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ount Hua Sect RAW novel - Chapter 1577
1576화. 어디 가져가 보렴. (1)
“하북 쪽에 인원이 부족합니다!”
“거긴 팽가가 있잖아요! 게다가 아직 하북까지 간 이들이 많지 않을 텐데.”
“팽가가 지금 본진을 비운 상태입니다. 더 지원해야 합니다. 까딱하다가는 북경에 놈들이 침입할 수도 있습니다. 그랬다가는⋯⋯.”
“그럼 하남 쪽에 있는 조를 하북으로 더 지원하세요. 하남은 소림이 있으니 더 버틸 거예요.”
“숭산의 소림은 아직 움직임이 없지 않습니까?”
“괜찮아요! 말씀드린 대로 해 주세요!”
“예!”
당소소가 빠르게 재촉했다.
“또요! 다음!”
“의료 인력이 부상으로 이탈한 조가 있습니다. 추가적인 의료대원을 파견해 주길 바란다고 합니다.”
“고작 그런 이들을 상대하는 데 부상을 입었다고요?”
“⋯⋯치료 중에 등을 당했다고.”
당소소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침을 든 이보다 칼을 든 이를 먼저 노리는 건 사람의 본능이다. 하지만 등을 보인 약자부터 마무리하려 드는 것 역시 사람의 본능이었다.
이걸 미리 짐작하지 못했던 데서 온 패착이다.
만일 상대의 수준이 조금만 더 높았다면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졌을 것이다.
“행동 수칙을 재정비해야겠어요. 우선 부상당한 이들을 대체할 인력을 파견해 주세요.”
“지금 남는 인력이 없습니다.”
“인원이 적은 조 둘을 하나로 합치고, 남는 의료원 하나를 지원하세요. 될 수 있으면 북방 쪽으로 간 이들 중에서!”
“예, 알겠습니다!”
모든 지시가 막힘없이 물 흐르듯 흘러나왔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던 이들이 모두 혀를 내둘렀다.
“⋯⋯대단하네.”
“그러게.”
앉아서 지시를 내리는 거야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산발적으로 보고와 문제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즉각적으로 판단을 내리고, 최선의 답을 찾아내기란 노련한 강호인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그걸 다름 아닌 당소소가 능숙하게 해내고 있는 것이다.
“타고난 건가?”
“아무래도 아버지가 아버지이니⋯⋯. 어릴 적부터 보고 배운 게 있겠지.”
“당가의 혈통이라는 건가.”
모두 이렇듯 당소소의 침착한 모습에 감탄했다.
하지만 사실 그녀의 내심은 썩어들어 가고 있었다. 그녀가 더 높아진 목소리로 물었다.
“장강 쪽을 지원하러 간 당가의 조들은요?”
“그게⋯⋯ 도착은 했습니다만, 문제가 조금 있습니다.”
“문제라고요?”
당소소의 눈이 일순 날카로워졌다. 그러자 말을 꺼낸 이가 화들짝 놀라며 소리치듯 답했다.
“지, 지원을 위해 인근까지 도달은 했지만, 몇몇 조들이 단독으로 움직이던 수로채의 수채들과 맞닥뜨렸습니다! 교전을 벌이느라 화산과 합류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당가 특유의 너른 소매 안으로 당소소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래서 대응은요?”
“돌파를 시도하기에는 희생이 너무 클 것 같으니 명을 내려 달라고 합니다.”
당소소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이곳에서 명을 내린다고 해도, 그들이 그걸 하달받을 즈음엔 상황이 이미 끝나고도 남았을 것이다.
전장에 나가 있는 이들이 그걸 모를 리 없다. 명을 내려 달라는 건, 결국 전장에 뛰어들지 않겠다는 말이다.
하지만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고작 십여 명에 불과한 인원으로 한 수채의 전력을 뚫으며 전진하는 건 자살행위가 아닌가?
“그럼⋯⋯.”
청산유수처럼 답을 뱉던 당소소의 입이 처음으로 멈추었다.
당황한 모습도, 초조한 모습도 보여서는 안 된다. 그게 여기에 선 자의 의무다. 그걸 아는데⋯⋯ 그 의무는 가끔 가혹하게 느껴졌다. 마치 지금처럼 말이다.
“우선은⋯⋯.”
타다 못해 재가 되어 버릴 것 같은 속을 내리누르며 지시를 내리려는 그때였다.
“급보입니다! 장강! 장강에서의 급보입니다!”
당소소의 고개가 획 그쪽으로 돌아갔다.
“적에게 돌입한 조들이! 화산 분들이 흑룡왕 적세광을 척살!”
척살.
그 말을 듣는 순간 당소소는 그만 다리에 힘이 풀리고 말았다.
“수로채의 잔당들은 뿔뿔이 흩어지는 중이라고 합니다!”
“아⋯⋯.”
당소소가 휘청이자 당명이 얼른 팔을 잡고 그녀를 부축했다. 벅찬 목소리가 나왔다.
“해냈구나! 해냈구나, 소소야!”
“⋯⋯.”
당소소의 입에선 허탈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생각 같아서는 욕이라도 한바탕 쏟아붓고 싶지만, 당장은 그럴 기력조차 없다.
“하여튼 진짜⋯⋯.”
안도로 물들었던 그녀의 얼굴에 다시 걱정이 슬그머니 깃들었다.
“다친 사람은요?”
“그, 그건 아직 보고가⋯⋯.”
“수로채가 흩어지고 있다면 앞을 막아선 수채들도 퇴각할 거예요! 당장 상황을 전하고 전장으로 의원들을 보내요, 어서!”
“예!”
당소소가 다시 한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확실한 보고가 들어오기 전이라 걱정이 다 가신 건 아니지만, 상상하던 최악의 상황만은 피해 냈다는 게 못내 위안이 되었다.
“다행이구나, 소소야.”
“⋯⋯예, 숙부님.”
당명이 환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정말 해낼 줄이야. 네 사형제들은 정말 한계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이다.”
“⋯⋯사고 치는 데도 한계가 없죠. 설마 청명 사형도 없는데 일을 벌일 줄이야.”
“하하. 사형제는 본디 닮는⋯⋯. 크흠.”
당소소의 눈이 날카로워지자 당명이 헛기침하며 슬쩍 시선을 피했다. 그 너스레가 긴장된 공기를 부드럽게 풀어 주었다.
“하여튼 나중에 귀에 피가 나도록 잔소리를 해 줄 거예요. 대체 무슨 생각으로!”
당소소가 이를 갈았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아까와 확연히 다르게 안도감으로 풀려 있었다.
“그럼 우선⋯⋯.”
그녀가 마음을 다잡고 다시 지시를 내리려는데.
삐이이이이익!
돌연 호각 같은 높은 울음소리가 머리 위에서 울려 퍼졌다.
당소소가 황급히 위를 올려다보니, 작은 황금빛 새가 푸른 하늘을 맴돌고 있었다.
당소소의 눈이 짧게 흔들렸다.
“저건⋯⋯.”
반사적으로 팔을 내미니 선회하던 금빛 새가 빠르게 그 위로 내려앉았다. 발에 전서 통이 묶여 있었다.
당소소는 빠르게 통을 열고 전서를 펼쳤다.
“아⋯⋯.”
이윽고 입술 새로 앓는 듯한 탄식이 새어 나왔다.
❀ ❀ ❀
“야아, 오랜만.”
“⋯⋯저 미친 새끼가.”
“빨리도 온다, 빨리도!”
“완전 멀쩡하시군.”
“사, 사고. 검은 왜?”
청명이 태연스레 손까지 흔들며 나타났다. 백천과 윤종이 쌍욕을 퍼부었고, 유이설은 검을 뽑았다.
청명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도 어째 다들 잘도 살아남았네?”
“사숙⋯⋯. 죽여도 됩니까?”
“⋯⋯능력만 있었으면 내가 벌써 저질렀다.”
“끄응. 몸만 멀쩡했어도.”
눈을 흘기던 백천이 문득 피식 웃어 버렸다. 웃을 때마다 몸이 으스러질 듯 아파 왔지만, 이 고통을 느낄 수 있는 것도 복이라는 걸 이젠 누구보다 잘 아는 백천이었다.
자칫했으면 정말 여기서 유명을 달리할 뻔했으니까.
“이번엔 진짜 죽는 줄 알았다.”
“뭘 새삼스럽게. 항상 그랬잖아?”
“⋯⋯그도 그렇네.”
이게 정상인 걸까? 뭔가 근본부터 심각하게 잘못된 건 아닐까?
그때 청명이 땅에 널브러진 흑룡왕의 시신을 힐끗 보았다. 꼴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처참하다. 하지만 숱한 악행을 저지른 악인의 말로로는 더없이 적합한 죽음이다.
“이놈을 너희가⋯⋯.”
청명이 뭔가 살짝 먹먹한 듯 말끝을 흐렸다. 백천이 피식 웃었다.
“그래. 정말 우리가 해냈다. 이제⋯⋯.”
“고작⋯⋯.”
“⋯⋯어?”
청명의 시선이 획 오검에게로 향했다. 눈빛이 어째 불길하게 번들거린다.
오검과 혜연이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고작 이딴 새끼 하나 잡는데 몸뚱이를 그렇게 처굴려 대?”
“어?”
“고작 이거 하나 처리하는데? 고작?”
“⋯⋯.”
“아이고 내 팔자야⋯⋯. 아이고! 내가 전생에 대체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것들을 데리고⋯⋯! 대체 몇 년을 업어 키웠는데 아직도 이런 놈 하나를 제대로 못 잡냐고!”
“⋯⋯네가 업어 키우진 않았다.”
네가 업으면 내 발이 땅에 끌리잖아. 네 키를 생각해야지⋯⋯.
아, 아니 이게 아니고.
“그게 상황 다 끝나고 슬금슬금 기어 나온 놈이 할 말이냐!”
“그럼 기다리든지! 말도 없이 지들끼리 먼저 시작해 놓고 왜 내 탓이야!”
“그건 맞지.”
“솔직히 그건 사숙이 잘못하셨지.”
“멍청한 놈.”
으드드득.
백천은 바득바득 이를 갈아붙였다. 다른 놈들이야 저게 일상이니 그렇다 치고, 저 인간은 왜 동조하고 앉아 있는가. 여기서 청명이 놈에게 제일 큰 원한을 품었을 놈이 진금룡일 텐데!
“왜 노려보지? 뭐 할 말이라도?”
백천의 얼굴이 조금 더 일그러졌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 망설임 없이 그의 앞을 막아서던 진금룡의 등이 아직도 눈에 훤하다. 그러니 아니꼬워도 별말을 할 수가 없었다. 빨리 이 기억을 지워 버려야만⋯⋯.
“하여간.”
쯧쯧 혀를 찬 청명이 이번엔 남궁도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살아남은 남궁세가 사람들과 각 조의 의원들이 남궁도위에게 달라붙어 상처를 수습하고 있었다.
다른 이들이 입은 부상도 가볍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남궁도위는 정말 말 그대로 숨만 붙어 있는 시체나 다름없는 몰골이라서였다.
“흠.”
청명이 남궁도위를 향해 다가가자 둘러싸고 있던 이들이 비키며 길을 열어 주었다.
늘어져 있던 남궁도위가 청명이 온 걸 알아채고는 힘겹게 고개를 돌렸다.
“도⋯장⋯⋯.”
“거, 꽤 잘생겨지셨네? 진짜 절세 미남이신데?”
그 말에, 얼굴이 푸르딩딩하게 부어터진 남궁도위가 빙긋 미소를 지었다. 빈말로도 멋져 보인다고는 할 수 없는 미소였다. 하지만 한없이 후련해 보이는 미소라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저도 이쪽이 더 좋습니다.”
“동경이 없는 게 아쉽네. 그 말 당장 후회하게 해 줄 수 있는데.”
청명이 피식 웃어 버렸다.
물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청명 역시 지금 남궁도위의 얼굴이 훨씬 더 마음에 들었다. 이보다 더 확실한 무인의 얼굴은 없을 테니까.
“다만⋯⋯.”
남궁도위가 어느 한쪽을 돌아보려는 듯 움찔했다. 이곳에 함께 왔던 이들 중 희생되어 버린 이들을 눈에 담으려는 듯했다.
“좋은 선택이었다고는 죽어도 말 못 하겠지만.”
하지만 청명은 그가 고개를 돌리고 자책하게끔 두지 않았다.
“적어도 남궁황은 자랑스러워할 거다.”
놀란 남궁도위가 청명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청명이 투박하게 말했다.
“⋯⋯수고했다.”
“아닙니다. 도장⋯⋯.”
청명은 남궁도위의 상처를 살피고는 혀를 쯧쯧 찼다.
영광의 상처라지만 과하다. 못해도 한 달은 시체처럼 누워 살아야 사람 구실이라도 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 뒤에는⋯⋯ 확실히 달라지겠지.’
하나의 산을 넘은 무인은 그 전과 다른 사람이 되곤 하니까.
“청명아.”
그런 청명에게 백천이 다가왔다.
“슬슬 다시 움직여야겠다.”
“음?”
청명이 슬그머니 눈살을 찌푸렸다. 물론 남궁도위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객관적으로 백천의 꼴도 좋다고는 할 수 없는데 뭘 벌써⋯⋯.
“달아난 수적 중 삼분지 일 정도는 북쪽으로 향했다. 놈들을 정리하지 못하면 흑룡왕을 잡은 게 무의미해진다.”
“음.”
백천의 차분한 말에 청명은 일리가 있다는 듯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머지 오검을 흘끗 보며 말했다.
“맞는 말이야.”
“그래. 그럼 바로⋯⋯.”
“그런데 그걸 왜 우리가 해야 하는데?”
“⋯⋯응?”
청명이 북쪽을 향해 턱짓했다.
“그렇게 하나하나 다 제 손으로 할 거면 맹은 왜 만들었어. 혼자 다 해 먹지.”
“⋯⋯.”
백천이 서서히 입을 닫자 청명이 담담히 말했다.
“본인만 할 수 있는 걸 했으면, 남이 할 수 있는 건 남에게도 좀 맡겨 둬. 그게 옳아.”
백천의 얼굴에 절로 황당함이 어렸다.
“그걸 아는 놈이 그렇게 살았냐?”
“내가 뭘?”
“⋯⋯그래. 말해 봐야 내 입만 아프지.”
백천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지독한 전투를 막 끝낸 참이지만,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아니, 더할 나위 없이 밝았다.
서로 굳이 의견을 나눈 건 아니지만, 흑룡왕이라는 거물을 잡은 게 이번 전쟁에 얼마나 이득을 가져올지 실로 훤히 보였기 때문이다.
백천은 괜히 풀어지려는 마음을 재빨리 다잡았다.
“우선은 부상자부터⋯⋯.”
바로 그때였다.
키이이이이이!
귓가에 익숙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보니 저 멀리서부터 익숙한 하얀 형체가 섬전처럼 달려오고 있었다.
“⋯⋯백아?”
“응?”
청명의 얼굴도 살짝 굳어졌다.
백아는 하얀 번개라는 별명답게 삽시간에 달려와 청명의 몸을 타고 올랐다.
키이!
그러더니 메고 온 보따리를 작은 앞발로 풀어 안에 든 전서를 꺼내었다.
“뭔 일이길래⋯⋯.”
청명이 굳은 얼굴로 백아가 내민 전서를 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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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패련 정북으로 북상 중.
소림과 구파 응전을 위해 출진.
의견 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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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의 눈이 커다래졌다.
“지⋯⋯금?”
그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삐걱대며 고개를 돌려 서쪽으로 시선을 두었다.
천 길 너머의 불길한 땅으로.
❀ ❀ ❀
“련주님.”
“음?”
“⋯⋯흑룡왕에게 붙여 둔 이에게서 오던 정기 보고가 끊겼습니다. 아마도⋯⋯.”
“흐으음.”
장일소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쯧쯧. 안타깝게도⋯⋯. 여유가 있었다면 장례라도 치러 주었을 텐데 말이다.”
호가명이 안색을 굳혔다.
“소식이 끊긴 것뿐입니다. 아무리 한쪽 팔을 잃었다고는 해도 아직 조금은 더⋯⋯.”
“가명아, 가명아. 그렇게 당하고도 깨닫기에 부족하더냐?”
“⋯⋯.”
“어차피 시간문제일 뿐이란다. 설령 흑룡왕의 팔이 멀쩡해도 말이다.”
부정할 수 없는 말에, 호가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흑룡왕은 살아 돌아올 수 없다. 애초에 그의 역할은 미끼일 뿐이었으니까. 그 목숨으로 노렸던 이를 확실히 끌어들였으니 충분히 제 역할을 다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흑룡왕의 죽음은 더없이 가치 있었다 평할 수 있지 않을까?
“이리 가져오거라.”
호가명이 턱짓하자 부관 중 하나가 재빨리 달려와 장일소에게 술병을 내밀었다. 장일소는 시선도 주지 않고 술병을 받아 마개를 열어젖혔다.
“흐음.”
주향을 느리게 음미한 장일소가 술병을 살짝 기울였다가 담담히 술을 들이켰다.
두어 모금 술을 들이켠 그는 느긋한 손길로 술병을 내리고 태평한 감상을 내놓았다.
“좋은 술이구나.”
“⋯⋯.”
“음? 왜 그런 눈으로 보느냐?”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호가명은 조금 당황한 듯 보였다. 장일소가 쿡쿡 웃었다.
“왜? 내가 이 술로 흑룡왕을 위한 진혼이라도 할 줄 알았더냐?”
호가명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리 생각한 게 사실이니까.
“그럴 필요 없단다.”
장일소의 입가에 서늘한 비웃음이 어렸다.
“그런 잡배에게 낭비하기에는 술이 아깝지.”
호가명이 말없이 고개를 숙이려 할 때였다.
“게다가⋯⋯ 놈을 위한 진혼은 따로 있지 않더냐?”
“예?”
장일소의 시선이 앞에 펼쳐진 너른 대지로 향했다. 요사하게 빛나는 눈이 지금은 흡사 들끓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 곧이다.
오늘 해가 질 무렵이면, 이 땅이 새빨갛게 물들 것이다. 이깟 술 따위보다 더 진한 피로, 하늘을 물들인 노을보다 더 짙게.
“조각은 모두 맞춰졌단다. 이제 진혼제를 열어야지. 죽어 간 이들이 아닌 죽어 갈 이들을 위한 진혼제를.”
이 땅에 수런수런 흐르던 불길한 기운에 방점을 찍는 듯한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