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ount Hua Sect RAW novel - Chapter 1614
1613화. 그러니 허물 수밖에요. (3)
“사형.”
“쉿.”
뭔가 자격 없이 회의에 낀 것 같아 구석에서 쥐 죽은 듯이 듣고만 있던 조걸이 속삭이듯 윤종에게 물었다.
“아니, 조용히 해야 하는 건 아는데…… 저게 지금 무슨 소립니까? 지휘권을 회수하다니요?”
“그게…….”
잠시 주위를 살핀 윤종이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솔직히 그도 잘 정리가 안 되긴 하지만…….
“지금 우리가 맹의 명을 받는다고는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각 문파의 명을 받고 있지 않으냐?”
“……그러니까 그게 무슨 말이냐니까요.”
윤종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장문인과 맹주님께서 서로 다른 명을 내린다면 누구의 명을 따라야 하느냐?”
“당연히 맹주님이죠?”
“어……?”
그게 맞는데……. 어, 맞기는 한데.
“내가 예를 조금 잘못 들었구나. 그래, 부맹주님과 맹주님이 동시에 다른 명을 내리면 당가 분들은 누구의 명을 따를 것 같으냐?”
“그야…….”
물론 현종이어야 한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당군악이 될 것이다. 그리될 수밖에 없었다. 화산 사람이 볼 때 현종은 맹주이자 태상장문인이지만, 냉정히 말해 당가의 입장에서는 완전히 남이니까.
“그걸 바꾸자는 것 같구나.”
“아, 그걸…… 그…….”
잠시 고장 난 것처럼 삐걱거리던 조걸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걸 어떻게 바꿉니까? 그게 바뀔 수 있는 겁니까?”
“그러니까 지휘권을……!”
말이 안 통하니 답답해진 윤종의 언성이 조금씩 커지려는데, 칼날 같은 현종의 시선이 획 꽂혔다. 윤종과 조걸의 고개가 벼락같이 수그러들었다. 어느새 모두가 두 사람의 잡담에 신경이 쏠려 있었던 것이다.
“크흠.”
당군악이 살짝 헛기침하고는 청명을 보았다.
지난 회의에서 백천도 폭탄을 투척했다. 하지만 그건 지금 청명이 던진 것에 비하면 폭탄이라는 말도 무색할 수준이다.
지휘권이라니……. 지금 자신이 하는 말을 이해는 하고 있는 걸까.
“총사. 의도는 이해하겠네.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라고요?”
당군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 이건…….”
그는 차마 말을 다 잇지 못했다. 회의실이 다시 침묵으로 물들자 조걸이 참지 못하고 또 입을 열었다.
“사형.”
“그만 좀 해라…….”
“아니, 이거 왜 이렇게까지 심각한 겁니까? 이게 그렇게 대단한 일입니까?”
“하…….”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쉰 윤종이 속삭이듯 대꾸했다.
“그럼 너는 화산 장문인 말고 다른 사람의 명을 받고 싸울 수 있느냐?”
“그야 당연한 거죠. 우린 천우맹 아닙니까?”
“그 명을 내리는 분이 종남파 장문인이더라도?”
“……예?”
순간 조걸의 눈이 흔들렸다.
“아니, 종남 장문인이 아니라 진금룡 소협이면? 너는 저 사람의 명으로 목숨 걸고 적을 향해 돌진할 자신이 있느냐?”
조걸이 조개처럼 입을 다물었다. 당연히 그렇다는 대답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막상 이렇게 귀로 들으니 섣불리 답할 수가 없었다.
“지휘권을 회수한다는 건 그런 의미다. 지금까지 네가 알던 체계가 모두 사라지는 거다. 그리고 새로운 체계에 순응해야 한다는 의미지.”
“설마 그렇게까지 극단적일까요? 저놈도 생각이 있을 텐데.”
“그건 우리가 화산 사람이니까 할 수 있는 말이다. 다른 문파의 입장에선 이보다 더 극단적인 상황도 생길 수 있지.”
멀리 갈 것 없이 임소병만 해도 그렇다. 지금까지의 그는 군사 자리를 맡고 있었고, 그의 의견은 현종을 통해 간접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하지만 지휘권이 일원화된다면 얼마 전까지 산적 소리를 듣던 이의 명령하에 정도를 걷던 이들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 오고 만다. 그걸 정말로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을까?
모두 비슷한 생각을 하는지 이번 침묵은 제법 길었다. 반응을 본 청명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
“현실적으로 어렵다, 탁상공론이다, 우선은 가능한 것부터 하는 게 좋다……. 이만큼 당하고도 아직도 그 말이 나오시나요?”
청명이 당군악을 똑바로 주시했다. 당군악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구파가 패한 이유는 간단하잖아요. 구파일방이라는 수백 년 된 체계를 가지고도 그들은 자신들의 한계를 넘지 못했어요. 연합이란 달콤한 이름만으로는 결국 ‘나와 다른 이들’이라는 구분을 무너뜨릴 수 없어요.”
“물론 그렇기는 하지만…….”
“그런 어설픈 체제하에 싸운다면 설사 이길 수 있다고 해도 막대한 피해와 지독한 갈등을 남길 게 뻔하죠. 설마 저놈을 이기고 나서는 다시 서로 편을 갈라 우리끼리 치고받고 싸우실 생각은 아니죠?”
모두의 얼굴이 굳어졌다. 오직 말을 이어 가는 청명만이 담담했다.
“그럼 방법은 하나밖에 없잖아요. 더는 문파를 나누지 않고, 힘을 합치는 수밖에요.”
청명은 당군악의 대답을 기다리는 대신 자신의 사형제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기존의 체제를 고수하던 이들은 여지없이 패배했어요. 하지만 어설프게나마 그 경계를 허물었던 이들은 기대도 하지 않았던 흑룡왕의 목을 베고 돌아왔죠. 이곳에서 저들보다 큰 전과를 이룬 문파가 하나라도 있습니까?”
없다. 신기할 정도로 없었다.
무거운 분위기 가운데, 청명의 눈빛이 싸늘하게 빛났다.
“현실을 직시합시다. 저 망할 사패련과 적이 된 이후 우리가 그것들을 상대로 이룬 전과는 단 하나도 없어요. 한 번도 이기지 못했고, 한 번도 이득을 보지 못했어요. 연전연패. 붙을 때마다 패배하고 땅을 치고 후회하는 것만 반복했죠.”
몇몇이 입술을 짓깨물었다.
“그런데도 제대로 정신 차리고 붙으면 이길 수 있다고요? 아무것도 바꾸지 않고?”
청명이 희미한 조소를 흘렸다. 그 웃음이 모두를 움찔하게 했다.
“사람은 역사로부터 배워야 하잖아요? 그런데 어째 제 눈에는 우리가 서서히 침몰하는 배 같아 보이는데요?”
“총사. 말이 과하오.”
“이 말이 과하다고 주장하시려거든 지금부터 뭐라도 바꿔야죠. 우리가 옳다 믿었던 방식, 우리가 옳다고 여겼던 모든 것. 그리고…….”
청명이 입술을 꾹 깨물더니 자신을 가리켰다.
“제가 옳다고 믿었던 것들까지.”
이는 무척이나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 * *
거의 마지막으로 회의실을 빠져나온 조걸은 덥수룩한 머리를 벅벅 긁으며 한숨을 쉬었다.
“……괜찮을까요? 문주님들 얼굴 장난 아니시던데.”
“왜 안 그렇겠냐. 이게 얼마나 민감한 문제인데.”
“그럼 안 하면 되는 거 아닐까요? 굳이 이렇게까지…….”
“그럼에도 해야 한다고 여겼겠지.”
“청명이 놈이요?”
“그래.”
조걸은 살짝 묘한 눈으로 윤종을 보더니 삐쭉거렸다.
“사형도 한 번씩 보면 이상합니다.”
“뭐가?”
“최근에는 완전 독이 올라서 청명이가 하는 일마다 딴죽을 걸 것처럼 굴어 대더니, 이번에는 왜 또 은근히 찬성하는 눈칩니까?”
이놈도 참. 윤종은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세상 사람들이 너처럼 단순하다면 세상이 참 평화로울 텐데.”
“……칭찬이죠?”
“그렇지. 아마도.”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저은 윤종이 조용히 말했다.
“녀석과 생각이 다를 수는 있지만, 한 가지에는 동의한다.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결국 사패련을 이겨 낸다고 하더라도 우리 사이에 심각한 갈등의 골이 생기고 말 거라는 걸.”
“……어째서요?”
“마지막에 머뭇거린 이들 때문에 누군가 하나는 더 죽을 테니까.”
이 말에는 조걸도 대충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전투에서 그들은 각기 다른 힘을 모두 더해 흑룡왕을 이겨 냈다.
그런데 만약 그 중요한 순간에 전력을 보존하기 위해 슬그머니 엉덩이를 빼는 이들이 나왔다면? 그리고 그들 때문에 화산의 누군가가 죽기라도 했다면?
조걸은 평생 그들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사파를 상대할 때보다 더욱 극렬하게 적대감을 드러낼지도 모른다.
“전쟁에서 이긴다고 해도 서로 씻지 못할 앙금을 남긴다면 모든 게 무의미하지.”
“그걸 위해서예요?”
“……그 방법이 아니면 이길 수 없다고 여기는 것일지도 모르고.”
조걸도 이제는 어렴풋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음……. 참 이상하다 싶으면서도 당연하다 싶네요.”
“그게 뭔 말이냐?”
“예전 청명이 놈에게는 이런 게 너무 당연했거든요. 놈은 항상 무언가를 바꿔 왔잖습니까? 화산에 들어와서는 무학부터 수련 방식, 그리고 체계조차 바꿔 버렸죠.”
“…….”
“그 뒤로는 다른 문파를 대하는 방식을 바꿨고, 적과 아군의 경계를 좀 흐트러뜨려 버리기도 했고.”
윤종이 지난날을 떠올리며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놈이 좀 뭐랄까……. 다른 이들을 존중해 준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예전 같으면 자기 말 들을 때까지 다 때려 부쉈을 텐데, 어느 순간부터는 될 수 있으면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 준다?”
“……그랬지.”
윤종도 같은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게 그저 청명이 놈이 어른이 되어 가며 성숙해져서 그런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조걸의 생각은 조금 다른 모양이었다.
“저놈은 더 이상 참지 못하게 된 거 아닐까요?”
“……못 참았다?”
“네. 처음부터 이렇게 하고 싶었는데 말이죠. 생각해 보십쇼. 원래 저놈은 이게 옳다 싶으면 남의 사정 같은 건 생각도 안 하고 다 뒤엎어 버리고 그냥 따라오라고 외치는 인간이잖습니까.”
그간 겪었던 수많은 고생이 떠오른다. 어쩐지 온몸이 쑤시는 듯한 기분이다.
“……그렇네.”
“그럼 이번에도 그렇게 되겠죠.”
윤종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엔 그리 단순하지 않다, 걸아. 우리가 녀석에게 모든 걸 맡길 수 있었던 건 어차피 우리에게 잃을 게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문주님들께서는 우리처럼 쉽게 생각할 수 없을 거다.”
하지만 조걸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잖아요. 잃을 게 있다느니 없다느니 하는 건 사형 같은 사람들의 사고방식이죠. 중요한 건 놈이 말하는 대로 해야 이긴다. 그거 아니에요? 그리고…….”
조걸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게 옳다는 거.”
윤종이 입을 다물었다.
“옳으면 해야 하는 거잖아요. 당연히.”
“그 말은 맞지만…….”
조걸은 윤종이 무어라 말하려는 걸 툭 끊었다.
“아아, 솔직히 모르겠어요.”
그의 얼굴엔 다소 짜증이 어려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사형도 그렇고, 태상장문인도 그렇고, 청명이나 사숙마저도 그렇고 다들 하나같이 복잡해요. 뭐 그렇게 생각할 게 많은지 몰라.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윤종의 입에서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건 우리가 예전에는…….”
“웃기는 소리 하지 마세요. 예전엔 생각할 게 없었다고요? 예전에도 생각할 것 천지였어요. 오히려 청명이 놈이 처음 왔을 때가 생각해야 할 건 더 많았지. 망해 나자빠진 문파를 되살리려고 고려한 게 얼마나 많았는데.”
윤종이 잠시 멈칫한다. 듣고 보니 그 말도 맞다.
“달라진 건 하나뿐이에요. 그때의 놈은 우리의 기분이나 입장 같은 건 생각도 안 해 줬다는 거. 오늘만 해도 그렇잖아요. 예전 같았으면 장문인이 각자 시간을 가지고 다시 회의하자 그랬을 때 게거품을 물고 난동 부렸을걸요. 지금 시간 없다는 데 뭔 태평한 소리나 하고 있냐고.”
드러누워 패악질 부리는 청명이 놈의 모습이 아주 쉬이 그려졌다. 보지 않아도 익히 알겠다.
“그랬겠지.”
“지금도 참고 있는 거죠.”
“하지만 그게 옳지 않으냐.”
“그게 옳다고요?”
조걸이 가만히 윤종을 보다 말했다.
“글쎄요. 나는 예전엔 사형이 조금 고리타분해도 재미있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요즘 보면 좀 다른 느낌이에요.”
“어떤데?”
“과거 내가 보던 다른 장문인들의 모습과 닮아 가는 것 같아요. 이거저거 재고 따지고, 고려하고, 결국에는 제일 안전한 방법만 선택하는 거요.”
“…….”
“재미없게.”
조걸이 몸을 획 돌렸다.
“걸아.”
“청명이한테 가 볼 거예요. 그놈이 오랜만에 재밌는 일 벌였으니까 이번에는 중간에 엉덩이 빼지 말고 제대로 뒤집어 보자고 해야죠.”
조걸이 슬쩍 눈만 돌아보며 말했다.
“사형은 어차피 말릴 테니까 그냥 여기 계십쇼. 그럼.”
그가 휘적휘적 걸어가는 뒷모습을 윤종은 멍하니 보기만 했다.
“……달라졌다고? 내가?”
눈이 살짝 떨렸다. 다른 누구도 아닌 조걸의 입을 통해 들었기에 쉽사리 넘길 수 없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