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ount Hua Sect RAW novel - Chapter 1635
1635화. 모두 사라져 버리기 전에. (5)
늦은 밤. 네 사람이 둘러앉았다.
백천, 윤종, 조걸 그리고 혜연.
이제는 눈빛만 보아도 서로를 이해하는 이들. 하지만 지금 그들의 얼굴에는 묘한 수심이 떠올라 있었다.
“어떻더냐?”
“……말이라고 하십니까?”
백천의 물음에 조걸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다리가 후들거려서, 간신히 서 있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너답지 않게 뭔 소리냐?”
“아니, 저는 뭐 사람 아닙니까? 사숙은 제가 뭐 간을 배 밖에 내어놓고 다니는 사람쯤으로 보이십니까?”
“응.”
“…….”
조걸이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하지만 더는 대거리를 할 힘이 없는지 의자에 축 늘어지고 말았다.
조금 전 이들은 앞으로 자신들이 이끌어야 할 당원들을 눈으로 확인했다.
족히 몇백은 넘어가는 대인원. 그 많은 이들이 의심과 의혹을 담아 자신을 바라보는 경험을 누가 또 해 보겠는가?
“그러니까…….”
항상 담담하던 윤종의 목소리도 지금만큼은 살짝 불안한 듯 떨려 나왔다.
“우리가 그 많은 이들의 목숨을 책임져야 한다는 거군요.”
“…….”
그 말이 모두의 마음에 무거운 짐을 올려놓는다.
수백의 목숨. 이곳에 있는 이들은 정말 그 짐을 질 준비가 된 것일까?
“아오, 그 미친 인간. 진짜!”
조걸이 제 머리를 쥐어뜯을 듯 움켜잡는다.
“내가 뭐라고 이런 걸 시키냐고!”
“……우리가 대단해서 시킨 게 아니라, 제일 손발이 잘 맞아서 시키는 거라 하지 않느냐.”
“그게 문제란 겁니다! 그놈이랑 손발이 잘 맞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아니, 그리고 그걸 왜 제 마음대로 판단하십니까! 사숙은 그 자식이랑 손발이 잘 맞는다고 느낀 적이 있으십니까?”
“그야 당연……. 어?”
대답을 하던 백천의 고개가 끼긱 대며 꺾어졌다.
손발? 청명이랑?
어?
“거 보십쇼! 우리끼리도 의견이 안 맞아서 허구한 날 치고 박고 싸워 댔는데, 뭔 놈의 호흡입니까! 호흡은!”
“……일리 있는 말이로군.”
“아미타불…….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모두의 입에서 일제히 한숨이 흘러나왔다.
“고작 열 명 이끄는데도 위장이 뒤틀리는 기분이었는데.”
“너도 그랬냐?”
“말이라고 하십니까? 차라리 내가 검 열 개 들고 싸우는 게 낫지. 잠깐 눈 떼면 누구 다칠까. 괜히 지시 한번 잘못 내렸다가 누구 죽을까. 그때 눈에 선 핏발이 아직도 안 사라진다니까요?”
“잠을 못 자서 그런 건 아니고?”
“어?”
‘그런가’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조걸의 모습에 윤종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다.
평소라면 조걸의 저런 우는 소리를 타박했을 윤종이지만, 지금은 차라리 조걸이 있어 다행이다 싶다. 그가 아니라면 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이리 편히 내어놓을 수 없을 테니까.
조걸이 슬쩍 윤종과 백천의 눈치를 살피고는 입을 열었다.
“제 생각이긴 한데……. 지금이라도 조금……. 음, 역할을 조정해 달라고 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조정이라니?”
“저희가 해야 할 일……. 책임이라고 해야 하나? 여튼 그게 좀 과하다고, 부당주의 역할을 줄이고 당주의 역할을 조금 늘리자고…….”
거기까지 말한 조걸이 재빨리 입을 닫고 날아들 호통에 대비했다. 하지만 그의 생각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당연히 날아들어야 할 고함이 들려오지 않았다.
‘응?’
그뿐만 아니라 되레 백천과 윤종이 그보다 더 심각한 얼굴로 무언가를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화 안 내십니까?”
“화를 왜 내?”
“그야……. 이미 정해진 일을 괜히 왈가왈부한다거나, 생각이 없다거나, 패기가 없다거나…….”
“알긴 아는구나.”
“…….”
윤종이 슬쩍 조걸을 힐난하듯 바라보고는 백천에게 시선을 준다.
“하지만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숙.”
“음.”
“뭔가 엉겁결에 일사천리로 진행되어서 여기까지 와 버렸지만, 사실 이 일에 있어 저희의 의사는 완전히 무시되지 않았습니까?”
백천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살짝 가라앉은 눈빛으로 윤종을 바라본다.
“그 의사를 낼 수 있었다면, 하지 않았을 거란 말이냐?”
“확답은 못 하겠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고민은 했겠지요.”
“어째서냐?”
“너무 부족하니까요. 경험도 연륜도.”
“…….”
백천이 생각에 잠기려 할 때, 조걸이 꿍얼대듯 말했다.
“애초에 그놈은 우리한테 바라는 게 너무 많습니다. 뭐 하나 익숙해지기도 전에 자꾸 다른 짐을 얹어 주잖습니까.”
조걸의 투덜거림이 계속해서 터져 나왔다.
“애초에 우리 같은 애송이들이 저 많은 사람을 지휘하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대체 왜 장문인들이랑 가주님들께서는 이걸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으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미타불……. 반대해 봐야 소용이 없으니 그러시겠지요.”
“아니 왜?”
“이미 우리가 수도 없이 겪었던 일 아닙니까?”
“…….”
그건 그렇지.
막말로 그들이라고 청명이 놈이 하는 일에 불만이 없어서 입을 다물고 있었겠는가. 어차피 말려 봐야 소용이 없고, 괜히 잔소리만 더 들으니 ‘그냥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썩을 인간아’라는 심정으로 눈을 감아 버렸을 뿐이지.
돌이켜 보면 지금까지 화산이 벌인 일들은 대부분 그렇게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번만은 솔직히 일이 커도 너무 컸다.
“가능한 일을 시켜야지요! 우리가 해 본 일이라고는 고작 우리보다 어리거나 비슷한 나이의 사람들 열 정도를 지휘해 본 게 전부입니다. 그런 우리가 갑자기 타문의 장로님들에게 무슨 수로 명을 내립니까?”
혜연이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은 그런 걸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다는 듯이.
그나마 소림이 이 일에 빠져서 다행이지, 만약 소림까지 함께해 혜연이 소림의 호법들에게 명을 내려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면? 혜연은 차라리 참회동에 스스로를 가두는 쪽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리고 명을 내린다고 듣기나 하겠습니까? 애초에 우릴 보는 눈빛부터 곱지가 않은데.”
“…….”
그 말을 듣는 순간 백천의 뇌리에 그를 바라보던 당원들의 눈빛이 떠올랐다. 그 불안한 시선에는 분명 묘한 질시와 노기가 담겨 있었다.
그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상부의 협의로 결정된 일. 그들이 자신의 역할을 무작정 맡아야 했던 것처럼, 저들 역시 난데없이 어린놈들의 명을 받는 처지가 되었다.
누가 그 사실을 껄끄러움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사숙.”
“음…….”
윤종이 굳은 얼굴로 백천을 바라본다.
“여기까지 진행된 일을 이제 와 되돌리자는 건 아닙니다. 이제 우리에겐 그럴 시간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다만……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도, 그게 아니라면 대략적인 방침이라도 필요합니다. 다 안 된다면 최소한 우리의 목소리가 먹힐 방법이라도 마련해 달라 해야 합니다.”
“…….”
“솔직히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기분입니다. 어디를 보고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그 말에 혜연과 조걸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지금까지 지시를 받는 입장이었다. 그러니 그 지시에 동의하거나 반발하기만 하면 됐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당장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그러니 불안함이 차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숙?”
조걸의 채근에 백천이 살짝 숙였던 고개를 든다. 그리고 그 순간 모두는 백천의 입가에 떠오른 묘한 미소를 볼 수 있었다.
“재미있다는 생각이 드네.”
“예?”
“갑자기 무슨 소리십니까?”
“어린 나이, 부족한 경험, 증명되지 않은 실력.”
“…….”
“사방에서 쏟아지는 의혹과 짜증 어린 시선. 그 와중에서도 어떻게든 그들을 이끌고 이겨나가야 하는 상황.”
“무슨 말씀을…….”
“비슷하지 않으냐?”
조걸과 혜연이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데, 윤종이 ‘아!’하는 감탄을 흘려 냈다.
“확실히 비슷하네요…….”
“사형. 뭐가 비슷하다는 겁니까?”
“청명이.”
“……예?”
“화산에 처음 들어왔을 때 청명이의 상황이 지금의 우리와 비슷하다는 거다.”
“아…….”
조걸의 고개가 반사적으로 끄덕여진다. 확실히 그리 생각해 보니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었다.
아니, 어쩌면 청명이 녀석은 그들보다 더 절망적인 상황이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그들은 최소한의 명성은 갖춘 상태지만, 그놈은 아무것도 없는 거지 아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그런 상황에서도 놈은 그 능력 하나만으로 사문을 규합하고, 어른들을 설득해 지금의 화산을 만들어 냈다.
“……막막했겠네.”
“그러니까요.”
윤종과 조걸이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건너편에서 바라본 청명이 놈은 말 그대로 미쳐 날뛰는, 이해할 수 없는 짐승 같은 인간이었지만, 막상 그 비슷한 입장이 되어 보니 놈이 왜 그리 악을 써 대야 했는지 이해가 갔다.
그러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을 테니까.
“연륜과 경험. 좋은 말이지. 하지만 그때의 놈이 연륜과 경험을 쌓아 자신이 모든 것을 감당하기에 충분한 때까지 기다리려 했다면 지금의 화산은 어떻게 되었겠느냐?”
“그야…….”
아마 훨씬 전에 망했겠지.
아무리 청명이 놈이라 해도, 혼자서는 그 이후 벌어진 수많은 일을 감당하지 못했을 테니까.
“기다리면 연륜은 채워질까?”
“…….”
그 말에 모두가 입을 다물고 백천을 바라본다.
“시간이 흐르면 경험은 쌓일까?”
“……사숙.”
“이대로 아무 일 없이 십 년이 흐른다면,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완숙하고, 현명한 사람이 되어 있을까?”
백천이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백천 도장. 그건…….”
“어려운 건 사실이다. 하지만 안 되는 일은 아니야. 이미 우리는 그걸 해낸 사람을 눈으로 보지 않았느냐?”
“…….”
“놈이 자신이 했던 것을 우리에게도 요구하는 게 그렇게 과한 것이더냐?”
윤종의 입에서 한숨이 푹하고 새어 나온다.
과하지 않은 요구다. 하지만 또 과한 요구기도 했다. 그들은 청명이 아니니까. 청명이 될 수 없으니까.
하나…….
“실패할 수도 있겠지.”
백천이 모두를 보며 쐐기를 박았다.
“하지만 그 말을 하기 전에, 최소한 그때의 그놈만큼은 발버둥 쳐 봐야 하지 않을까? 능력의 부족을 논할 수 있는 건 그만한 간절함을 보인 이후일 것이다. 우리가 지금 처한 상황이 아무리 절망적이라 해도, 화산이라는 망망대해에 홀로 뛰어든 그놈만큼은 아닐 테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백천의 목소리에 조금 힘이 빠졌다. 하지만 차분해진 목소리는 오히려 전보다 더 짙게 듣는 이들에게 흘러 들어왔다.
“나는 놈의 힘이 되고 싶다.”
“…….”
백천이 빙긋하고 웃는다.
“망망대해에 떠 있는 배가 한 척이라면 외롭겠지만, 그게 다섯 척이라면 조금은 마음이 편하겠지. 녀석은 우리보다 더 거친 바다 위에 떠 있지 않으냐. 그러니 적어도 같이 파도를 맞아 줄 의리는 있어야지. 그 파도가 아무리 험하다 해도 말이다.”
차분하게 타이르는 목소리.
그건 논리도, 명분도 없는 사사로운 뜻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들은 어떤 말보다 그 사사로운 마음이 이들의 머릿속을 뒤흔들어 놓았다.
“끄응…….”
조걸이 제 머리를 벅벅 긁어 댄다.
“알겠습니다. 일단은 뭐……. 노력은 해 보죠.”
“지금 당장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아미타불. 바다라면 지긋지긋하지만……. 여래시라면 망설임 없이 뛰어드셨을 것입니다.”
백천이 그런 그들을 향해 빙긋 웃어 주었다.
“고맙다.”
“……방식만 다르지. 사숙도 가면 갈수록 청명이를 닮아 가는 것 같습니다.”
“아니, 방식도 별로 다르지 않아. 때리지 않는다 뿐이지.”
“아미타불. 동의합니다.”
백천이 쿡쿡 웃었다.
“곧 오실 남궁 소가주께도 이 뜻을 전하면 될 거다. 그리고……. 남궁 소가주께는 아무래도 이설이를 붙여야겠다. 그럼 조금 더 원활하게…….”
백천이 곧장 이후의 전략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곳에 앉은 이들이 진지한 눈으로 그런 백천의 말을 경청했다.
이끌어 간다.
굳이 누가 등을 떠밀지 않아도, 이제 백천이란 사람은 스스로 다른 이들의 손을 잡아 이끌어 주고 있었다.
윤종의 눈에는 그 모습이 너무도 눈부셔 보였다.
다만…….
‘사숙.’
윤종의 눈에 짧은 슬픔이 머무른다.
‘십 년 뒤의 당신을 믿지 못하는 게 아니라, 그 십 년 뒤를 생각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그럼에도 막을 수 없다.
꺼지기 전 더 환하게 타오르는 촛불을 비벼 끄는 짓 같은 건 누구도 할 수 없으니까. 설령 그게 윤종이라 해도 말이다.
차마 그런 백천을 더 바라볼 수 없었던 윤종이 눈을 감아 버렸다. 어쩔 수 없이 떨리는 손끝을 소매 안으로 감추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