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ount Hua Sect RAW novel - Chapter 1594
1593화. 부처도 너를 버린 거란다. (3)
누군가는 보고, 또 두 눈에 새겼어야 할 광경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소림승들은 법계의 그 장엄한 뒷모습을 보지 못했다.
노호성과도 같은 불호가 울리고, 소림승들이 연이어 권을 쏟아내었다.
콰앙! 쾅! 쾅!
부처의 뜻을 펼치고, 그리하여 고통받는 이들을 구해 내기 위해 한결같이 단련해 온 권이다. 그 무게가 법정과 법계에게 손을 뻗치려는 이들을 철저하게 막아 내었다.
콰앙!
“너희는 가지 못한다!”
나직하고 묵직하던 그 웅혼한 목소리는 이제 없다. 간절함, 바라마지 않는 것에 대한 갈구가 가득 실린 피 맺힌 고함이었다.
“비켜라, 땡중들! 거치적댄다!”
사방에서 연신 도들이 날아왔다.
서걱! 서걱! 서걱!
아무리 평생을 정진해 왔다고 해도, 뒤섞여 엉킨 이들이 사방에서 날리는 칼을 모조리 막을 수는 없었다.
한 소림승의 전신이 삽시간에 무자비한 칼날에 난자당하고 시뻘겋게 물들었다.
“갈 수 없다 하지 않았느냐!”
콰앙!
하지만 전신에서 피가 흐르는 와중에도 소림승들은 적들을 잡고 늘어졌다.
뒤늦게 달려온 적호가 낯빛을 굳혔다.
악착같이 엉겨 붙은 소림승들이 법정을 쫓는 이들을 붙잡고 늘어지고 있다. 등에 칼이 박히는 와중에도 먼저 가는 이의 발목을 잡고 놓지 않는다.
“아미타불!”
불가에 귀의한 이라면 누구나 입에 담는 불호이나, 제 목숨을 내던지는 이들이 뱉는 것은 그 울림이 사뭇 달랐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두렵다.
그러나 이들은 그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면 그 죽음으로써 무엇이라도 지켜 내기 위해.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이 불가의 상징이 된 연유도 이것이 아니었던가.
“내가⋯⋯ 죽기 전에는 갈 수 없소이다.”
입에서 덩어리진 피를 쏟으며 소림승이 나아가는 이를 잡고 늘어진다. 만인방에도 버금갈 끈질김이었지만, 분명 사파들이 보여 주는 광기와는 또 달랐다.
“⋯⋯수작질을 부리는구나.”
적호가 빠드득 이를 갈아붙였다.
저 멀리 비틀대며 달아나는 법계와 그 등에 업힌 법정의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이대로 놈들을 놓칠 수는 없다. 이미 승전은 결정 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 법정의 목은 그 승리를 더욱 공고히 해 줄 것이다. 그리고 사패련과 만인방, 나아가 패군의 이름을 이 천하에서 가장 빛나는 곳에 올려 줄 상징이 될 것이다.
“놓치지 않는다!”
콰앙!
적호가 땅을 박차며 뒤엉킨 이들을 훌쩍 뛰어넘었다. 아니, 뛰어넘으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그의 전면으로 불광 어린 권기가 수십 줄기 쏟아졌다. 마치 짠 듯이 일시에 터져 나온 터라 적호도 순간 움찔하며 도를 휘두를 수밖에 없었다.
촤아아아아악!
날아든 권력이 거센 도에 찢겨 나갔다. 그뿐이었지만, 어쨌든 그 여파는 뛰어오른 적호를 더 나아가지 못하게 하기엔 충분했다. 잠시라도 더 발을 붙든 것이다.
으득!
적호가 제 입술을 깨물었다.
저들은 사방에서 쏟아지는 공격을 막아야 하는 처지다. 그 와중에 적호를 공격하기 위해선 몸에 칼이 박히는 걸 마다하지 않아야 했을 터.
한데 순간적으로 그에게 날아들었던 권력은 적어도 열이 넘었다.
저 소림승 중 누구도 제 몸을 돌보지 않았다는 것.
노기가 차오르는 와중에도 적호는 순간 모골이 송연하였다.
“이⋯⋯.”
하지만 여기서 빼앗길 시간 따윈 없다. 지금은 저 둘의 뒤를 쫓아야 한다. 이대로 놓친다면, 모든 게 그의 실책이 되고 말 것이다.
적호가 다시 땅을 박차려는 순간, 제게 달라붙은 사파들을 떨쳐 낸 소림승 하나가 악착같이 그를 향해 달려들어 왔다.
“아아아!”
한껏 뻗어진 손에서 불광 어린 장영이 뿜어져 나온다. 차디찬 눈으로 그 광경을 일별한 적호가 단번에 도를 횡으로 그었다.
촤아아아아악!
거대한 장영이 붉은 도기에 갈라지며 소림승의 몸에 긴 선이 새겨졌다.
“아⋯미⋯⋯.”
소림승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간다. 하지만 결코 멈추지는 않았다.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 비척거리면서도 용케 적호를 향해 한 발짝 한 발짝 걸어왔다.
턱.
어린아이 주먹질만도 못한 손짓이 적호의 가슴에 닿았다.
법정이 과연 이럴 가치가 있는 존재인가? 그저 방장이라는 이유 때문에?
“⋯⋯너희에게 방장이라는 이가 그토록 가치 있는가?”
그렇기에 물었다. 대답은 기대도 하지 않고.
한데 기대하지 않았던 대답이, 휘청거리던 소림승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다르지 않소⋯⋯.”
“⋯⋯뭐?”
고통에 겨웠던 얼굴에 온화한 기운이 깃든다.
“그게⋯⋯ 누구이건, 방장이 아닌 누구라도⋯⋯ 내 목숨을⋯⋯ 걸 가치는, 있소이다⋯⋯.”
적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서걱!
도가 상대의 목을 단번에 끊어 냈다.
목을 잃은 몸뚱이가 이내 털썩 고꾸라졌다.
이는 증오가 아닌, 순간적인 자비였을지도 모른다. 이제 굳어 갈 일만 남은 몸을 차게 일별한 적호가 고개를 들며 소림승들을 노려보았다.
“누구라도⋯⋯라고.”
소림승들의 눈빛은 다르다. 수많은 죽음을 목격하고, 사선을 넘나들었던 적호조차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로 가득 차 있었다.
“윗대가리가 머저리라도 아래까지 썩지는 않았다는 건가?”
물론 적호는 공감할 수 없다. 그러나 공감할 수 없다고 해도 존중은 할 수 있을 터다.
아마 이들은 목숨이 다하기 전까지는 절대 적호에게 길을 열어 주지 않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 목숨이 다한 뒤에도.
“정 그걸 원한다면⋯⋯.”
적호가 도를 꽉 움켜잡았다.
“소원대로 해 주마.”
❀ ❀ ❀
카앙!
검과 손이 맞부딪친다.
종리형의 복마검법(伏魔劍法)은 명불허전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았다. 쾌속하고, 기민하였으며, 정교하였다.
심지어 상황이 상황인 만큼, 그의 검은 여느 때보다 더 영활했다. 매서운 공격이 몇 번이나 빈틈을 노리며 적을 향해 쇄도했다.
하지만⋯⋯ 사실 종리형은 이 순간 절망하고 있었다. 마치 대해를 향해 검을 휘두르는 것처럼 막막하기만 했다.
‘이, 이게⋯⋯.’
수십 개, 아니 어쩌면 수백 개의 손.
하나하나 서로 다른 형상을 취한 수백 개의 손이 그를 뒤덮어 오고 있다. 수백 명의 사람이 동시에 그를 향해 손을 뻗어 오는 것처럼.
‘천면수(千面手)!’
천면수사 담여해의 독문절기다. 천면수사에게 사파제일수(邪派第一手)의 칭호를 가져다준 천면수는 종리형에게 끝없는 절망을 선사했다.
물론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상대가 사파제일수이자 저 하오문의 수장인 천면수사 담여해라고는 하나, 종리형 역시 공동의 장문인이다. 공동의 정화가 담긴 그의 복마검법은 결코 담여해의 장공에 밀리지 않았다.
그래, 이길 수 있을지 모른다.
서두르지 않고 저 현란한 수공을 하나하나 파훼할 시간만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지금 종리형에게 부족한 게 바로 그 ‘시간’이었다. 사방이 무너지고 적들이 시시각각 포위망을 좁혀 오는 상황에 느긋하게 상대의 무학을 파훼할 여유가 주어질 리 없다.
“흐아아아압!”
종리형이 발작적으로 검을 내질렀다.
맞받아 주기만 한다면 상대를 밀어내고도 남을 강력한 일격이었다. 하지만 상대의 손은 결코 그의 검기를 정정당당히 상대해 주지 않았다.
여유롭게 검기를 흘리며 사방을 점해 오는 수영(手影)들을 보며, 종리형의 두 눈에 어린 절망은 한없이 짙어졌다.
“비키란 말이다!”
카각!
다시 한번 악을 쓰며 뻗은 검이 손 그림자들과 얽혔다. 그러자 각기 다른 형상을 취한 장영이 마치 살아 있는 사람의 손처럼 그의 검을 얽어 왔다.
“급한 모양이로군.”
“천면⋯⋯.”
“하지만 나는 그리 다급할 게 없다오.”
젊은 청년의 얼굴로 천면수사가 조소했다. 늙수그레한 목소리와 주름 하나 없이 팽팽한 청년의 얼굴이 전혀 어울리지 않아 불쾌한 위화감이 들었다. 종리형의 등골로 일순 소름이 내달렸다.
“그러니 장문인께서도 느긋하게 즐기심이 어떠할지?”
“아아아아악!”
천면수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누군가가 죽어 가는 비명이 종리형의 귀를 파고든다.
“아아아악!”
종리형은 그 비명과 비슷한 소리를 내지르며 검을 세차게 떨쳤다.
“하하하핫!”
천면수사의 커다란 웃음이 비명에 겹쳐졌다. 종리형의 두 눈이 금세 붉게 달아올랐다.
‘왜!’
어쩌다 이런 처지가 되어 버렸는가? 그는 어떤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거늘! 설령 실수를 저질렀다 해도 이리 비참한 꼴을 당할 이유까지는 없지 않은가? 억울하다. 그는 억울했다.
“비켜라! 비키란 말이다!”
“쯧쯧. 추하기 짝이 없군. 일문의 장문이라는 자가 이리 최소한의 체통마저 놓아서야.”
노골적인 조롱이 쏟아졌다.
원통한 마음과 굴욕감, 그 외에 형용할 수 없는 감정들이 종리형을 휩쓸었다.
그의 시선이 순간 저도 모르게 옆으로 향했다. 이 지옥도를 펼친 원흉을 그 두 눈으로 보기 위해서.
그리고 종리형은 두 눈을 커다랗게 치떴다.
“저⋯⋯.”
치열한 전투 중이었고, 잠시의 방심으로도 목숨을 잃을 수 있단 걸 알면서도 그는 넋을 놓고 말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법정이 달아나고 있었다. 법계의 등에 업혀서.
‘패했다고⋯⋯?’
저 법정이?
아니, 아니다.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 중요한 건 법정이 장일소에게 패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가 모두를 두고 달아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많은 이들을 죽음에 몰아넣고, 공동과 팽가는 물론이거니와 소림마저 지옥의 구렁텅이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데.
‘혼자서? 우릴 내버려 두고 혼자 달아난다고?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고?’
상황이 파악되는 것과 동시에 피가 거꾸로 치솟았다. 전신에 열이 홧홧하게 오르며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온몸을 두방망이질했다.
‘혼자 살아남겠다고?’
파아아앗!
분노 탓에 흐트러진 검을 뚫고 천면수사의 손이 종리형의 가슴을 강타했다.
종리형이 입으로 피를 뿜으며 뒤로 주륵 밀려났다. 하지만 그의 두 눈에 번뜩이는 증오는 천면수사에게로 향하지 않았다.
“법⋯⋯.”
종리형의 배 속에서부터,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절규로 터져 나왔다.
“법저어어어어어어어어어엉!”
전장을 모두 뒤흔들고도 남을, 처절한 목소리였다.
❀ ❀ ❀
우습다는 듯 내려다보는 시선이 성한 곳 하나 없는 피부에 따끔따끔 와 닿았다.
이윽고, 권위와 위엄이 잔뜩 실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무릇, 군주 된 자란 자신의 목숨을 가장 귀히 여겨야 하는 법.”
하지만 오히려 너무 권위를 내세워서일까, 그 목소리는 어째 가볍게만 느껴졌다.
팽엽은 말없이 제 옆구리에 박힌 검에 손끝을 대었다. 손이 형편없이 떨리고 있었다. 열기에 익다 못해 뭉개지기까지 했으니 그 손으로 칼을 쥐고 뽑기란 불가능했다.
그리고 사실⋯⋯ 이 검을 잡고 뽑을 수 있다고 해도 결과는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의 몸에 박힌 게 이 검 하나만은 아니었으므로.
“네게는 한 가문을 이끌 만한 역량은 있었을지 모르지만, 제대로 된 군주가 될 능력은 부족했던 모양이군.”
“⋯⋯.”
“제아무리 강대한 집단이라고 해도, 머리를 잃으면 오합지졸이 되지. 너는 내게 맞서지 말고 달아났어야 한다. 설령 이곳에 남은 이들을 모두 죽이는 한이 있더라도.”
“쿨럭.”
바람 소리 섞인 기침이 팽엽의 입에서 힘없이 흘러나왔다.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지금 그의 꼴을 보면 말이다. 전신에 온통 무기가 박힌 채 제힘으로 쓰러지지도 못하는 몰골이, 저자의 말이 맞다고 증명하지 않는가.
실력에서 차이가 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달랐던 건 그저 마음가짐이다. 앞으로 나서서 싸우면서도 수많은 이들에게 협공을 명하는 데 한 치도 망설임이 없던 차가운 이성이, 팽엽에겐 부족했던 것이다.
무인에게는 비겁한 일이지만, 한 집단을 이끄는 이에게는 이보다 합리적이고 당연한 선택이 없었다.
팽엽은 자꾸 감기는 눈을 억지로 뜨며 주위를 보았다.
오만하게 선 태양궁주의 뒤편으로 참혹한 광경이 보인다.
너무나 많은 죽음이 널려 있지만, 그 와중에도 필사의 탈출을 감행하고 있는 팽가인들이 보인다. 시야가 흐릿하지만 그의 눈엔 똑똑히 보였다.
그 수는 고작해야 수십. 이곳에 이끌고 왔던 수에 비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하다.
고작 그 수십을 살리겠다고 그의 목숨을 내던진 데 의미가 있었을까?
“소인배는 무의미한 것에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곤 하지. 하지만 진짜 군주는 가치 있는 것에만 목숨을 건다. 저 소림의 수괴는 그 사실을 아는 모양이구나.”
“⋯⋯.”
“그걸 몰랐던 게 네가 죽는 이유다, 천한 이여.”
팽엽의 입에서 실소가 새어 나왔다.
“가치⋯라⋯⋯.”
점차 형체를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시야가 흐려진다. 이윽고 세상이 가장자리부터 검게 물들어 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마지막으로 본 건, 적의 포위를 기어이 뚫어 낸 팽가의 젊은 무인들이었다.
“⋯⋯그럼, 나름⋯⋯.”
“으음?”
“⋯⋯나쁘지 않군.”
팽엽을 보던 태양궁주가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팽엽은 이미 힘을 잃고 고개를 축 늘어뜨린 채였다.
털썩.
팽엽의 몸이 옆으로 쓰러졌다. 전신에 십여 개에 칼날이 박힌, 처참한 모습이었다.
잠시 말없이 그 모습을 보던 태양궁주는 코웃음을 치고 몸을 돌렸다.
“하찮은 죽음이로군.”
비정한 목소리가 쓰러진 팽엽의 귓가로 아스라이 들려왔다.
‘형님⋯⋯.’
어둠으로 물든 세상에 그를 바라보던 형의 눈빛이 흐릿하게 떠오른다.
‘⋯⋯나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서늘하게 엄습해 오는 죽음의 감각 속에서, 팽엽의 텅 빈 동공이 닿지 못할 무언가를 좇았다.
‘아니⋯⋯ 사실은⋯⋯.’
팽엽의 손이 힘없이 늘어졌다.
덩그러니 내던져진 그의 애병만이 지켜봐 주는 이 하나 없는 그의 죽음을 침묵으로 애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