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ount Hua Sect RAW novel - Chapter 1668
1668화. 미래는 있을 테니까. (3)
“무, 물러나지 마라! 이 멍청한……!”
“아아아아악!”
추풍낙엽과도 같다.
평소라면 소나무가 가득한 이 산에서 쓰기에는 도통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겠지만, 지금만큼은 더없이 어울린다.
가파른 비탈을 따라 절벽을 우회한 이들이 말 그대로 바람 앞의 낙엽처럼 구르며 떨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천하에서 가장 부드럽고 유려한 무당의 검. 여기에 과거에는 없던 비정함까지 더해진 이상, 평범한 사파인의 무위로는 도무지 감당해 낼 수 없었다.
스르륵.
쾌속하지 않되 쾌속하며, 날카롭지 않음에도 날카롭다.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 개념을 검 끝에 담아 낸 무당의 검이, 비탈을 타고 오르는 적들을 사정없이 유린하고 베었다.
“아아아아악!”
또다시 비명이 터져 나오고, 목을 꿰뚫린 사패련도가 추락했다. 뒤따라 비탈을 올라오던 이들까지도 그 몸뚱이에 휩쓸려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이, 이런…….”
그 순간이었다.
파아아아앗!
흐르는 물처럼 부드럽게 적을 제압하던 무당의 검수들이 쏟아지는 폭포처럼 변화해 비탈의 사파인들을 덮쳤다.
“이 개 같은!”
아래에 있는 적을 상대하면서 몸에 회전도 주지 않고 그대로 뛰어내리다니! 이는 하체를 상대에게 고스란히 내어 주는 멍청한 짓 아닌가.
아무리 무당이 강하다지만, 저런 대책 없는 돌진에 당할 허수아비는 이곳에 없다. 두 눈에 핏발을 세운 사패련도들이 발작적으로 도와 창을 내지르며 강하하는 무당 검수의 하반신을 노렸다. 하체에 커다란 바람구멍을 내 버리겠다는 기세로.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우웅.
내뻗은 창이 다리에 닿으려는 순간, 강하하던 무당 검수의 몸이 허공에서 그대로 멈췄다. 아니, 되레 두둥실 떠올랐다.
“뭐…….”
투우우웅!
허공에서 비틀리듯 움직인 검이 창을 부드럽게 밀어 내었다. 그렇게 생겨난 공간을 비집고 제비가 날아들 듯 돌연 검격이 쏘아졌다.
서걱! 서거걱!
가슴이 갈라지는 감각이 섬뜩하게 느껴졌다. 창을 뻗었던 이는 눈을 크게 부릅뜨고 입을 벌린 채로, 사뿐히 내려앉는 무당의 검수를 응시했다.
무덤덤한 그 얼굴을 보는 순간, 뇌리에 한 무학의 이름이 스쳤다.
“제, 제운…….”
말을 채 다 잇기도 전에 노을보다 더 붉은 피가 울컥 쏟아졌다. 검은자위가 뒤로 넘어갔다. 마지막 순간, 그는 비탈을 타고 내려오던 무당의 제자들이 일제히 구름처럼 위로 솟구치는 광경을 보았다.
“……종.”
제운종(梯雲縱).
구름을 타고 노니는 듯 허공을 오르내리는 무당의 절학. 나아가고 물러나는 것이라면 몰라도, 오르고 내림에 있어서는 곤륜의 운룡대팔식 외에는 비할 신법이 없다는 희대의 절학이다.
그것이 무당이라는 가파른 산에서 그 위력을 십분 내보인 것이다.
“어, 어어…….”
숱한 죽음을 지켜보면서도 두려움 없이 산을 오르던 사패련도들의 두 눈에 슬슬 절망이 깃들기 시작했다.
저 검은 그들의 도로 상대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하물며 저런 검을 쓰며 산을 제 마음대로 오르내리는 이들을 대체 무슨 수로 상대할 수 있을까.
강하다. 무당이 소림과 함께 천하의 북두를 다투는 문파인 까닭을, 이 광경만으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런 이들을 상대하려 드는 게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도 말이다.
“이, 이런…….”
머리를 뜨겁게 하던 피가 식으니 주변의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우회하여 비탈을 오르던 이들은 무당의 검수들에게 막혀 도통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 절벽을 오르던 이들은 떨어지는 바위와 돌에 막혀 비명만 내지르고 있다.
정말로 뚫을 수 있을 것인가? 차라리 지금이라도 후퇴하고 반대편 능선으로 우회를 하는 게…….
“아아아아아아아악!”
그때, 귀를 찌르는 것 같은 비명이 울렸다.
전쟁터니 여기저기서 비명이 울리는 게 당연하지만, 유독 그 소리가 귀를 잡아끈 이유는 그 위치가 앞이 아닌 뒤였기 때문이다.
본능적으로 돌아보니 등에서 피를 흩뿌리며 쓰러지는 련도의 모습이 보였다. 주춤한 모습을 보였다가 본보기로 죽임을 당한 것이다.
“계속 올라라.”
“…….”
“당장!”
으득!
모두 이를 악물었다. 새삼 생각이 난 것이다.
어차피 퇴로는 없다. 도망을 택하여 이 산을 다시 내려가는 이들을 기다리는 건, 산에서의 죽음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비참한 마지막뿐이다.
“으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
목이 터지도록 함성을 내지르며 앞으로 짓쳐 달려들었다.
이미 알고 있다. 강한 놈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실력으로 이기지 못할 이들을 어찌 상대해야 하는지 말이다.
쇄애애액!
거세게 허공을 격한 도가 무당의 검수에게 쇄도했다. 하나가 아닌, 세 개의 도.
아니, 심지어 그 순간에도 또 다른 도가 그 뒤를 따라 같은 곳을 노렸다.
“합!”
무당의 검수는 쉬이 당황하지 않았다.
부드러움으로 극한까지 이른 검은 상대의 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외려 상대의 힘이 강할수록 이쪽에서 할 수 있는 것도 많아진다.
사아아아악.
부드럽게 움직인 검이 도의 끝을 가볍게 밀어 내었다. 거리를 두고 날아들던 도가 비틀리면서 궤적이 서로 뒤엉켰다.
카가강!
한꺼번에 쇄도하던 도들은 허공에서 엉망으로 얽혀 버렸다. 그 틈에 무당의 검수가 빠르게 검을 날렸다.
하지만 그 순간.
사패련도들이 투로를 잃은 도를 놓아 버리고 온몸으로 그를 덮쳐 왔다.
파앗!
내뻗어진 검이 사패련도 하나의 심장에 틀어박혔다.
실로 냉정하여 일말의 여지조차 주지 않는 검격이었다. 검을 잡고 늘어질 여유는 물론, 바짓가랑이를 붙들 찰나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무당의 검수가 예측하지 못한 일이 벌어진 건 그때였다.
심장을 꿰뚫은 송문고검을 타고 피가 주르륵 흘렀다.
본디 검에 뚫린 곳은 근육이 조여져, 검을 뽑기 전까지는 출혈량이 많지 않은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세상일이란 게 늘 정해진 대로만 흘러가는 것도 아니니 피 따위야 그리 눈여겨볼 일은 아닐지 모른다.
그럼에도 유난히 그 피에 눈길이 간 이유는…….
‘피가…… 조금 묽지 않은가?’
턱.
그때, 절명한 줄로만 알았던 이가 무당 검수의 손을 움켜잡았다. 딱히 의미는 없을, 미련만이 가득한 행위였다.
무당의 검수가 그 손을 떼어 내려 할 때, 별안간 심장이 꿰뚫린 이가 힘겹게 입을 떼었다.
“흐…….”
그 얼굴은 어쩐지…… 기괴했다. 형용하기가 어렵기는 하나, 그 얼굴에 서린 게 ‘두려움’이라는 건 직감할 수 있었다.
무당의 검수가 황급히 그를 밀치며 몸을 빼려 했다.
화르르르륵!
돌연 죽어 가던 사패련도의 몸에서 시뻘건 화염이 솟구쳤다. 불꽃은 심장에 박혀 있던 검을 타고 순식간에 무당 검수의 몸까지 번져 왔다.
‘기, 기름?’
검을 놓고 물러나야 한다. 그게 당연한 대처다.
하지만 한시도 검을 몸에서 떼어 놓기를 허락하지 않는 명문정파의 가르침이 그를 찰나간 주저하게 했다.
그에 따른 결과는 오직 몸으로 치를 수밖에 없었다.
“아아아아아악!”
검을 타고 번진 불길은 삽시간에 팔을 타고 치솟았다. 일반적인 불이라면 이리 빨리 옮겨붙을 리 없을 터.
그는 팔에 붙은 불을 끄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그러기도 전에, 눈앞으로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어린아이 주먹만 한 작은 공이 보였다.
허공에서 날아든 그 공에는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출렁이는 움직임을 본 순간, 검수는 타고 있는 제 팔도 잊은 채 눈을 부릅떴다.
퍼억! 퍼억!
몸에 닿은 공들이 터져 나가고, 그의 주변에 옅은 푸른빛 액체가 흩뿌려졌다. 푸른빛 액체는 타오르는 불길에 더해지자마자 삽시간에 커다란 화염을 자아냈다.
“으아아아아아아악!”
검수의 전신이 불길에 휩싸였다. 발작적으로 검을 휘둘러 보지만 아무 의미가 없다. 아예 검을 내던지고 얼굴을 양손으로 감쌌다. 내력을 뿜고, 땅에 굴러 보기도 했지만, 몸을 뒤덮은 불길은 통 꺼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콰득!
그런 그의 목에 도가 날아와 박혔다.
“끄……윽.”
전쟁 중 하나의 죽음이 더해진 광경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건 이곳에서의 숱한 죽음들과 명백히 궤가 달랐다.
“능유제강(能柔制强)?”
긴 창을 든 사패련의 조장 중 하나가 죽어서도 타오르고 있는 무당의 검수를 보며 짙은 비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창끝을 둘둘 감싼 무명천에 화섭자(火攝子)를 가져다 대었다. 그의 창이 마치 기다란 횃불처럼, 어둠으로 물들어 가는 무당산을 밝혔다.
“비무라도 하고 싶은 건가?”
그 말이 신호가 되기라도 한 듯, 다른 사패련도들도 하나같이 제 무기에 때 묻은 무명천을 휘감고 불을 붙였다. 아직은 불길이 닿지 않았던 가파른 비탈이 점차 환해졌다.
조장은 긴 창을 산비탈에 자리한 소나무에 콱 박았다. 바싹 마른 나무껍질이 새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똑똑히 알려 주지. 이건 전쟁이라는 걸 말이야. 그리고 전쟁에는 잘난 도사님들이 나설 자리 같은 건 없다는 사실도.”
검과 도의 싸움이라면 승부 따위는 이미 정해져 있다.
하지만 지금의 무당산은 그런 고상한 싸움이 오가는 곳이 아니다.
“던져라!”
“예!”
쇄애애애액!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기름이 든 얇은 가죽 주머니가 전방으로 쏟아졌다.
“헛!”
눈앞에서 벌어졌던 광경을 똑똑히 보았던 무당의 검수들이 다급하게 기름 공들을 쳐 냈다. 하지만 아무리 튕겨 낸다 한들, 그 기름 공이 떨어지는 건 그들의 지척일 수밖에 없었다.
“쏴라!”
파아아앗!
심지어 그들이 선 곳을 향해 까마득히 많은 불화살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아래에서 위를 향해 쏘아 올리는 화살이다.
전문적으로 훈련도 받지 않는 이들이 대충 쏘아 대는 화살에 살상 능력이 있을 리 없다. 그러나 십여 개를 쏘면 하나쯤은 무당 검수의 발치에 떨어질 테고, 그것만으로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화르르르르륵!
아니나 다를까, 땅에 퍼진 기름이 순식간에 불길을 피워 올렸다.
“물러서라!”
“여, 여기!”
“빌어먹을, 뭐 하느냐! 불을 꺼라! 아니, 그냥 잘라 내라! 옷째로 잘라 내란 말이다!”
바지에 불길이 옮겨붙은 무당의 검수들이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빠르게 손을 휘두르고, 검으로 내리쳤지만, 무슨 영문인지 한번 붙은 불은 쉽사리 꺼지질 않았다.
“이게 무슨 조화인가?”
불이 아니라 아교 같다. 세상천지에 이런 불이 있단 말은 들어 본 적도 없다!
이건 절대 평범한 기름이 아니다! 절대로!
심지어 문제는 그게 다가 아니었다.
쇄애애액!
“사혀어어어어엉!”
붙은 불에 정신이 팔린 순간 또다시 날아든 기름 덩어리가 몇몇 무당 제자의 몸에 닿아 터졌다.
“무, 물러……. 아아아아악!”
아직 바지춤에 불길이 붙지 않은 이들은 사색이 되어 물러나는 것으로 목숨을 구할 수 있었지만, 이미 몸에 불이 붙어 있던 이들이 맞이해야 할 운명은 그야말로 끔찍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악!”
치솟은 불길이 사람을 삽시간에 집어삼킨다.
고통에 겨운 비명, 살이 타는 냄새가 온 산에 진동한다. 어둠이 내리깔린 산이기에 그 광경은 더욱더 확연하게 무당 검수들의 두 눈에 박혔다.
“아아아아아아악!”
“뭐 하느냐! 도와라! 불을 꺼! 어서! 진명아! 진명아아아아아아!”
쉽사리 죽을 수도 없다. 단련된 내공은 몸이 타는 와중에도 의식을 유지하게 했다. 육신이 서서히 타들어 가는 고통을 고스란히 맨정신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무당의 제자들이 우왕좌왕하며 불붙은 사형제들을 어떻게든 도우려 할 때였다.
“또 옵니다!”
“뭐?”
무진이 황급히 아래를 살폈다. 그리고 충격에 두 눈을 부릅떴다.
‘저건?’
지금껏 그들이 상대하던 이들과는 다른 복장을 갖춘 이들이 어느새 산비탈 아래에 빽빽이 서 있었다.
중원인과 다른 복색, 다소 이질적인 이목구비, 조금 더 짙은 피부색. 거기에 가슴팍에 새겨진 해 모양 문양까지.
그들의 정체를 알아챈 무진의 등허리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태, 태양…….’
“날려라.”
파아아아아앗!
아래에서 수많은 기름 주머니와 불화살이 솟구쳤다. 허공을 모두 채울 듯 아득하게 많았다.
‘장강…….’
이제는 잊고 싶었던, 지울 수 있으리라 여겼던 광경이 무당 검수들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리고 현재와 겹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