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ount Hua Sect RAW novel - Chapter 1652
1652화. 좋은 날이군. (2)
“버, 벌써?”
“사패련이?”
“어디로!”
“장일소가 직접 움직인 겁니까?”
사방에서 거의 동시에 말이 터져 나왔다. 조금 들뜬 듯했던 회의실의 분위기가 삽시간에 일변했다.
쏟아지는 시선 속에서, 임소병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가 직접 움직였습니다.”
몇몇 이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윤종 역시 저도 모르게 가슴께를 움켜잡았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압박감이 찾아왔다.
장일소가 직접 움직였다. 그 말의 의미를 모를 이가 여기에 있겠는가.
“어디로 향했답니까?”
“아직 목적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다만 북상하는 방향으로 보아…….”
임소병의 얼굴이 살짝 굳는다.
“목표는 하남으로 보입니다.”
“하남? 어째서?”
당군악이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을 뻔히 알 텐데 무주공산이나 다름없는 하남부터?”
“무주공산은 아니죠.”
“음?”
임소병이 깔끔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잊으셨습니까? 놈들은 이미 한번 숭산을 노렸습니다. 하지만 세가 불리하단 걸 깨닫고 물러났지요. 그 말인즉, 놈들에게 소림의 잔당을 정리하겠단 확연한 의지가 있다는 겁니다.”
소림에 지원 갔던 이들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혈교…….’
당시를 떠올린 백천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때 그가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했다면 소림은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곳이 되었을지 모른다. 운 좋게 한차례 공세를 막아 냈다지만, 저 사패련이 한번 놓친 먹이라 해서 쉽사리 포기할 리 없었다.
“그럼 놈들의 노림수는 소림입니까?”
“장일소의 집요함을 고려해 볼 때, 가장 먼저 노릴 곳은 당연히 그곳일 겁니다.”
“……으음. 이곳을 노릴 줄 알았거늘.”
현종이 중얼거리자 임소병이 고개를 내저었다.
“장일소는 상대의 강한 곳을 노리는 이가 아닙니다. 상처 입은 곳을 집요하게 후벼 파는 인간이지요. 이미 대비를 마친 곳부터 공격해 올 리가 없습니다.”
이에 몇몇이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장일소가 보여 준 모습을 생각해 보면 확실히 일리 있는 주장이다.
현재 가장 극심한 상처를 입은 곳은 단연 소림 아니겠는가. 물론 거의 멸문해 버린 곳도 있지만, 그들은 이미 전력에 포함해 생각지 않고 있다.
장일소가 가장 군침을 흘릴 곳은, 당연히 소림이다.
“그럼 어찌해야 합니까?”
“무슨 당연한 질문을 하십니까? 마땅히 소림을 지원해야지요. 사패련 놈들이 소림을 집어삼키는 걸 그냥 구경만 할 겁니까?”
“하지만…… 소림은…….”
그때까지 내내 침묵을 지키던 제갈자인이 입을 열었다.
“이곳에 계신 모두, 소림을 향한 감정이 좋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수런거리던 이들이 입을 다물었다.
“저 역시 지금은…… 그들과의 감정이 그리 좋다고 할 수 없을 겁니다.”
제갈자인이 여럿과 천천히 눈을 마주쳤다.
“하지만 소림을 이대로 멸문하게 방치할 수는 없습니다. 단순히 상징으로서의 의미가 아닙니다. 지금 침묵하고 있는 소림의 무승들도 정파의 훌륭한 전력입니다. 그런 이들을 잃는다는 건 손해가 너무 큰 결정입니다.”
“…….”
“천우맹이 정말 몇몇 문파가 삼삼오오 모여 제힘을 과시하는 곳이 아니라 천하와 강호를 위하는 곳이라면, 묵은 감정은 접어 두고 소림을 지원해야 할 것입니다.”
잠시 말을 멈추었던 제갈자인이 다시 말을 이으려 할 때, 현종이 가볍게 손을 들어 제지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더 말씀하실 필요 없습니다.”
“맹주님, 하지만…….”
“저는 단 한 번도 소림을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 그들 역시 우리와 함께 싸워야 할 강호의 일원 아니겠습니까?”
생각지도 못한 발언이었다. 현종을 설득하려던 제갈자인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이곳에서 소림에 가장 감정이 안 좋을 사람을 고르라면 제갈자인은 두말없이 현종과 청명을 고를 것이다.
감정의 격함을 논하자면 청명이 위일지도 모르겠지만, 소림에 가진 억하심정으로 따지자면 현종만 한 이가 또 있겠는가.
그런데 그런 현종이 일말의 고민도 없이 소림을 구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심지어 백천이 현종에게 힘을 실었다.
“맹주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우린 이미 한차례 소림을 도왔습니다. 그런데 두 번 못 할 건 없지 않습니까?”
“끄응……. 사숙. 이제 거긴 법정……. 아니, 방장도 있을 텐데, 우리가 굳이…….”
“이런저런 조건을 따질 때가 아니다. 우리는 사패련과 싸우려는 거지, 천우맹과 천우맹이 아닌 이들을 나누려는 게 아니잖으냐?”
“……그렇긴 하죠.”
괜히 말을 꺼냈다가 본전도 찾지 못한 조걸이 시무룩해져선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그때.
“자, 잠시만. 지금 소림을 도우러 가겠다는 겁니까?”
임소병이 백천에게 믿기지 않는 말을 들었다는 듯 물었다.
백천이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당연한 일 아닙니까?”
“당연이요? 지금 당연이라고 하셨습니까?”
“그야…… 소림이 위험하지 않습니까.”
백천은 자신이 뭘 잘못 생각했냐는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딱히 눈치를 주거나 대답해 주는 이는 없었다.
“아니, 장문대리!”
답답하다는 듯 임소병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지금 소림을 도우러 가면 위험한 건 소림이 아니라 바로 우립니다, 우리!”
“……아니. 그게 뭔?”
“장일소 그놈이 팽가와 공동을 어떻게 짓밟았는지 벌써 잊었습니까?”
그 말을 들은 백천의 입이 순간 절로 닫혔다.
“놈이 노린 건 흔들리는 지휘체계였습니다. 다시 말해, 그놈은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세력을 상대하는 데 도가 튼 놈이란 의미지요. 그런데 우린 지금 어떻습니까?”
“그야…….”
아까와는 달리 백천의 목소리가 기세를 잃고 사그라졌다.
“당장 오늘 부당주에게 항명한 사람들을 뇌옥에 처박은 판입니다. 장일소가 어린아이 다루듯 가지고 논 팽가나 공동도 우리보다는 개판이 아니었단 소립니다.”
하나하나 맞는 말이다. 백천의 어깨가 조금 더 움츠러들었다.
“당장 부당주들이 당원 하나 제대로 통제 못 하는 와중에 장일소 놈과 싸우러 가면 결과야 안 봐도 빤하지요.”
“장일소가 우리 상황을 다 아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백천을 도와 항변한 건 조걸이었다. 임소병의 시선이 그에게로 꽂혔다.
“왜 모를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예?”
“정말 놈이 모를 것 같습니까? 우리는 놈들이 어찌 움직이는지 훤히 보고 있는데, 놈들은 우릴 못 보고 있을 것 같습니까?”
“그, 그건…….”
“어쩌면 장일소가 지금 움직인 것도 우리의 상황을 지켜보고 내린 결론일지도 모릅니다. 지금 어설프게 하남으로 달려간다면 호랑이 아가리에 머리를 들이미는 꼴입니다.”
“으으음.”
고민에 잠긴 당군악이 앓는 소리를 흘렸다.
“썩 유쾌하지 않지만…… 확실히 녹림왕의 말에 일리가 있군.”
“오합지졸 다루는 데야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니 신뢰가 간다.”
맹소의 말에 당군악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리고 임소병에게 물었다.
“그럼 어찌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며칠이라도 시간을 벌어야 합니다. 오늘 이곳에서 내린 결론이 맹도들에게 전해지고, 그리하여 저들이 진정으로 경각심을 가지게 될 때까지.”
“며칠이라면…….”
“못해도 사흘은 더 버텨야 합니다. 그것도 최소입니다.”
“사흘이라면 저 사패련이 소림을 짓밟고도 남을 시간이네.”
임소병이 코웃음을 쳤다.
“어째서요?”
“음? 그건 무슨 말인가?”
“안 밟히면 되지 않습니까. 소림에 급보를 보내 당장 숭산에서 도망치라 하십시오.”
당군악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그, 그건…….”
“적이 오는데 뻔히 거기서 기다리고 있는 놈이 멍청한 거지. 노림수가 뻔하다면 피해 버리면 그만 아닙니까?”
“소림이 그렇게 하겠는가?”
“그렇게 안 하면 자기들 잘못입니다. 우린 책임이 없는 거지요.”
당군악은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임소병을 응시했다. 뭐랄까, 이럴 땐 확실히 느껴졌다. 사고방식이 다르다고 해야 하나.
사파 특유의 자유분방한 생각은 당군악으로서는 따라가기 어려웠다.
임소병은 평소보다 훨씬 완강했다.
“어쨌든 절대 안 됩니다. 저 망할 장일소 놈이 이미 지휘체계의 혼란을 노려 소림과 공동, 팽가까지 박살 냈는데, 그걸 보고도 같은 짓을 반복하는 건 세상 다시없는 멍청이나 할 짓입니다.”
“…….”
“소림도 쓴맛을 한번 봤으니 이번에는 순순히 물러날 겁니다. 안 그렇습니까?”
임소병이 긍정을 강요하는 듯한 눈으로 혜연과 백천을 쏘아보았다.
백천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하긴…….”
그 꽉 막힌 법정이라면 모를까, 혜방이라면 어떻게든 적을 피할 방법을 찾을 사람이었다.
“뭐 하십니까! 빨리 전갈을 보내십시오! 이왕 이리된 거 사패련 놈들이 하남까지 헛걸음할 며칠 동안 우리는 그 시간을 알뜰히 써먹어야 합니다! 부당주와 당주들께서는 당장 당원들을 모아 철저하게 굴려 주십시오.”
모두가 홀린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는데, 지금껏 침묵하던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이해가 조금 안 가는데.”
“음?”
청명이었다.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지?”
배석한 이들이 서로 눈치를 살폈다. 청명이 한 말을 선뜻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의 대표 격인 현종이 물을 수밖에 없었다.
“……무슨 소리더냐, 청명아?”
“놈들이 소림을 노릴 테니 소림더러 달아나라고 하면 된다는 게 결론인 거죠?”
“그렇……지?”
“달아나지 않으면요?”
현종이 의아한 눈으로 청명을 바라보았다. 이 아이가 왜 했던 이야기를 다시……?
하지만 청명은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왜 소림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것에 대해선 지금까지 이야기하지 않았느냐?”
“그러니까. 왜 결론이 ‘사패련이 소림을 노린다’가 되는 거냐고요.”
“그야 놈들은 하남으로 간다고 했고, 하남에는…….”
그 순간, 현종은 번뜩 스치는 생각에 말을 다 잇지 못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인지 얼굴을 굳혔다.
하남을 대표하는 문파는 당연히 소림이다. 그러나 강호에 몸담은 이들이라면, 아니…… 강호를 잘 모르는 이들이라도 아는 사실이 있다.
하남에 있는 문파는 소림뿐만이 아니다.
그 소림과 비등하게 명성 높고 강한 문파가 그곳에 있다.
“설마…….”
“네.”
청명이 어둑한 눈빛으로 현종을 보았다.
“놈들의 위치에서 소림으로 가려면 무한을 거쳐야 해요. 그놈들이 무한을 멀쩡히 두고 갈 리는 없잖아요.”
“자, 잠시만. 거긴 지금 봉문을…….”
“설마 놈들이 봉문한 문파라고 내버려둘 거라 보는 건 아니죠?”
청명이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그 전에. 설령 사패련 놈들이 그러려 한다 해도, 그 사람이…… 놈들을 그냥 보내려 할까요?”
그 말에 모두가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사패련에 원한을 품은 문파는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문파가 아닌 사패련, 그리고 장일소 그 자체에게 가장 원한이 깊은 사람을 꼽으라면 절대 빠질 수 없는 이가 있다.
그가 지금 무한에 있다.
“소림이라면 달아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들’은 달아나지 않을 거예요. 한 번은 가능했어도 두 번은 절대 그럴 수 없을 테니까.”
사패련의 준동에 모든 명성을 잃은 사람.
이 순간까지 제 뼛골을 씹는 심정으로 버텨 왔을 이가.
* * *
“장……문인.”
단정히 무복을 갖춰 입은 이가 정좌한 이를 조심스레 불렀다.
그러나 관운장처럼 긴 수염을 기른 도인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잠시 고민하던 이는 도인이 듣고 있음을 가정하고 소식을 전했다.
“사패련이…… 패군이 하남으로 오고 있다고 합니다.”
그 순간 감겨 있던 도인의 눈이 천천히 떠졌다.
무색투명하게 느껴질 만큼 비어 있던 도인의 눈에 차디찬 북풍한설이 밀어닥치기 시작했다.
“패군이?”
“예.”
도인은 남들이 알아보기도 힘들 만큼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잃은 것을 되찾을 시간이구나.”
나직이 중얼거린 도인이 몸을 일으켰다.
칼날같이 싸늘한 기운을 풍기는 이 도인을 두고, 세상은 무당의 허도진인이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