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ount Hua Sect RAW novel - Chapter 1683
1683화. 그건 내 알 바 아니고요! (3)
“측면을 노리고 올 겁니다! 한순간도 경계를 풀어선 안 됩니다!”
백천이 불길로 뒤덮인 좌측을 슬쩍 본 후 반대쪽을 살폈다. 윤종이 제 당을 이끌고, 그처럼 측면을 경계하고 있었다.
‘지금은…….’
재빨리 주변을 훑은 백천이 다시 명을 내리려는 찰나였다.
“왜 나를 물렸지?”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진금룡이 질문을 던졌다. 그 특유의 오만함 대신 노기가 얼굴에 어려 있었다.
“상황을 이해하고는 있나? 우리는 지금 험산에 진입했다. 속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어. 앞쪽이 지체된다면 사방에서 밀려오는 적에게 둘러싸여 고립되고 말 거다.”
“알아.”
“그런데도 뒤로 물러섰다고? 네 입장을 이해나 하는 거냐? 당연히 선두에서 길을 열었어야지.”
“…….”
“아니면 네놈, 설마……?”
“헛소리는 작작 해, 진금룡.”
“……뭐?”
백천의 시선은 곧게 앞으로 향해 있었다. 가장 앞에서 치달리는 조걸과 그를 따르는 당원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가장 적합한 이에게 역할을 맡긴 것뿐이야. 내가 아는 한, 선두를 뚫어 내는 데 있어 걸이 놈 이상의 검수는 없어.”
“네가…….”
진금룡은 무언가 말하려다 말고 잠시 멈칫했다. 백천은 그가 차마 하지 못한 말을 태연하게 뱉었다.
“아니. 내가 약해지지 않았어도 마찬가지야. 설령 내가 두 배 더 강해졌다고 해도 똑같아. 애초에 선두에 설 자격은 무력으로 얻는 게 아니니까.”
“…….”
“보다 보면 알게 될 거야. 내가 왜 굳이 걸이 녀석을 선두에 세웠는지. 그리고 왜 너에게는 선두를 맡기지 않았는지.”
진금룡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없이 선두를 응시했다. 적어도 아직은 조걸에게서 딱히 이렇다 할 특별한 점이 느껴지지 않았다.
‘저 천방지축이?’
그럼에도 진금룡이 곧장 반발하지 않은 이유는, 다름 아닌 유이설의 침묵 때문이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와 비등하거나 어쩌면 몇 수 앞서 있을지도 모를 저 여검수가 아무런 불만을 표하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아무리 속을 짐작하기도 힘들 만큼 무심해 보이는 사람이지만, 단순히 백천의 명이라 가만히 있는 것이라면 최소한의 불만은 내보였을 터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되레 조걸이 선두에 서는 게 당연하다는 것처럼 침묵을 지키고 있다.
진금룡의 입에서 한숨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정말이지, 알 수가 없군. 화산 놈들이란.”
눈으로 날카롭게 조걸의 등을 좇았다.
“어디 한번 봐 주지. 뭐 얼마나 대단한지.”
“저리 꺼져라!”
조걸의 검이 벼락처럼 허공을 내그었다.
파아앗!
말 그대로 섬전 같은 검기에, 미처 반응도 하지 못한 사패련도들은 육신이 대번에 꿰뚫려 썩은 통나무처럼 넘어갔다.
그들이 쓰러진 자리로 불타는 무당산의 전경이 점점 더 드러났다.
새카만 숯처럼 탄 나무들, 그러고도 여전히 매섭게 타오르는 시뻘건 불꽃. 지옥으로 가는 문이 존재한다면 분명 이런 모습이리라.
저 심상치 않은 불길을 뚫고 산을 오르는 것만으로도 만만치 않을 텐데, 심지어 저 불길이 어느 정도 잦아든 곳에는 어김없이 적들이 존재할 것이다. 더 유리한 위치에서, 천우맹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하지만 조걸의 발길에는 잠깐의 망설임조차 없었다.
“부당주! 여긴 불길이 너무 거셉니다! 우선은 우회해야 합니다!”
“아니!”
“부당주!”
“으라차아아아!”
조걸은 등 뒤에서 들려오는 말에 신경조차 쓰지 않고 앞으로 치달리며 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카가가각!
검기가 뻗어나간 곳에 타오르던 나무들이 밑동부터 단번에 잘려 쓰러졌다. 여기저기서 순간 얼빠진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
쿠웅! 쿠웅!
나무가 쓰러진 자리마다 커다란 공간이 생겨난다. 자잘한 불길이야 여전히 남았지만, 나무를 휘감고 번지며 타오르던 지독한 불길은 사라졌다.
“베어 냅시다!”
조걸이 모두가 들을 수 있게 크게 외쳤다.
“이미 바짝 탔어요! 그냥 베어 버리면 됩니다! 길을 만들자고요!”
“아…….”
멍하게 앞을 바라보던 이들이 움찔하더니 곧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렇구나! 뭣들 하십니까? 부당주를 도웁시다!”
“예!”
산에서 나무를 베어 내며 올라간다? 이건 평소에는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무당 같은 산에 자라난 소나무들은 단단하기가 이루 말로 다 할 수가 없고, 그 크기도 만만치 않다. 아무리 무학을 익힌 이들이라고 해도 단번에 그 나무들을 대번에 자르며 길을 열기란 어렵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나무들이 속까지 바짝 타 버려 형체만 남아 있지 않은가? 저런 나무를 자르고 부러뜨리기는 무학을 익히지 않은 평범한 이들에게도 그리 어렵지 않을 테다.
“더 넓게 베어 내요!”
“예!”
“단번에 갑니다! 힘껏!”
“예!”
조걸이 땅을 박차며 다시 검을 크게 휘둘렀다. 검게 탄화된 나무들의 밑동이 단번에 떨어져 나갔다.
많은 이들이 앞서가는 조걸의 뒷모습에 시선을 빼앗겼다.
‘어떻게?’
타 버린 나무를 잘라 길을 연다. 불길을 피해 우회하는 대신, 불길을 없애 시간을 단축한다.
얼핏 들으면 누구든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발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 상황을 보자마자 그에 따른 가장 적절한 대처를 떠올리기란 절대 쉽지 않다.
당장 불길과 시커먼 연기가 숨통을 죄는 와중에 무슨 수로 침착함을 유지한단 말인가?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센 불길을 피해 우회할 생각밖에 하지 못했다.
그런데 저 젊은 검수는 단번에 그들이 생각지도 못한 길을 열어 젖힌 것이다.
‘일검분광이 이런 쪽으로 뛰어나단 이야기는 듣지 못했는데.’
‘화산오검은 모두 이런 건가?’
제 등에 이런 시선이 쏟아지는 줄도 모르고, 조걸은 그저 땅을 박찼다.
‘가벼워!’
기이할 정도로 몸이 가벼웠다.
목숨이 오가는 전장에 섰다는 흥분 때문이 아니다. 활력이 넘치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몸이 가볍게 느껴졌다.
이대로라면 저 높은 산 위까지 단숨에 뚫어 낼 수 있을 것만 같다.
“노오오옴!”
타오르는 불길 너머에서 시뻘겋게 달궈진 창 세 자루가 번뜩 날아들었다. 조걸의 눈이 창의 존재를 포착하기도 전에, 그의 검이 먼저 반응했다. 매서운 검날이 창을 모조리 튕겨 내었다.
카아앙!
세 번의 타격음이 마치 한 번처럼 빠르게 겹쳐졌다. 그에 이어 독사처럼 날을 세운 검이 창이 날아들었던 곳을 향해 가공할 속도로 뻗어졌다.
“컥!”
검을 회수한 조걸은 물 흐르듯 횡으로 검을 휘둘러, 앞을 가로막는 나무를 단번에 잘라 내었다. 검게 타고도 세월의 흔적을 다 잃지 않은 거대한 노송이 커다란 소리와 함께 넘어갔다.
쿠우우우웅!
이윽고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조걸은 몸을 곧게 세웠다.
“흠…….”
시야를 일그러뜨릴 정도로 열기를 뿜어내는 불길 너머로, 그를 기다리는 일백 이상의 사패련도들이 보였다.
불길과 적.
상대해야 할 둘을 모두 눈에 담은 조걸이 검을 한차례 휘돌려 고쳐 잡고 자세를 낮추었다.
“부당주!”
“계속 갑니다!”
조걸이 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지체 없이 땅을 박찼다.
선두에 선 이상, 그가 해야 할 일은 오직 하나. 저 산꼭대기까지 한순간도 멈추지 않는 것이라는 듯!
“막아 봐! 막을 수 있으면!”
조걸의 몸이 빛살처럼 적을 향해 쇄도했다.
* * *
침묵이 오래도록 이어졌다.
청명이 앞에 놓인 술잔을 들었다. 그리고 장일소를 똑바로 보며 단번에 들이켰다.
탁.
술잔이 다탁 위에 놓였다. 청명은 입가를 대충 소매로 훔쳤다.
“딱히.”
“흐음?”
“너와 내 입장이 바뀌었으면 어찌 됐을지 궁금하지 않냐고?”
청명이 피식 웃었다. 장일소 같은……. 아니, 어쩌면 장일소보다 더 신랄한 조롱이 담겨 있었다.
“벌어질 리 없는 일을 궁금해할 만큼 내가 한가하질 않아서 말이야.”
“…….”
“생각도 해 본 적 없어. 내가 너 같은 사파 새끼가 될 수 있다고는.”
“이런, 이런. 상상력이 부족한 아이로구나.”
장일소가 작게 고개를 내저었다.
“정말 생각해 본 적 없니?”
“한 번도.”
“정말?”
장일소가 쿡쿡 나지막이 웃었다. 그리고 청명을 색 옅은 두 눈에 담기라도 하려는 듯 뚫어지게 보았다.
“사파라는 게 딱히 대단한 게 아니란다. 세상이 제멋대로 정해 놓은 규범에 따르지 않으려 하는 이는 모두 사파라 불리는 법이지. 그런 의미에서…….”
무심한 얼굴로 그를 마주 보는 화산검협을.
“지금 저 정파 나부랭이 중에서 사파와 가장 닮아 있는 건 바로 네가 아닐까?”
“…….”
“정말 생각해 본 적 없니? 저 헛소리를 늘어놓는 놈들의 목을 잘라 버리고 싶다든가, 그들이 내세우는 것을 모조리 짓밟아 버리고 싶다든가. 그게 아니라 해도…….”
느리게 말을 잇는 동안, 장일소의 눈빛이 천천히 들끓었다.
“놈들이 제멋대로 세워 놓고 세상의 법도라 칭하는 것들을 모조리 깨부숴 버리고 싶다고 말이야.”
“…….”
청명은 대답하지 않았다.
“정말 그리 생각한 적이 없을까? 정말?”
“……헛소리는 적당히 지껄여. 술맛 떨어지니까.”
차갑게 자른 청명이 장일소를 보며 말했다.
“네가 내게서 어떤 대답을 원하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해 줄 수 있는 대답은 하나야. 나는 너처럼 되지 않아. 이 멍청한 사파 새끼야.”
장일소의 눈이 가늘어졌다.
“겪어 보지 못한 자의 말이로군.”
“무엇을 겪든 간에 똑같아.”
“…….”
“너는 나를 잘 아는 것처럼 지껄여 대지만, 너는 나를 몰라. 아니, 너는 나를 평생 이해할 수 없을 거다.”
“어째서지?”
“너는 오직 너만이 중요한 인간이니까.”
어느새 장일소의 얼굴에는 표정이랄 게 없었다. 그저 청명을 물끄러미 보고 있을 뿐.
“하지만 나는 아니야. 내게 있어 중요한 건 나 같은 게 아니거든.”
“……구역질 나는 위선이로군.”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는 그 구역질 나는 위선을 움켜잡고 사는 인간이다. 네가 그 욕망이란 이름으로 치장한 너절한 증오를 붙잡고 사는 것처럼.”
“…….”
청명이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말했다.
“그리고 어차피 너와 내가 바뀐다 해도 결과는 같아. 적어도 지금이라면.”
“……그건 또 무슨 말이지?”
“넌 진다, 장일소.”
“…….”
“네 입장에 내가 선다 해도 마찬가지야. 그럼 내가 패배하겠지. 애초에 이 전쟁은 너와 내가 결정하는 게 아니야. 이미 그런 순간은 지나갔어.”
그 말에 장일소가 불타는 무당산을 돌아보았다. 그러더니 다시 청명을 보며 기괴하게 웃었다.
“아, 또 그 잘난 믿음 타령인가? 저들이 이겨 줄 거라는?”
“…….”
“그 간절함이 하늘에 닿기라도 바라는 건가? 응?”
“하늘 같은 건 없어. 있다 해도 그 빌어먹을 것한테 뭘 바랄 만큼 멍청하진 않아.”
“호오? 그럼 뭐지?”
“이해 못 하는군. 네가 틀렸어, 멍청아.”
뜬금없는 청명의 말에 장일소가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청명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넌 나를 잡아 뒀다고 생각하겠지, 이곳에.”
“……아니라는 말인가?”
“난 이곳에 없어. 여기에 있는 건 내 껍데기일 뿐이야.”
청명의 시선이 장일소를 두고 천천히 옮겨졌다. 불타는 무당, 그 아래 어딘가로.
“나는 이미 저곳에 있다.”
“…….”
“저기에서 싸우고 있어. 바로 내가.”
“무슨 헛소리를…….”
“너는 아마 영원히 이해할 수 없겠지. 그러니 너는 지는 거야.”
청명이 다시 장일소에게로 시선을 주었다.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그 무심하고 검은 눈빛이 장일소를 꿰뚫었다.
“네가 모든 것을 알고 이해할 수 있다는 그 오만함이 너를 패하게 할 거다.”
장일소의 눈빛이 한차례 크게 흔들렸다. 이 자리에 앉은 이후 처음으로.
화산귀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