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ount Hua Sect RAW novel - Chapter 1676
1676화. 바라던 상황 아닌가? (6)
“사숙! 놈들이 밀고 올라옵니다!”
백안암 위로 올라온 무진이 다급하게 외쳤다. 퇴각하는 그들을 빠르게 추적해 온 적들은 멈추지 않고 그대로 백안암 위까지 진입해 오고 있었다.
무진이 바닥을 박차며 역으로 쇄도했다.
콰득!
광기를 뿜으며 뒤를 쫓아오던 이의 목에 무진의 검이 무자비하게 박혔다. 도인의 자비라고는 조금도 없었으나, 지금만큼은 누구도 그 차가움을 탓하지 못하리라.
“공격해라! 놈들이 올라오게 허락하지 마라!”
“예!”
다급하게 후퇴하던 무당의 검수들이 전열을 정비해 여기저기서 바위를 오르는 이들에 맞섰다.
‘막을 수 있다! 아니, 막아 내야 한다!’
무진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급격한 퇴각은 분명 적들에게 길을 열어 주었지만, 한 가지 분명한 이점도 가져왔다. 바로 지옥 한가운데처럼 타오르던 불길이 아직 이곳까지는 미치지 못했다는 것.
게다가 이곳은 암석지대다. 제대로 된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찾을 수 없는 곳에서 저들이 준비한 화공은 의미가 퇴색되고 만다.
그렇다면 남은 건 그저 일신에 지닌 무학뿐. 그런 싸움이라면 무당은 절대 지지 않는다.
“꺼져라! 이 사파 놈들아!”
“아아아악!”
아니나 다를까, 무당이 태세를 반전하기 무섭게 비탈을 오르던 이들의 몸이 날아든 송문고검에 꿰뚫린다. 울분과 노기를 가득 담은 검은 적의 반격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지금 비탈을 오르는 이들이 성급함을 억누르지 못하고 성마르게 나선 조무래기에 불과하다는 걸 고려해도 무당의 우위는 확고했다.
“이 개 같은 놈들!”
그 순간 무진의 눈에 적이 오르는 비탈을 향해 나아가려는 검수의 모습이 보였다. 무진은 이를 악물며 그 곁으로 벼락처럼 몸을 날려 뒷덜미를 잡아채어 당겼다.
“헉! 사, 사숙!”
“멍청한 놈!”
무진이 잔뜩 노기 오른 얼굴로 소리쳤다.
“감정에 몸을 맡기지 마라! 우리의 목적은 저들을 죽이는 게 아니라 한순간이라도 더 버티는 거다! 이곳을 내어주면 무당은 끝이다!”
울분 어린, 또한 간절한 목소리가 닿았음일까?
무당 검수들의 얼굴에 비장한 기운이 드리웠다. 무진이 옳았다. 이곳을 내어준다면 목숨이 끊기는 정도로는 끝나지 않는다.
‘무당’. 오랜 시간을 이어온 무당이라는 문파의 역사가 바로 오늘 끝날 수도 있음이다.
복수 같은 사소한 감정을 들이밀기에는 그들의 어깨에 실린 게 너무도 중차대하다.
“버텨라! 마지막 한 사람까지 이곳을 사수한다!”
“예!”
무진이 다시 검을 움켜잡으려는 바로 그 순간.
“사숙! 절벽! 백안암이!”
그 말에 무진의 고개가 획 돌아갔다.
시선을 빼앗을 만큼 화려한 장영의 유혹을 억지로 이겨 내며 뒤쪽의 절벽에 시선을 고정하니, 절벽 위로 솟구치는 하나의 손이 보였다.
‘아…….’
무진의 눈이 뒤흔들렸다.
“크흐…….”
그 거친 손이 절벽 위를 콰각 움켜잡았다. 이내 한 사내가 이윽고 절벽 위로 몸을 끌어 올렸다.
“이 빌어먹을 절벽!”
백안암 위로 올라선 사패련도가 이를 박박 갈아붙이며 허리춤의 도를 뽑았다. 동시에 뒤에서 또 다른 사패련도들이 하나둘 절벽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아, 안 돼!’
무진의 얼굴에 아득한 절망이 내려앉았다.
막아야 했다. 저들이 이 절벽을 오르지 못하게끔 해야 했다.
“다 죽여 버려라!”
“흐아아아아아아!”
갖은 고생을 거듭하며 절벽에 오른 사패련도들이 두 눈에 증오와 분노를 싣고 돌진해 왔다.
“큭!”
“안 되지.”
카강!
허공이 다급하게 뻗은 검은 새하얀 천면수사의 손에 간단하게 막혀 버렸다. 천면수사가 중얼거렸다.
“정파에서는 매화검귀 그놈이 가장 오만한 줄 알았더니…… 너도 만만치는 않군. 감히 나를 앞에 두고 한눈을 팔다니.”
허공이 이를 뿌득 갈았다.
모자라다. 힘이.
이 순간을 이겨 내고 무당을 위기에서 구할 힘이 그에게는 없었다.
‘장문인! 대체…….’
이리되면 아무리 이 비탈을 틀어막는다고 해도 저들이 백안암 위를 점거하는 걸 막을 도리가 없다. 머릿수에서 이점을 지닌 적들이 이쪽을 짓누르기 시작할 테다.
“중과부적.”
과연 천면수사의 얼굴에는 여유가 흘렀다.
“인정해 주지. 너희는 나름 잘해 냈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반면 허공은 이를 가는 수밖에 없었다.
겨우 여기가 끝인가? 그 고통스러웠던 봉문을 버티고 자신의 의지를 스스로 관철해 낸 결말이 겨우 이거란 말인가?
“으…….”
허공이 울분에 찬 고함을 내지르려던 바로 그때였다.
“뭐 하는 겁니까!”
파아아앗!
누군가가 허공이 있는 옆을 섬전처럼 스쳐 가며 절벽에서 달려드는 사패련도들의 앞을 막아섰다.
쇄애애액!
쾌속하지만 또한 유려하게 휘둘러진 검이 악을 쓰며 달려들던 사패련도들을 향해 부드러운 곡선을 그렸다.
서걱! 서걱!
단숨에 세 개의 머리가 허공으로 솟구쳤다. 적의 예봉을 꺾어 낸 검수는 이에 그치지 않고 이미 절벽 위로 빼곡하게 올라선 이들을 향해 검기를 쏘아 보냈다.
“진현아!”
“으아아아아압!”
용기를 북돋우는 말도, 호기롭게 외치는 허세도 없다. 그저 있는 힘을 다해 적을 막아설 뿐.
그 광경을 본 무진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래.’
그래, 저 어린 사질은 아직 조금도 포기하지 않았다. 포기하는 대신 싸운다. 마지막까지. 그게 처음부터 그들이 다짐했던 바다.
“인원을 나눠라! 절벽에 올라서는 놈들을 모조리 저 아래로 밀어 넣어라!”
“예!”
무진이 다시 고함을 내지르려던 바로 그때였다.
“또 옵니다, 사숙!”
“뭐?”
무진의 고개가 또다시 급히 돌아갔다.
심지어 이번엔 그 어떤 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절벽의 뒤편으로 이어진 산자락을 타 넘어 이곳으로 쇄도하고 있는 한 무리의 무인이 보였다.
그 정체는 분명하지 않았지만, 아군이 아니라는 것쯤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언제?’
만일 무당이 이곳을 막아서고부터 우회했다면 절대 저곳까지 도달할 수 있었을 리 없다. 이 말인즉슨, 산을 오르기 시작할 때부터 저곳으로 별동대를 보내 두었다는 뜻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처음부터? 무당의 모든 대처를 이미 예상하고?
우드드득.
무진의 손톱이 손바닥에 피가 나도록 파고들었다.
‘결국은 부처님 손바닥 위의 손행자였다는 건가?’
“사숙!”
재촉하는 목소리가 들려오자 무진이 이를 악물었다.
“모여라! 뒤로 물러나! 중앙을 사수한다!”
“예? 사, 사숙!”
“어서!”
“예!”
무진의 명령에, 비탈을 막아서던 이들과 절벽을 막아서던 이들이 일제히 뒤쪽으로 분분히 물러났다.
“대구궁검진(大九宮劍陳)을 펼쳐라!”
무당 검수들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대구궁검진은 구궁검진의 변형으로, 더 많은 적을 상대로 싸우기 위한 무당의 검진이다. 특히나 지금처럼 대규모로 펼쳐 내는 데 특화된 검진이니, 확실히 다수를 상대로 이보다 좋은 선택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상황에 따라 다른 법이다.
지금 이 중앙에서 구궁검진을 펼친다면, 그들은 절벽 위로 돌입하는 적들에게 사면을 모두 내어주게 된다. 즉, 스스로 퇴로를 끊어 버리는 것과 같다는 의미다.
“사, 사형!”
“뒤는 없다!”
무진이 입술을 질끈 깨물며 반발을 끊어 냈다.
“죽어야 한다면 이곳이다.”
이에 무진을 만류하려던 이들도 마음을 고쳐먹은 듯 저마다 눈빛이 결연해졌다.
“구궁검진을 펼쳐라!”
“공간을 확보해라!”
“예!”
모두 알 것이다. 어차피 이리된 것, 퇴각은 불가능하다.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이미 적들의 천라지망이 펼쳐진 상황이니 달아나려 한다면 되레 사냥감이 되어 죽는다.
“무진.”
“사숙…….”
뒤로 물러난 허공이 천면수사에 대한 경계를 풀지 않으며 그에게로 다가왔다.
“죄송합니다. 제가 마음대로…….”
“아니다.”
허공이 고개를 내저었다.
“이게 최선임은 모두가 안다.”
“…….”
“이제 증명하자꾸나. 그날 우리가 하지 못했던 것을.”
“예. 사숙!”
무진이 각오를 다지고 검을 들었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한 시진? 반 시진?
아마 그리 길지는 않을 것이다.
“반 시진이라…….”
무진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헛헛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토록 명성을 떨치던 무당의 운명이 고작 반 시진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감흥에 젖을 시간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적은 그들의 각오 따위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으니까.
카아아앙!
“아아아아아악!”
본래의 백색을 잃고 검붉어진 백안암 위에서 죽고 죽이는 혈투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검과 도가 난무한다. 피와 죽음이 쏟아진다.
“거리를 확보해라! 밀려나지 마라!”
“죽어라! 이 간악한 사파 새끼!”
“사혀어어어어어엉!”
짙은 혼돈 속에서 무진은 검을 들었다. 가장 앞에서 치열하게 싸우는 진현과 허공의 모습이 보였다.
“죽기 위해 싸우는 게 아니다.”
무진은 한 몸처럼 내내 함께해 온 검을 콱 움켜쥐었다.
“반드시 살아남는다!”
이윽고 그가 빛살로 화해 적을 향하여 쇄도했다.
* * *
“서둘러라! 더 빨리!”
거리가 좁아질수록 불타고 있는 무당산의 정경이 확연히 눈에 들어왔다.
중턱? 아니, 이미 그 이상까지 번졌다.
어처구니없지만, 저 불타는 무당의 모습이 별다른 연통 없이도 지금 무당의 상황을 확연하게 전해 주고 있는 셈이었다.
저 불길이 무당의 상부까지 이르는 순간, 이 강호에서 무당이라는 이름은 사라질 것이다.
“늦어! 더 빨리, 빨리……!”
“아니, 아직은 안 늦었다! 이성을 찾아라, 걸아!”
“늦는다고요, 사형!”
“다들 한계야! 이 이상 속력을 내면 도착하더라도 싸우지 못해!”
“이익……!”
조걸이 이를 악물었다.
‘제발 조금만 더 버텨 줘.’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이대로 달려갈 수만 있다면! 무당의 저력은 만만하지 않다. 화산도 이미 경험하지 않았던가?
이번에야말로 저 빌어먹을 사패련 놈들의 손에서 사람을 구해 낼 것이다. 이번엔 절대로…….
“응……?”
그때, 무언가를 발견한 조걸이 흠칫했다. 지금 저기…… 저 앞에 무언가가…….
“……어?”
조걸의 얼굴이 일순 백지장처럼 창백해졌다.
“위쪽에서, 허억! 방어진을! 허억! 허억! 구축한 모양입니다!”
체면이고 뭐고 이미 장포를 벗어 한 손에 든 임소병이 얼굴에 줄줄 흐르는 땀을 훔치며 소리쳤다.
“아마 적당한 지형을 찾아 옥쇄에 들어간 모양인데! 상황이 거기까지……. 하악, 아이고 죽겠다! 거기까지 간 이상은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겁니다!”
“늦었다고 봐?”
“제기랄! 하이고! 무당이 그렇게 쉽게 당할 리가 있겠습니까? 썩어도 준치라고, 무당인데 어떻게든 되겠지요!”
청명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생각도 같았다. 이대로라면 무당이 전멸하기 전에 산에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
청명이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 침묵하는 그 순간이었다.
“하악, 죽겠……. 아악!”
임소병이 뒤로 튕겨 나오며 땅을 나뒹굴었다.
“뭐, 뭐야! 제기랄!”
그가 벌떡 일어나 앞을 보았다. 알고 보니 그의 앞에서 달리던 이가 그 자리에 멈춰 서 버리는 바람에 그 등에 부딪힌 것이었다.
“갑자기 왜……. 음?”
짜증을 부리려던 임소병이 입을 닫았다. 어느새 그들의 앞에 있던 모든 이들이 멈춰 있었다.
임소병의 얼굴이 차게 굳었다.
모두가 멈췄다는 건, 이 이상 전진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선두에 무언가 일이 벌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괴이한 건 고함이나 비명, 병장기 소리 따위가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럼 선두가 제 발로 우뚝 멈췄다는 의미인데, 그럴 일이 무어가 있단 말인가?
“총사?”
청명은 말없이 선두 쪽으로 걸었다. 그의 존재를 느낀 천우맹도들이 말없이 좌우로 물러나며 길을 열어 주었다.
적막이 흘렀다. 청명은 길게 난 그 길을 따라 앞으로 나섰다. 조금 전까지 다급했던 모습이 거짓이었던 것처럼 묵직한 걸음으로.
수많은 이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집중되었다.
그리고 청명은 느꼈다. 뒤쪽에 서 있던 이들이 영문을 모르는 듯 보이던 것에 반해, 앞쪽으로 갈수록 모두의 눈빛이 당혹에 젖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이윽고 가장 선두에서 달리던, 그가 가장 잘 아는 이들의 눈빛을 본 순간. 청명은 모든 걸 깨달을 수 있었다.
그들의 눈에 어린 건 당혹을 넘어선 혼란에 가까웠으므로. 이들을 이토록 당황케 할 건 그리 많지 않다.
조걸과 윤종, 헤연과 백천, 그리고 남궁도위까지.
청명을 응시하던 이들이 천천히 길을 열어 준다. 마침내 청명의 눈앞에 그 이유가 드러났다.
적, 사패련.
하지만 대군은 아니다. 감히 이곳에 있는 이들을 막아설 만한 수는 결코 아니었다.
적의 수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저들의 앞에 존재하는 이.
“……얼마 만이더라?”
삭막한 풍경에 어울리지 않는 근사한 다탁이 뜬금없게 놓여 있었다. 그 앞에 앉은 사내가 느릿하게 술병을 들어 보이더니, 느리게 기울였다.
졸졸졸졸.
기이하다.
수천이 존재하는 장소이건만, 술잔에 술 차오르는 소리가 명확하게 들렸다.
탁.
잔이 가득 찬 순간 술병을 내려놓은 그는 걸어 나온 청명을 보며 빙긋 미소를 지었다.
“왜 그러지?”
그 미소가, 점점 요사스레 변해 갔다.
“바라던 상황 아닌가?”
패군 장일소. 천우맹의 앞을 막아선 이의 정체였다.
“좋은 술을 준비했단다. 네가 충분히 만족할 만큼.”
아름답고 섬뜩한 미소가 그곳에 선 모든 이들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형언할 수 없는 공포감과 함께.
화산귀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