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ount Hua Sect RAW novel - Chapter 1620
1620화. 끊을 각오는 있어. (5)
누구도 입을 열 엄두를 내지 못했다.
현종은 물론이고, 항상 침착했던 당군악과 웬만한 충격에는 이골이 난 임소병조차 그저 눈을 휘둥그레 뜬 채 경악했다.
“어…….”
심지어 이럴 때면 항상 제 입을 주체하지 못하던 조걸마저도 입을 쩌억 벌린 채 굳어 버렸다.
종리곡의 선언은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종남이 어떤 문파인가? 섬서에서 수백 년간 화산과 견원지간으로 지냈던 곳이다. 최근에 소림과 화산이 원수 같은 사이였다고는 하나, 유서 깊은 앙숙 종남을 뛰어넘을 순 없었다.
그런데 그런 문파가 지금 화산의 휘하에 들어가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것도 단순한 협력이 아닌 완전한 종속이나 다름없는 형태로!
‘내가 뭘 잘못 들었나?’
오히려 이 의구심이 더 합리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그게…… 그게 대체 무슨 말입니까, 장문인!”
가장 먼저 정신 차리고 입을 뗀 건 모용위경이었다. 금방이라도 종리곡에게 달려들 것 같은 기세였다.
하지만 종리곡은 그저 담담했다.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종남이 화산의……. 아니, 화산과 뜻을 같이하겠다는 말입니까?”
아마 처음 하려던 말은 분명 ‘화산의 개가 되겠다는 말입니까?’였겠지. 이를 익히 짐작하면서도 종리곡은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안 될 이유라도 있습니까?”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미 정하지 않았습니까.”
“예?”
종리곡이 모용위경을 응시하며 차분히 말했다.
“총사의 뜻에 함께하는 이들은 화산의 깃발 아래 모이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그 깃발 아래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종리곡이 고개를 돌려 청명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종남은 그저 그 깃발 아래 함께하기로 한 것뿐입니다. 둘 중 하나를 택한 것이지요.”
“장문인! 그게 정녕 옳은 선택이라고 보십니까? 종남과 화산의 관계를 잊으셨습니까? 천하가 종남을 비웃을 것입니다.”
“가주님!”
이젠 예전 회의 때와 상황이 반대였다. 모용위경이 선을 넘어도 너무 넘었다고 본 제갈자인이 다급하게 그를 만류했다.
종리곡은 딱히 화내는 기색 없이 말했다.
“말은 정확히 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비웃음을 사는 건 종남이 아니라 바로 저겠지요. 종남은 여전히 화산보다 강한 문파입니다. 그런 문파가 고개를 숙이는 건 비웃을 거리가 아닙니다. 그런 선택을 한 이가 비웃음을 당할 뿐이지.”
모용위경의 입이 충격으로 벌어졌다.
“그, 그걸…… 그걸 알면서 어찌…….”
“오히려 그렇기 때문입니다.”
종리곡의 그 말에 모두의 눈이 의문으로 물들었다. 모두가 그의 입이 열리기만 기다리는 가운데, 종리곡이 가만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새삼스레…….”
흡사 독백 같은 답이 흘러나왔다.
“새삼스레 깨달은 것뿐입니다. 아니, 이미 알고 있었던 걸 다시 떠올렸다고 표현하는 게 맞겠지요.”
“무엇을…….”
“장문이란 자리는 그 비웃음을 당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종리곡이 고개를 다시 내렸을 때, 그 시야에는 한 사람이 놓여 있었다.
그토록 중요한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당황한 감정조차 숨길 생각 못 하는 얼치기. 한 문파를 이끌어 나가기에는 능력도, 심계도 부족했던 반편이.
하지만…… 그럼에도 현종은 다 무너져 가던 화산을 천하를 오시하는 문파로 일구어 냈다. 반면에 종리곡은 그토록 강한 문파를 불명예와 비웃음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정말 그가 늘 생각해 왔던 것처럼 청명이란 존재 하나 때문일까? 그럼 청명 하나만 사라진다면 화산은 다시 예전처럼 몰락하고 말 것인가?
아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차이가 있었다면 단 하나. 현종은 그 모진 세월을 버티며 오욕과 비웃음을 감내했다. 그에게, 바로 종리곡에게 수도 없이 굴욕을 당하면서도 제 무능으로 화산의 모자람을 감싸며 포장해 왔다.
윗대에서 회피하고, 원래 장문인이 되어야 했던 이가 도망치고,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숱한 일들을 떠맡으며 짓뭉개지면서도 현종은 그저 그 모든 것을 버텼다.
하지만 종리곡은 종남의 이름에 담긴 명예만을 취해 왔을 뿐이다. 비단 종리곡뿐일까. 그 이전의 장문인들 또한 그랬다.
‘그런 주제에…….’
얼마나 비웃었던가, 저 사람을.
여전히 그는 현종이 뛰어난 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능력만 놓고 본다면 종리곡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인물이다.
하지만 사람이 아닌 장문인으로서는…….
종리곡이 말을 이었다.
“총사의 의견은 무도하지요. 과격하고, 따라야 할 이들을 조금도 배려해 주지 않는, 치기 어린 협박에 지나지 않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에 동의하는 눈치였다. 확실히 종리곡이 이전에 말했던 것처럼 이건 또 다른 폭력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폭력이 제자들의 목숨을 하나라도 더 살리는 결과로 이어진다면 비웃음 따위…….”
종리곡의 입가에 삐뚜름한 미소가 어렸다. 이내 그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헛기침했다. 내보이고 싶지 않은 감정을 내보인 것을 수습하는 모양이었다.
안색을 정돈한 그가 딱 잘라 말했다.
“종남의 뜻은 바뀌지 않습니다. 우리는 화산과 함께할 것입니다.”
“아, 아니. 장문인, 그래도 다시…….”
모용위경이 다급하게 만류해 보려는 순간이었다.
“그럼 제갈세가도 화산과 함께하겠습니다.”
묵묵히 듣고 있던 제갈자인이 단번에 제 입장을 정해 버렸다. 모용위경은 이제 내장을 토할 것 같은 기세로 외쳤다.
“이건 또 대체 무슨 말이오, 가주! 말이 다르지 않습니까!”
그러나 제갈자인의 의견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말이라니요. 저는 단 한 번도 총사의 의견 자체에 반기를 든 적이 없습니다.”
“그, 그럼 지금 제갈세가는 총사의 의견을 긍정한다는 말이오?”
“그렇습니다.”
“어째서요?”
제갈자인은 애초에 가장 크게 총사에게 반발했던 인물이 아니던가.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제갈자인은 말했다.
“총사의 말이 병법적으로 옳기 때문입니다.”
“…….”
“생각하고 또 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이상의 방법을 떠올릴 수 없었습니다.”
“전쟁이란 병법만으로 하는 게 아니오! 누구보다 잘 아시지 않소!”
“하지만 병법을 논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게 전쟁이기도 하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모용위경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다. 청명은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제갈자인이 그쪽으로 시선을 주며 말했다.
“이 전쟁의 목적이 완전한 승리와 우리 쪽 희생을 줄이는 데 있다면, 총사의 안건은 합리적이고, 타당합니다.”
“…….”
“물론…… 저는 총사를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의견을 개진하는 방법 역시 끔찍했다고 봅니다. 거부하고자 하면 이유야 천 개는 더 찾아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갈자인이 제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제갈세가가……. 다른 곳도 아닌 바로 제갈세가가 호오와 욕심에 눈이 멀어 옳은 병법을 거부한다는 건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겠지요. 저는 종남 장문인과는 생각이 다릅니다. 저는 제가 비웃음을 사지 않기 위해서라도 화산과 뜻을 함께할 것입니다. 그게 제갈이라는 성을 쓰는 저의 자존심입니다.”
그는 현종을 향해 또렷하게 선언했다.
“이 시간부로 제갈세가는 화산의 연맹에 합류할 것이고, 전쟁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제갈세가 가주로서의 권한을 연맹에 양여(讓與)할 것입니다.”
현종의 얼굴에 숱한 감정이 스쳤다.
제갈세가의 합류는 사실 다른 의미로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종리곡이 의외로 침묵을 지키던 동안 청명에게 가장 큰 반기를 들었던 게 제갈자인이다. 그랬던 인물이 지금 아무런 조건 없이 청명의 지휘를 따르겠다고 선언한 게 아닌가.
유서 깊은 화산의 숙적과, 소림의 몰락 이후 가장 반목했던 앙숙이 모두 화산과 같은 곳에 서기로 선언한 것이다.
회의실 안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펼쳐졌으니 그럴 수밖에.
그리고 당군악은 확실히 느꼈다. 고작 두 문파. 아니, 고작 두 사람의 선언만으로 흐름이 바뀌고 있었다.
“혹시나 하여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사천당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당가 역시 화산과 함께할 것이고, 저는 사천당가의 가주로서 모든 권한을 맹에 일임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굳이 쐐기를 박았다.
“다른 분들은 어떻습니까?”
이쯤 되니 당혹감을 숨기지 못하는 이들이 생겼다. 이 안건에 긍정적이었든, 부정적이었든 상황 자체가 예상과는 달리 흐르고 있으니 말이다.
당군악이 다시 임소병을 슬며시 압박해 보려는 찰나, 돌연 남궁명이 난처한 얼굴로 한숨을 푹 쉬었다.
“끄응, 제가 딱히 권한을 쥔 사람은 아닙니다만…….”
“장로님?”
남궁명이 큰 결심을 한 듯 말했다.
“남궁세가도 화산과 뜻을 함께하겠습니다.”
내내 은근히 압박을 주던 당군악은 되레 당황하고 말았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물론…… 제가 아무리 남궁의 장로이고, 총관이라고는 하나 이만한 일을 독단으로 진행하는 건 가문에서 내쳐지는 일까지 각오해야 할 만한 사안이지요.”
물론 진행은 할 수 있다. 애초에 소가주의 허락하에 이곳까지 왔으니 남궁을 대표할 권한을 위임받은 것과 같다.
그러나 무엇이라도 선택하게 된다면 그 모든 대가 또한 그가 짊어져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남궁명으로서는 굳이 이 자리에서 모험할 이유가 없었다. 남궁명은 쓴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하지만…… 보아하니 여기서 화산과 함께한다는 의견을 내지 않으면 책임은 면할 수 있을지언정, 숙부 취급은 남은 평생 못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가 어깨를 으쓱했다.
“어쩌겠습니까? 남궁세가의 총관 자리도 중요하지만,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가주의 숙부 자리가 훨씬 대단하지 않겠습니까?”
장난 섞인 너스레에 여기저기서 실소가 새어 나온다.
“소가주께서 이곳에 계셨다면 오래 생각할 것도 없이 총사께 힘을 실었을 것입니다. 저도 이 나이 먹고 어린 조카에게 타박이나 당하고 생각은 없으니 도리가 없지요. 남궁세가는 화산의 깃발 아래 서겠습니다. 이왕이면 선두, 가장 먼저 적과 싸우는 자리에.”
가벼운 농담처럼 시작된 말은 더없이 강건한 의지로 마무리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사파에 대한 원한이 가장 큰 문파를 꼽으라면 결코 빠질 수 없는 곳이 남궁세가다.
그런 남궁세가의 합류는 그 의미가 남달랐다.
“감사합…….”
“아, 녹림도. 녹림도 화산에 붙겠습니다.”
당군악과 현종이 뚱한 시선을 임소병에게 던졌다.
“아까와 말이 다르지 않습니까, 녹림왕?”
“다르다니요? 그게 무슨 악담입니까. 천우맹 안에서 방향을 정하는 것과 안과 밖을 나누는 건 다른 일이지요.”
임소병이 재빨리 부채를 펼쳐 들고 제 얼굴을 반쯤 가렸다.
“화산 없는 곳에 간 녹림이야 질 떨어지는 사파 취급이나 받을 게 뻔한데, 이건 우리로서는 선택지가 없는 일이지요.”
그 또한 틀린 말은 아니라 당군악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이려는데, 임소병이 덧붙였다.
“그리고 그게 아니라 해도…….”
부채 위로 드러난 눈이 묘한 빛을 흘렸다.
“화산과 종남, 당가와 남궁이라면…… 합류하지 않는 이들이 멍청한 거지요. 주워 먹을 걸 찾으려 해도, 뭐 하나라도 얻어 낼 만한 곳에 붙는 게 정상 아니겠습니까?”
“…….”
“아주 잘 빌붙어 보겠습니다. 거절 마시길.”
곡선을 그린 임소병의 눈이 청명에게로 향했다. 굳어 있던 청명의 입가에 그제야 피식 미소가 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