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ount Hua Sect RAW novel - Chapter 1612
1611화. 그러니 허물 수밖에요. (1)
청명이 ‘저 양반은 또 왜 저래?’라고 묻는 듯한 눈으로 제갈자인을 보았다.
“왜 성질을 내고 그러세요? 내가 뭐 못 할 말이라도 했나?”
그러자 제갈자인이 목소리를 낮추며 청명을 몰아붙였다.
“이쯤 되니 궁금하군. 총사의 현실 인식이 정말 그러한 건가?”
“엥?”
“정말 정파 내에 배신자가 있다고 해도 별문제가 아니라고 여기는 건지 묻고 있네.”
제갈자인은 청명뿐만 아니라 그 곁에 앉아 있는 모두를 훑어보았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로군. 아니면 혹여…… 배신자가 애초에 있지도 않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가? 내가 한 말을 신뢰할 수 없다고 여겨서?”
“제, 제갈가주.”
모용위경이 만류하려 들었지만, 제갈자인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어느 쪽인가?”
이 점은 확실히 짚고 넘어가려는 건지, 아니면 상대의 실수를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심산인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정작 청명의 반응은 심드렁하기 짝이 없었다.
“어느 쪽이고 뭐고 둘 다 별로 관심 없는데요?”
“……뭐?”
“관심 없다고요.”
제갈자인은 어안이 벙벙하여 이게 뭔 개소리인가 하는 눈으로 청명을 바라보았다.
“과, 관심이 없다니? 이게 그리 말할 만한…….”
“그럼 물어보죠.”
청명이 고개를 획 돌려 이곳에 앉은 이들을 쭉 훑어보더니 물었다.
“여기서 배신하신 분?”
당연히 정적이 흘렀다. 그 말도 안 되는 질문에 장문인들은 황당한 기색을 숨길 생각도 못 했다.
“있어요?”
“끄응. 청명아……. 아니, 총사. 질문할 만한 걸…….”
현종이 어떻게든 상황을 수습하려 했지만, 청명은 빙글빙글 웃을 뿐이었다.
“에이. 확실한 게 좋잖아요. 그래서 배신하신 분?”
평소 같으면 욕을 한 사발 퍼부었겠지만, 지금은 그럴 만한 자리가 아님을 모두 알고 있다.
결국 당군악이 가장 먼저 한숨처럼 답했다.
“당가는 아닐세.”
“우리도 아니네.”
“그럴 리가 있습니까? 배신이라니요.”
문파의 수장들이 모두 질린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 반응을 하나하나 지켜보던 청명이 이번엔 종리곡을 보았다.
“혹시?”
종리곡의 눈썹이 분노로 꿈틀했다.
“……농이 과하군. 종남이 사파에 붙는 날은 중원이 멸망해도 오지 않네.”
모두의 입에서 아니라는 말을 끌어낸 청명이 제갈자인을 보았다.
“들으셨죠? 내부에는 없다는데요?”
“……무, 무슨 순진한 말을! 그 말을 어떻게 믿소이까? 당연히…….”
“어, 어. 말조심하셔야 할 것 같은데? 제가 지금 물어본 사람들은 전부 천우맹 소속이거든요? 지금 천우맹 내부에 배신자가 있다고 하시는 건가요? 대단하신 오대세가 가주님께서?”
제갈자인의 얼굴이 순간 핼쑥해졌다. 아니나 다를까 그를 보는 이들의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피어났다.
설령 이곳에 배신자가 있는 게 사실이라 할지라도, 지금 그의 입장상 함부로 그런 말을 입에 올릴 수가 없다. 새삼 그걸 깨닫게 된 제갈자인은 할 말이 궁해졌다.
그때, 청명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그러고 보니까 종남은 아니네? 그럼 혹시 종남을 의심…….”
“그, 그게 무슨 말인가! 그런 뜻은 절대 아니네!”
“그렇죠?”
청명이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럼 남은 게 두 문파밖에 없는데? 의심하는 건 아닌데, 혹시 제갈세가나 모용세가가 배신하셨어요?”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우리는…….”
“그렇죠? 그럼 여긴 배신자가 없네요. 그럼 된 거 아니에요?”
청명이 ‘뭐가 문제냐?’라고 묻는 듯한 얼굴로 제갈자인을 뚫어지게 본다. 그 눈빛 앞에 제갈자인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대체 어디서부터 지적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이, 이보시게, 총사.”
그래서인지 그의 목소리도 영 아까에 비해 힘을 잃었다.
“내부에만 배신자가 없다고 끝날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정파 내에…….”
“와, 진짜 말귀를 못 알아들으시네. 저런 양반이 뭔 수로 제갈세가의 가주가 되었나 몰라.”
들으란 듯 중얼거린 청명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더니 꽥 소리쳤다.
“아니, 이 양반아! 지금 중요한 게 배신자가 있다는 거예요? 아니면 그 배신자가 누군지 밝히는 거예요?”
무례하기 이를 데 없는 언사이지만, 제갈자인은 그 사실을 지적할 여유조차 없었다.
“그야…….”
“배신자가 무당일 때랑, 곤륜일 때랑, 그게 아니면 누군지도 모를 애들일 때랑 뭐가 다른데요? 어차피 센 놈들이 공격해 온다는 건 똑같은데?”
제갈자인의 입이 쩍 벌어졌다.
“누군지 밝혀 내면 배신했던 애들이 마음을 바꿔서 다시 우리 편이 되어 주기라도 한대요? 배신자가 있으면 그냥 있는가 보다 하고, 그걸 감안하여 작전 세워서 싸우면 그만이지.”
결국 인내심이 고갈된 제갈자인이 버럭 맞받아치려는 찰나였다.
“맞는 말이군.”
“……마, 맞다고?”
제갈자인이 얼빠진 소리를 내며 획 돌아보았다. 이 어처구니없는 말을 한 게 심지어 당군악이었다.
“딱히 중한 일도 아닌데 괜히 어렵게 생각했어. 내부에 배신자가 없다면, 누가 배신을 했건 결국 사파의 새로운 전력이나 다름없다 여기고 싸우면 그만일 터.”
“그렇습니다.”
임소병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배신한 이유가 무엇인지, 목적이 무엇인지, 그런 것들은 전부 부차적인 문제지요. 사파 놈들이 새로운 세력을 끌어들여 더 강해졌다. 그 담백한 사실만 보면 될 일입니다.”
“흐음, 과연.”
“듣고 보니 그것도 그렇네.”
분위기가 순식간에 정리되기 시작했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제갈자인의 심정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다 미친 인간들인가?’
배신자가 있다. 정파가 사파에 들러붙어 정파를 공격한 건 강호사에 유례없는 대사건이다. 그런데 그 엄청난 일을 이런 식으로 치부해 버릴 수 있단 말인가?
그래. 백 보 양보하여 그럴 수 있다 치자. 과격한 인사 몇이 그런 논리를 펼칠 수는 있다. 그럼 중진이라는 이들이 그 논리를 바로잡아 주고 중재를 해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바로잡기는커녕 동조해 버리는 게 말이나 되는 짓인가?
“이게 대체 뭐 하는…….”
“앉으세요.”
청명이 자리를 향해 턱짓했다. 하나 이제 와 제갈자인이 그 말을 순순히 따를 리 없었다.
“나는 아직…….”
“앉으라고.”
그 순간, 서늘한 목소리가 제갈자인의 귀를 스쳤다. 등골에 소름이 오소소 돋은 그가 저도 모르게 입을 다물었다.
제갈자인을 노려봐 오는 청명의 눈은 흡사 칼날 같았다.
“착각하시는 모양인데, 우리가 그쪽들 말을 일일이 들어 줘야 할 이유는 없어요. 그쪽은 천우맹 소속도 뭣도 아니니까. 지금까지 말하게 내버려 둔 건 그래도 지금까지의 지위와 권위를 최대한 존중해 준 것뿐이에요.”
제갈자인이 마른침을 삼켰다. 청명이 싸늘하게 덧붙였다.
“객이면 객답게 구세요. 주인인 척하지 말고. 그 같잖은 수작에 말려들어 주도권 내줄 사람은 여기에 한 사람도 없으니까. 여긴 천우맹이에요.”
그 말에 제갈자인은 저도 모르게 주변을 돌아보았다.
어느새 곱지 않은 눈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심지어 종리곡과 모용위경마저 그와 눈을 마주쳐 주지 않는다.
‘갑자기 왜…….’
지난 회의까지만 해도 이렇지는 않았는데, 왜 갑자기 이리되어 버렸단 말인가?
“앉아요.”
다시 한번 청명이 말하자, 결국 체념한 제갈자인이 힘없이 착석했다. 그를 노려보던 청명이 막 다시 입을 열려는 찰나, 백천이 느긋하게 손을 들었다.
청명이 불퉁하게 물었다.
“뭔데?”
“그럼 객 된 분들은 발언하지 말라는 소리냐?”
“흠.”
청명이 좋은 지적이라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주인은 아량을 베풀어야 하는 법이고, 객은 예의를 지켜야 하는 법이지. 할 말이 있으면 제대로 예의를 지키고 말하세요. 구파 분들이 그렇게 좋아하던 그 예의.”
“…….”
“됐어?”
백천이 피식 웃었다. 만족스럽다는 듯.
그러자 이번에는 임소병이 입을 열었다.
“상황이 얼추 정리된 것 같으니 회의를 지속하겠습니다. 먼저 총사께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만, 이제 어쩔 생각이십니까?”
“어쩌긴.”
청명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판을 다시 짜야지.”
“……다시 짠다고?”
누군가가 되묻자 청명은 한풀 기가 꺾인 제갈자인을 일별하며 말했다.
“뭐, 완전히 헛소리는 아니라서.”
제갈자인이 움켜쥔 주먹이 살짝 떨렸다. 청명이 물었다.
“언제 어떻게 올지 모를 공격에 대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뭔지 알아?”
“그 공격이 언제 어디서 올 건지 알아내는 거지.”
누군가가 자신감 넘치는 대답을 하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무슨 소린지 알았다, 화산신룡! 결국 이 모든 문제의 해답은 우리 개방에 달려 있다는 말이로군. 그런 중한 임무를 맡겨 주다니. 절대 실패하지 않…….”
퍼억!
우렁차게 소리치던 홍대광의 얼굴로 신발이 날아들었다. 정확히 신발이 틀어박힘과 동시에 홍대광의 몸이 그대로 넘어갔다.
“저 쓸모도 없는 거지새끼가! 정체 모를 놈들이야 둘째 치고, 당장 제갈이나 모용세가가 어딨는지도 못 찾아낸 게 뭐 할 말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여!”
넘어가는 홍대광을 무심하게 부축한 풍영신개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쓸모없는’과 ‘거지’까지는 용인할 수 있지만, 그래도 나름 개방의 방주 되신 몸이네. ‘새끼’는 빼 주게.”
“쓸모없는 거지 놈이!”
“옳지. 그 정도가 딱 좋겠군.”
현종은 그저 말없이 제 얼굴을 감쌌다.
익숙한 맛이 난다. 그래서 서글프다. 강호의 운명이 꿈틀거리고 뒤집히려는 상황에 왜 또 이런 식인가.
홍대광이 바락바락 대들었다.
“끄으……. 그, 그건 우리 잘못이 아니잖느냐! 애초에 나보고 거지들 죄 동원해서 사패련의 종적을 쫓으라고 한 건 너였잖아!”
“변명은 필요 없어! 시키는 일만 해서 언제 일을 잘할 거야?”
“알아서 일하는 놈이 왜 거지로 사냐!”
“……아. 듣고 보니.”
“납득하지 마!”
청명이 과연 그렇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지만, 그 얼굴이 되레 홍대광에게는 상처가 되었다.
“자, 자. 거기까지 하시고. 그래서? 공격에 대처하는 제일 좋은 수가 뭡니까?”
임소병이 익숙하게 정리하며 물었다. 청명이 어깨를 으쓱했다.
“같은 상황을 상정해 보지.”
“……응?”
“제갈과 모용 앞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놈들이 나타났어. 결국 그들과의 승부를 자신할 수 없었기에 이 상황이 벌어졌단 말이지.”
“그렇지요.”
제갈자인과 모용위경이 살짝 움찔했지만, 좀 더 들어 보니 어쨌든 그들을 비난하는 말은 아닌 듯했다.
“그럼 상황을 조금 바꿔서, 거기에 종남이 같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고민할 것도 없는 가정이군. 막아선 이들이 누구든 종남의 앞을 막을 수는 없다. 내가 그렇게 만들지 않았을 거다.”
종리곡 대신 진금룡이 답했다. 청명이 씨익 웃었다.
“나도 동의해. 종남이 있었다면 달랐겠지.”
진금룡의 눈이 의심으로 가늘어졌다. 저놈이 순순히 저렇게 고개를 끄덕여 줄 리가 없는데.
“하지만 그건 비단 종남이 있기 때문이 아니야. 문파가 셋이 되는 순간 그들만으로는 더 이상 변수를 만들어 낼 수 없기 때문이지.”
당군악이 살짝 표정을 굳힌다.
“……총사, 자네 지금?”
“네, 맞아요.”
청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천우맹은 연합이죠. 수많은 머리를 가진.”
“…….”
“지금껏 우린 그걸 극복하기 위해 여러 수를 써 왔어요. 하지만 결국은 전부 임시방편에 불과했죠. 이제 더는 그렇게는 안 돼요.”
“이유는?”
“간단해요. 이미 증명되었기 때문이죠. 저 망할 놈의 장일소가 사람의 공명심과 욕망을 이해하고 이용하는 데는 천하에 대적할 자가 없다는 게 말이에요.”
청명조차 법정의 행동을 완전히 예측하지 못했다. 하지만 장일소는 그런 법정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읽어 냈다.
장일소가 청명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다. 자신을 우선시하고 자신의 문파를 우선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열망을 읽어 내고 교묘하게 그 욕망을 뒤흔들었기 때문이다.
“이대로는 안 돼요.”
지금은 완벽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결국 장일소는 찾아낼 것이다. 그들 사이에 있는 작은 틈을. 기어이 그 틈을 찢고 벌려 피 흘리게 할 것이다.
청명의 눈이 차게 빛났다.
“그러니 허물 수밖에요. 우리가 가진 경계를.”
엄중하고 비정한 말이 모두에게 떨어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