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ount Hua Sect RAW novel - Chapter 1646
1646화. 그래서 즐거우십니까? (5)
“앉아라.”
청문의 말을 들었음에도 청명은 우뚝 서서 꼼짝하지 않았다. 청문이 흘끗 그를 일별했다. 팔짱을 끼고 이쪽을 바라보는 모양새가, 불만이 차도 단단히 찬 모양이었다.
청문이 몰래 한숨을 쉬며 물었다.
“왜 그러느냐?”
“뭐 저런 것들이랑 말까지 섞고 있습니까? 사람 새끼들 아닌 걸 뻔히 아시잖아요.”
청명이 살짝 이를 갈아붙였다. 청문의 입에서 끝내 노골적인 한숨이 푹 새어 나왔다.
“말을 조심하거라. 밤말은 새가 듣고 낮말은…….”
“들으라지요.”
“…….”
“아니, 이 정도로는 잘 안 들릴 것 같은데 좀 더 크게 말해 봅니까? 온 세상 놈들 다 들으라고?”
청문은 골치가 아프다는 듯 앓는 소리를 내었다.
“알았다. 알았으니 앉아라.”
“장문사형!”
“앉아라.”
청문이 재차 말하니 청명이 툴툴대면서도 의자를 빼서 앉았다. 그 와중에 다른 장문인들이 앉았던 의자가 아닌 새 의자를 빼었다. 저들이 앉았던 곳에 몸이 닿는 것조차 싫다는 듯.
청문은 계속 구시렁대는 청명을 가만히 응시했다.
나이를 이만큼이나 먹고도 저리 기분대로 살 수 있다니, 그것도 나름 대단한 재주이지 않을까? 보통은 세상의 풍파에 서서히 깎이기 마련인데…….
아니, 아니지. 생각해 보면 이것도 깎여서 둥글어진 것이라고 봐야 한다. 어릴 적의 청명이었다면 다짜고짜 박차고 들어와 장문들의 머리통에 냅다 목검을 내리쳤겠지.
그 광경도 나름…….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크흠!”
순간 얼굴이 달아오른 청문이 크게 헛기침했다. 아무리 울화가 쌓였다지만 도사로서 해서는 안 될 생각이었다.
안색을 정비한 청문이 굳은 얼굴로 진지하게 청명을 불렀다.
“청명아.”
“…….”
“청명아.”
“……눼.”
뒤이어 나올 잔소리가 벌써 진절머리 난다는 듯 청명이 오만상을 찌푸렸다.
“장문인들께 너무 함부로 굴지 말아라.”
“…….”
“물론…… 나도 사실 알고는 있다.”
“뭘요?”
“저들에게 네가 짐짓 위협적으로 구는 게 사실은 네 존재감을 화살받이로 내세워 내 일을 좀 더 수월하게 해 주려는 배려라는 걸 말이다. 그 점에 대해서는 항상…….”
청문이 말을 멈췄다. 듣고 있던 청명이 ‘저요? 제가요? 제가 그런 일을 했었나요?’라는 표정을 짓다가 슬쩍 시선을 피해 버렸기 때문이다.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어……. 네, 뭐. 아시면 됐어요.”
“……그래.”
청문이 고개를 내저었다.
사실 청명이 의도했는지, 그 여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청명의 존재 덕에 그나마 청문의 숨이 좀 트인다는 점이다.
화산에 청명이 없었다면 지금의 청문은 족히 세 배는 더 어려운 싸움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저들이 그나마 청명의 눈치를 봐서 적당한 지점에선 타협해 주니 망정이지.
그때, 청명이 굳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이제 어쩌시려고요?”
“……음?”
“지원을 받아 내시겠다더니, 지원은커녕 비웃음만 사지 않았습니까. 계속 이렇게 저 잡것들 뒤치다꺼리나 하실 겁니까?”
청문이 쓴웃음을 흘렸다.
“잡것이라니. 모두 강호를 대표하는 문파들의 수장이시다. 그런 분들을…….”
“됐고요. 이러면 우리 화산만 계속 고생하는 것 아닙니까. 애새끼들 몸에 상처가 마를 날이 없는데!”
청문이 그 말에 입을 닫았다.
“그냥 물러나자니까요.”
“청명아.”
“저 망할 새끼들이 마교 놈들과 제대로 싸워 본 적이 없어서 이러는 겁니다. 그냥 정비한다고 통보하고 일선에서 빠져 버리면 나중에는 되레 우리 바짓가랑이를 잡으며 눈물 쏟게 될 거라니까요? 나보다 똑똑한 양반이 왜 이런 단순한 걸 못 해서 이럽니까?”
청문은 대답 대신 한숨을 쉬었다. 청명의 언성이 점점 높아졌다.
“일은 우리가 다 하는데, 왜 우리가 저 망할 새끼들이 잘난 체하는 꼴을 보고 있어야 합니까? 이럴 바에야…….”
“청명아.”
청문의 입에서 단호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짜증 어린 얼굴로 불만을 늘어놓던 청명이 입을 꾹 닫았다.
“나라고 그러고 싶은 생각이 없겠느냐? 나라고 저들의 행태에 울분이 치밀지 않겠느냐?”
“…….”
“나도 네 말대로 저들에게 본때를 보여 주고 싶다. 하지만 우리가 물러남으로 인해 고통받을 양민들은 누가 책임지겠느냐?”
“양민, 양민! 그놈의 양민!”
“청명아!”
“빌어먹을! 그게 왜 우리 책임입니까? 저놈들 책임이지! 싸움박질은 우리가 다 하고 저놈들은 구경이나 하고 있는데요! 아, 설마 우리가 더 잘 싸우지 못한 게 잘못입니까?”
청명을 보는 청문의 시선에 안타까운 감정이 스쳤다.
속에 차오르는 분을 어쩌지 못해 씩씩댄다. 금방이라도 자리를 이탈한 장문인들에게 달려가 악을 써 댈 것처럼.
하지만 청문은 청명의 이런 반응이 단순히 제 화를 주체하지 못해서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제자들이 다치고 상처 입는 게 속상하고 가슴 아프더냐?”
청명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런 게 아니라…….”
청문의 입에서 씁쓸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나도 그렇단다, 나도……. 가슴 아프기로 따지자면 나도 너 못지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하지만, 청명아. 우리가 울분을 풀기 위해 책임을 내팽개친다면 가족을 잃어야 할 이들이 있고, 그들의 아픔은 더욱더 클 거란다.”
청명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청문을 뚫어지게 보았다. 평생을 봐 온 그 얼굴에 드리운 비애(悲哀)를 읽을 수 있었다. 청명이 짜증 어린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해해 주겠느냐?”
“이해는 망할.”
청명이 연신 중얼중얼 욕지거리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청문에게 반발하려 들지는 않았다.
“이건 무학을 익힌 우리의 책임이다.”
“무학은 우리만 익혔답니까? 저 새끼들은 뭐 문사라도 된답니까?”
“저들도 곧 제 역할을 해 주어야겠지.”
“돌겠네, 진짜.”
답답함을 이기지 못한 청명이 두 손으로 얼굴을 거칠게 문질렀다.
“아니, 장문사형! 저 새끼들을 믿습니까? 저 새끼들이 지금까지 한 짓을 보고도 아직 믿으시냐고요!”
“믿음이라…….”
청문이 중얼거리듯 되뇌더니 한숨과 함께 안색을 굳혔다.
“마교는 강하다.”
“…….”
“직접 상대하고 있는 네가 가장 잘 알겠지.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마교가 아직 전력을 모두 전장에 투입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 말에는 청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교가 진심으로 나서기 시작한다면 우리만으로는 막아 낼 수 없다. 전 중원의 힘이 모조리 동원되어야 상대해 볼 수 있겠지.”
“……그렇죠.”
“하지만 그 전에 우리가 반목한다면 어찌 되겠느냐? 제대로 싸워 보기도 전에 패하고 말 것이다. 모든 것이 끝장이지.”
“…….”
“저들 역시 그 사실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은 어쩔 수 없이 움직여야 할 때가 온다. 나는 그 시기가 오기 전에 저들과의 감정의 골이 깊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야.”
청명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맞죠. 장문사형의 말이 다 맞겠죠.”
“…….”
“그 망할 관계를 유지하고 양민의 안녕을 도모하는 책임을 왜 우리가 다 뒤집어써야 하는가만 차치하면 다 맞는 말이죠. 전부 다.”
“그리 길지 않을 거란다.”
청문이 고개를 내저었다.
“놈들의 준동(蠢動)이 심상치 않다. 무엇을 노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곧 저들도 제대로 공격을 준비할 거다. 그때가 되면 전쟁이 끝난 뒤 같은 건 생각할 수도 없게 될 거다.”
“…….”
“그러니 조금만 더 참자꾸나.”
말없이 빤히 청문을 바라보던 청명이 갑자기 제 머리를 벅벅 긁어 대었다.
“그냥 내가 뒈지고 말지! 대답이나 하십쇼. 그래서 정말 저 새끼들을 믿는 겁니까?”
청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믿는다.”
“아니, 장문사형!”
“저들이 우리를 위해 싸워 줄 거라고는 믿지 않는다. 저들이 우리를 위해 측은지심을 발휘해 줄 거라고도 믿지 않는다.”
“…….”
“하지만 저들 역시 파멸을 바라지 않을 거란 걸 믿는다. 패배를 원하지도 않는다는 걸 믿는다. 그렇기에 더는 물러날 수 없을 때가 온다면 최선을 다해 싸울 것은 믿는단다. 나는 그저…….”
청문의 얼굴에 단호한 의지가 어렸다.
“때를 기다릴 뿐이란다.”
무거운 침묵이 둘 사이에 내려앉았다. 청명이 한동안 청문을 응시하다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아니면요? 저 새끼들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지금처럼 군다면요?”
“…….”
“저 망할 새끼들이 끝까지 제 안위나 처돌보고, 겁을 집어먹어 엉덩이를 뺀다면요? 사형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한심하고 같잖은 것들이라면요? 그때 가서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후회하시렵니까?”
“그럴 리는 없다.”
“어떻게 장담합니까? 저놈들이 지금까지 한 짓거리가 있는데!”
“내가 그리 만들 것이다.”
귀가 의심될 만큼 단호한 목소리에, 청명은 일순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잠시 후, 청문의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피어났다.
“그러니 우리 조금만 더 참자꾸나, 청명아.”
“…….”
“저들을 믿지 못하겠다면 나를 믿거라. 나는 반드시 훌륭한 인간만이 도리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이기적이고 한심한 인간도 지킬 수 있기에 도(道)인 것이란다.”
청명의 입에서 커다란 탄식이 흘러나왔다.
“말은 잘해요, 말은.”
그는 탁자에 올려 두었던 검을 잡아 들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복잡한 건 모르겠고, 여하튼 저는 지금까지처럼 싸우면 된다는 거죠?”
“…….”
“버틸 수 있는 만큼은 버틸게요. 그런데 장문사형도 아셔야 하는 게, 나라고 계속 버틸 수는 없어요.”
“그래. 알고 있다.”
“여하튼 말은……. 끄응.”
청명이 더 입씨름하기 싫다는 듯 고개를 휘휘 내저으며 문으로 향했다.
“청명아.”
“예?”
“저들을 너무 미워하지 말거라.”
굳은 얼굴로 돌아보는 청명을 향해 청문이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들 역시 제 문파를 위하는 것뿐이란다. 우리가 화산을 위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 방식이…… 그 방법이 우리와는 조금 다른 것뿐이다.”
“…….”
“제 문파를 사랑하니 겁이 나는 것이고, 제자들을 아끼니 나서고 싶지 않은 거란다. 그 방식이 옳다 하긴 어려워도, 제자들을 아끼는 마음은 우리와 다르지 않단다.”
“문파…….”
“그래. 그러니 너무…….”
“모르겠습니다, 사형.”
청명이 조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사형은 어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사형처럼 화산을 대단히 아끼는 사람은 아니라서요.”
“…….”
“사람들이 다들 사형 같다면 사형의 말이 옳겠지만, 사람들이 다 저 같다면 사형의 말은 틀릴 겁니다. 그저 그렇지 않기를 바라지요.”
청명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홀로 남은 청문은 청명이 남긴 말을 곱씹으며 느리게 눈을 감았다.
‘무겁구나.’
청명 혼자서는 이길 수 없다. 화산만으로는 이길 수 없다. 결국은 저들이 힘을 더해 주어야 한다. 강호의 모든 힘이 하나로 모여야 마교를 상대할 수 있다.
누군가는 그 중심을 지켜야 한다. 그게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자리일지라도.
‘도의…….’
청문이 기대하는 건 오직 그 하나, 사람이면 누구라도 지니고 있을 마음이었다.
* * *
눈을 뜬 청명은 천장을 오래도록 보았다.
멍하니 꿈을 되새기다 무심결에 손끝을 눈에 가져가니 축축한 느낌이 났다.
청명이 마치 무언가를 되뇌는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사형…….”
묻고 싶었다. 언제고 다시 청문을 만나게 된다면…….
‘사형은 끝까지 자신을 믿었습니까?’
어쩌면…… 그 대답은 청문을 위해서가 아니라 청명을 위해 필요할지도 모른다.
똑똑.
그 순간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매로 거칠게 눈가를 훔친 청명이 몸을 일으켰다.
‘옛 감상 따위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야.’
지금 그가 처한 상황도 과거 못지않으니까. 아니, 어쩌면 더 지독하니까.
그때의 청명은 청문을 믿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이들이 그때의 청명이 청문을 믿었던 것처럼 청명을 믿고 있다.
그러니 지금은 주어진 현실과 싸워야 할 시간이다.
청명은 머리맡의 검을 꽉 쥐고 침상에서 내려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