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ount Hua Sect RAW novel - Chapter 1648
1648화. 빨리 찾아봐, 빨리. (2)
“빨리 갑시다, 좀!”
“아, 알았다고!”
조걸의 거듭되는 재촉에 윤종이 짜증스럽게 답하며 땅을 세게 박찼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혜연이 사람을 팼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아니, 애초에 심각함을 따지기 이전에…….
‘이게 가능은 한 일인가?’
달려와 소식을 전한 이가 남궁도위가 아니었다면, 당장 코웃음을 치고 무시했을 것이다. 그만큼 벌어지기 힘든 일이니까.
빠르게 내달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커다란 연무장의 광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크게 원형으로 연무장을 둘러싼 사람들이 있었고, 그 중앙에 몇몇이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사이에는 혜연이 양손을 내린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어?”
“……지, 진짜?”
이건…… 누가 봐도 혜연이 저 누워 있는 이들을 공격해 쓰러뜨린 상황이 아닌가?
경악한 윤종과 조걸, 그리고 백천이 모여 있는 이들의 머리 위를 지나 연무장으로 훌쩍 뛰어내렸다.
“스님!”
“이, 이게 무슨 일입니까?”
눈을 감고 불호를 외던 혜연이 그들의 등장에야 눈을 떴다. 커다랗고 늘 순하던 눈에 침울한 기운이 가득했다.
“오셨습니까.”
백천은 빠르게 쓰러진 이들을 훑어보았다.
‘이건…….’
그냥 대련하다 쓰러진 흔적이 아니다. 제대로 된 공격에 부상을 입고 의식을 잃은 상황이다.
쓰러진 이의 입가에 흐르는 핏줄기를 보는 순간 백천의 피가 빠르게 식기 시작했다.
“스님.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혜연은 자초지종을 묻는 백천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고개를 내저으며 딴소리를 했다.
“제가 죄를 지었습니다.”
“아니, 스님!”
“마음에 든 울화가 다 낫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평정을 잃었습니다. 죄를 청하겠습니다. 포박하시지요.”
“포, 포박이라니요!”
백천이 아연실색했다.
하지만 ‘죄를 지었다’라는 혜연의 발언을 무작정 부정할 수도 없다. 혜연은 부당주라는 직위를 지녔지만, 그 말이 아래 소속된 당원들을 구타해도 되는 권한을 가졌다는 의미는 아니므로.
‘이, 이거…….’
백천의 얼굴이 한층 심각해졌다.
이 사건이 어쩌면 생각보다 더 크게 번질지도 모른다는 직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게, 쓰러진 이들의 의복이 가지각색이었다. 이는 혜연이 여러 문파의 제자들을 동시에 구타했다는 뜻이다.
강호에서 타문의 제자에게 손을 댄다는 건, 해당 문파 전체와 대적하겠다는 선언과 다름없다.
아무리 한 맹에 소속된 이들이고, 한 당에 소속된 이들이라지만, 이 상황을 너그러이 이해해 주려 하겠는가?
“스님. 이러지 마시고…….”
“부탁드립니다, 백천 시주.”
혜연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백천이 단호하게 말했다.
“……죄를 지었다면 당연히 벌을 받아야겠지요. 천우맹에서는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시시비비를 가리기 전에 다짜고짜 죄를 묻지 않는 것 역시 천우맹에서 당연합니다. 먼저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를 반드시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순간 혜연의 입에서 짧은 탄식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그뿐, 혜연은 이곳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할 생각이 없다는 듯 입을 다물어 버렸다.
답답해진 백천이 다시 한번 닦달하려는데, 상황을 지켜보던 이들 중 하나가 외쳤다.
“사정이라고 할 게 뭐가 있습니까?”
백천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저자! 아니……. 부당주께서 논의하시다가 말고 갑자기 화를 내며 다른 이들을 공격했습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백천의 얼굴이 굳어졌다.
여기저기서 성토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맞습니다. 다른 이들은 그런 부당주를 말리려다가 말려든 것뿐입니다! 명백히 부당주가 먼저 공격했습니다!”
“반드시 죄를 물어야 하외다!”
이 와중에도 혜연은 창백해진 안색으로 불호를 욀 뿐, 딱히 반박하지 않았다.
‘이런…….’
백천의 얼굴이 절로 난처해진다.
이래선 곤란하다. 이런 흐름으로 간다면 어쨌든 혜연을 끌고 가는 모양새를 취하지 않을 도리가 없어진다.
하지만 그리되면 혜연의 입장은 또 어찌 된다는 말인가? 그런 꼴을 당하고도 부당주로서의 권위를 세우며 이들을 이끌 수 있을까?
그렇다고 그저 묵살하고 넘어가기에는 상황이 너무 좋지 않고…….
그 순간 윤종이 냉정한 눈빛으로 물었다.
“무슨 논의였습니까?”
“예?”
“일이 벌어지기 전에 논의가 있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게 무슨 논의였습니까?”
“그게 지금 중요합니까?”
“중요하지 않은 거라면 말하지 못할 이유도 없지요. 말씀해 주시기 어렵습니까?”
“그건…….”
백천이 윤종의 도움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건 들어 봐야 한다.
윤종의 눈빛에 눌렸는지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침음하던 이가 별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소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소림?”
그 말에 윤종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그냥 그런……. 쯧.”
말을 하던 이가 내친김이라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애초에 이 사태를 초래한 게 다름 아닌 소림 아닙니까. 그런 마당에 승포 입은 이의 말을 뭘 믿고 따르냐는 이야기가 조금 나온 것뿐입니다.”
“……지금 뭐라고……?”
“우리가 뭐 틀린 말 했습니까?”
백천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바라보자, 시선을 받은 이가 욱하여 소리쳤다.
“소림이 저지른 일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었는데! 그 소림의 제자가! 그것도 방장의 총애를 한 몸에 받던 이가 무슨 낯짝으로 사람들을 이끈단 말입니까! 그리고 우리가 그런 사람을 어떻게 믿고 따릅니까? 무슨 꼴을 당할 줄 알고.”
“…….”
“막말로, 지금 저자가 그 방장이랑 내통하고 있지 않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
“이 새끼가 말이면 다인 줄 아나!”
“걸아!”
윤종이 조걸의 어깨를 강하게 잡아당겼다. 그러지 않으면 당장 검을 뽑아 달려들 기세였다.
“놔 보십시오, 사형! 저 새끼가 지금 뚫린 입이라고……!”
“시끄럽다! 그 입 닫아라!”
“이…….”
조걸은 마지못해 달려들기를 멈추었으나 이를 뿌득뿌득 갈며 말을 꺼낸 이를 노려보았다. 그 살기에 겁먹은 이가 뒤로 주춤 물러섰다.
백천은 조걸처럼 흥분하지 않았지만, 눈빛이 한껏 차가워졌다.
“보통 그런 걸 두고 ‘논의’라고 합니까?”
“…….”
“그저 꼬투리 하나 잡아 사람을 몰아간 것뿐이지 않습니까?”
“그게 뭐 잘못됐소?”
“……뭐라고요?”
몰릴 대로 몰리니 그는 되레 악에 받친 듯 큰소리치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 말이 틀렸느냐고 물었습니다.”
“당연히 틀렸지, 이 새끼야! 혜연 스님이 어떤 사람인데 내통 같은 소리를 처지껄이고 있어! 아가리를 콱 찢어 버릴…….”
“그만하라 했잖으냐!”
윤종이 타박하며 조걸의 어깨를 다시 한번 콱 잡았다. 백천이 깊게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혜연 스님은 맹에서 보증하는 이입니다.”
“……하, 하지만……!”
“그런 이를 의심한다는 건 결국 맹을 의심하는 일이고, 이 일을 결정한 장문인들과 맹의 지도부를 모조리 무능한 이로 몰아가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장문인들이라는 말까지 나오니 큰소리치던 이의 얼굴이 순간 창백해졌다.
“그, 그런 의도는 아니었소!”
“하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는 아시겠군요.”
이젠 정말로 대답이 궁해졌는지 짧은 침묵이 이어졌다. 주춤대던 이가 슬그머니 말을 돌리려던 참이었다. 여태 침묵하던 다른 이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지금 그게 중요합니까?”
지척에 있던, 제갈세가의 일원으로 보이는 이가 싸늘하고 오만한 어투로 끼어들었다.
“부당주께서는 지금 본질을 호도하고 계십니다. 발제한 이들의 논리가 틀렸더라도, 설령 그게 좋은 의도가 아니었다고 해도, 결국 중요한 사실은 저 스님께서 언쟁 끝에 사람들을 공격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 말에는 백천도 한순간 말문이 막혔다.
“여기서 잘잘못을 논하지 않는다면, 논쟁에서 이겼을 시 상대를 참해도 된다는 말과 뭐가 다릅니까? 맹이 맹일 수 있는 이유는 맹규와 법도에 따라 모든 일이 처리되기 때문 아닙니까? 개인이 사사로운 감정대로 맹도에게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면 저 간악한 사파 무리와 다를 게 무엇입니까?”
백천의 얼굴에 난처한 기색이 스쳤다.
틀린 말이 없다. 더군다나 주변의 다른 이들도 이 제갈가 사람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대고 있다.
“……그래서 원하시는 게 무엇입니까?”
“좀 이상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저희가 바라는 게 있겠습니까? 그저…….”
말을 한 이, 제갈연(諸葛演)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이 모든 일이 맹규에 따라 공명정대하게 처리되길 바랄 뿐입니다. 죄지은 이가 벌을 받는 게 합당한 맹의 처사 아니겠습니까?”
“저 새끼가 끝까지……!”
“걸아!”
하지만 이렇게 분노하는 조걸도 속이 초조하고 난감하긴 마찬가지였다. 제갈연의 말이 그리 틀리지 않았다는 걸 그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참지 못하고 무력을 쓴 건 혜연의 잘못이다. 이를 덮어놓고 옹호하기란 어렵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겠습니까?”
백천의 말에 제갈연이 작게 코웃음을 쳤다.
“문파의 벽을 허무시겠다더니, 막상 화산 분들은 친분의 벽이 무척이나 중요하신가 봅니다?”
“…….”
“힘 있는 분들이 그리하겠다면 힘없는 제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그저 확인해 보지요. 맹규가 중요한지, 아니면 친분이 중요한지.”
그 말에 연무장에 모인 모두의 시선이 백천에게 쏟아졌다.
모두 아는 것이다. 이곳에서 결정을 내릴 이가 누구인지. 책임을 질 이가 누구인지.
“어쩌시겠습니까?”
심지어 지나던 이들조차 무슨 일인지 기웃대며 몰려든 상태였다. 수많은 시선 속에서, 혜연이 느리게 입을 뗐다.
“……도장. 저를 포박해 가십시오. 지금은 그게 맞습니다. 모든 것이 제 잘못입니다.”
“…….”
“어서, 그리해야 합니다.”
백천은 저도 모르게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그러다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갈연은 응당 그리될 일이 그리되었다는 듯 담담하게 말했다.
“예. 당연히 그리해야지요. 그래야만 옳게 된 맹이 아니겠습…….”
“지랄한다.”
“……뭐라?”
“지랄한다고.”
제갈연이 이를 악물고 고개를 돌렸다. 난데없이 시비를 걸어온 이의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어느새 제 옆에 쪼그려 앉아 있는 이의 얼굴을 확인한 그는 화를 낼 겨를도 없이 허옇게 질려 버렸다.
“초, 총……사?”
청명이 특유의 뚱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듣자 듣자 하니, 별 개소리를 다 듣겠네.”
“……예?”
“야.”
“……왜, 왜 그러시…….”
“너 맹규 다 알아? 제대로 본 적은 있어?”
“……그, 그건…….”
“내가 그걸 뿌린 적이 없는데, 네가 뭘 어떻게 알고 맹규에 따라 공명정대 어쩌고 하면서 입을 놀려? 너 설마 맹주실에 침입해서 훔쳐보기라도 했냐?”
제갈연이 억울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근데 왜 입을 털어, 이 새끼야!”
쾅!
“아악!”
청명이 앉은 자세 그대로 제갈연의 정강이를 걷어차 버렸다. 제갈연은 저항도 못 하고 주저앉아 바닥을 굴렀다.
이윽고 청명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주 지랄들을 하고 계셔. 엉? 뭐 벌을 받아?”
그가 주위를 쭉 훑어보니 다들 시선이 마주칠세라 격하게 고개를 수그렸다.
조걸이 윤종을 향해 작게 속삭였다.
“사, 사형. 저 새끼 눈 돌아갔는데요?”
“나도 봤다.”
“그, 말려야 하지 않습니까?”
“……왜?”
“어…….”
윤종과 백천, 혜연, 그리고 청명을 번갈아 보던 조걸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뭐. 굳이 말릴 필요까지야…….
“그래, 벌. 나도 그거 좋아하지.”
청명이 히죽 웃었다.
“어디 벌 한번 받아 보자, 이 새끼들아.”
희번덕거리던 눈이 완전히 까뒤집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