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ount Hua Sect RAW novel - Chapter 1582
1581화. 그럼 대체 누구란 말이냐? (1)
“타아아앗!”
종리형이 사색이 되어 물러서는 적의 목을 단칼에 베었다.
검 끝에 스치는 묵직한 느낌이 손끝까지 여운을 남긴다.
정도를 걷기에 감히 느껴선 안 될 감정이지만, 악적의 목을 베는 이 감각이 그간 썩어 문드러졌던 속을 단번에 풀어 주는 것만 같았다.
‘고작 이런 놈들에게⋯⋯!’
천하의 사패련에게 ‘고작’이라는 말을 붙일 이가 감히 있겠냐마는, 그들은 지금 실제로 증명하고 있었다. 구파일방은 사패련에게 그런 말을 붙이기에 부족하지 않음을 말이다.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분분히 물러나는 사파 놈들을 보고 있자니 속이 시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새삼 천불이 솟았다.
“잘난 듯이 날뛰어 대더니!”
벼락같은 쾌검이 물러서는 이들의 목을 연이어 꿰뚫는다.
“컥!”
제대로 된 비명도 못 지르고 썩은 짚단처럼 쓰러지는 이들을 보며, 종리형은 검에 묻은 피를 거칠게 털었다.
‘대체 우린 그동안 대체 뭘 했단 말인가!’
그래, 사실 지금껏 상대해 온 사파들은 대체로 이러했다.
승냥이 떼. 수를 믿고 날뛸 때는 범조차 쫓아낼 정도로 위협적이지만, 정작 그 한 마리 한 마리는 비루하기 짝이 없다.
그렇기에 지금 그의 앞에서 이리 벌벌 떨어 대는 것이다.
머릿수밖에 믿을 게 없는 놈들은 그 이점을 잃은 순간 아무것도 아닌 쓰레기가 되는 법.
“고작 이 정도였더냐!”
울분이 실린 종리형의 검이 연신 전방을 향해 쏘아졌다.
다시 한번 사파의 목을 꿰뚫은 종리형이 날카롭게 앞을 쏘아본다.
‘눈이 흐려져 있었어.’
물론 사패련을 상대로 두려움이라고 하기엔 과하지만, 껄끄러움 같은 것을 느껴 온 건 사실이다.
분명 사패련에게는 그럴 만한 자격이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그 실체를 검으로 직면한 순간, 종리형은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지금껏 단 한 번도 구파는 사패련과 정면으로 맞붙은 적이 없다.
그 끔찍했던 장강참변 때도, 매화도에서도, 심지어 남경과 사천에서조차 구파는 항상 상대가 원하는 대로 끌려 들어가 상대가 원하는 곳에서 싸웠을 뿐이다.
가장 대적하기 어려운 적을, 적이 가장 싸우기 어려운 곳에 밀어 넣고 강제한다.
패하고 싶어도 패하기 힘들 상황을 이미 만들어 둔 채 상대를 농락한다.
그걸 가능하게 한 것은 분명 사패련의 힘, 아니 장일소가 가진 지략의 힘이었다.
하지만 이는 달리 말해, 그 장일소의 지략이 발휘될 수 없는 곳에서의 사패련이란 그저 수만 많은 사파 무리에 지나지 않는단 뜻이다.
‘방장!’
법정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곳에는 장일소가 이용할 수 있는 절벽도 없고, 발을 묶을 장강도 없다. 껄끄러운 수로채의 전선(戰船)도 존재하지 않는, 그저 너른 들판일 뿐이다.
이곳에서라면 구파일방의 힘은 완전해지고, 저 사패련의 강점은 모조리 힘을 잃는다.
법정은 이 모든 걸 알았기에 모두를 닦달하여 이곳까지 내달린 것이다. 이 한 번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이렇다면 승리가 당연하지 않은가?’
만인방이니, 흑귀보니, 얼핏 면면들은 화려하다. 하지만 냉정히 따져 보았을 때, 만인방은 귀주에서나 힘 좀 쓰는 사파에 지나지 않고, 흑귀보 역시 재력을 바탕으로 세를 불린 오합지졸에 지나지 않는다.
제대로 붙을 수만 있다면 구파가, 공동이 왜 저들을 두려워하겠는가?
종리형이 애병을 꽉 움켜쥐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내심 품고 있던 두려움이 사라진다.
그러자 그 빈자리로 웅크리고 있던 시간에 대한 보상심리가 밀려들었다. 동시에 꾹꾹 눌러 놓았던 공명심(功名心)까지도.
이미 승리는 따 놓은 당상.
그렇다면 이 승리 후 가장 많은 찬사를 받을 이는, 가장 많은 영광을 거머쥘 문파는 어디인가?
이 모든 상황을 만들어 낸 소림?
‘⋯⋯꼭 그렇지만은 않을지도 모르지.’
종리형의 눈빛이 순간 먹이를 노리는 매처럼 빛났다.
만일 이 전쟁에 기발한 전략이 있었다면, 서로 모든 것을 쏟아 내는 격전 속의 신승(辛勝)이라면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아니라면, 세인들은 필시 다른 것에 주목할 것이다.
모두가 가장 궁금해하는 것.
모두가 가장 높게 칠 수밖에 없는 가치. 고대로부터 전쟁의 향방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것.
종리형의 타는 듯한 시선이 한곳으로 꽂혔다.
앞에 펼쳐진 인의 장막 뒤, 그 누구보다 화려한 장포를 입고 서 있는 한 남자에게로 말이다.
‘장일소의 목.’
세상은 분명 확인하려 할 것이다.
어느 문파가, 누가 저 목을 들고 귀환하는지. 누가 저 목을 베어 이 긴 전쟁을 끝냈는지. 누가 이 중원을 저 마귀의 마수에서 구해 내었는지.
십 년. 아니, 적어도 백 년, 어쩌면 천 년을 넘게 회자될지 모를 업적이다.
이 순간, 종리형의 검이 그에게 묻고 있었다.
이 천금과 같은 기회를 놓칠 것이냐고. 도대체 지금껏 검을 익혀 온 이유가 무엇이냐고 말이다.
혹자는 이를 두고 공명심이나 과욕이라 일컬을지 모른다.
“하아아압!”
파아아앗!
종리형의 검이 빛살처럼 쏘아졌다. 확신 어린 검 끝이 적도들의 심장을 정확히 뚫고 빠져나온다.
‘아니! 아니다!’
이건 공명심도 과욕도 아니다. 장일소가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고, 누군가는 저자의 목을 베어야 한다. 이건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그 자격이 종리형에겐 없다고 누가 말할 수 있으랴!
소림이 이곳까지 모두를 이끌었다 해서 그들에게만 장일소를 벨 자격이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이곳에서 그런 자격을 논하는 이가 천하의 안위에는 관심도 없이 공명에 사로잡힌 자임을 증명하는 것 아니겠는가.
종리형의 두 눈이 점점 붉어진다.
핏빛 장포를 걸치고, 눈도 뗄 수 없을 만큼 화려함을 뽐내는 이가 지금 바로 저기에 있다. 금방이라도 잡힐 듯 저기, 저곳에.
“뚫어라! 전진해라! 패군의 목을 벨 것이다!”
억눌러 온 모든 것을 터뜨린 종리형이 내력을 있는 대로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타아아아앙!
굉음이 울렸다. 도가 휘둘러지는 소리라기보다는 한계까지 당겨진 장궁의 시위가 끊어지는 소리에 가까웠다.
일도(一刀)에 적의 허리를 끊어 낸 팽엽은 이를 악물고 앞을 노려보았다.
승리? 그런 걸로는 부족하다.
더 필요하다. 더!
부족한 그의 입지를 완전히 다져 줄 것이 필요하다. 가문 내에서 여전히 의심 어린 눈으로 그를 주시하고 있는 원로들의 입을 틀어막을 만큼 확실한 업적이!
‘형님.’
팽엽의 형은 호방했다. 가문을 빛낼 인재임을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누구보다도 팽가다운 이. 그런 팽자서가 바로 팽엽의 형이었다.
그에 반해 팽엽은 그렇지 못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신중한 성격은, 그가 팽가답지 못하다는 평을 꼬리표처럼 달고 다니게끔 했다.
타고난 기질이란 애를 써도 바꾸기 어려웠다.
호탕함을 연기하고, 도를 연마하고, 패도를 논해도 그에게 따라붙은 ‘팽가답지 못한’이라는 수식어는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빌어먹을!’
형의 그 호방함이 독선으로 변해 원로들의 목을 조르고, 그들이 권력을 잃을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팽엽에게 손을 내밀 때도.
그렇게 자신들과 힘을 합친 팽엽이 형을 밀어내고 가주의 자리에 오르고도.
원로들은 팽엽을 ‘팽가답지 못하다’는 이유로 늘 의심했다.
팽엽은 더 이상 저들에게 필요한 존재가 아니다. 필요하기에 잠시 써야 했던 불량품일 뿐. 그러니 쓸모가 다하면 다시 쓸모없는 불량품으로 돌아가야 한다.
아마 저들은 이미 팽엽을 대체할 이를 찾고 있을 것이다. 누구보다 팽가다운, 그 빌어먹을 호방함을 갖춘 이를 말이다.
후회하냐고?
그럴 리가.
후회 따위는 없다. 그의 손으로 밀어내고 폐인으로 만든 팽자서가 형제라 해도. 그 호방한 성격 덕에 동생인 팽엽을 아비보다도 더 아껴 주던 형이라고 해도.
후회 따위가 있을 리 없다.
위에 서리라 믿고 산 이는 모른다. 영원히 위에 설 수 없는 이의 심정을 알지 못한다. 누구보다 가까이 있음에도 결코 마지막 한 발을 내디딜 수 없는, 내디딜 자격조차 얻지 못한 이의 심정을 짐작이나 하겠는가.
그러니 팽엽을 그런 눈으로 보았겠지. 마지막의 마지막에 이르러서도 결코 동생이 자신을 함정에 빠뜨릴 리 없다는 신뢰 가득한 눈빛을 보냈겠지.
쇄애애애액!
팽엽의 도가 거칠게 휘둘러졌다. 적의 몸뚱이를 베다 못해 부숴 놓았다. 더없이 강하고, 믿을 수 없게 쾌속하다.
하지만 팽엽은 이제 안다. 힘이 전부인 강호에서조차 힘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것이 있음을.
‘가주가 되고 싶었던 게 아니었어.’
그저 증명하고 싶었다. 그도 팽가의 가주가 될 수 있는 사람임을. 형보다 더 위대한 가주가 될 가능성이 있음을.
누구 하나라도 그를 인정해 주었더라면 팽엽은 평생 팽자서를 보필하는 위치를 벗어나지 않으려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한 명이 없었다. 누구도 인정해 주지 않았다.
그러니 후회하지 않는다. 증명을 위해 버려야 했던 것이 너무도 컸지만,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난 틀리지 않았다.’
다시 돌아간다 해도 그의 선택은 같다. 그는 반드시 옳아야 한다. 만일 그가 옳지 못했던 거라면, 그가 해 온 모든 일이 부정되고 말 테니.
그렇기에 그건 차라리 광휘(光輝)였다.
적의 수괴, 귀주의 마귀, 강남의 제왕⋯⋯.
그 어떤 말을 열거해도 팽엽이 바라보는 장일소를 온전하게 설명할 수는 없었다.
지금 팽엽의 눈에 저 사내는, 새빨간 열매처럼 보였다.
손에 넣어야 한다. 어떻게든 손에 넣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젠 누구도 그를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가 해 온 모든 일은 정당해질 것이고, 강호의 안녕을 위한 결단이 될 것이다.
이 순간에도 저 안전한 북경에서 구경이나 하는 팽가의 머저리들은 찬란한 그의 위업 앞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
팽엽의 손이 저 멀리 선 장일소를 향해 뻗어진다.
무엇으로도 풀리지 않는, 타는 듯한 갈증.
이를 해갈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저기에 있다.
팽엽을 법정이란 권위 뒤에 숨어야 하는 비참한 이가 아닌, 당당한 팽가의 가주이자 위대한 영웅으로 만들어 줄 존재.
저⋯⋯ 저 목만 손에 넣는다면!
“패구우우우우운!”
팽엽의 입에서 노호성이 터져 나왔다.
“아아아아아!”
절규와 닮은 고함을 질러 낸 그가 내력을 한껏 끌어 올리며 도를 휘둘렀다.
장일소에게로 향하는 길을 막아선 사파들이 일거에 도륙이 난다.
피가 폭우처럼 흩뿌려진다.
평소라면 역겨움에 눈살을 찌푸렸겠으나, 지금의 팽엽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아니, 지금만큼은 얼굴로 쏟아지는 이 뜨겁고 비린 피가 외려 감미로우며 달가울 지경이다.
“죽여라!”
이건 어쩌면 그에게도 팽가의 피가 짙게 흐른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죽여라! 모조리! 앞을 막는 이는 단 하나도 남기지 말고 모두 죽인다!”
팽엽은 눈을 멀게 할 것 같은 찬란한 빛을 향해 나아갔다.
장일소라는 이름의 빛. 그가 마땅히 가져야 할 광영을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