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ount Hua Sect RAW novel - Chapter 1637
1637화. 짐승도 고마움은 압니다. (2)
차갑다.
아니, 섬뜩하다.
남궁도위라는 사람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남궁세가의 검수들도 순간 당황을 숨기지 못할 만큼.
‘소가주님이…….’
인정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남궁도위는 남궁세가의 적통. 저 사자검 남궁황의 뒤를 이어 남궁세가를 이끌어가야 할 사람이니까.
하지만 그 ‘인정’의 의미는 분명 다른 때와는 조금 달랐다. 남궁세가의 검수들이 남궁도위를 따르는 이유는 그가 언제고 남궁황에 비견되는 검수가 될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지, 지금의 남궁도위가 따를 만한 가치가 있는 자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남궁도위가 뿜어내는 기세는 남궁세가 검수들의 인식을 무너뜨려 놓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피부를 저미는 듯한 예기. 그리고 그 뒤에 몰려오는 거대한 위압감.
‘대체 언제 소가주님께서 이렇게…….’
평생 남궁세가의 검을 수련한 이들조차도 기함할 수밖에 없는 기세. 마치 과거의 남궁황을 연상시키는 기세를 지금 남궁도위가 내뿜고 있었다.
“소가주…….”
“불만 있는 자는 나서라 했다.”
그리고 그 입에서는 차가움을 넘어 무정하게까지 느껴지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온몸의 털이 쭈뼛 곤두서는 듯한 감각에 전율하던 이들이 마른침을 삼키며 남궁도위를 바라보았다.
“나설 이 없는가?”
남궁도위의 눈이 주변을 훑었다. 하지만 차마 그와 눈을 마주할 용기가 없는 이들은, 그의 시선이 닿을 때마다 남궁도위의 눈을 피하기에 바빴다.
그 모두를 일별한 남궁도위의 시선이 제 앞에 있는 남궁의 검수에게로 향한다.
“남궁비.”
“……예, 소가주님.”
“모든 영광을 맹과 화산이 가져가는 게 불만이라 했나?”
“저는…….”
남궁도위가 눈썹 하나 흔들리지 않는 얼굴로 다시 일갈한다.
“그들이 아니었으면 없었을 영광을 그들이 가져가는 게 그렇게도 불만인가?”
“…….”
“아니. 설령 그게 불만이라 한들, 저 사패련과 싸우기 위해 모든 수를 강구하는 와중에 그까짓 영광이 그리도 중요한가?”
“소가주님…….”
“머저리 같은 소리 지껄여 대지 마라.”
남궁도위가 이를 갈아붙였다.
“영광 따위로 남궁의 이름을 다시 세울 수는 없다. 남궁의 이름을 다시 세울 방법은 오직 실력뿐이다. 아무리 우리가 대단한 명성을 얻는다 해도 과거의 남궁만큼 강해지지 못한다면 모든 것은 모래성이 될 터이고, 아무리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고 무시 받는다 한들 과거의 남궁을 뛰어넘을 수만 있다면 남궁의 이름은 다시 찬란해질 것이다.”
그 말에 남궁비의 고개가 푹 숙여졌다.
“영광 같은 의미도 없는 소리에 집착할 거라면, 차라리 그 시간에 검을 휘둘러라. 검수는 오직 검으로 말한다. 그게 남궁의 방식 아니었던가?”
“……맞습니다, 소가주님.”
“그리고!”
남궁비가 완전히 백기를 들고 투항했지만, 남궁도위는 이쯤에서 멈춰 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적어도 너희가 남궁세가의 사람이라면, 검수로서의 자신을 증명하기 전에 사람으로서의 자신을 증명해라.”
“…….”
남궁도위가 차디찬 눈으로 그를 쏘아보았다.
“아버지께서 지금 너희를 보셨다면 과연 뭐라 하셨을까?”
“…….”
“나는 살아 영광을 누리는 인간이기보다는 죽어 당당한 인간이고자 한다. 그게 남궁의 길이고, 내 아버지께서 걸으셨던 길이다.”
그 말을 들은 남궁세가 검수들이 시선을 떨구었다.
그들을 차갑게 일별하던 남궁도위가 그들을 넘어 이곳을 주시하고 있던 이들을 바라본다. 그들 역시 남궁도위와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고개를 숙여 댔다.
그들을 한 번 노려본 남궁도위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남궁세가의 검수들을 두고 걸음을 옮겼다. 한참이나 걸음을 옮긴 끝에 조용히 그 뒤를 따르던 당소소가 입을 열었다.
“너무 과한 것 아닌가요?”
“……그리 생각하시오?”
“조금은요.”
“짐승도 고마움은 압니다.”
“……물론 그렇기는 하지만.”
당소소가 살짝 불안한 눈으로 뒤를 바라본다.
“저는 저들의 불만도 이해가 가거든요.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데, 그 영광은 가질 수 없는 싸움이라니…….”
사실 누구라도 꺼려질 것이다. 강호인은 명성과 영광을 얻기 위해 사는 것이나 다름없는 이들. 그들에게서 가장 중요한 것을 빼앗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물론 개개인이 명성을 얻을 기회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강호인들에게는 자신이 소속된 문파 역시 그 위상을 높여야 할 대상이었다.
그런 당소소의 말에 남궁도위가 힐끔 그녀를 바라본다.
“조금 의외군요.”
“뭐가요?”
“도장의 성정이라면 당장 저놈들의 껍데기를 벗겨 버리라고 날뛰실 줄 알았는데?”
“……날 대체 어떤 인간이라고 생각하시는 거죠?”
“어떤 인간이라기보다는…….”
남궁도위가 고소를 머금었다.
하기야. 새삼스럽기는 하지만 그가 바뀐 만큼 당소소도 많이 바뀌었다. 예전의 당소소라면 다른 사람들의 입장 따위는 눈곱만큼도 생각해 주지 않았을 테니까.
이상한 일이지. 청명이란 사람은 얼핏 보기에는 참 이기적인 인간으로 보이는데,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가면 갈수록 자신을 내려놓게 된다. 그게 청명이 재미있는 점이겠지.
“도장의 말이 맞소만……. 그렇기에 해야 하는 일입니다.”
“네? 어째서요?”
“지금 청명 도장이 가장 없애고 싶어 하는 게 바로 그것이니까.”
당소소의 두 눈이 살짝 의문으로 물든다.
“영광이요?”
“예. 정확하게는 한 문파가 공을 세우고, 명성을 얻는 구조 그 자체겠지요.”
“……음.”
“저들이 한 말과 도장의 대처를 들어보면 청명 도장의 의도는 명확합니다.”
당소소도 남궁도위의 말을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위험하다는 거군요.”
“예. 특히나 패군을 상대로는.”
당소소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가 이 말을 듣고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할 리가 없다. 당가에서도 화산에서도 총명하기로 따진다면 손에 꼽는 사람이니까.
“그러니 다소의 무리를 감안하더라도 반드시 실현시켜야 합니다. 때로는 남궁을 넘어 다른 문파와 대립하는 한이 있더라도.”
“……소가주께서 악역을 자처하시겠다는 건가요?”
“필요하다면 그래야겠지요. 아니…… 그리할 겁니다.”
당소소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솔직히 제가 화산의 제자라 이런 말을 하는 게 좀 이상하긴 하지만……. 도통 이해가 안 가네요. 남궁 소가주께서 굳이 우리가 좋은 일을 할 필요가 있을까요?”
“화산에만 좋은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남궁도위가 당소소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이건 화산을 위한 일이 아니라 강호를 위한 일입니다.”
“…….”
정론이다. 그러니 반박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남궁도위가 살짝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변명으로 내세울 말은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요?”
“예?”
“사실은 그저 그러고 싶습니다. 빚을 갚고 싶어서라는 말도 좋겠고, 그냥…… 안 그래도 머리 싸매고 있을 사람이 이런 일까지 떠맡는 걸 보기 짜증나서기도 하고.”
“……사형을 말하는 거죠?”
“예.”
당소소의 눈빛이 살짝 묘해진다.
참 기이한 일이다. 막상 화산 안에 있는 사람들은 청명이 멀리서만 보여도 도망가기 바쁜데, 화산 밖에서 청명을 보는 이들은 하나 같이 그에게 뭔가를 퍼 주지 못해 안달이다.
대체 그의 어떤 점이 사람들을 이리 만드는 걸까?
“무엇보다.”
“…….”
남궁도위가 고개를 들어 화음을 바라본다. 그의 힘을 보태 만든 천우맹의 도시를.
“그래야 내가 그 사람 앞에 당당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나는 대등한 관계가 되고 싶은 것뿐입니다. 그가 만들어 놓은 것을 그저 누리기만 하는 한심한 인간이 아니라.”
“…….”
“적어도 그 정도는 되어야 저도 청명 도장처럼 남궁이라는 가문을 다시 세울 수 있겠지요. 그처럼 살려 노력한다면, 그만큼은 못해도 반 정도는 하지 않겠습니까?”
“절대 소가주를 무시하는 의미는 아니지만, 사형의 반만큼이 쉬운 게 아니에요.”
“압니다. 그러니 노력하는 거죠.”
남궁도위가 빙긋 웃었다.
“……기분이 꽤 좋아 보이시네요? 귀찮은 일은 다 떠맡게 된 사람이?”
“그래 보입니까?”
“네.”
“음……. 그럴 겁니다.”
남궁도위가 순순히 인정하듯 고개를 끄덕인다.
“당연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죠. 지금까지 저는 청명 도장이 하는 모든 일에 우리도 끼워 달라 떼를 써 왔으니까요.”
“꼭 그런 건 아니죠. 도움이 많이 되기도 했고.”
“말씀은 감사하지만, 지금 남궁의 처지는 제가 가장 잘 압니다. 그간 화산이 남궁세가를 얼마나 많이 배려해 주었는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
조금 민감할 수 있는 말이었지만, 남궁도위는 전혀 개의치 않는 얼굴로 활짝 웃었다.
“그런데 이제야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생겼으니, 저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생겼으니 어찌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아무래도 제가 틀렸나 보네요.”
“음? 뭐가 말입니까?”
“소가주님이 좀 이상하게 변했다 싶었는데, 지금 보니 많이 이상해지셨네요.”
“그렇습니까? 하핫.”
남궁도위가 가슴을 활짝 폈다.
확실히 당소소는 틀렸다. 지금 그는 꽤 기분이 좋은 게 아니라, 무척 즐거웠다.
‘도장이 이런 상황을 방치할 리가 없지.’
아무리 바쁘다고 해도 아래부터 흔들리는 맹을 단속하지 않을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런 상황을 내버려 두었다는 사실이 의미하는 것은 단 하나다.
애초부터 이건 남궁도위에게 배정된 역할이었다는 것.
처음으로 청명이 그를 단순히 검 좀 쓰는 검수가 아니라, 자신의 역할을 해낼 수 있는 한 사람의 무인으로 인정한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오? 저기.”
“네?”
“청명 도장이 오십니다. 도장! 오랜만에 뵙습니다!”
저 앞쪽에서 이쪽을 향해 오고 있는 청명을 발견한 남궁도위가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청명도 그를 보더니 활짝 웃으며 이쪽으로 달려온다.
‘그런데 뭔가 좀…….’
당소소는 이 광경이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뭔가 빼먹은 느낌이랄까? 주루에서 술을 마시고 계산을 하지 않은 듯한…….
“도장. 이렇게 마중까지 나와 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일전에는 감사의 인사도 제대……. 꾸웨에에엑!”
그 순간, 환히 웃으며 달려오던 청명의 발바닥이 남궁도위의 화사한 얼굴에 여지없이 처박혔다.
철푸덕.
남궁도위가 그대로 뒤로 넘어가자 청명이 이를 갈며 그 위에 올라탄다.
“이 새끼! 너 잘 만났다.”
“도, 도장?”
얼굴에 커다란 발자국이 새겨진 남궁도위가 왜 이러냐는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내가 그때는 바빠서 못 패고 그냥 왔는데! 이 새끼가! 너 때문에 애들 다 뒈질 뻔한 거 알아 몰라? 흑룡왕이 누구라고 눈깔 뒤집고 돌진을 해! 미쳤어?”
“아, 아니 그건……. 그래서 감사하다고……. 그리고 이미 지난 일…….”
“감사하면 끝나, 이 새끼야?”
퍼억!
청명의 주먹이 단번에 남궁도위의 얼굴에 틀어박힌다.
“그리고! 대충 상처 꿰맸으면 빨리빨리 뛰어와서 도와야지! 뭐 한다고 이제야 어슬렁거리고 나타나! 이 새끼야, 흑룡왕 죽이고 나면 강호 생활 끝나냐? 네 할 일 다 했어?”
“그……. 빨리 오려고 했는데……. 환자라고.”
“환자? 어, 그래. 네가 왜 환자가 됐는지 잘 알겠네. 그냥 거기서 뒈지지! 뭐 한다고 살아서는! 죽어! 죽어, 이새끼야!”
“아악! 악! 도, 도장! 진정하시…….”
“입 다물어, 이 새끼야!”
청명이 남궁도위를 타작하기 시작하는 모습을 본 당소소가 맥빠진 얼굴로 혀를 찼다.
저럴 것 같더라.
환자를 저렇게 패도 되는 것인지 살짝 고민이 밀려 왔지만, 남궁도위는 맞을 만하다는 결론을 낸 당소소가 고개를 획 돌렸다.
‘그래도 영 헛다리 짚은 건 아닌가 보네.’
청명 사형은 친한 사람이 아니면 패지 않으니까.
“에휴, 하여간.”
당소소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저 멍청이들은 냅두고 사고나 보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