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ount Hua Sect RAW novel - Chapter 1670
1670화. 미래는 있을 테니까. (5)
콰르르르르릉!
거대한 암석이 또다시 떨어져 내린다.
콰아아아앙! 콰아아앙!
본디 수직에 가까운 절벽이라지만, 그래도 산인 이상 미미하게 기울어 있을 수밖에 없다. 암석이 절벽과 충돌할 때마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굉음이 온 산을 울렸다.
“피해라아아아아아!”
목을 찢으며 내는 듯한 비명과 함께, 절벽을 오르던 이들이 헐레벌떡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한 공격이나, 저렇게 굴러떨어지는 암석이 자아내는 결과는 오히려 이전보다 더욱 참혹했다.
“아아아아아악!”
휩쓸린 이들은 피떡이 되어 허공으로 튕겨 오르고, 그러지 않은 이들도 진동 탓에 균형을 잃으며 추락사하고 만다.
곧 공격이 온다는 걸 알고 있어도, 아무리 소리를 내질러도 소용이 없다.
이미 사패련도들은 절벽을 중턱까지 오른 상황이다. 까마득하게 많은 이들이 이 가파른 절벽에 매달려 있는데, 그들 모두가 과연 낙하하는 바윗덩어리를 피해 절벽을 내달릴 능력을 갖추었을까?
그랬다면 사패련이 애초에 천하를 정복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상황이 이러니 한번 바위가 떨어질 때마다 수십의 목숨이 허무하리만치 쉬이 끊어지는 건 어쩔 도리가 없었다.
차라리 밤이라 다행이지, 환한 대낮이었다면 흰 백안암이 사패련도들의 피와 육편으로 시뻘겋게 물든 게 훤히 보였을 것이다.
“조, 조장님! 이건 역시……!”
“아가리 처닫아라! 아무 말도 하지 마!”
무의미한 희생. 대책 없는 전진.
그 뒤에 붙을 말 따위야 누가 모를까. 그의 머릿속에서도 벌써 비슷한 말이 몇 번은 휘돌고 지나갔다.
그러나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작전에 의미가 있는지는 그들이 판단할 게 아니다.
이 개짓거리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판단할 사람은 모두 절벽 아래에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한 사람 말이다.
‘그’가 의미 있다고 판단한 일이라면, 설사 이 절벽에 들러붙어 있는 모두가 죽어 버리는 한이 있어도 절벽을 올라야 한다. 그게 사패련의 방식이니까.
그러니 그런 무의미한 생각을 할 바에야 차라리…….
사내의 눈이 절벽 위로 향했다.
바위를 얼마나 잘라 냈는지, 절벽의 윗부분이 처음과 그 형태가 달라져 버리기까지 했다. 그의 두 눈에 핏발이 섰다.
“저…… 빌어먹을 새끼!”
대체 얼마나 내력이 넘쳐 나야 이 미친 짓거리를 계속해 댈 수 있단 말인가.
“올라라! 저 개 같은 놈의 생살을 씹어먹을 때까지 멈추지 마라!”
원독에 찬 목소리가 어둠이 내린 협곡에 쩌렁쩌렁 울렸다.
“후욱! 후욱! 후욱!”
검을 쥔 손이 사시나무처럼 떨린다.
허공의 전신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바위를 자르는 일검. 딱 한 차례 펼쳐 내는 것만으로도 찬사를 받아 마땅할 검격을, 지금 허공은 십여 번 가까이 날리는 중이었다.
“사…… 사숙!”
혹시 몰라 그의 뒤를 지키던 무자 배들이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외쳤다.
허공이 한계에 몰려 있다는 건 누구라도 명백하게 알 수 있었지만, 그의 역할을 감히 대신할 수 있는 이는 없었다. 심지어 허자 배 장로들도 엄두를 못 낼 일이다.
그들이 익힌 게 차라리 남궁의 검이거나 팽가의 도라면 또 모를까, 균형과 조화를 중시하는 무당의 검으로 저만한 참격을 날린다는 건 말 그대로 경이로운 일이었다.
설령 허공보다 더 강한 이가 이곳에 서 있다 해도, 이 같은 참격을 날릴 순 없을 터였다.
우둑.
송문고검을 쥔 허공의 손 뼈마디가 둔탁한 소리를 낸다. 입술을 짓깨문 그는 다시 절벽 끝을 응시했다.
“사, 사숙! 이젠 정말로 그만하십시오!”
“저희가 절벽을 내려가겠습니다! 절벽 위에서라도 얼마든지 저놈들을 상대할 수 있습니다!”
비통에 잠긴 사질들의 만류에도, 허공은 말없이 검을 잡은 손아귀에 힘을 더할 뿐이었다.
이곳은 결단코 내어 줄 수 없다.
지금 그의 사형제들은 비탈을 오르는 이들을 목숨까지 내걸어 가며 막고 있다. 누군가가 내지르는 비명과 숨이 끊어지는 단말마가 이곳까지 생생히 닿는다.
그는 어떤 심정으로 그들이 목숨을 거는지 똑똑히 알고 있었다. 만일 이곳이 뚫린다면…… 그들의 죽음은 허사가 되고 말 것이다.
중앙이 열려 버리면, 무당은 저들의 압도적인 머릿수를 절대 감당할 수 없다.
그러니 결국에는 이들이 절벽 위에서 직접 저들을 막아야 한다. 하지만 그건 반드시 희생을 동반할 것이고, 제운종을 극한까지 익혔다 한들 새가 아닌 이상 절벽 위에서 싸우기가 쉬울 리 없다.
허공은 사질들을 벌써 위험에 내몰고 싶지 않았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압!”
허공의 검이 다시 한번 새하얀 빛을 발한다.
이 단전이 터지지 않은 이상, 한 번이라도 더 검을 휘둘러 저들의 진격을 막아 내야 한다.
촤아아아아악!
거침없이 날아간 반월형의 검기가 절벽을 비스듬히 깎아 낸다. 거대한 암석이 잘렸다. 다시 한번 미끄러지고 떨어져 내렸다.
“어……. 어어!”
이전 차례보다 조금 더 빠른 속도로 이어지는 낙석에, 절벽에 붙어 있던 사패련도들의 두 눈에 새까만 절망이 어렸다.
“이, 이 개 같은 새끼들!”
욕지거리를 뱉고 악을 쓰며 재차 몸을 날리려는 순간.
“쯧쯧. 보고 있기 괴롭군.”
누군가가 선두에 붙어 있던 이들을 가볍게 추월하며 위로 솟구치더니, 놀랍게도 하늘을 뒤덮는 듯 무서운 기세로 떨어지는 거대 암석의 정면으로 쇄도했다.
“뭐, 뭣?”
무모하기 짝이 없는 행동에 모두가 시선을 빼앗긴 채 기함한 순간.
파아아아아앗!
하얗다 못해 투명하게까지 보이는 백색 장영이 삽시간에 하늘을 뒤덮었다. 열을 넘어 백에 이르러, 그 이상!
말 그대로 ‘무수한’ 손그림자가 서로 다른 형태의 동작을 취하며 떨어지는 바위를 때렸다.
쿠우우웅!
무수한 타격음이 짧은 순간 연이어 펼쳐지니, 마치 한 번의 거대한 굉음처럼 들려왔다.
이윽고 절벽면을 타고 떨어지던 암석의 방향이 비틀렸다. 절벽에서 떨어져 크게 밀려 나간 것이다.
“바짝 붙어라!”
만근의 거암이 절벽에 붙은 사패련도들의 등 뒤를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지나갔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잠시 후, 절벽 아래에서 거대한 폭음 같은 게 들렸다.
이 말인즉, 절벽에 들러붙은 이들을 지독히 괴롭히던 바위가 더는 절벽을 구르지 못하고 추락해 버렸단 의미다.
이 기적과도 같은 상황에, 사패련도들은 본능적으로 솟구쳤던 그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 몇몇 이들이 믿지 못할 상황에 두 눈을 치떴다.
“무, 문주님!”
“천면수사!”
절벽이 평지라도 되는 양 뒷짐을 지고 선 천면수사가 뒤에서 들리는 고함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눈을 가늘게 뜬 채 절벽 위를 응시하고 있었다.
가볍게 바위의 진로를 비틀어 놓기는 했지만, 이만한 바윗덩어리를 계속 잘라 내는 이에 대해서는 경외감을 가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전에는 이만한 검수는 없었던 것 같은데…….”
그가 과거 장강에서 맞붙었던 이는 소림의 법계. 하지만 그는 이제 세상에 없다.
게다가 그 당시 만금대부와 대등하게 맞섰던 무당의 허도진인은 이러한 검격을 쓰는 이가 아니었다.
그 말인즉, 또 다른 검수가 저 절벽 위에 있다는 뜻이다. 심지어 허도에 버금가거나 그 이상일지도 모르는 이가 말이다.
허자 배라면 이미 장강에서 그 힘을 보여 주었을 테니, 그렇다면 봉문한 몇 해 동안 이러한 경지에 오른 후학이 있다는 의미다.
“……과연 무당이라고 해야 하나. 그 깊이를 짐작할 수 없구나.”
한 대의 영광이 채 끝나기도 전에 또 다른 이들이 그 명성을 세상에 떨친다. 그게 사파와 구분되는 명문정파의 가장 무서운 점이겠지.
후학의 양성에 관심 없는 사파에서는 영원히 가지지 못할 이점이었다.
하오문주. 천면수사 담여해의 얼굴에 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원래 이 전투에서는 전면에 나설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이만한 희생을 담보해야 한다면, 특히나 그 희생을 치르는 이들 중 대다수가 하오문의 문도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리고 또한…….
젊은 청년의 모습인 담여해의 얼굴에 일순 새파란 살기가 어렸다.
“만일 젊은 이무기라면…….”
이에 대한 교훈은 그동안 충분히 얻었다. 사파에서도, 정파에서도 말이다.
지금 용의 새끼를 감당할 수 있다고 해서 대수롭지 않게 내버려 두면, 언젠가는 발톱 끄트머리만으로도 그를 찢어발길 괴물이 되어 나타난다.
“이번엔 용이 되기 전에 확실히 숨통을 끊어 놔야겠지.”
파아아아앗!
그가 한 줄기 섬전처럼 절벽을 타고 올랐다.
그야말로 가공할 속도!
사파일절(邪派一節)로 불리는 그의 경신법이 극성으로 전개되니 천면수사의 잔영(殘影)이 새파란 벼락처럼 백색 절벽을 갈라 내는 듯 보였다.
파아아앗!
‘마, 막아야 한다!’
절벽 위에서 이 모습을 본 허공이 눈을 크게 부릅떴다. 저자가 이곳에 오르는 건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하지만 지금 그로서는……!
“놈을 막아라!”
그때, 허공이 채 입을 열 틈도 없이 뒤를 지키던 무자 배들이 분분히 절벽 아래로 몸을 날렸다.
“무, 무슨 짓들을 하는 거냐!”
“저희가 맡겠습니다, 사숙!”
허공이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지만 소용없었다. 그의 사질들은 이미 절벽을 내달리기 시작한 뒤였다.
“여긴 못 오른다! 사파의 악적 놈아!”
“사숙께 닿지 못하게 해라! 목숨 걸고 사수해!”
무당 검수들의 눈에선 새파란 각오가 반짝이고 있었다.
그래, 차라리 이렇게 나서서 검을 휘두를 기회를 얻은 게 다행일지도 모른다. 허공이 홀로 고군분투하는 걸 뒤에서 지켜보는 게 더 고역이었으니까.
“노오오오오옴!”
가장 앞장서 뛰어내린 이가 절벽을 내달리며 천면수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깊은 산중 계곡에 흐르는 개울처럼, 푸르디푸르며 맑은 검기가 굳센 각오를 얹은 채 천면수사에게로 쇄도했다.
그리고 검을 휘두른 이조차도 당황할 만큼, 천면수사의 몸에 직격하였다.
‘엇?’
이윽고, 갈라졌던 천면수사의 몸이 안개처럼 홀연히 흩어졌다.
“어설프군.”
투웅!
검 끝이 허공을 가른 탓에 찾아든 허무를 채 느끼기도 전에, 천면수사의 수공(手功)이 무당 검수의 옆구리를 때렸다.
쓰러뜨릴 생각 없이 그저 밀어 내기 위해 최고 속도로 날린 장력. 그렇기에 차마 눈으로 따라갈 수도 없는 장력이었다.
“컥!”
이토록 빠르게 무당의 제자 하나를 절벽 밖으로 날린 천면수사가 절벽으로 한 발을 내딛기 무섭게, 무수한 검기가 그를 향해 쏟아져 왔다.
쇄애애애액!
희고, 검고, 푸르다.
말 그대로 검기로 이루어진 폭풍과 같았다. 모골을 송연하게 할 만한 광경이었으나, 천면수사는 표정이 없는 얼굴을 그대로 유지하며 쏟아지는 검기 사이로 무심히 발을 뻗었다.
휘이잉! 휘이이이잉!
검기가 허공을 가른다.
눈 한번 감고 뜨기도 어려울 만큼 짧은 시간 사이에 천면수사의 몸이 십여 번 위치를 바꾸었다. 마치 폭풍 속에서 뇌전이 작렬하듯 가공할 속도의 경공이었다. 그 속도의 극치는 검의 끝을 보기 위해 평생을 바친 이들조차 어안이 벙벙할 만큼 대단했다.
파아아앗!
쏟아지던 검기가 사실은 환상에 지나지 않았다는 듯 순식간에 돌파해 버린 천면수사는 위로, 또 위로 솟구쳤다.
지금껏 그를 상대하는 이의 수준이 남달랐을 뿐, 그 역시 발에 차일 만큼 많은 하오문도 속에서 홀로 두각을 드러내며 지금의 위치까지 올랐다.
장일소라는 걸물의 존재가 아니었다면 강호의 역사에 이름을 당당히 새길 자격이 충분했을 이다.
“마, 막아…….”
각오를 품고 뛰어내렸던 이들은 생각지 못한 상황에 절망 어린 얼굴로 획 뒤를 돌아보았다. 등을 보이며 위로 멀어져 가는 천면수사가 보였다. 그의 손이 또다시 허공에 수십 개의 장영을 만들어 내는 광경도.
하지만.
카아아아아아앙!
잠시 후, 고막을 찢는 듯한 폭음이 울리자 천면수사의 손이 허공에서 멈추었다.
“꽤 하는군.”
현란하기 이를 데 없이 수두룩한 장영 속에서, 단 하나 존재하는 실체를 완벽하게 찾아 휘둘러진 검.
그 검에 맞부딪힌 손을 밀어 내며 천면수사가 묘한 미소를 흘렸다.
“이름이 뭐지?”
“허공.”
“나는 천면수사라 한다. 기억해 두어라. 네 목숨을 가져갈 사람이니.”
우뚝 솟은 백안암의 끄트머리, 천면수사의 손과 허공의 검이 맞닿았다.
과거를 거머쥔 거인의 손과,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할 무부(武夫)의 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