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ount Hua Sect RAW novel - Chapter 1671
1671화. 바라던 상황 아닌가? (1)
쇄애애애액!
날아든 기름 주머니가 허공에서 터지며 사방으로 기름을 흩뿌린다.
화르르륵!
연이어 불화살이 허공을 가르자 거기서 튄 불씨가 허공에서 터진 기름을 금세 화르륵 태우고 키웠다. 검수들을 덮치려 하는 불길의 모습은 흡사 마귀의 손길 같기도 했다.
“하압!”
하지만 이를 맞이한 것은 한 자루의 검이었다.
스륵.
강하고 짧은 기합과 달리, 내뻗어진 검은 아주 유려한 원을 그렸다. 마치 아이를 감싸는 손처럼 부드러우면서도 섬세한 움직임.
빙글빙글 돌며 반복하여 그려지는 원 안에 갇힌 기름은 그 이상 몸집을 키우지 못하고, 허공에서만 휘돌았다.
한 자루의 검이 불꽃을 가두는 것과 같은 형상이다.
잠시 후, 그 검이 강하게 그어지니 허공에서 맴돌던 화염이 명령에 따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절벽으로 쇄도했다. 실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더 긴장해라!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해서는 안 된다!”
“예!”
파아아앗!
그 와중에도 아래에선 불화살이 솟구쳐 온다. 머리 위에서 날아드는 것과 발밑에서 솟아 오는 것. 실제로 겪어 본 이라면, 누구라도 후자가 훨씬 까다롭다고 느낄 것이다.
쇄애애액!
카가강!
그러나 무당의 검수들은 화살들을 모조리 쳐 내었다. 검을 휘두르는 데에는 일말의 당황도 주저도 없었다.
대처할 수 있다.
겪어 보지 않은 일이라 해도, 생각해 본 적도 없는 공격을 상대해 내야 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 방법은 애초에 그들이 배워 온 검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으니.
결국 모든 인위(人爲)란 더 큰 자연(自然) 앞에 무력하다.
자연을 닮고자 하는 무당의 검이라면, 저들이 벌이는 어떤 인위에도 대처할 수 있어야 마땅하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우왕좌왕하던 모습 따윈 사라지고, 무당 검수들의 두 눈에 각오와 자신이 어렸다.
“사형! 불길이 번져 옵니다!”
“근처 나무를 잘라 내라! 불길이 번질 길을 미리 차단해야 한다! 나무를 자르고 바닥을 파!”
“예!”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검기가 일제히 뿜어져 나왔다. 나무 밑동이 잘리고, 땅이 터져 나간다.
불길이 빠르게 번져 오는 것만 막을 수 있다면 이곳에서 언제까지고 버틸 수 있다. 어쨌든 이 가파른 비탈은 저들의 계략을 최대한 억제할 수 있는 요지이니까.
아니나 다를까, 아래에서 기름과 화살을 끊임없이 날리던 적들의 얼굴에 낭패감이 스쳤다. 그들의 수가 이젠 통하지 않음을 깨달은 것일 테다.
외려 그 얼굴이 무진의 마음에 분기를 일으켰다. 그가 이를 악물었다.
‘그리 쉽게 보였더냐?’
천하의 무당을 노리면서, 이깟 잔재주가 마지막까지 통하리라 믿었던 것인가?
이리된 이상, 저들에게 알려 줘야 한다. 지금 저들이 상대하는 적이 이제껏 그들이 겪었던 어떤 적과도 다름을. 천하제일검문 무당의 이름이 결코 과장된 허명이 아님을 말이다.
“더욱……!”
무진이 다시 한번 언성을 높이려는 찰나였다.
저벅.
돌연 적들이 활을 내리고, 기름 주머니를 던지던 이들 역시 팔을 내렸다. 그러고는 비탈 위에 선 무당의 검수들에게 살기를 쏟아 내던 게 거짓말인 듯 좌우로 길을 열었다.
“……음?”
무진의 두 눈에 이채가 어렸다. 이미 화염이 거의 잦아든 길로 몇몇 이들이 걸어오는 걸 발견한 것이다.
오싹.
열린 길을 느긋하게 밟는 장년인들을 마주한 순간, 무진의 피부가 먼저 반응하였다. 손등을 타고 소름이 돋아났다.
‘장로인가?’
하나같이 그 기세가 범상치 않다. 사파, 사패련의 체계야 잘 모르나 정파의 경우를 빗대어 생각해 본다면 적어도 장로급은 될 만한 이들이다.
무진은 몸이 긴장으로 뻣뻣해지기 시작했다.
저만한 이들이 나선다는 건 이제 길을 여는 데 진심으로 나서겠단 뜻이리라. 조무래기들을 쏟아붓거나 잔재주를 부리는 것이 아닌, 순수한 힘으로 뚫겠다는.
“만만치 않다!”
“예!”
무진이 무당 검수들의 경각심을 깨우며 다시 지시를 내리려는데, 누군가가 다급히 외쳤다.
“사숙! 사숙조께서……!”
“음?”
반사적으로 절벽 위를 본 무진은 크게 당황했다.
카아아앙!
누군가와 맞서고 있는 허공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언제……?’
대체 언제 저기까지 적이 침탈했다는 말인가!
“누구냐?”
“그게, 본 적이 없는 이라…….”
“저, 저 무공은…… 천면수입니다! 하오문주! 천면수사 담여해입니다!”
눈썰미 좋은 누군가가 흩뿌려진 장영만으로도 담여해의 정체를 알아채었다. 천면수사 담여해라면 얼굴만으로는 못 알아보는 게 당연했다.
하오문주라는 말에 자신감과 의지가 넘실거리던 무당의 검수들 사이로 근육을 쥐어짜는 듯한 긴장감이 밀려들었다.
이내 당황한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쏟아졌다.
“천면수사라니……!”
“사, 사숙! 사숙조를 도와야 합니다! 제가 가겠습니다!”
“절벽 위를 사수해야…….”
쿠웅!
그 순간, 무진이 내밟은 진각이 비탈을 크게 뒤흔들었다.
그렇게 사제와 사질들을 침묵시킨 그는 전면에 다가오는 적들을 주시한 채 무당의 제자들에게 일갈했다.
“눈앞에 있는 적에게서 시선을 떼지 마라.”
“…….”
“사숙은 지지 않으신다. 사숙을 돕고 싶다면 이곳의 적들이 사숙을 노리지 못하도록 해라! 무당에는 우리만 있는 게 아니다!”
그 말에야 마음을 다잡은 검수들이 다시 하나둘 검을 들며 적을 견제했다.
무진은 몰래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상대할 수 있을까?’
말과는 달리, 그 역시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허공이 아무리 현재 무당에서 가장 기대받는 기재라지만, 무진 역시 그의 정확한 무공 수위를 알진 못한다. 그저 일반적인 장로의 수준은 한참 추월했으리라 어림짐작할 뿐.
그러나 저 천면수사를 쓰러뜨릴 수 있을 만큼 강할까? 심지어 이미 내력을 소진한 몸으로?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무진이 택할 수 있는 길은 하나뿐이었다.
‘믿자!’
이곳이 열리면 저 아래에 승냥이처럼 도사리고 있는 적들이 무당의 중추에 송곳니를 박아 넣을 것이다.
적들의 이점이 발휘될 수 있는 넓은 전장은 절대 내어 줘선 안 된다.
허공이 무너져도 길이 열리겠지만, 이곳이 무너져도 길이 열리는 건 마찬가지다. 지금은 그저 서로를 믿을 수밖에 없다.
“……이런 거였군.”
“예?”
“아니. 아니다.”
무진이 옆에 선 진현의 어깨를 가볍게 툭 건드렸다.
“할 수 있겠지?”
“너무 뻔한 질문을 하십니다.”
“건방지긴.”
쿡 소리 내어 가볍게 웃은 무진이 검을 쥔 손아귀에 꽉 힘을 주었다.
투웅!
일순 밀려오는 힘에 허공은 저항하지 않고 몸을 뒤로 띄워 내었다. 허공을 밀어 낸 천면수사는 두 발로 절벽 위에 사뿐히 안착했다.
“고작 이런 절벽 따위로 우릴 애먹이다니.”
평범하고 가벼운 몸짓과 목소리인데, 무게감이 다르다.
그 하나하나에 묻어나는 느슨함.
세상은 그런 걸 두고 ‘여유’라 부를 것이다.
감히 허공을 앞에 두고 여유를 부릴 사람은 이 중원에 거의 없다. 그럼에도 그는 쉽사리 단죄하기 위해 움직이지 못했다. 상대가 은근히 흘리는 위압감이 몸을 칭칭 휘감는 느낌이었다.
‘……천면수사 담여해.’
솔직히 말하자면,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이름이다. 그에게까지 신경 쓰기에는 패군 장일소라는 자가 너무도 거대했으니까.
하지만 막상 이리 검을 쥐고 마주하니, 장일소라는 세 글자에 가려져 있던 담여해라는 이름이 얼마나 거대한지 제대로 실감할 수 있었다.
선대들은 이런 자를 상대로 싸워 온 거겠지.
갑갑하고, 때로는 어리석다고까지 여겼던 선대의 선택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자들을 상대하다 보면 자신이 이끄는 아이들은 한없이 나약하고 부족해 보일 수밖에 없었겠지.
그 순간, 담여해가 입을 열었다.
“어떤가?”
“……무슨 말이지?”
“가능성이 있다고 여기나?”
허공이 눈살을 찌푸렸다. 천면수사가 히죽 웃었다.
“아니, 어렵지. 그럴 수는 없지. 지금이야 어찌어찌 막아 낸다고 해도, 결국 사람인 이상 지칠 수밖에 없다네. 결국 길은 열릴 거야.”
허공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그리고 자네가 나를 이 절벽 아래로 밀어 내지 못하는 이상, 그 일은 더 빨리 찾아오겠지. 좋든 싫든 자네들의 마지막은 정해져 있다는 의미라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요?”
“지금이라면 아직 기회가 있다는 뜻일세.”
“…….”
“지금 저곳에서 나서는 이들은 남해태양궁의 호법들이네. 무당의 검이 아무리 날카롭다고 해도 아주 힘든 싸움이 될 테지. 싸워 이길 수는 있어도 아주 틀어막기는 어려운 이들이니. 특히나 여물지 않은 검으로는.”
담여해의 목소리가 유혹하듯 허공의 귀를 파고들었다.
“어차피 끝이 정해진 거라면 차라리 지금 물러나는 게 옳지 않겠는가? 그럼 무당의 반수 정도는 아직 살릴 수 있을 텐데? 괜히 생때같은 목숨을 잃는 것보다는, 어느 모로 보나 그게 나은 선택 아닌가?”
“……헛수작을 부리는구려.”
“헛수작? 아니지. 이건 입장의 문제네.”
천면수사가 고개를 돌려 절벽 아래를 내려다본다. 뻔히 허점을 노출하는 동작이었지만, 허공의 검은 움직이지 않았다.
“뭐, 련주께서야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무당을 지우고 싶어 하지만…… 나는 좀 다르다네. 난 입장이라는 게 있는 사람 아닌가? 이런 곳에서 문도들을 너무 많이 잃는다면 전쟁이 끝난 뒤에 목이 영 시리단 말이지.”
“…….”
“어떤가? 물러나면 잡지 않겠네. 자네도 사제들을 살릴 수 있어 좋을 텐데?”
허공의 시선이 무심코 무진과 그 일행이 있는 비탈로 향했다.
허산자를 비롯한 장로들이 막고 있는 길이야 열릴 일이 없겠지만, 무자 배와 진자 배가 주력으로 배치된 좌측 비탈은 고군분투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문제는 그렇게 최선을 다한다 해서 저 악적들을 모두 막아 내리란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그 순간, 허공이 피식 소리 내어 웃었다.
“맞을 만했군.”
“음? 갑자기 무슨 소리지?”
“우리 장문인 말이오.”
허공이 웃는 얼굴은 허허로웠다. 계속 바짝 긴장한 검수의 얼굴이었는데, 순간이나마 도인의 얼굴을 되찾은 듯했다.
“그 화산 놈이 왜 그리 화를 냈는가 줄곧 생각하였는데…… 선택이 잘못된 게 문제가 아니었소. 믿지 못했다는 게 문제였던 거지.”
“…….”
“거절하겠소.”
딱 잘라 거절한 허공이 검 끝으로 올곧게 천면수사를 겨누었다.
“사형과 사제가 한 사람에게 똑같이 얻어맞으면 실로 꼴불견일 테니까.”
허공은 허도가 아니다.
허도에게 있어 저들은 어떻게든 지키고 보호해야 할 미욱한 제자들이었을지 모르지만, 허공에게 저들은 자신과 함께 등을 맞대고 싸울 형제이자 동료였다.
그런 이들을 믿지 못한다는 건, 무당을 믿지 못한다는 말과 다를 게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나저나 문주께서는 거짓말에 좀 더 능숙해지시는 게 좋겠소.”
“……무슨 의미지?”
“그 얼굴 말이오.”
허공의 턱짓에 천면수사가 반사적으로 제 얼굴을 더듬었다.
허공이 차게 일갈했다.
“아무리 무감정한 면구(面具)로 얼굴을 감춘다고 해도 눈빛만큼은 가릴 도리가 없는 모양이오. 그 눈빛이 말하고 있소. 반드시 내 목숨을 여기서 끊어 놓겠다고 말이오.”
“……하.”
천면수사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눈빛을 감출 줄 모른다고? 정말이지, 그런 소리는 처음 들어 보는군.”
“지금껏 그대의 눈을 보는 이들도 비슷한 부류였을 테니까.”
“너는 다르다는 건가?”
“나는 도인이오, 검수이기 이전에.”
한 치 흔들림 없는 허공의 목소리가 천면수사를 찔렀다.
“모든 거짓과 미혹을 거부하고 그 안에 감춰진 진실을 들여다보는 것이 도인의 삶이지. 내 앞에서 뜻을 감추기엔 당신은 너무 고약하오.”
“허…….”
천면수사는 조금 허탈한 듯 길게 숨을 내쉬더니 중얼거렸다.
“이래서 정파 놈들은 상대하기 껄끄럽다니까.”
이윽고 목소리가 일변했다. 더는 젊은 혈기 따위 깃들지 않은, 늙수그레한 목소리로.
허공은 이게 천면수사의 본 목소리임을 직감했다.
가장 가까운 수하에게도 제 본모습을 보여 주지 않는다는 천면수사가 본 목소리를 드러냈다는 것.
이는 이곳에서 반드시 허공을 죽이겠다는 선언과도 다름없었다.
“누가 그러더군.”
천면수사가 천천히 손을 펼쳤다. 손아귀에 진득한 내력이 맺히기 시작했다.
“권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굳이 마시겠다 한다면, 병째 그 주둥이에 틀어박아 주라고 말이야.”
“……어쩐지 그 말을 한 이가 누군지 알 것도 같소.”
허공 역시 느릿하게 한 발짝을 내디뎠다.
‘나는 지지 않는다.’
설욕해야 할 패배가 있다. 꺾어야 할 이가 있다.
그러니 이런 곳에서는 죽지 않는다.
그 망할 검을 다시 한번 상대하기 전에는……!
“각오해라!”
허공의 검이 희고 검은 기운을 휘감았다.
음과 양을 동시에 다루는 태극의 검. 그 태극에 사람의 지혜(慧)를 더한 검이 극성의 양의신공과 함께 전개되었다.
* * *
“사형!”
“그래, 나도 보인다!”
조걸과 윤종의 눈빛이 전방을 향해 빛났다.
저 멀리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지평선 끝에 솟은 웅장한 산맥, 그리고 그 가운데 유독 도드라지는 하나의 산.
조걸이 거친 숨과 함께 으르렁대듯 소리쳤다.
“무당산!”
마침내 그 산이 천우맹의 사정권 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