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ount Hua Sect RAW novel - Chapter 1590
1589화. 그럼 대체 누구란 말이냐? (9)
어둠을 헤치며 달리는 천면수사 담여해(譚與海)의 눈이 새파랗게 빛을 뿜었다.
목이 타는 듯, 혹은 참을 수 없는 식욕을 느끼는 듯, 그는 거무튀튀한 입술을 연신 핥았다.
누군가는 경박하다고 손가락질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져 있는, 저토록 완벽한 상황을 본다면 누구라도 그처럼 갈증을 느낄 것이다.
‘련주.’
그는 과연 알고 있었을까? 사패련의 원군이 도착할 시점이 정확히 언제인지? 어떤 방향에서 뛰어들지?
그럴 리 없다.
그런데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 장일소는 마치 그를 바로 옆에 두고 지시를 내리며 싸우기라도 했던 듯, 이토록 하오문이 날뛰기에 가장 완벽한 상황을 만들었다.
팔다리 잘린 커다란 적이 고통에 겨워 몸을 비틀고 있다. 지금 당장이라도 배를 가르고 뜨거운 내장을 뜯어먹을 수 있다.
“진입한다!”
“예!”
담여해의 손에 내력이 휘감겼다.
‘언제부터였을까?’
그저 미치광이라 여겼던 이가, 그러나 이젠 감히 그리 부를 수조차 없게 된 이가 이 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게.
‘얼마나 기다린 것일까?’
그 어떤 의심도 없이 달려드는 적들의 등에, ‘태양궁’이라는 날카로운 칼을 박아 넣을 이때를!
운남과 사천을 손에 넣었던 건 이 한 수를 위해서였다. 호북에 날벼락처럼 떨어질 이번 한 수를 마지막까지 감추기 위해서!
이 거대하고도 사악한 그림을 저들이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모조리 박살 내라! 저 잘난 중원 놈들에게 남해의 힘을 똑똑히 보여 주어라!”
고막을 터트릴 듯한 고함이 들려온다.
‘중원 놈들’이라는 말은 다소 거슬리지만, 아무래도 좋다. 내력을 잔뜩 실은 저 목소리는 적들에게 더 큰 공포를 안겨 줄 테니까.
그리고 사실 저 말 중 한 가지는 마음에 쏙 들었다.
휘이이이잉!
담여해의 손에 감긴 내력이 폭풍처럼 몰아치기 시작했다.
얼굴의 역용이 벗겨질 정도로 고양된 담여해가 있는 힘껏 일갈했다.
“중원을 손에 넣을 시간이다!”
하오문과 태양궁.
오래도록 벼려진 장일소의 두 비수가 덫에 걸린 사냥감을 향해 쇄도했다.
“하, 하오문입니다! 하오문이 나타났습니다!”
“저기 또 하나!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들이 있습니다!”
“장문인, 상황이 변했습니다! 명을 내려 주십시오! 장문인!”
여기저기서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려오지만, 종리형은 그저 넋을 놓은 채 달려오는 이들을 멍하니 보기만 했다.
‘⋯⋯태양궁?’
하오문까지는 예상했다. 예상 못 하는 게 더 이상한 상황이었다. 당당히 사패련의 한 축을 맡은 그들이 련주가 죽을 위기에 처했음에도 나타나지 않는 건 말이 안 되니까.
그럼에도 종리형이 모두를 이끌고 이곳에 올 수 있었던 건, 설사 하오문이 합류한다고 해도 우위를 절대 빼앗기지 않는다는 굳건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왜⋯⋯ 어째서 저들이 사패련의 편을 든단 말인가?”
하나 그 믿음은 태양궁의 등장 덕에 말 그대로 산산조각이 났다.
새외오궁이다. 정파와 가깝지는 않아도, 사파와는 더욱 먼 존재일진대 저들이 어째서 돌연 사패련을 돕고 나선단 말인가? 어째서!
“장문인!”
또다시 악을 쓰는 소리가 귀청을 때리고야 종리형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달아나야⋯⋯.’
도망쳐야 한다.
진형을 유지한 상태로 맞붙어도 버거울 만큼의 전력이다.
그런데 심지어 이리 뒤엉킨 상태에서 맞닥뜨린다?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도무지 감당할 엄두가 나질 않는다.
하지만 달아날 길도 요원하다.
만인방과 흑귀보는 여전히 굶주린 승냥이처럼 그들의 발목을 잡고 늘어진다. 설상가상으로 명령 체계까지 이미 무너진 지 오래라, 일사불란하게 물러나는 건 고사하고 종리형의 명이 제자들에게 전달조차 되지 않는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대체 어떻게 달아날 수 있단 말인가.
“이, 이건 내 탓이⋯⋯ 내 탓이 아니다! 이건 내가 잘못한 게⋯⋯.”
“장문인!”
누군가가 그의 어깨를 세게 잡아채 흔들었다.
“정신 차리십시오, 장문인! 지금 당장 명을 내리지 않으면 모두 죽는단 말입니다!”
그 순간 종리형은 보았다.
광활한 대지를 단숨에 내달린 하오문과 태양궁이 그 기세 그대로 개미 떼처럼 뒤엉킨 전장에 파고드는 광경을.
“으아아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악!”
수많은 목과 몸뚱이가 허공으로 비산한다.
적과 아군조차 가리지 않는다. 피아를 구별하느라 기세를 누그러뜨리느니 차라리 눈에 보이는 모두를 닥치는 대로 죽여 버리는 것이다.
실로 지독하고 무자비한 전략이나, 그만큼 효과도 확실했다.
날것 그대로의 충격과 공포가 구파의 제자들을 뒤엎었다. 종리형 역시 예외일 수 없었다.
“다, 달아나.”
“장문인!”
“달아나라! 당장 이곳에서 빠져나가야 한다! 당장!”
“자, 장문인, 진정하십시오! 우선⋯⋯.”
“이 멍청한 놈! 저 뒤의 적들이 보이지 않느냐? 대체 뭘 진정하란 말이냐!”
종리형이 악을 쓰며 검에 내력을 밀어 넣었다.
죽는다.
파고들며 매섭게 공격해 오는 이들이 두려운 게 아니다.
종리형이 두려워하는 건, 오히려 이 기회를 틈타 슬금슬금 포위망을 펼쳐 오는 뒤쪽의 병력이었다.
포위당하고 나면 뒤는 없다. 저들이 후환을 굳이 남겨 두려 할 리 없으니까. 이곳에 있는 정파는 개미 새끼 한 마리 남기지 않고 모조리 죽이려 들 것이다.
“장로들은 어서 길을 열어라! 어떻게든 이곳에서 빠져나가야 한다. 모조리 베어 넘기고 활로를 열어!”
종리형의 눈빛이 번뜩거렸다. 이는 독기를 가장한 공포였다.
처음 겪어 보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 앞에선 첩첩이 쌓아 올려 왔던 무위마저도 무용지물이었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한 사람의 당당한 무인이었던 이들이, 이젠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짐승이 되어 버렸다. 이 와중에 종리형마저 발악하니 가까스로 억누르던 공포가 터져 나오고 말았다.
“다, 달아나자!”
“죽는다! 이대로는 모두 죽는다고!”
이젠 다른 의미로 아비규환이 펼쳐졌다.
이건 비무도, 몇몇 사람이 나누는 논검도 아니다.
그저 전쟁일 뿐이다. 기세를 잃은 쪽이 패한다.
그러나 이들은 그 사실을 알기엔 경험이 부족하였고, 자기 자신을 다잡을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맥없이 무너졌다.
공포가 급류처럼 쏟아져 들어온다. 휩쓸린 이들이 대장간에서 튀어 오르는 불똥처럼 사방으로 내달렸다. 공동의 포진이 완전히, 단숨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안 돼에에에에에에에!”
목이 터지도록 고함을 내질러 보지만, 법계의 목소리는 닿지 않았다.
어찌해 볼 틈도 없이 공동의 제자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결코 해서는 안 될 선택이다.
뭉쳐 있어도 위험한 상황인데 흩어진다? 이건 적에게 죽여 달라고 목을 내미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걸 뻔히 알 이들이 왜 저토록 말도 안 되는 짓을 한단 말인가?
“사형! 적들이⋯⋯!”
옆에선 계속해서 재촉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법계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어찌해야 하는가?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분명 저놈들을 몰아넣었다 생각했다.
그런데 이역만리라는 말도 모자랄 만큼 먼 곳에 있어야 할 남해태양궁이 이곳에 나타났다. 이 말인즉, 이 자리가 사패련이 오랫동안 준비한 함정이라는 뜻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가? 어떻게 사람이⋯⋯.
“사형!”
결국 분노 섞인 목소리가 귀에 꽂혀 들었다. 법계가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었다.
무의미하다. 이런 생각은 이제 아무런 가치가 없다.
그가 해야 할 일은 이 상황을 어떻게든 되돌리는 것. 그리고 어떻게든 극복해 내는 것이다.
아직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진 것은 아니니 수습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분명히⋯⋯!
“장로들은 나를 따라라! 우선⋯⋯.”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어딜 가지?”
그그그극.
날카로운 무언가로 땅을 긁는 듯한 소리와 함께, 한 사람이 법계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법계의 얼굴이 굳어졌다.
적호(赤虎).
기세만으로 법계의 발목을 잡던 이가 마침내 움직인 것이다.
“이⋯⋯.”
“기분이 썩 좋지는 않군. 고명하신 소림의 승려에 비하면 부족한 몸이나, 그래도 이렇게 무시를 받을 정도는 아닐 텐데.”
적호의 도가 으르렁대는 도명(刀鳴)을 흘렸다. 절대 이대로 보내 주지 않겠단 의도가 명백히 보였다.
“그럼에도 무시하시겠다면, 이 몸을 증명하는 수밖에.”
범 같은 적호의 눈빛이 법계를 내리누른다. 이윽고 적호가 이끌고 온 홍견들 역시 이를 드러내며 소림의 장로들을 압박했다.
‘이⋯⋯.’
법계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기 시작했다.
본대가 제대로 저항조차 못 하고 뚫리는데도 저들은 장일소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었다.
그러니 법계는 당연히 저들의 목적이 장일소를 구출하고 법정을 죽이는 것이리라 믿었다.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하지만 저들의 목적은 다른 데 있었다.
바로 이 순간, 흔들리는 구파를 다잡기 위해 나설 이들의 발목을 묶는 것. 그게 저들이 그 큰 희생 앞에서도 지금껏 침묵을 지킨 목적이었다.
철저한 농락이라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다. 그리고 법계의 추론은 맞았다. 이 시각, 팽엽 역시 홍견들에게 에워싸여 있었다.
법계가 이를 악물고 물었다.
“⋯⋯처음부터 이걸 노렸던 건가?”
“그럴 리가.”
조소를 흘리던 적호가 여유만만하게 어깨를 으쓱했다.
“련주님의 속내는 누구도 짐작할 수 없지. 우리는 그저 믿을 뿐이다. 련주께서 뜻하시는 바가 있을 거라고 말이다.”
“⋯⋯수하들이 모두 쓸려 나가는 와중에도 말인가.”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도 되는 모양이지?”
우드득.
법계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적을 속이기 위해서는 아군부터 속여야 한다. 그 말을, 장일소는 직접 실행했다.
그러니 이쪽에서도 눈치채지 못한 것이다. 정파의 손에 죽어 가며 저들이 지르던 비명, 생생하게 뿜던 공포, 순간적으로 달아날까 갈등하던 표정 하나하나가 모두 진짜였으므로.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다. 네 목숨을 거두고 장일소를 죽인다면 결과는 동일하니.”
“맞는 말이군.”
장일소를 죽인다.
적호에게는 실로 불경스러운 말이었겠으나, 의외로 그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장일소에 대한 그의 충심은 사소한 것에 발작하는 이들의 것과는 결이 다르니까.
적호가 비죽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갈피를 못 잡는군.”
“⋯⋯무슨 소리지?”
“대답이 달랐어야지. 지금 네가 경계해야 할 건 나도, 련주도 아니니까.”
법계의 두 눈에 의문이 어렸다. 그러다 이 모든 게 시간 끌기에 불과하단 생각이 퍼뜩 들었다. 저 요악한 입을 닫기 위해 호통을 치려는데, 적호의 두툼한 입술이 먼저 벌어졌다.
“그리 마음에 드는 자는 아니지만, 확실히 인정할 수밖에 없지. 이런 전장에서 가장 위험한 사내가 누구인지 말이다.”
“⋯⋯뭐?”
그 순간이었다.
파아아앗!
거대한 깃발이 하늘을 향해 치켜세워졌다.
적진 한가운데에 치솟은 형형색색의 깃발, 그리고 그 중앙에 선 사내의 모습이 보였다.
저자는⋯⋯.
“호가명?”
독심나찰(毒心羅刹) 호가명(扈加名).
사패련의 군사인 그가 심혼을 얼리는 눈으로 전장을 오시하고 있었다. 그의 입에서 감정 한 점 실리지 않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적기(赤旗)를 들어라.”
“예, 군사!”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붉은 깃발이 하늘 높이 올라간다.
그러자 적과 함께 뒤섞여 있던 붉고 검은 사패련 군세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마치 먹이의 숨통을 조이는 거대한 뱀처럼 꿈틀대며 적을 휘감았다.
호흡마저 멈춘 채 호가명이 전장을 내려다본다. 지금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사람이 들끓는 전장이 아니라 그저 거대하기 짝이 없는 반상(盤上). 이를 내려다보는 호가명의 두 눈은 승부사처럼 차고 냉정했다.
“녹기(綠旗)를 올려라. 적을 포위한다. 적기는 사선으로 유지! 놈들의 발목을 잡고 늘어져라.”
“예, 군사!”
호가명의 등 뒤로 솟아오른 오색기가 몰아치는 광풍에 펄럭였다.
인고의 시간 끝에 움켜쥔 기회다. 그 시간을 거치며 시퍼렇게 날 선 각오를 다졌다. 호가명은 여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남김없이 쏟아부었다.
“단 한 놈도⋯⋯ 빠져나가게 두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