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ount Hua Sect RAW novel - Chapter 1656
1656화. 나는 그런 멍청한 놈들을 좋아하지. (1)
“어, 어찌 되었습니까, 장문인?”
초조하게 기다리던 허산자가 허도진인을 보자마자 고함치듯 물었다. 하지만 허도는 그런 그를 잠시 응시하다 말없이 제 처소 안으로 발을 옮겨 버렸다.
“자, 장문사형!”
허산자가 화들짝 놀라 다시 불렀다. 그러고는 다급히 허도진인을 따라 처소 안으로 들어갔다.
“녀석들이 뭐라 합니까? 끝까지 고집을 부린 건 아니겠지요?”
“…….”
“장문사형! 뭐라 말 좀 해 보십시오. 정녕 그러겠다고 합니까? 장문사형께서 직접 말을 했는데도요?”
허산자의 눈에 두려움과 기대가 동시에 휘몰아쳤다. 그런 허산자를 빤히 바라보던 허도진인의 입에서 짧은 탄식이 새어 나왔다.
“그러겠다더군.”
“그, 그런……. 무슨 생각으로…….”
허산자는 순간 목이라도 졸린 사람처럼 눈을 부릅뜬 채 떠듬거렸다. 그러다 겨우 바닥에 붙였던 엉덩이를 벌떡 떼고 일어나며 외쳤다.
“제, 제가 가서 말해 보겠습니다. 아니! 당장 놈들을 때려눕혀서라도…….”
“소용없네.”
허산자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멈춘 채 멍하니 허도진인을 보았다. 허도진인은 무덤덤하다 못해 거의 허탈해 보이는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소용없을 거라네. 어떤 말도……. 그래, 어떤 말도 들리지 않을 거라네.”
“아니…….”
“옳은 말을 늘어놓으며 설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네. 아니, 어쩌면…….”
그 설득의 말조차 옳음에 있어 뒤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자신이 배운 것을 스스로 행하겠다는 이들을 대체 무슨 말로 설득해야 한단 말인가.
생각에 잠겨 있던 허도진인의 입가에 희미한 조소가 어렸다. 이건 세상 물정을 모르고 협의와 자존심을 지키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어린 제자들을 향한 게 아니었다.
입으로는 협의와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고 외치면서도 막상 위기만 닥치면 일단은 피해 입지 않는 게 중요하다며 꽁무니 빼기를 강요했던 자기 자신에 대한……. 지금까지의 무당에게 향하는 조소였다.
“그, 그래서 이대로 손을 놓자는 것입니까?”
“…….”
“장문사형! 정녕 저 아이들을 모두 죽이실 셈입니까? 저 녀석들을 모조리 사파의 칼날 아래 비명횡사하게 할 셈이냔 말입니다!”
이제 허산자는 거의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허도진인이 길게 숨을 내쉬며 오히려 물었다.
“그럼 어찌해야 하겠는가?”
“설득해야지요!”
“안 먹힌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럼 멱살을 잡아끌고 엉덩이를 걷어차서라도 말려야지요!”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애 취급을 하면서 말인가?”
“지금 그런 속 편한 말씀으로…….”
“그래서, 앞으로도 자라나야 할 무당의 제자들에게 제 뜻을 펼칠 기회를 앗아 가고, 나아가 사문 어른들의 희생으로 추잡하게 살아남았다는 낙인을 찍어 두자는 말인가?”
흥분해 있던 허산자의 눈이 흔들렸다. 동시에 눈빛엔 의문이 스쳤다. 영문을 모를 일이었다.
그가 아는 허도진인은, 제 입으로 뱉은 이야기를 행위로 옮기는 데 일말의 거리낌 없는 사람이었다. 무당을 위해서라면 제 목숨이든, 제자들의 목숨이든 언제든 내놓을 수 있는 이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래서 해결될 일이었다면 마땅히 그리했겠지. 그럼 다시 묻겠네. 이리 살아나고 나면 그다음에는? 그 뒤는 어찌할 텐가?”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만일 이걸로 전쟁이 끝난다면 응당 치욕을 씹어 삼키라 하겠지. 하지만 끝나지 않는다면? 그 뒤는 어찌해야 하겠는가?”
“그야…….”
곧장 입을 열었던 허산자가 순간 아차 싶은 듯 허도진인을 보았다.
그들이 이번을 버텨 내더라도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사패련과의 지독한 전투는 그 뒤로도 한참 이어질 것이다.
그럼 그때의 무당은 어찌해야 하는가?
복수를 위해 누구보다 앞장서 싸워야 하는가? 아니면 그때도 살아남겠다고 위험한 일을 남에게 미루며 슬그머니 발걸음을 뒤로 물려야 하는가?
“그…….”
허산자는 혀가 굳기라도 한 것처럼 선뜻 답하지 못했다.
마음 같아서는 전자를 택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전자를 택한다면 죽는 시간만 달라질 뿐, 결과는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마 무당은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감수해야 할 터.
후자? 후자를 택한다면 살아남는 건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쟁 내내 비겁하게 발을 뺀 무당이 전쟁 이후에도 정말 ‘무당’으로 불릴 수 있을까?
허산자의 두 눈이 어둡게 침전했다. 그러다 초조한 얼굴로 물었다.
“그게…… 그게 꼭 그리되지는 않을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정작 질문하는 그의 얼굴에도 자신감 같은 건 없었다.
“이미 선례가 있지 않습니까? 과거의…….”
“눈이 세 개인 사람들의 나라에서는 눈이 두 개인 이가 병신 취급을 받는 법이지.”
“……예?”
“그때는…… 모두가 눈이 셋이었으니까.”
허도진인의 입에서 조소가 흘러나왔다.
과거 마교대란 때와는 다르다. 그때는 화산을 제외한 모든 문파가 제 안위를 도모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니 화산만이 이상한 문파가 되고 끝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천우맹이 수많은 문파를 규합하여 정도를 걷겠노라고 천명한 지금, 문파의 안위를 위해 적에게서 달아난 무당이 과연 어떤 취급을 받게 될 것인가?
상황이 비슷하되, 또 완전히 다르다.
화산검협 청명이라는 걸물 하나가 전쟁에 휘말린 이들의 입장을 완전히 바꿔 놓고 만 것이다.
“그럼 녀석들은…….”
“아닐세.”
허도진인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 것까지 생각하고 결정한 것이 아니네. 그저…… 두 번은 달아나고 싶지 않다는 것이겠지. 검수로서, 무당의 제자로서, 그리고 협의를 지켜야 하는 한 명의 사람으로서.”
“…….”
“그 뜻을 무슨 말로 꺾을 수 있겠는가. 무당의 제자라면 온당히 그리 살아야 한다고 논하고 가르친 게 다름 아닌 나인 것을. 나는 직접 말하고 가르친 것을 스스로 행하지는 못하는 나 자신의 비겁함을 직면하고 있을 뿐이네.”
“그걸 두고 어찌 비겁하다고 하십니까? 그 모든 멍에를 짊어지고 스스로 목숨까지 내놓겠다고 하신 분을 누가 감히 비겁하다 욕할 수 있습니까! 장문사형은 절대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허산자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외쳤지만, 허도진인의 눈은 그저 빈 허공을 좇았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
그것이 수로 나누는 계산처럼 간명하다면 어려울 게 무엇이 있겠는가? 저마다의 옮음이 다르고, 저마다 그를 관철하는 방법이 다르기에 세상이 이토록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것이리라.
틀린 사람은 없다.
그저 저들의 ‘옮음’이 이제 허도진인의 ‘옳음’에 뒤지지 않을 만큼 커 버렸을 뿐. 허도진인은 그것이 더없이 자랑스러우면서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서글펐다.
“그, 그래서…… 정말…….”
“허산.”
“예, 장문사형.”
“제자들을 회유하게.”
“예? 그게 무슨?”
“개중에는 원치 않으면서도 분위기에 휩쓸려 목숨을 걸게 된 이들도 있을 걸세. 그런 이들이 없도록, 하나라도 더 회유하여 산을 빠져나가게.”
“사, 사형!”
“명맥은 이어야겠지.”
허도진인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허산자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런 이들을 모조리 끌어모아 봐야 몇이나 되겠는가? 그런 이들을 긁어모아 남은 것을 ‘무당’이라 칭할 수 있겠는가?
“정녕 방법이 없겠습니까? 어찌 이리 쉽게 포기하십니까?”
“…….”
“장문의 권위를 내세워 놈들의 뜻을 강제로 꺾어 버린다면! 그럼 저들도 도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 그럼 살 수는 있겠지.”
“하면 지금 당장이라도…….”
“하지만 그 순간 무당은 끝이네. 모두가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살아남는다고 해도 그때부터의 무당은 더는 무당이 아닐 것일세.”
허산자의 손이 잘게 떨렸다.
백 번이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저 말이 맞는다는 것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비겁자란 낙인이 찍힌 무당이 어찌 무당이 될 수 있겠는가.
비겁하게 목숨을 구걸한 이들이 어찌 조사들의 위패에 제를 지낼 수 있단 말인가.
“가게나.”
“사형…….”
“저들을 여전히 아이로 본다면 자네 말대로 그리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허도진인이 고개를 내저었다.
“스승으로서의 내 의무는 저들의 성장을 제대로 지켜보고 인정하는 것일세. 나 못지않은 도인이 된……. 아니, 벌써 나보다 나은 도인이 된 이들의 의지를 권위라는 압제로 꺾어 버릴 수는 없네.”
“…….”
“나는 저들의 곁을 지키려 하네.”
“사형!”
허산자가 속을 모두 긁어 낸 것처럼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하나 허도진인의 눈은 여전히 무겁도록 차분했다.
“이제 무당이 이어질 방법은 하나뿐.”
이젠 들끓는 살기 대신 정제된 의무감이 그 눈을 메우고 있었다.
“보여 주는 것일세. 무당이 어떤 문파인지 말이네. 감히 이곳을 노리는 이들에게, 지켜보는 세상에게, 그리고 우리의 선택을 확인하려 들 타문에게.”
“…….”
“검으로, 목숨으로, 그 의지로. 똑똑히 보여 주려 하네. 그럼 그 죽음이 거름이 되어 무당을 다시 피어나게 할 걸세.”
그 어느 때보다도 담담한 목소리였다.
그러나 허도진인의 무릎에 얹힌 손만은 그 내심을 감추지 못하여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는 제자들을 살리기 위해 모든 모욕을 뒤집어썼다. 그런데 이제는 그렇게 살린 제자들이 문파의 명예를 위해 죽는 꼴을 보게 되었다.
그 속을 대체 뭐라 표현할 수 있겠는가?
“움직이게나.”
“사형…….”
“어서!”
잠시간 정적이 흘렀다. 허도진인을 빤히 바라보던 허산자가 이내 정성껏 절을 올렸다.
“보중하십시오.”
그 길로,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을 빠져나갔다.
허산자가 사라진 자리를 멍하니 보던 허도진인이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이틀인가?”
아니, 어쩌면 하루일지도 모른다. 무당에 남겨진 시간을 헤아려 보는 것이다. 그러다 문득 늦은 깨달음을 곱씹게 되었다.
“그래서……. 그래서였군, 화산검협.”
사람을 그토록 아끼고, 희생을 그리 경멸하던 이가 왜 제자들을 살리려 한 그에게 분기탱천했던가.
화산검협은 알고 있었던 거다. 희생을 두려워해 물러선 이는 언젠가 반드시 더 큰 대가를 치른다는 사실을. 진정 제자들을 지키고 싶었다면, 제게 주어진 의무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이다.
이제야……. 그래, 이제야 알 것 같다.
“조금 더 일찍 알아야 했던 것을.”
나직이 읊조린 허도진인이 깊이 눈을 감았다.
이제 마냥 슬프지만은 않다.
저 무당의 제자들이 그보다 나은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므로. 저들은 그처럼 실패하지 않은 도인이라는 것을 확인했으니까.
설령 그 길의 끝이 절망이고 죽음일지라도…….
결국은 다시 피어날 것이다. 그 길의 끝에서 화려하게, 세상이 모두 볼 수 있도록 말이다.
“장문인.”
허도의 목소리가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그가 좇고 있는 건, 얼굴도 본 적 없는 누군가였다. 이미 백 년 전에 죽어 사라진 사람이며, 심지어 무당도 아닌 타문의 장문이었다.
“우리 무당도 다시 피어나겠습니까?”
기어코 다시 피어난 화산처럼, 그렇겠습니까.
허도진인이 아무리 눈을 감고 침묵을 지켜도,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 * *
“물러서지 않을 거란 말입니까?”
“그래.”
“아니, 대체 왜! 왜 그런 멍청한 짓을!”
“사람이니까.”
임소병은 도통 이해를 못 하겠다는 듯 청명을 뚫어지게 보았다. 청명이 어깨를 으쓱했다.
“멍청하니까 사람인 거야. 옳은 선택만 할 수 없으니 사람인 거고.”
“……하지만 무당입니다. 그런데 그게 무슨…….”
“그리고 나는 그런 멍청한 놈들을 좋아하지.”
할 말을 다 끝냈다는 것처럼, 청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둑하던 눈이 어느새 묵묵히 빛나고 있었다.
“간다.”
“예? 안 됩니다! 함정일 수도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청명이 되묻자 모두가 말을 잃었다. 청명은 임소병과 그를 바라봐 오는 모든 이들을 향해 단호히 말했다.
“함정이라면, 그 함정째로 부숴 버리면 돼. 저 멍청한 놈들이 그냥 그렇게 죽게 둘 수는 없으니까.”
검을 콱 쥐며, 청명이 씩 웃었다.
‘그렇죠, 사형?’
– 당연한 소리를.
그 대답이 귓가에 시원스레 들려오는 듯했다.
화산귀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