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ount Hua Sect RAW novel - Chapter 1586
1585화. 그럼 대체 누구란 말이냐? (5)
장일소가 입가에 흐른 피를 느릿하게 소매로 훔쳤다.
이를 바라보는 법정의 눈빛은 한없이 무거웠다.
“여기까지요, 패군.”
눈빛만큼이나 무거운 목소리가 울렸지만, 정작 그런 그를 보는 장일소의 눈엔 가벼운 경멸과 경박한 조롱이 어렸다.
“흐응, 어차피 말은 필요 없겠지?”
이리 서로가 마주 선 순간부터 남은 건 하나뿐.
어떤 의도로 움직였건, 어떤 속뜻을 가지고 있건 마찬가지다.
법정이 장일소를 죽인다면, 그는 강호의 환란을 막은 영웅이 될 것이다. 반대로 장일소가 법정을 죽인다면, 그는 사파의 역사상 최초로 구파를 짓밟고 소림 방장을 살해한 효웅(梟雄)으로 평가될 것 아니던가?
그 뒤에 숨은 의도 따위는 아무짝에도 의미가 없다. 남는 것은 그저 결과. 누구의 손이 상대의 머리를 먼저 거머쥐는가 하는 단순한 결과가 전부다.
“피차 서로 필요한 건 같지 않겠소?”
법정의 말투가 좀 더 노골적으로 변하자, 그게 마음에 든다는 듯 장일소가 가벼운 웃음을 흘렸다.
“너는 내 목이 필요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닌데? 그 다 늙어 빠진 머리를 가져다 어디다 쓰라고? 개도 안 먹을 것을.”
법정의 눈썹이 순간 꿈틀했다.
자그마치 그 소림의 방장이다. 대체 어디서 이런 지독한 모욕을 당해 보았겠는가? 사파의 수괴라고는 하나, 저자의 경박함은 도를 넘어섰다.
“내게 ‘필요’한 건 그런 게 아니란다. 내가 ‘원하는’ 것 역시 그런 게 아니지.”
“⋯⋯그럼 뭘 원하는 것이오, 패군.”
피가 말라붙어 가는 장일소의 손끝이 살짝 꿈틀했다.
“글쎄. 그건 네가 줄 수 없는 거란다. 하지만 적어도 여흥은 되겠구나. 근엄한 가면이 벗겨져서 속살을 드러내야 할 때, 과연 네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거든.”
“아미타불.”
법정이 나직하게 불호를 외었다.
역시 더 이상의 대화는 의미가 없다. 그건 법정도 알고, 장일소도 알고 있을 것이다.
우득.
법정의 손아귀가 천천히 좁아졌다. 손안에 충분한 공간을 머금는다. 마치 허공을 거머쥔 것(空手)처럼 말이다.
소림 특유의 권(拳). 상대를 해하겠다는 마음을 버리고, 제압의 자비를 담은 권. 어떤 악인을 상대한다 해도 소림의 권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볍게 쥔 제 주먹을 흘끗 내려다보는 법정의 눈 속엔 묘한 허무가 담겨 있었다.
의미가 있는가?
불법은 무한하고, 그 가르침에는 끝이 없다. 하지만 저자에게 자비를 논하는 건 대체 얼마나 허무한 일인가?
이 순간, 평생 믿고 배워 온 것이 무용하다 느껴지는 이유는 불법이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배움이 아직도 한없이 모자라기 때문인가?
법정은 알 수 없었다. 그저⋯⋯.
꾸욱.
주먹을 살짝 더 꽉 쥐었다.
권을 누군가와 나누어 보는 것이 얼마 만인지 헤아릴 수도 없다. 이제는 아득하여 기억이 나지 않는다.
생사를 논하는 결전은 물론, 가벼운 대련을 나눈 일조차도 십 년은 훌쩍 넘어 버린 것 같다.
살아생전 누군가와 생사를 거는 결전을 치를 기회가 남았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한때 숭산의 신권(神拳)이라 불리며 온 천하의 찬사를 그러모았던 그의 무(武)가 빛이 바랬을까?
아마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저자가 해 줄 것이다.
“준비가 꽤 기네.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아 손이 무거워지기라도 했나?”
법정에게도 그럴 때가 있었다. 무엇이든 이루고, 뜻대로 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시절이.
하지만 세월을 겪다 겪다 결국은 알게 되었다. 진정 이루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참고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아주 잠깐. 딱 한 끗이오.”
“음?”
“그걸 참아 내지 못한 것이 그대의 과오요, 패군.”
투웅.
말이 끝남과 동시에 법정의 발이 가볍게 땅을 밟았다.
소림 특유의 강한 진각이 아닌, 말 그대로 툭 던지는 듯 가벼운 진각이었다. 동시에 물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주먹이 이어졌다. 실로 간결한 내뻗음.
투우우우웅!
그 순간, 장일소의 커다란 몸이 거대한 망치에 얻어맞기라도 한 듯이 뒤로 빠르게 튕겨 나갔다. 그의 고개가 부러질 듯 뒤로 한껏 젖혀졌다.
“저⋯⋯!”
지켜보던 이들은 그 광경에 너무 놀라 소리도 제대로 지르지 못했다.
‘격공장?’
내공을 다룰 줄 아는 권사라면 언젠가는 도달하는 경지. 허공을 넘어 제 권력(拳力)을 날리는 상승의 기초(基礎).
이것만 놓고 보면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다.
놀라운 것은 격공장 그 자체가 아니라, 저 가벼운 손짓 하나로 이만한 위력의 격공장을 날릴 수 있다는 데 있다.
대체 얼마나 내력이 강하고, 얼마나 권에 통달(通達)해야 저런 말도 안 되는 공격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고작 격공장으로 저만한 위력을 낼 수 있다면, 마음먹고 뿜어내는 권력은 대체 얼마나 강하겠는가!
그그그극!
장일소의 발이 땅을 파고들며 할퀸 듯한 족적을 만들어 냈다.
한참이나 물러나 겨우 몸을 세운 장일소는 부러질 듯 젖혀졌던 허리를 천천히 당겨 세웠다.
주륵.
장일소의 입술 새로 피가 주르륵 번져 나온다. 이마저도 기이하고 과장되어 보였다.
“아미타불.”
그 사특함에 동요되지 않겠다는 듯, 법정이 경건히 불호를 외었다. 구파의 다른 제자들은 모두 그 모습에 압도되어 갔다.
소림의 방장 법정.
한때 숭산신권(嵩山神拳)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회자되었던 그의 힘이 만천하에 있는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그 가공할 존재감에 숨을 멈추고, 몸을 떨지 않을 수 없었다.
“삼독(三毒)이란 삶을 고해(苦海)로 만드는 세 가지 번뇌.”
“⋯⋯.”
“탐욕(貪慾), 진에(瞋恚), 그리고 우치(愚癡). 그대는 탐내지 말아야 할 것을 탐내었으며, 세상 모든 것을 시기하고 질투하였소.”
장일소의 두 눈에 새파란 살기가 고였다.
“탐욕과 진에라⋯⋯. 그럼 우치(愚癡). 내 어리석음은 무엇인가? 내가 뭘 몰랐다고 생각하지?”
“그대는 알아야 했소. 그대가 사는 세상이 전부가 아님을.”
“하하하하하하하핫!”
장일소가 아주 대단한 농담을 들은 것처럼 광소를 터뜨렸다.
“히핫! 흐하하하핫! 그 대답 한번 걸작이구나. 이렇게 대단하신 분이 여기 계신 걸 몰랐다는 게 죽을죄라고? 하하하하핫!”
파아아아앗!
장일소가 손을 휘젓자 사방으로 날아갔던 반지들이 손안으로 다시 날아들었다. 반지들을 여유 있게 제 손에 다시 끼우고 손을 펼쳐 살펴본 장일소가 천천히 주먹을 움켜쥐었다.
까가가가각!
쇠가 마찰하는 섬뜩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래⋯⋯.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지.”
양손을 천천히 늘어뜨린 장일소가 귀기 어린 얼굴로 법정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세상 모든 것을 오시하는 기세. 그야말로 패군(覇君)이다.
그가 가진 무학이 저 법정에 견줄 만한지는 아직 증명되지 않았으나, 기세만큼은 결코 법정에 모자람이 없었다.
“그럼 너도 똑똑히 알아 두렴.”
“⋯⋯.”
“네가 죽는 이유는⋯⋯ 근엄한 척 자기 자신까지 속이는 그 역겨움 때문이란다.”
장일소가 환히 웃는다.
“알겠니?”
그 말이 신호였다.
쾅!
콰앙!
장일소와 법정의 발이 동시에 땅을 박찼다.
사파제일권과 정도제일권.
그 둘의 주먹이 서로를 향해 더없이 거칠게 포효하기 시작했다.
콰아아아!
거친 기의 폭풍이 사방으로 몰아쳤다.
멀리서 서로를 죽이기 위해 악을 써 대던 이들이 순간적으로 손을 멈추고 고개를 돌릴 정도였다.
요동치는 황금빛 서광과 푸른빛 사기(邪氣).
그곳에 있는 모두가 직감했다. 저 두 기운의 주인이 누구인지.
사파제일권과 정도제일권. 그 두 사람이 서로를 죽이기 위해 맞붙은 생사결이다. 한 시대를 통틀어 그만한 대결을 두 눈으로 보는 기회가 어디 흔하겠는가?
게다가 강하든 약하든 무학을 익히는 이들은 모두가 무(武)라는 한 글자에 홀린 이들이다. 자꾸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곳은 전장이다.
“아아아아아악!”
누군가가 정신을 차리고 휘두른 검이 홀려 있던 하나의 목숨을 앗아 갔다.
그 단말마는 바닥에 떨어진 도자기가 깨어지는 소리처럼 울려 퍼져 잠시 굳어 있던 전장을 다시 부숴 놓았다.
“죽어라아아아아!”
“이 더러운 사파 놈이!”
피 묻은 병장기가 다시 서로를 향해 쇄도하고, 끓는 피가 사방으로 비산한다.
일생에 다시 없을 대결이 바로 옆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누구도 그 대결에 집중할 수가 없다.
목숨이 아까운 이도, 전장의 광기에 휩쓸린 이도, 그저 떨어진 명령에 충실한 이도. 모두 눈앞에 보이는 이들을 베고, 찌르고, 물어뜯는 데 열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보니 이토록 많은 인원이 모인 가운데 벌어진 희대의 생사결은 역설적으로 더없는 고독 속에 치러졌다.
쿠웅!
주먹과 주먹이 충돌했다.
황금빛 불광을 머금은 법정의 권(拳)이 푸른 강기를 두른 장일소의 주먹을 단번에 튕겨 냈다.
“아미타불!”
법정의 주먹이 순식간에 허공에 십여 개의 권영을 그려 내었다.
항마금강권(降魔金剛拳)!
금빛으로 빛나는 사람 몸통만 한 권영들이 섬전 같은 속도로 장일소를 향해 날아들었다.
파앗.
장일소가 취한 듯 비틀거리는 보법을 밟았다. 권영들은 펄럭이는 그의 장포를 찢을지언정, 몸은 건드리지 못했다. 장일소가 용케도 날아드는 권력들을 모조리 피해 낸 것이다.
하나 안심하기는 일렀다.
콰아앙!
그 순간 장일소의 가슴에 어마어마한 충격이 엄습했다.
“큭!”
물러나는 그의 입에서 선지피가 울컥 뿜어졌다.
백보신권. 속도에서만큼은 천하의 어떤 무학도 이에 비견될 자격조차 없다는, 그렇기에 감히 ‘신권(神拳)’이라는 이름을 얻은 희대의 권이자 절세의 권이 연이어 펼쳐진 것이다.
항마금강권의 내력이 채 사그라들기도 전에 강제로 뒤틀어 펼친 백보신권이니, 법정은 그 위력보다 속도에 집중했다. 상대가 피할 틈조차 주지 않겠다는 의지로 내뻗은 권이었고, 그 의도를 완전하게 달성했다.
쿠우웅!
이제는 위력마저 더한 백보신권이 연이어 펼쳐진다.
장일소가 땅을 박차고 몸을 피해 낼 때마다 그곳의 땅이 곧장 운석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움푹움푹 파였다.
“하!”
장일소가 눈을 부릅뜨고 웃으며 손을 쫘악 펼쳤다. 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반지들이 내력을 품고 맹렬하게 회전하며 법정을 향해 쇄도했다.
하지만!
“아미타불.”
탕! 타타타탕!
그 반지들은 단 하나도 법정의 몸에 닿지 못했다. 법정의 손가락에서 뿜어진 지력 때문이다. 소림이 천하에 자랑하는 탄지신통(彈指神通)이 날아드는 반지를 모조리 튕겨 냈다.
강궁으로 쏜 화살보다 더 빠른 속도로 날아든 반지들을 지법으로 튕겨 내는, 상상도 하지 못할 기예.
그 어마어마한 광경 앞에선 장일소조차 눈을 부릅떴다.
투웅.
법정의 발이 가볍게 땅을 박찼다. 동시에 몸이 아홉 개로 분화하고, 각각 부처를 상징하는 자세를 취한다.
세상이란 화폭에 불화(佛畵)를 그려 낸 것과 같은 광경.
소림의 신법이 극에 달해야 겨우 익힐 수 있다는 상승의 신법, 연대구품(蓮臺九品)이 법정의 몸을 통해 재현된 광경이었다.
쿠웅!
마치 장일소의 바로 앞에 현신하듯 나타난 법정이 장일소의 가슴을 밀쳤다.
카앙!
하지만 패군 장일소의 이름도 허명은 아니다.
극한까지 끌어 올려진 그의 감각은, 상상도 하지 못할 법정의 공격에도 충실히 반응했다. 교차되어 올려진 그의 손목, 정확히는 그 위의 팔찌가 법정의 손바닥을 가로막았다.
그 순간 용의 발톱처럼 구부러진 법정의 손이 장일소의 팔찌를 그대로 움켜잡았다.
쾅!
이윽고 장일소의 명치에 법장의 장심이 파고들었다.
우수로는 잡은 팔찌를 끌어당기며 좌수로 가슴을 후려친 것이다.
내장이 온통 뒤틀리는 충격이 엄습했지만, 그 순간 장일소는 마치 배가 아닌 얼굴을 얻어맞기라도 한 듯 격하게 고개를 뒤틀었다.
파아아아앗!
백색 지력이 장일소의 볼을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일지선(一指禪).
박룡수(縛龍手)로 장일소의 손을 제압했던 법정이, 찰나의 순간에 손을 펴며 일지선의 지공을 날린 것이다.
그 변칙적인 공격에, 장일소의 뺨에서 피가 번져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법정의 공격은 끝나지 않았다.
탕!
충격을 버티기 위해 벌어져 있던 장일소의 안쪽 다리를 무릎으로 가격했다. 그와 동시에 태산과 같은 기세를 실어 어깨로 장일소를 들이받았다.
쿠우우우웅!
거대한 산이 무너지는 것 같은 소리가 울리고, 장일소의 몸이 뒤로 튕겨 나갔다.
“아―미―타―불!”
법정이 반장을 취하더니 뒤로 튕기는 장일소를 향해 우수를 쫙 펼쳐 뻗었다.
황금빛 장영(掌影)이 순식간에 그 크기를 불리더니, 마귀를 멸하는 관음(觀音)의 손처럼 장일소를 향해 날아들었다.
콰아아아아아앙!
무시무시한 폭음과 함께, 거대한 충격파가 사방을 휩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