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ount Hua Sect RAW novel - Chapter 1591
1590화. 그럼 대체 누구란 말이냐? (10)
남해태양궁주 태양존자(太陽尊者) 진평(陳平)이 타는 듯한 눈으로 앞을 응시했다.
구파와 사패련이 마치 구렁이 두 마리가 다투는 것처럼 뒤엉켜 있다. 지나던 학 한 마리가 어부지리를 취하기 더없이 좋은 형태다.
‘사패련의 련주, 장일소.’
태양궁주의 얼굴이 서서히 굳어졌다.
이곳으로 와 전장을 확인한 순간, 그는 놀랍게도 ‘경외’를 느꼈다. 평생 다른 이에게 느껴 볼 일 없으리라 믿었던 감정이다.
눈앞의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알진 못한다. 하지만 그 역시 일문을 이끌고, 한 지역의 패자로 군림하는 자.
이런 광경을 만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를 수 없다.
그리고 이 말인즉, 지금부터 그가 손을 잡아야 할 자가 더없이 위험한 존재라는 의미.
하지만 어쨌든 지금은 눈앞의 일이 더 중요하다.
“계속 진격하라! 저 중원의 무지렁이들에게 태양궁의 위대함을 똑똑히 알려 주어라!”
“예!”
태양궁도들이 맹렬히 돌진한다. 그들이 뿜어내는 열양기공(熱陽氣功)에 대지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오오!”
“모조리 쳐 죽여라!”
피아를 가리지 않고 장력을 날리며 파죽지세로 파고든다.
묵직한 눈으로 그 모습을 보던 태양궁주에게 한 사람이 빠르게 다가와 고개 숙였다. 궁도가 아닌, 천면수사 담여해가 그의 옆에 붙여 놓은 이다.
“궁주님. 군사로부터의 지시⋯⋯. 아니, 요청입니다. 후방의 병력 절반을 산개시켜 적을 포위해 달라고 합니다.”
“지시를 받았다고?”
태양궁주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예, 저 수기로.”
태양궁주의 시선이 옮겨 갔다. 커다랗게 펄럭이는 녹색의 깃발과, 그 옆에 비스듬히 기울어 있는 붉은 깃발이 보였다.
“⋯⋯재미있는 짓을 하는군. 군도 아닌 놈들이.”
비아냥거리는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정작 눈빛은 무거웠다.
“놈들을 포위하라. 쥐새끼 한 마리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존명!”
궁도들이 그의 지시를 받아 신속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확인한 태양궁주가 느릿하게 손을 풀며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이거⋯⋯ 적당히 자리만 채운다고 대접받을 상황이 아니로군.”
겉으로야 추켜세워 주겠지만, 뒤로는 다 차려 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은 놈 취급을 할 것이다. 그 역시 적당히 공을 세워야 체면이라도 세울 수 있을 터.
“어디⋯⋯.”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 이내, 한 사람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당황한 마음을 어떻게든 억누르기 위해 애를 쓰는, 기도가 날카로운 한 사내가.
“적당하군.”
먹이를 찾아낸 태양궁주의 두 눈이 뜨거운 광망을 뿜었다.
“가주!”
들끓던 팽가의 피가 싸늘하게 식었다.
팽엽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차가운 가면에 쩌적 금이 갔다. 도를 잡고 있던 그의 손끝이 짧게 떨렸다.
‘내가 이런⋯⋯ 이런 실수를.’
아무리 간절하다고 해도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을진대, 장일소의 목을 벨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공명심이 그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아 버렸다.
‘후퇴⋯⋯.’
그 말이 팽엽의 머릿속에 떠오른 순간, 공동이 한발 빠르게 요동쳤다. 그러더니 이내 분분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팽엽은 기함하고 말았다. 저것이야말로 최악의 순간에 두어진 최악의 한 수가 아닌가.
‘저 멍청한⋯⋯!’
팽엽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아니, 차라리 다행일지도 모른다. 공동에서 멍청한 짓을 해 준 덕분에 그들에게 쏠리는 시선이 조금이라도 분산될 테니까.
“가솔들을 수습해라! 이곳에서 탈출한다.”
“가주, 쉽지 않습니다! 지금 진형이⋯⋯!”
“그럼 아이들을 버리기라도 하란 말이냐!”
팽엽이 악을 쓰듯 소리쳤다.
그에게로 까마득하리만치 많은 시선이 쏟아진다. 죄책감과 원망이 진득하게 녹아 있는 눈빛이었다.
애초에 팽가를 끌고 와 이 지경으로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당신 아닌가!
그 눈빛들이 팽엽의 기억 속 한 장면을 끄집어 올렸다. 이들과는 다른 눈빛. 믿었던 그에게 배신당하는 순간에도 결코 그를 원망하지 않았던 누군가의 눈빛을.
그 사람이, 형이 이곳에 있었다면 뭐라 답했을까?
팽엽은 순간 상황에 걸맞지 않게 실소를 흘리고 말았다. 생각할 것도 없다. 답은 정해져 있으므로.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장로들은 모두 나서서 제자들을 수습해라. 한 사람이라도 더 살려 이곳을 빠져나간다! 너희 역시 팽가다. 하북팽가의 이름을 더럽히지 마라!”
“⋯⋯.”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팽엽은 흔들리지 않았다.
“어서!”
그 굳은 얼굴을 본 이들이 그제야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예!”
팽엽이 도를 부러뜨릴 기세로 콱 움켜잡았다.
이미 저지른 일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수습은 해야 한다. 그게 가주인 그의 의무다.
그때였다.
“하북팽가의 가주라.”
당장 땅을 박차고 나서려던 팽엽이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화려한 금의 차림에 체구가 큰 사내가 보였다. 너무 화려해서 경박해 보일 지경이지만, 얼굴에서는 묘한 기품이 흘렀다.
“⋯⋯누구냐?”
팽엽이 경계하며 날카롭게 물었다.
“이 수준이면, 적당히 체면치레 정도는 될 것 같군.”
무시하는 기색이 역력한 발언에, 팽엽이 이를 으드득 갈았다.
하지만 내키는 대로 경거망동할 수 없는 건, 이자의 정체를 짐작하고도 남았기 때문이다.
“⋯⋯태양궁주인가?”
“군주(君主)가 더 적당하겠지. 강호의 무뢰배들이 그런 예의를 지키길 바라는 건 과한 바람이겠지만.”
“⋯⋯.”
“이리 오라, 야인(野人)이여. 네 목이 필요하다.”
그 말에 팽엽의 뒤를 지키던 팽가인들이 발끈해 소리쳤다.
“감히!”
“어디서 감히 이민족 놈이!”
하지만 정작 모욕을 당한 팽엽은 말없이 손을 들어 그들을 막아섰다.
“가주님!”
“가라.”
“하지만⋯⋯.”
“가서 아이들을 수습해라! 반드시 이곳에서 빠져나가야 한다!”
“⋯⋯.”
“가!”
“예!”
뒤를 지키던 이들이 각오를 굳힌 후 팽엽을 둔 채 달려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태양궁주 진평이 기특하다는 듯 웃었다.
“나쁘지 않군. 한 가문을 이끌기에 모자람 없는 도량이다. 팽가의 명성이 궁까지 들려오는 이유가 있었군.”
“⋯⋯하.”
팽엽은 피식 웃고 말았다.
평생 듣고자 했던 말. 하지만 누구도 그에게 해 주지 않았던 말이다. 그걸 지금 제 목을 노리는 적의 입을 통해 듣고 있다.
“칭찬은 고맙군. 하지만 팽가의 도는 더욱 무섭다.”
“그러길 바라지. 그래야 나도 내세울 게 있을 테니까.”
고오오오오.
태양궁주의 손이 특유의 기운으로 물든다. 노랗게 달아오르던 손은 이내 붉은빛으로 변해 갔고, 종내에는 거의 새하얀 빛을 머금었다.
거기서 피어오른 뜨거운 열기가 삼 장의 거리를 격해 팽엽의 얼굴마저 달아오르게 했다.
무시무시한 열양기공(熱陽氣功).
그 정화를 온전히 살려 내지 못한 북해의 빙공과는 달리, 남해태양궁의 열양기공은 이 순간 완벽하게 운용되었다.
“태양신장(太陽神掌)⋯⋯.”
“잘 아는구나.”
태양궁주의 두 눈이 그 손만큼이나 뜨겁게 이글거렸다.
“영광으로 알거라. 너는 본좌의 태양신장에 죽는 첫 중원인이 될 테니.”
동시에 어마어마한 열기가 팽엽을 향해 쏟아져 왔다. 머리카락까지 타들어 갈 듯한 가공할 열기. 그 속에서 팽엽은 있는 힘껏 도를 다잡았다.
마음이 금방이라도 꺾일 것 같다. 그러나 그래선 안 된다.
팽엽은 부러져라 이를 악물었다. 그가 버텨 내야만 가솔들을 수습하고 활로를 열 만한 시간을 벌 수 있다.
‘나는⋯⋯ 팽가의 가주다!’
그의 도가 밀려오는 광풍을 가르며 맹렬하게 휘둘러졌다.
“아아아아악!”
“놔, 놔라! 놔라, 이 빌어먹을 놈들!”
비명은 법정이 있는 곳까지도 처절하게 울려 왔다.
굶주린 이리 떼가 구파의 제자들을 농락하고 있다. 사방에서 물어뜯어 오는 상황에 놓이니 구파의 제자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발버둥만 치고 있었다.
사파들이 지금껏 제대로 된 대적도 못 하고 나가떨어지던 게 모두 거짓이었던 것만 같다.
애초부터 노린 것인가?
아니다. 원인은⋯⋯ 하나. 어둠 속에서도 확연히 존재감을 뽐내는 저 거대한 깃발이다.
저 깃발이 적들을 좀 전까지와는 다른 존재로 만들었다.
그저 막고 버티라는 막연한 명령이 아닌, 확연한 목적을 가진 명령. 그것만으로도 사람은 달라진다.
심지어 철저하게 훈련받은 이들은 죽는 그 순간까지도 명을 이행하는 법이니까.
“아아아아악!”
또다시 누군가의 처절한 비명이 법정의 귀를 찌른다.
‘호가명⋯⋯.’
애초에 이들을 평범한 사파 무리로 생각해서는 안 되었다. 그걸 뻔히 알고 있었음에도⋯⋯.
대비를 안 한 것은 아니다. 대비는 분명히 했다. 하지만 그 대비는 이미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팽가주, 종리 장문⋯⋯.’
게다가 그의 명을 받들어 이 상황을 수습해야 할 이들은 모두 발이 묶여 있다.
하오문주에게 잡힌 종리형 쪽은 이미 패색이 완연했고, 남해태양궁주로 보이는 이를 상대하는 팽엽도 상황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그의 수족과 다름없는 법계마저 장일소의 수하가 쏟아 내는 도기에 맞서 고전(苦戰)하고 있었다.
모두에게 확실한 명령을 전달하는 저 깃발에 비해, 고작 지척에나 닿는 사람의 목소리는 얼마나 하찮은가.
그리고 지금 법정은 그 하찮은 목소리마저 활용할 수 없는 처지였다.
머리가 묶인 채 몸뚱이는 물어뜯기고 있는 꼴.
이 어려운 와중에도 제자들이 분전하여 적의 수를 줄이고는 있지만, 한계는 극명했다. 이미 모든 상황이 통제에서 벗어났다.
이대로라면 그들에게 남는 건 오직 패배뿐일 터다.
“마음에 드니?”
귓가로 장일소의 나긋한 목소리가 스쳤다.
조롱이 섞인 것인지도 이젠 알 수 없었다. 저자의 모든 말은 독을 품고 있으니 말이다.
“⋯⋯아미타불.”
전장을 응시하던 법정이 고개를 돌려 장일소를 마주 보았다.
백척간두에 몰린 상황. 그러나 법정의 눈빛은 그의 깊은 수행을 증명하는 듯 생각보다 침착했다.
“이것이 시주가 준비한 한 수요?”
흥미를 느낀 듯 장일소의 눈이 이채를 띠었다.
“으음, 생각보다 괜찮아 보이네. 다 포기하기라도 한 건가? 조금 더 발악할 줄 알았는데 말이야.”
법정은 차분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시주. 사패련이 생각보다 대단함은 내 인정하겠소.”
그다음 말은 조금의 간격을 두고 흘러나왔다.
“다만 나 역시 이 전쟁을 마냥 쉬이 여기진 않았소이다.”
“⋯⋯음?”
“그대는 전쟁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함을 아오. 숨겨 둔 한 수가 있으리라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
“⋯⋯.”
장일소의 입꼬리가 서서히 내려갔다. 엉망으로 망가진 와중에도 미소를 잃지 않던 그의 얼굴이 조금씩 굳어 갔다.
“아미타불.”
법정이 고요히 반장 했다.
“그것조차 모르고 사지로 뛰어들 정도로 본 승이 어리석지는 않소이다. 그 한 수가 태양궁임은 몰랐지만, 그대가 반드시 한 수를 숨겨 두었을 것은 이미 짐작한 바외다.”
“⋯⋯그래서?”
장일소가 조용히 묻자, 법정이 단호히 노려보며 답했다.
“이게 안배의 전부라면, 오늘 이곳에서 그대는 죽고 사패련은 그 이름을 잃을 것이오.”
법정의 말에는 확신도, 위압도 어리지 않았다. 그저 이미 정해진 사실을 전하는 듯 담담하였다.
장일소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알고 있었다고?”
“아미타불.”
“이미⋯⋯ 이미 알고 있었다.”
장일소의 입술 끝이 파르르 떨렸다. 지금껏 그가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았던 얼굴.
“대비를 했다는 건가?”
장일소가 날카롭게 묻자 법정이 차분히 가라앉은 눈길로 장일소를 응시했다.
“본 승에게 그러지 않을 이유라도 있겠소이까?”
법정이 전하려 하는 모든 게 담긴 대답이었다.
허세? 아니, 그런 게 아니다. 이 상황에서 허세를 부려 봐야 얻을 게 없다.
장일소는 말을 잃은 듯 법정을 물끄러미 보았다.
법정은 어느새 잃었던 평정을 모두 되찾기라도 한 것처럼 나직이 불호만 읊조렸다.
까드득.
장일소의 손가락에 끼워진, 몇 개 남지 않은 반지가 불안한 듯 서로 맞물렸다.
피가 말라붙은 장일소의 입술이 느리게 열렸다.
“그⋯⋯ 대비라는 게.”
말라붙은 피가 가루로 떨어진다. 그 자리마다 붉은 입술 색이 다시금 드러났다.
“설마 지금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는 제갈세가를 두고 말하는 건 아니겠지?”
법정의 입이 벌어지고, 눈 또한 공포를 맞닥뜨린 듯 부릅뜨였다.
“뭐⋯⋯?”
장일소는 그런 법정의 반응을 즐기는 것처럼 느리게 말을 내뱉었다.
“아니면⋯⋯ 진작부터 모습을 숨긴 채 기다리다가 제갈세가와 합류한 모용세가를 두고 하는 말일까?”
장일소의 입술 떨림이 조금 더 커졌다. 당혹과 절망 때문이 아니었다. 비웃음을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다.
“어, 어떻⋯⋯.”
평정을 되찾은 듯했던 법정의 얼굴은 이제 핏기 없이 창백했다.
“어떻게?”
장일소가 되물으며 큭큭 웃었다. 사람 목을 손아귀에 넣은 마귀 같았다.
“설마 내가 그 말을 믿었을 거라 여겼니? 그들이 제때 도착하지 못한다는 그 말을?”
장일소의 두 눈이 크게 휘어졌다.
“적을 속이려면 아군부터 속이라고들 하지. 그래, 잘했다. 너희가 흘리는 말이 내게 들어올 거라 믿고 역으로 정보를 흘리는 건 고리타분한 정파 놈들치고는 꽤 훌륭한 수였어. 하지만 말이다⋯⋯.”
장일소의 엄지가 입술을 스쳤다. 입가에 묻은 피가 섬뜩하게 번져 갔다.
“정작 내가 속지 않으면 그게 무슨 소용이지? 응?”
까드득!
장일소의 반지가 거칠게 마찰했다. 조금 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울림이었다.
“한번 맞혀 보렴. 지금 그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 것 같니?”
법정은 그 소리에 심장을 뜯어 먹히기라도 한 듯 사색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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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제갈세가의 가주 신산자(神算子) 제갈자안(諸葛滋案)의 얼굴이 허옇게 질렸다.
이건, 정말이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패련의 병력은 지금 모두 저 전장에 있다. 심지어 장일소가 꼭꼭 숨겨 두었던 병력이 호북을 이탈하여 다른 곳으로 이동한 종적마저 모두 파악한 뒤 움직였다.
패군 장일소는 판이 정해지면 반드시 승리하는 이다.
그렇다면 이쪽은 패배를 상정하고 전략을 짜면 된다. 반상 위에 올라갈 기물이 정해져 있을 때 또 다른 기물이 반상 위에 놓인다면 저쪽이 짰던 전략은 무용지물이 될 테니까.
그리되어야 했다.
장일소에게는 더 가용할 기물이 없으니까. 단순한 잡패(雜牌)가 아닌, 제대로 된 고수로 이루어진 필승패(必勝牌)는 더더욱 말이다.
하늘에서 갑자기 고수들이 뚝 떨어지지 않는 이상, 그게 상식이고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지금 제갈과 모용, 두 가문 앞을 웬 복면인들이 가로막고 있다. 당장 전장으로 향해야 할 두 가문을 철저하게 막아선,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들.
그들이 휘두르는 검에는 푸르디푸른 강기가 서려 있었다.
제갈자인이 타는 듯한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그럼 대체 누구란 말이냐, 저 빌어먹을 것들은!”
이는 운명의 끝을 내다본 인간의 절규와도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