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ount Hua Sect RAW novel - Chapter 1630
1630화. 좋은 게 좋은 거잖습니까? (5)
그새 조금 늙은 듯한 제갈자인이 문을 열고 들어오며 고개를 끄덕였다.
“받아들이셨습니다.”
“오?”
청명이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그걸 순순히 받아요?”
“…….”
제갈자인의 얼굴이 살짝 푸들댔다.
“사소하게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네.”
“총사께서는…… 당주 자리가 뭐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글쎄요. 그, 음……. 여러 표현이 있겠지만, 괜히 돌려 말하지 않는다면 똥받…….”
“거기까지.”
제갈자인이 빙그레 웃으며 청명의 말을 막았다. 더는 나와서도 안 되고 들어서도 안 된다.
“그럼 이제 부당주만 정하면 되는군요.”
“뭐, 그거야 이미 정해져 있는데요? 일단 화산 놈들로 다 채우…….”
“안 될 것 같습니다.”
“아니? 왜요?”
“아까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남궁 소가주는 부당주에 올라야 합니다.”
“으으으음…….”
청명이 팔짱을 끼고는 침음을 흘린다.
다른 이들의 귓가에 ‘아, 골치 아파지는데. 그래도 샌님이면 다른 놈보다야 나을 것도 같고……. 그래도 그 인간 한 번씩 눈 돌아가서 감당이 안 되는데.’하는 청명의 중얼거림이 들려왔지만, 모두가 필사적으로 귓가에 들리는 말을 무시했다.
“끄응. 별수 없죠. 아무리 그래도 남궁세가에 한 자리를 챙겨 주지 않으면 좀 곤란하니까.”
“그리고 종남 역시 우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주 자리까지 줬으면 됐지! 뭔 부당주 자리까지 가져가려고!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 그래요!”
그 말에 현종이 황당한 얼굴을 했다.
“아니……. 진금룡에게는 한 자리 줄 수도 있다고 한 건 너이지 않으냐?”
“그건 종남이 당주 자리를 가져가기 전이고요!”
“…….”
“그리고 생각을 해 봤는데, 일단 금룡이는 안 돼요.”
“어째서?”
“금룡이는 사회화가 덜 된 동룡이라서 말이죠. 동룡이에게서 가장 재수 없고 싹퉁 머리 없는 부분만 싹싹 긁어서 만들어 놓은 인간이 진금룡이잖아요.”
“왜 거기서 내가 나와!”
“뭐 틀린 말 했어?”
“아무리 그래도 그 인간과 비교라니! 얼굴 빼고는 닮은 게 없다고!”
“응?”
청명의 고개가 모로 꺾인다.
그러자 굳이 청명이 입이 열 필요도 없이 즉각 반발이 돌아왔다.
“사실 비슷하긴 하죠.”
“물론 사숙이 좀 낫긴 하지만.”
“뭐?”
백천이 배신감에 눈이 돌아가려 하는데, 현종이 크흠 하고 헛기침을 한다.
“조금 그……. 닮은 면이 없다고 하긴 좀 그렇지.”
“……태, 태상장문인?”
조걸이 어깨를 으쓱한다.
“생각해 봤는데, 진금룡은 덜 맞은 사숙 아닐까요? 청명이가 사람 하나 만든 거지.”
“부정할 수 없는 최대 업적이지.”
“…….”
조걸과 윤종의 마지막 평까지 들은 백천이 하늘이 무너진 얼굴로 허물어졌다.
“더 못난 사숙이든, 더 잘난 사숙이든, 여하튼 진금룡은 성격이 파탄 난 인간이라고요. 그런 인간이 부당주를 맡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 말에 엎어졌던 백천이 고개를 번쩍 들고 방긋 웃는다. 그 와중에도 진금룡을 욕하는 것만은 포기할 수 없다는 듯.
“개판 나겠지.”
“내 말이.”
낄낄거리며 웃어 대는 화산의 차기 장문인과 화산제일검을 바라보던 윤종이 한숨을 푹 내쉬고는 청명을 바라본다.
“그래도……. 이번 안휘행에선 나름 문제없이 종남을 이끌었잖아. 우리도 도움을 받았고.”
“그 정도로는 안 돼.”
청명이 고개를 내저었다.
“진금룡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이건 경험의 문제야. 적당히 이름 있고 자리 있다고 지휘권을 내어줄 거였으면 부당주라는 자리를 만들지도 않았겠지.”
“으음.”
확실히 이해가 가는 발언이었다. 설령 남궁도위와 진금룡의 실력이 동등하다고 쳐 준다 해도, 서로 겪어 온 것이 너무도 다르다.
매화도부터 항주, 해남을 모두 겪은 남궁도위와 봉문하고 검만 휘둘러 온 이를 같은 선상에 놓을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럼……. 이송백 소협은?”
“거참. 인성의 문제가 아니라니까 그러네.”
“……인성만 깠잖아.”
말은 그렇게 했지만, 청명이 놈도 이송백이라는 말에는 뭔가 솔깃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그의 고개가 내저어진다.
“그래도 안 돼. 검증이 안 됐어.”
“흐음.”
“이번 전쟁은 누굴 키워 내기 위한 전쟁이 아니야.”
청명의 눈이 시린 빛을 내뿜었다.
“가진 것을 증명하는 자리여야 해.”
“…….”
그 말이 조금 무겁게 사람들 사이로 내려앉았다.
결국 윤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사숙이랑. 사형. 그리고 저거.”
“……최소한 나도 사형이라고 부르기는 해 줘.”
조걸의 소심한 반항은 청명의 귀에 닿지도 못했다.
“남은 하나가 문젠데……. 사고는 절대 안 하려고 할거고, 진짜 소소를 시켜야 하나? 소소는 따로 할 일이 있는데. 끄응.”
청명이 머리를 벅벅 긁어 댔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유이설만은 그도 설득할 자신이 없다. 일단 대화가 가능해야 설득이라는 걸 해 보지. 말 꺼내자마자 도리도리 고개를 저어 가며 내뺄 게 분명한데.
“으음? 설이는 왜?”
“예?”
“이설이가 무슨 문제가 있더냐?”
“…….”
청명의 시선이 현종에게로 향한다.
“어?”
“응?”
“호오…….”
현종을 바라보는 화산 제자들의 눈이 순간 빛을 내뿜었다.
“그런 수가 있었네.”
“그렇죠? 사숙?”
백천과 윤종, 그리고 조걸의 입가에 사특한 미소가 맺혔다.
“그래서, 이설이가 한 자리를 맡아 주기로 했다.”
“…….”
“그렇지? 이설아?”
현종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옆에 앉은 유이설을 바라보자 유이설의 고개가 미미하게, 정말 미미하게 끄덕여졌다.
“네…….”
유이설의 표정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익숙한 오검들은 그 무표정함 안에서 탈곡된 유이설의 영혼을 읽어 낼 수 있었다.
“싫은가 보네.”
“엄청 싫은가 보네요.”
“저렇게도 싫을까?”
그 순간 유이설의 눈이 세 사람에게로 향한다. 그 눈에 어린 원독과 살기를 느낀 오검들이 조용히 눈을 내리깔았다. 유이설과 척을 지면 화산에서 곱게 살기는 그른 일이 아닌가.
“그럼 된 것이냐?”
그 말에 청명이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청명아?”
“흐음.”
청명이 고민하듯 제 볼을 주물러 댄다.
‘괜찮을까?’
그가 원하는 부당주는 단순히 강한 후기지수가 아니다. 그와 뜻이 통하고 가장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는 이들이어야 한다. 그와 동시에 최선을 다해 당원들을 이끌 수 있는 능력도 있어야 한다.
유이설의 무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유이설이 정말 사람을 이끌고, 원활한 소통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사람인가?
고민은 됐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다. 이 이상 시간을 끌 수도 없고.
“어쩔 수 없죠. 그럼 마지막 남은 부당주 자리는 이설 사고로…….”
바로 그 순간이었다.
“혹시 제 자리도 남아 있습니까?”
모두의 고개가 획하고 문 쪽으로 돌아갔다.
“스님!”
“혜연 스님!”
앉아 있던 오검들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로 달려갔다.
초췌한 얼굴을 한 혜연이 그곳에 반장을 하고 서 있었다.
“그…….”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기는 했지만, 막상 그 앞에 서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주저하는 오검들을 본 혜연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걱정을 끼쳤습니다. 죄송합니다.”
“아, 아닙니다. 걱정이라니요.”
백천이 굳은 얼굴로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스님?”
“예.”
혜연이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괜찮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모두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어렸다.
섬서로 돌아오자마자 칩거해 버린 혜연 때문에 말은 안 했지만 얼마나 애를 태웠던가. 그들이 뭔가를 해 줄 수 없는 상황이기에 더욱 속이 상했다.
그런데 과연 혜연이라 할지. 그 커다란 일을 겪고도 며칠 되지 않아 스스로 그 고통을 극복해 낸 것이다.
“아미타불. 제가 싸울 자리가 있겠습니까? 도장?”
그 시선을 받은 청명이 피식하고 웃는다.
“늦었잖아. 대머리.”
혜연이 빙그레 웃었다.
“웃기는. 해골바가지 같은 얼굴을 해 가지고는…….”
퀭하게 파인 그 눈두덩이가 혜연이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는지 말해 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사람이란 결국 고통을 통해 성장하는 법. 그 모든 것을 극복해 냈다면 혜연은 분명 과거보다 더 단단해졌을 것이다.
“부당주 자리가 하나 남았어.”
“…….”
“할 수 있지?”
혜연이 가만히 반장을 하고 짧게 불호를 외웠다. 더없이 경건하고 묵직해 보이는 불호를.
“남은 자리가 그것뿐이라면 하는 수 없지요. 어떤 자리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게……. 사문이 세상에 지은 죄를 조금이라도 갚는 길이겠지요.”
평소라면 뭐라고 한소리를 했을 청명도 이번에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혜연이 깊은 고뇌 끝에 내린 결론이다. 그렇다면 그게 무엇이든 존중해야 할 터였다.
“그럼 아쉽지만……. 사고는 부당주 자리에서 빠져야겠는데, 괜찮죠?”
그 순간 유이설의 고개가 격렬하게 위아래로 끄덕여진다. 그도 모자라 더없이 간절한 눈빛으로 청명을 바라보기까지 했다.
“……좋은 모양인데요?”
“사고가 저렇게 세차게 고개 끄덕이는 거 처음 봤다.”
“심지어 나도 처음 본다.”
백천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내심은 같은 백자 배인 유이설이 한 자리를 맡아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본인이 저렇게까지 싫어하는데 뭔 도리가 있겠는가.
유이설은 유이설다울 때가 좋다. 굳이 부당주가 아니더라도 그 이상의 역할을 해낼 사람이니까.
“그럼 이제 다 된 건가?”
“뭐, 아주 사소한 거 하나만 처리하면 돼.”
“사소한 거? 어떤?”
그때 청명이 묘하게 의미심장해 보이는, 그러면서도 장난기가 가득한 눈으로 부당주가 될 이들을 바라보았다.
“각 당에 당주 하나와 부당주 하나가 배치되잖아.”
“그렇지.”
“그럼 여기 있는 사람 중 한 명은 그 양반이랑 같은 당에 들어가야지.”
“그 양반이라면…….”
순간 오검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다.
“조, 종리…….”
“종남 장문인…….”
오검들의 뇌리에 종리곡의 근엄한 얼굴이 떠오른다.
그와 같은 당에 배속된 이는 앞으로 전쟁이 끝날 때까지 그와 얼굴을 맞대고 의견을 조율해야 한다.
“사형.”
“응?”
“저……. 생각만 해도 속이 안 좋습니다.”
“나도 마찬가지다.”
안 그래도 불편한 관계였는데 얼마 전 종리곡이 화산에 정식으로 사죄를 하며 더욱, 더더욱 불편해졌다. 그런데 그런 사람과 전쟁이 끝날 때까지 붙어 다녀야 한다고?
“……남궁 소가주를 보내 보는 건 어떨까요?”
“…….”
“아, 아니면 혜연 스님을 보내면 되지 않습니까?”
조걸은 저항했다.
그도 알고 있다. 이미 종남이 그런 입장을 표명해 버린 이상 화산의 부당주 중 한 명은 종리곡과 함께하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 그래야 혹여 화산과 종남이 불화를 일으키지 않을까 의심하는 맹도들의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다.
그래. 그도 분명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걸 알고 있음에도 조걸이 격렬히 저항하는 이유는…….
“걸아.”
턱.
백천의 손이 조걸의 어깨에 올려졌다.
“부탁한다.”
“…….”
윤종의 손도 슬며시 조걸의 반대쪽 어깨에 올려진다.
“너밖에 없다.”
“…….”
조걸의 눈가에 물기가 차오른다. 요즘 따라 유난히 이런 장면을 자주 보는 것 같았다.
“사, 사형……. 사숙.”
그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무언가 항변하려 할 때, 윤종이 인자한 웃음을 지었다.
“걸아.”
“예?”
“꼬우면 일찍 입문했어야지.”
“…….”
“힘내라.”
“…….”
……개새끼들.
조걸의 두 눈에 맑은 눈물이 듬뿍 차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