공(七孔)에서 피가 울컥 터져 나왔다. 찰나지만 눈앞이 검게 물들 정도의 충격이 온몸을 휩쓴다.
그러나 이토록 목숨을 건 일 검으로도 흑룡왕의 도를 잠시 늦추는 게 전부였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 낸 찰나의 틈을 그의 뒤를 쫓아오던 검은 승포 차림의 승려가 파고든다.
쿠우우우웅!
모든 힘을 실은 주먹이 멈칫한 언월도의 창대를 내리쳤다.
콰아아아아아아!
도 끝에서 뿜어져 나온 거친 묵기가 허공에 떠오른 조걸과 윤종을 아슬아슬하게 지나쳤다. 빗나간 것이다.
“이⋯⋯!”
쿠웅!
흥분한 흑룡왕이 날린 강렬한 일퇴(一腿)가 혜연의 옆구리에 작렬한다.
양손을 교차하며 날아드는 발끝을 가까스로 막아 냈음에도 옆으로 삼 장이나 밀려 나갔다.
“이 개 같은 놈들이!”
흑룡왕의 두 눈에 지독한 증오가 검게 솟구쳤다.
하지만 노련한 여우는 머리끝까지 화가 차오른 상황에서도 이성을 놓치지 않았다. 더 달려드는 대신 지체 없이 땅을 박찼다. 이 자리를 벗어나야 한다.
쇄애애액!
그러나 그 순간, 등 뒤에서 날카로운 파공음이 들려왔다. 놀란 흑룡왕이 본능적으로 몸을 뒤틀었다.
서걱!
인두로 지진 듯 뜨거운 통증이 등에 번졌다.
조용히, 하지만 매섭게 날아든 유이설의 검이 흑룡왕의 등에 길고 깊은 자상을 새긴 것.
동시에 조걸과 윤종이 약속이라도 한 듯 몸을 틀고 허공을 박차며 아래로 쏘아졌다.
“오오오오오오!”
흑룡왕이 반사적으로 언월도를 쳐들었다.
카강!
마음이 다급해질수록 본능은 몸이 느끼는 위협에 충실히 반응한다. 언월도가 빛살처럼 쏟아진 조걸의 검을 완벽히 막아 내었다.
하지만 반대편으로 강하한 윤종의 검은 완전히 막지 못했다.
우드득!
윤종의 매화검이 그의 텅 빈 어깨로 파고들었다.
날붙이가 사람의 몸뚱이로 파고든 것임에도, 흡사 망치로 뼈를 끊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공기가 아닌 몸을 타고 전해진 것이었다.
검을 통해 몸을 파고든 내력이 흑룡왕의 몸속을 휘저었다. 울컥 핏덩이가 역류하며 입가가 금세 벌겋게 물들었다.
“흑룡와아아앙!”
그 순간, 남궁도위를 업은 백천이 흑룡왕의 정면으로 돌진했다.
탁하게 풀렸던 흑룡왕의 두 눈이 퍼뜩 초점을 되찾았다.
“으아아아아압!”
흑룡왕의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이윽고 거대한 언월도가 다른 이들의 공격을 무시한 채 백천의 정수리를 향해 낙하했다.
모두가 화들짝 놀라 움직임을 멈출 만큼 강한 일격이었다.
“멍청한 놈!”
카아아아아앙!
그리고 그 검을 막아 낸 것은 다름 아닌 종남의 검. 길지 않은 검신에 제 내력을 모조리 쏟아부은 진금룡이었다.
흑룡왕의 언월도를 막아서고 받아친 진금룡은 입에서 한 움큼 피를 토해 내며 뒤로 밀려나 땅에 처박히고 말았다.
허공에 날리는 그 핏물을 사이에 두고, 백천과 흑룡왕의 시선이 거칠게 얽혔다.
파아아아앙!
검을 콱 움켜잡은 통에 백천의 손가락이 희게 질린다.
스스로 흘린 피와 쓰러뜨린 적의 피, 그리고 길을 열기 위해 분투한 이들이 쏟은 피.
그 모든 피를 머금은 검이 빛살처럼 허공을 갈랐다.
콰득!
모두의 귀에 들렸다.
날개를 잃은 새의 발톱이 무섭게 요동치는 흑룡의 명치를 꿰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