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ount Hua Sect RAW novel - Chapter 1583
1582화. 그럼 대체 누구란 말이냐? (2)
무언가 이상하다.
법계가 알아차린 건 바로 그 순간이었다.
소림보다 되레 한발 앞서 나아가는 팽가와 공동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법계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건 말이 다르지 않은가?’
이곳은 그들이 선택한 전장이다. 사패련과 어떤 방식으로 싸울지는 이곳에 도달하기 전부터 이미 합의를 끝냈다.
소림이 선두를 잡고 길을 뚫으면 공동과 팽가가 그 좌우를 받친다. 그렇게 자연스레 만들어 낸 쐐기 대형으로 적의 중심까지 돌파한다.
소림이라는 문파의 힘을 믿기에 시도할 수 있는, 더없이 단순하지만 확실한 전략.
하지만 지금 법계의 눈에는 명백히 보였다.
전략대로라면 소림의 뒤를 받치고, 측면과 후방에서 쏟아질 공격을 막아 내어야 할 두 문파가 오히려 소림보다 앞서 나가는 모습이 말이다.
덕분에 지금의 형태는 처음 노렸던 쐐기형이 아니라 마치 삼지창처럼 변해 있었다.
“가주님! 장문인!”
당황한 법계가 그들을 향해 고함쳤다.
하지만 아무 소용 없었다.
이 급박한 전장에서 말을 전달하고 적절하게 진영을 다시 잡는 게 가능하겠는가? 한번 타오르기 시작한 거대한 불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을 리 없다.
“이, 이런⋯⋯.”
법계의 눈이 흔들렸다. 최대한 침착을 가장하려 하고 있지만, 내심으로는 심히 당혹스러웠다.
‘어째서!’
설마 그 짧은 시간 동안 통제를 잃었단 말인가? 그게 아니면 저들마저 이 광기에 취해 버렸단 말인가?
심지어 한 가문의 가주이고, 한 문파의 수장쯤 되는 이들이?
선두의 소림이야 필사적으로 줄을 타듯 그 속도와 완급을 조절해야 한다지만, 따르는 이들은 그저 소림의 속도에 맞추기만 하면 되는 일이 아닌가? 어려운 일도 아니다.
그런데 어째서 저들이 저기에 있단 말인가? 어째서!
“멈추지 마라, 법계!”
그 순간 귓가에 천둥과도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깊게 가라앉은 법정의 두 눈이 보였다.
“바, 방장!”
“나아가라!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다!”
법계가 아랫입술을 짓깨물었다.
나아가라. 그게 법정의 명이라면, 법계는 그저 따르기만 하면 될 일이다.
“오오오오오!”
법계가 우렁찬 사자후를 터뜨렸다.
다를 건 없다. 그래, 달라질 것은 없다. 법정은 분명 그리 말했다.
하지만 법계는 내심 알고 있었다. 그 ‘달라질 것이 없다’에 담긴 의미가 그저 하나만이 아님을.
법계의 얼굴이 사납게 굳어진다.
다르지 않다.
장일소의 목을 베어 내는 게 다름 아닌 소림이라는 것도. 이 전쟁을 끝내는 문파 역시 소림이라는 것도.
그러니 이 전쟁의 끝에 찬란한 영광을 거머쥐어, 강호의 질서를 다시 불법의 이름하에 세울 곳도 역시나 소림일 터!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니, 달라지게 두지 않을 것이다.
우우우우우웅!
법계의 상징과도 같은 천불수(千佛手)가 극성으로 전개된다.
노을마저 모습을 감추고 빠르게 어둠으로 물들어 가던 하늘이 금빛 손의 형상으로 뒤덮였다.
“하아아아압!”
그 수많은 수영(手影)이 법계의 앞을 막는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단번에 쓸었다.
자비를 내려놓은 부처의 손은 그 무엇보다도 두려운 법. 장력에 격중된 적들은 모든 구멍으로 피를 뿜으며 나가떨어졌다.
이곳에선 누구도 이성을 잃지 않을 수 없다. 그만큼 열기로 끓고 있었다.
그러나 이 상황을 독려했던 법정의 두 눈만은 지독하게 무겁고 차가웠다. 그의 시선이 향해 있는 곳은 저 앞, 발악하듯 적을 베어 넘기고 있는 종리형과 팽엽이었다.
‘어리석은지고.’
법정의 두 눈에 짧게 노기가 스쳤다.
저 둘이 무엇에 지배당하고 있는지, 법정의 눈엔 똑똑히 보였다.
하찮은 공명심, 그리고 하찮은 열등감. 이 전쟁이 고작 그런 것에 휘둘릴 만큼 작은 일이던가?
“아―미―타―불!”
법정이 노기등등한 불호를 외치며 장일소를 차게 노려보았다.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다. 사소한 변수로 뒤흔들릴 만큼 위태로운 상황이 아니다.
법정이 인내하고 또 인내하다 던져 건 올가미는 패군이라는 짐승을 옭매고 마침내 그 목을 끊어 낼 것이다.
“소림은 나를 따르라!”
법정이 침묵을 깨고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미타불!”
“방장의 뒤를 따르라!”
소림의 제자들이 용기백배하여 그런 법정의 뒤를 따른다.
천신의 창과도 같은 황금빛 군세가 오직 한 사람의 목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아니, 그 창은 하나가 아니다.
소림, 공동, 그리고 팽가라는 세 개의 창이 사패련이라는 짐승을 사정없이 뚫는다. 피 흘리는 짐승이 고통에 겨워 내뱉는 울음이 이 삭막한 땅을 뒤흔들고 있었다.
“지지 마라! 먼저! 더 먼저 나아가야 한다! 더!”
공동 장문인 종리형이 악을 썼다.
소림이 무언가 알아채기라도 한 듯 속도를 올리고 있다. 이대로라면 공동은 뒤처질 수밖에 없을 터, 소림이 제힘을 내기 전에 그들이 먼저 장일소에게 도달해야 한다.
“더 빨리⋯⋯.”
“아아아아아악!”
그 순간, 찢어질 듯한 비명이 귀를 파고들었다. 지금까지 들리던 것과는 결이 다른 소리다.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공동의 무복을 입은 제자 하나가 피를 뿌리며 쓰러지는 모습이 보였다.
“관명아!”
종리형은 저도 모르게 제자의 이름을 울부짖었다.
필연적이다 못해 정해져 있던 결과다.
그저 앞으로만 나아가는 이들은 옆을 돌볼 수 없고, 뒤를 돌아볼 수 없다. 모든 곳을 살피고 모든 것을 얻으려 하는 건 과욕이다.
피를 흘리길 원하지 않는다면 발을 멈춰야 한다. 얻으려는 것을 포기하고 제자들을 지켜야 한다.
“아아아아악!”
또다시 터져 나오는 처절한 비명에 종리형의 얼굴이 순간 희게 질렸다. 고뇌의 흔적이었다.
나아간다, 혹은 지켜 낸다.
공존할 수 없는 두 가지를 모두 움켜쥐고자 한 이의 비통함이었다.
정녕 멈추어야 하는가? 이곳에서?
고민은 길지 않았다. 아니, 길 수 없었다.
보았기 때문이다.
피를 뿌리며 쓰러지는 가솔을 버려둔 채 오직 앞으로만 나아가는, 하북팽가의 가주 팽엽을.
종리형의 두 눈에 핏발이 선다. 이미 그는 제자를 잃었다. 그런데 이제 와 멈춘다면, 죽어 간 제자의 목숨만 헛되게 하는 것 아닌가?
“장문인! 뒤가⋯⋯!”
“전진해라!”
종리형은 더 듣지도 않고 외쳤다. 평소의 그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을 만큼 악으로 가득 찬 목소리였다.
“나아가! 멈추는 순간 모든 것이 끝이다! 나아가라!”
쏘아진 화살은 멈출 수도, 되돌아갈 수도 없다. 오직 과녁에 닿기를 바라며 가속만 거듭할 뿐.
처음엔 작은 욕심이었을지 모르나, 지금은 아니다. 겁화처럼 번진 욕심은 이제 종리형은 물론이고 공동마저 불태우기 시작했다.
욕화(慾火).
광영이라는 빛에 눈이 먼 이들은 알지 못했다. 그들이 바라보는 빛보다 더 거친 불길이 그들을 불태우고 있음을.
앞을 주시하는 호가명의 얼굴에 희미한 긴장이 스쳤다.
그 호가명도 긴장하게 할 만큼 저들이 일으키는 기세가 폭풍 같았다. 그 압력이 대단하여 심장까지 짓눌리는 느낌이다.
‘이 정도였던가?’
어쩌면 자만했을지도 모른다. 그동안 쉽사리 손에 넣어 온 승리가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라고 안일하게 믿어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늘 자기 자신의 과신을 철저히 경계해 왔던 호가명마저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직면하고 보니 구파일방의 힘은 그가 상상한 이상이다. 맞상대하는 게 두려울 만큼.
그의 모든 것을 바쳐 만들어 낸 만인방의 군세가, 그의 손길로 하나하나 빚은 만인방도들이 봄볕을 만난 눈처럼 녹아내렸다.
이글거리는 세 개의 창이 이곳을 향해 돌진해 들어온다.
‘련주님!’
자연히 호가명은 장일소의 심정을 염려했다. 저리 오연히 서 있다 해서 속마저 태연할까.
호가명이 장일소를 향해 무슨 말이라도 하려던 그때였다.
“하⋯⋯. 하하⋯⋯.”
장일소에게서 희미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굳이 굳이 엉망으로 어떻게든 빚어낸 것 같은 어색한 웃음이.
“련주⋯⋯.”
“하하⋯⋯하. 하하하하하핫!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핫!”
이윽고, 입을 크게 벌린 장일소가 어마어마한 광소를 터트렸다. 호가명은 그저 눈을 휘둥그레 뜬 채 그런 주군을 바라보았다.
평소 장일소의 웃음도 등골에 한기를 흐르게 할 만큼 요사스러웠지만, 지금의 광소는 그런 것과 비교할 게 아니었다.
장일소는⋯⋯ 말 그대로 미쳐 버린 듯이 웃고 있었다.
“련⋯⋯.”
덥석.
그 순간 장일소가 커다란 손을 뻗어 호가명의 뒷머리를 콱 움켜잡았다. 그리고 거역할 수 없는 힘으로 호가명을 제 옆으로 끌어당겼다.
호가명의 시선을 전장 쪽으로 고정시키며 장일소가 귓가에 속삭였다.
“보이느냐?”
“려, 련주님?”
“보이냔 말이다!”
조금 창백해진 호가명이 장일소를 돌아보려 했지만, 머리를 움켜잡은 장일소의 손가락은 호가명이 움직이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하하하하하핫! 보렴, 가명아! 저기 있단다! 바로 저기에!”
장일소의 두 눈에 광기가 휘몰아쳤다.
“젠체하던 중놈들도! 왕이라도 되는 양 거들먹거리던 명문가 놈들도! 속세에는 미련 없다는 듯 탈속한 체하던 도인 놈들까지 하나같이 진흙탕에서 뒹굴고 있구나! 대단하신 체통을 모두 내버린 채 말이다!”
호가명은 앞에 펼쳐진 광경을 다시 보았다. 그랬다.
아귀도. 이건 말 그대로 아귀도였다.
불법을 설파하던 이가 사람을 짓밟아 뭉개고, 도리를 논하던 이가 칼로 사람의 심장을 뽑아내고, 무욕(無慾)을 가치로 삼던 이가 욕망에 들끓는 눈으로 검을 휘두른다.
저들의 눈에 깃든 건 숭고함도, 정의감도 아니다.
“저 저열한 욕망의 겁화가 네 눈에도 보이느냐 이 말이다, 가명아! 하하하하핫!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핫!”
장일소는 미친 사람처럼 웃었다. 이 광경이 너무 즐거워서 참을 수 없다는 듯이.
그 긴 세월 동안 장일소를 따라 온 호가명조차 이 순간만큼은 장일소가 멀게만 느껴졌다. 광기라는 말로도 다 표현할 수 없는 저 감정에 그저 질려 버릴 뿐이었다.
“이게 사람이란다! 이게 사람이라는 짐승이야! 한 꺼풀 벗기고 그 앞에 먹음직스러운 것을 던져 주면, 하나같이 저렇게 제 본성을 이기지 못해 발정 난 개처럼 달려드는 게 바로 사람이란다!”
“려, 련주님!”
“고개 돌리지 말고 똑똑히 보란 말이다!”
장일소의 손아귀가 고통스러울 정도로 호가명을 옥죄었다.
그 순간 호가명은 보았다.
짙게 내린 어둠 속, 제 욕망을 이기지 못해 번들거리는 이들의 눈빛이 마치 하늘의 까마득한 별들처럼 빛나는 광경을.
더없이 경이로우면서도 또한 더없이 역겨운 광경이었다.
장일소의 살점이라도 뜯어 내겠다고 달려드는 아귀들.
호가명이 알고 있던 세상이 뒤흔들린다. 가면을 벗어 던진 인간들이 보여 주는 세상의 이면은 그가 알던 것 이상으로 노골적이고, 그 이상으로 끔찍했다.
이것이 장일소가 보던 세상일까.
“아름답지 않으냐?”
“련주⋯⋯.”
마침내 시선을 돌릴 자유를 얻은 호가명이 고개를 돌렸다.
어둠에 반쯤 잠긴 장일소의 얼굴 위로 휘어진 붉은 입술이 선처럼 또렷했다. 그 입술이 달 같기도 하고, 그리하여 장일소 자체가 하늘 같기도 하다.
“여기!”
그 순간, 장일소의 입에서 어마어마한 내력이 실린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가공할 기세를 끌어 올리니 붉은 장포가 마치 태풍이라도 맞은 것처럼 미친 듯 펄럭였다.
“바로 여기에 있다, 이 내가!”
장일소가 걸음을 내디뎠다. 악다구니를 쓰며 달려오는 아귀들을 향해 물러서기는커녕 되레 나아갔다.
“아아아아아!”
그 광경을 본 이들이 고함을 지르고 악을 쓰며 아우성쳤다. 서로 뒤섞여 인세에 존재하지 않는 끔찍한 소음을 자아내었다.
새파란 욕화로 눈을 번뜩이고 엉겨 붙으며 장일소를 갈구한다. 마치 욕망을 뭉쳐 만들어 낸 덩어리처럼.
“하하하핫! 아하하하하하하하핫!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핫!”
장일소가 고개를 젖히며 목이 터지게 웃었다. 얼마나 웃었는지 기름한 눈에 눈물까지 맺혔다.
이제 어둠이 거의 내려앉았다. 부드럽게 그 광경을 보던 장일소가 길게 숨을 내쉬더니 이전과는 다른 결로 느리게 말했다.
“그래. 이토록 추하단다.”
그저 독백이고, 누구도 들을 수 없는 말이다.
하지만 분명 누군가에게 전하는 말이었다.
“이토록이나 말이다⋯⋯.”
이윽고 장일소의 양손에 시리도록 푸른 불꽃이 피어났다.
그를 상징하는 청염(靑炎)을 두른 장일소가 시선을 내려 달려드는 아귀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 역시 다를 바 없는 인간이지.”
두 눈에 그의 불꽃만큼이나 시린 귀기가 어렸다. 동시에 양손의 새파란 불꽃이 격하게 부풀어 올랐다.
붉은 장포와 푸른 염강(炎鋼)이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기묘한 조화를 이룬다.
“그러니 같이 발버둥 치자꾸나. 바로 여기에서 말이다.”
조소를 흘린 장일소가 장포를 펄럭이며 자신에게로 달려드는 이들을 향해 뛰쳐나갔다.
“련주니이이이이임!”
그 예상치 못한 행동에 호가명이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그 비명은 동시에 터져 나온 장일소의 광소에 허물어지듯 묻혀 버렸다.
서쪽 하늘을 물들이던 노을이 마침내 어둠에 완전히 집어삼켜지고, 그 위로 드러난 달만이 조소를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