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ount Hua Sect RAW novel - Chapter 1578
1577화. 어디 가져가 보렴. (2)
“서둘러라!”
법정이 목청껏 외쳤다.
“더! 더 빨리! 한시도 지체해서는 안 된다!”
그런 법정의 등을 바라보는 법계의 얼굴이 심각했다.
그도 그럴 게, 법계는 오래도록 사형으로, 방장으로 그를 모셨다. 그런데 법정이 지금처럼 다급해 보이는 건 처음이었다.
“방장!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이대로는 적에게 당도하기 전에 이쪽이 먼저 지칠 것입니다!”
“안일한 소리 하지 말거라, 법계!”
법계의 우려에 법정의 진노 어린 노성이 터져 나왔다.
“지쳐? 그게 지금 무어가 중요하단 말이냐! 애초에 이건 전쟁이다! 완전한 상태에서 적과 대면하는 상황은 병서에나 나온다는 걸 모르느냐!”
“하, 하나⋯⋯.”
“만전을 기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실기(失期)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 저놈을 놓친다면 또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러야 할지 알 수 없다! 지금은 뒤를 생각할 때가 아니다!”
법계가 입술을 짓깨물었다. 동조하는 팽엽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대사. 저도 방장께서 하신 말씀이 옳다고 봅니다.”
“⋯⋯가주님.”
팽엽이 맹렬히 땅을 박차며 말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패군의 종적을 잡는 것입니다. 이 기회를 놓쳐 그가 다시 강남으로 몸을 피해 버린다면, 우리는 이 지리멸렬한 대치를 또 반복해야 합니다.”
법계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 말이 틀리지 않음을 어찌 모르겠는가.
숭산을 떠나온 게 언제인지 이젠 헷갈릴 정도다. 자신이 승려인지, 장수인지 구분도 안 갈 지경에 이르렀다.
그라고 숭산에서 선법에 몰두하던 시절이 그립지 않을 리 없다.
말 그대로 지긋지긋했다. 이 전쟁도, 패군도.
이 한 번의 전투로 모든 걸 끝내고 숭산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법계가 가장 먼저 수라처럼 나서서 싸울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이건 너무 과격합니다. 이건 구파의 방식이 아니지 않습니까. 조금 침착⋯⋯.”
“그러니 더더욱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장문인?”
종리형이 답답하다는 듯 법계를 흘겨보았다.
“대사의 말씀대로, 이건 그동안 우리가 취해 온 방식이 아닙니다. 그러니 저들도 우리가 이리 움직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할 겁니다.”
“그건⋯⋯.”
듣고 보니 일리가 있었다. 심지어 오래 곁을 지킨 법계조차도 법정이 이리 급작스럽고 과격한 방식을 택할 거라곤 생각지 못했으니까.
아무리 세상을 가지고 노는 듯 구는 패군이라 해도, 구파의 이런 움직임을 예측하기란 어렵지 않을까?
“드디어 기회가 온 겁니다. 저 패군의 목을 벨 기회가 말입니다!”
종리형의 눈빛이 차게 빛났다. 그간 법계가 보아 왔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낯설지만, 어쩌면 이게 종리형의 본모습일지도 모른다. 구파에 속할 만큼 거대한 문파의 장문인 자리를 사람 좋은 것만으로 얻어 낼 수는 없었을 테니.
법정과 팽엽 역시 종리형의 말에 동조하는 듯 묵묵히 법계를 보았다. 무언의 압력이 느껴졌다. 법계는 결국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의문은 여전히 가슴에 남아 있다.
그 말이 모두 맞는다 해도, 이리 급할 필요까지는 없지 않나. 이미 강북으로 깊숙이 들어온 사패련이 쉽사리 몸을 빼지는 못할 텐데, 느긋하게 그들을 몰아붙이면 그만 아닌가.
그러나 차마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다.
이들이 이토록 서두르는 진짜 이유를, 법계 역시 알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 어디 있느냐?”
“예? 아⋯⋯. 패군이라면 지금⋯⋯.”
“아니.”
법정이 법계의 말허리를 끊었다.
“‘그’ 말이다.”
법계는 뒤늦게 법정이 누구에 관해 묻는지를 깨달았다.
굳이 지금 언급될 리가 없는 이.
“⋯⋯화산검협이라면, 현재 안휘에 있는 걸로 확인되었습니다.”
“확실하더냐?”
“예, 방장. 개방에서 전해온 정보와 중소 문파에서 보내온 소식, 그리고 자체 정보원들이 보낸 정보가 일치합니다.”
법정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눈빛이 서늘했다.
청명은 지금 이곳에 없다. 안휘에서 소식을 들을 수야 있겠지만, 그가 아무리 빠르게 판단하고 정확한 지시를 내린다 해도 이미 움직이기 시작한 구파보다 빨리 대응할 수는 없을 터.
그 말인즉, 이 전쟁을 끝낼 기회가 온전히 구파의 손에, 정확하게는 법정의 손에 떨어졌다는 의미다.
이 천금 같은 기회를 놓친다는 건 말도 안 된다.
‘마지막에 이기는 자가 진정한 승자임을 그대 역시 알고 있겠지.’
기회가 마침내 손에 들어와 있다. 이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주먹을 꽉 쥔 법정이 외쳤다.
“아이들을 독려해라! 속도를 늦추지 않고 간다!”
“예, 방장.”
따르는 제자들을 돌아본 법정이 다시 굳건히 앞을 응시한다.
그가 노리는 건 장일소의 목.
이를 위해 향하는 곳은 다음 백 년의 영광을 얻어 낼 찬란한 땅이었다.
❀ ❀ ❀
“보고에 따르면, 장강으로 간 이들이 흑룡왕의 목을 베었다고 합니다!”
현종이 벌떡 일어났다. 듣자마자 뇌리에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처, 청명이! 청명이가 한 일입니까?”
“아닙니다! 이번 전투에 총사는 참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온전히 오검을 비롯한 남궁 소가주와 종남의 후기지수들이 해낸 일입니다.”
“세상에⋯⋯.”
현종이 순간 넋을 놓은 듯 멍해졌다.
잠시 후에야 퍼뜩 정신을 차린 그가 지금 마땅히 해야 할 질문을 던졌다.
“아이들은! 아이들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부상을 입은 이는 있지만, 다행히 사망자는 없다고 합니다. 남궁 소가주가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지만 요양하면 회복이 가능할 거라 합니다.”
“아아.”
현종이 나직이 탄성을 흘리며 도로 털썩 주저앉았다.
속이 제 속이 아닐 만큼 애를 끓였는데, 아이들이 무사하다는 말을 듣자 긴장이 한꺼번에 탁 풀려 버렸다.
“흑룡왕을⋯⋯ 그 아이들이⋯⋯.”
상상한 적 있다. 제자들이 세상을 어지럽히는 마두의 목을 베고 천하에 칭송받는 광경을.
아니, 사실은 수없이 상상했었다.
얼마나 즐겁고 행복할까? 얼마나 자랑스러울까?
그런데 상상만 하던 일을 직접 겪어 보니 자랑스러운 감정 같은 건 떠오를 틈도 없다. 그저 아이들이 무사하다는 데 안도하고 또 안도할 뿐. 탈력감이 몸을 내리눌렀다.
그에 반해 당군악은 여전히 긴장을 유지하고 있었다.
“우리가 보낸 소식에 대한 답은 돌아왔는가?”
“아직입니다.”
“⋯⋯아직?”
“아마 흑룡왕을 마무리하고 보낸 보고가 우리 쪽에 먼저 도착한 모양입니다.”
당군악의 손끝이 살짝 떨린다.
“구파는⋯⋯?”
“지금 사패련을 향해 접근 중입니다. 지금 같은 추이라면 금일 내로 조우하게 될 것입니다.”
“당장 오늘이라⋯⋯.”
당군악이 손가락 끝으로 책상을 탁탁 두드렸다. 초조함이 묻어나는 움직임이었다.
“여전히 우리 쪽으로는 협조를 구해 오지 않고 있나?”
“협조는커녕, 이쪽에서 보낸 전서까지 모조리 묵살하고 있습니다. 개방을 통한 전달도 먹히지 않습니다.”
“법정 그 작자가⋯⋯.”
당군악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어도 법정을 ‘방장’이라 칭하며 최소한의 존중을 잃지 않았던 그가 이젠 법명을 직접 지칭할 정도로 노한 것이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지금⋯⋯!”
상대는 사패련, 심지어 저 장일소다. 공을 탐내어 다툴 만큼 만만한 상대가 아님을 뻔히 알고 있을 텐데, 어째서 이 시점에 이토록 무리수를 둔단 말인가?
법정이 이토록 생각이 없는 자였던가?
당군악의 고민에 대한 대답은 천릿길 너머에 있는 법정이 아닌 임소병의 입에서 나왔다.
“완벽한 배제.”
당군악의 시선이 임소병에게로 향했다.
“고민할 여지도 없지요. 놈들이 노리는 건 완벽한 배제입니다. 천우맹이 나설 기회조차 주지 않겠다는 거지요.”
“이런 상황에?”
“이런 상황이니 더더욱 말입니다. 참으로 정파답지 않습니까?”
임소병의 입가에 냉소가 어렸다.
그 냉기에 당군악은 가슴속이 푹 찔리는 듯했다.
제 욕망 때문에 죽는 게 사파라면, 명예와 직위에 대한 집착 때문에 죽는 것이 정파다.
임소병의 미소가 당군악에게 말하고 있었다. 방향만 다를 뿐, 결국 저열하기는 마찬가지라고 말이다.
“녹림왕, 아니⋯⋯. 군사.”
“예.”
임소병이 진지한 눈으로 당군악을 마주 보았다. 당군악이 물었다.
“전황⋯⋯. 아니, 승산은? 이대로 사패련과 구파가 충돌한다면 결과가 어찌 되리라 보는가?”
임소병은 잠시 숙고하듯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땐 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확고하게 대답했다.
“구파의 압승입니다.”
“⋯⋯압승? 그렇게나?”
“몇 번이고 생각해 봤지만 다른 결과가 나올 여지가 없습니다. 이대로라면 사패련은 말 그대로 대패할 것입니다.”
당군악이 침묵했다.
하지만 임소병은 반응을 기다리지 않고 의견을 이어 나갔다.
“사패련이라고는 하지만, 지금 북상하는 세력은 장일소를 중심으로 한 만인방, 그리고 전력을 많이 잃은 흑귀보가 전부입니다. 하오문은 아직 복귀하지 못했습니다.”
“⋯⋯그렇지.”
“세 세력이 모두 있다 한들 소림과 공동, 팽가의 연합을 상대하기란 쉽지 않겠지요. 설령 소림의 전력이 온전하지 않다고 해도 말입니다. 그런데 고작 두 세력이라면⋯⋯.”
매우 상식적이고 당연한 평가다.
만인방, 흑귀보에게 단독으로 천하를 휩쓸 만한 능력이 있었다면 강호의 평화가 이리 오래 유지되었을 리 없다.
사패련의 악명 대부분은 지난 몇 해간 장일소가 벌인, 상식을 뛰어넘는 일들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명성은 명성일 뿐.
부족한 전력을 새로 만들어 낼 도리가 없는 이상, 사패련의 약세는 극복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패군 역시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지 않은가?”
“⋯⋯맞습니다.”
“하오문을 더 빨리 불러들이든, 함정을 파든, 짜 놓은 수가 있으니 북상을 선택할 수 있었을 텐데.”
“당연히 그렇겠지요. 그리고 아마 법정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겁니다.”
“함정일 수도 있다는 걸 안다고? 그런데도 간단 말인가?”
“예.”
“어째서?”
“그 함정에 뛰어들어야 장일소의 목을 취할 수 있을 테니까요.”
“⋯⋯.”
“그리고 함정이라고 해서 항상 통하는 것은 아닙니다. 늑대를 잡기 위해 놓은 덫으로는 범을 잡을 수 없고, 범을 잡을 덫 역시 용을 잡을 수는 없습니다. 알고 준비한다 해서 모두 막을 수 있다는 건 세 치 혀로 병법을 논하는 자들의 오만에 지나지 않습니다.”
차갑고도 냉정한 평가였다.
“전력에서 뒤지는 이들의 놀라운 승리가 계속해서 회자되는 것은, 전력에서 앞서는 이들이 승리하는 게 뻔하고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구파가 망설일 게 무어 있겠습니까?”
당군악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구구절절 틀린 구석일랑 없는 말이다.
정면으로 붙는다면 구파 쪽이 강하다. 이는 상식에 가깝다.
그러니 법정의 입장에서는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을 것이다. 이번에도 망설이다 천우맹이나 사패련에게 기회를 넘겨준다면 그는 천하의 얼간이로 강호사에 기록될 테니까.
다만⋯⋯.
‘그럼에도 왜 이리 불안하단 말인가?’
뇌리에서 장일소의 모습이 사라지지 않는다.
정말 이 모든 사실을 모르고 있을까? 그가 정말 자신의 계략을 과신해 스스로 사지에 뛰어드는 이일까?
만약 그렇다면 지금 천우맹은 어찌 움직여야 할까?
그 순간이었다.
“보고드립니다!”
문이 벌컥 열리며 누군가가 다급하게 뛰어 들어왔다.
“구파의 진격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다고 합니다! 이 속도대로라면 지금쯤! 지금쯤 두 세력이 마주쳤을 거라고⋯⋯!”
당군악이 벌떡 일어났다.
“지금?”
잠시의 망설임. 혹은 기다림이라고 불러야 할 짧은 시간으로 인해 천우맹은 ‘배제’되었다.
❀ ❀ ❀
“흐으음.”
장일소가 기름한 눈을 더 가늘게 떴다.
저 먼 평원 쪽에서 진격해 오는 무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적이다!”
“적이 오고 있다!”
주위에서도 그 무리를 발견하고 목소리를 높이며 경계 태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적은⋯⋯.”
선두에 선 자들의 복색이 눈에 띈다. 황톳빛 가사 차림.
그들은 흡사 수라처럼 맹렬히 돌진해 오고 있었다.
“소림!”
“소림이다! 구파 놈들이 온다!”
순식간에 팽팽한 긴장이 드리웠다. 한 사람을 제외하고 말이다.
“이런, 이런⋯⋯.”
장일소가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벌써 도착하다니, 정말 어지간히 달아오른 모양이구나. 엉덩이 무거운 중놈들이 발바닥에 땀깨나 흘렸겠어. 안 그렇니, 가명아?”
“⋯⋯련주님.”
“원하는 건 아마⋯⋯.”
희고 매끈한 손가락이 느리게 제 목을 더듬었다.
“이 목이겠지?”
피처럼 붉은 입꼬리가 섬뜩하게 올라갔다. 웃음으로 휘어진 눈에선 광채가 번뜩였다.
“어디 가져가 보렴. 그리 쉽지는 않겠지만 말이야.”
이윽고 길게 자라난 손톱이 곧은 목을 천천히 가로로 그었다.
그 손짓을 따라 생겨난 붉은 선에서 피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지금부터 이 땅에 쏟아질 숱한 피를 예고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