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ount Hua Sect RAW novel - Chapter 1684
1684화. 그건 내 알 바 아니고요! (4)
쿠우웅!
직선으로 날린 정권이 상대의 가슴에 틀어박혔다. 거듭 단련된 권에 얻어맞은 이의 몸은 흡사 휩쓸린 가랑잎처럼 튕겨 나갔다.
투웅!
절도(節度)라는 말을 몸으로 구현한 것 같은 동작. 부드러움의 극한이라는 무당의 태극권과 함께 천하를 양분하는 권법, 소림 나한권의 정수가 혜연의 손끝에서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굉장하다.’
남궁도위는 저도 모르게 혜연의 모습을 눈으로 좇았다.
무지막지한 권력(拳力) 때문에 때때로 잊어버리게 되지만, 혜연은 사실 소림의 모든 것을 체화한 고수다.
그가 폭풍처럼 날아드는 병장기 사이로 뛰어드는 순간, 악을 쓰며 병장기를 휘두르던 적들이 달려들던 속도보다 배는 빠르게 도로 튕겨 나간다.
남궁도위가 순간 헛숨을 들이켰다. 잠시 잠깐이지만, 혜연의 움직임을 놓치고 만 것이다.
‘질 수 없지.’
이를 악문 남궁도위가 기합을 내질렀다.
“하아아아압!”
그가 앞으로 박차고 나가며 검을 휘둘렀다.
어떤 위대한 검수라 해도 그저 단순히 철검을 휘두르는 것부터 시작하게 되는 법이다.
창천남궁세가의 근원이나 다름없는 철검십이식(鐵劍十二式)이 남궁도위의 검 끝에서 전력으로 펼쳐졌다.
서걱! 서걱! 서걱!
내력의 소모를 줄인 실전적인 검술. 달려들던 적들이 단숨에 베여 나갔다. 중간중간 놓치는 적들도 있지만 상관없다. 이곳에는 그들만 있는 게 아니니까.
“한 놈도 뒤로 보내지 마!”
“모조리 죽여 버려!”
“천천히 물러나며 전진한다! 아주 천천히!”
혜연과 남궁도위의 활약에 용기백배한 당원들이 산을 등지고 철벽처럼 후방의 적을 막아서고 있다.
그 기세에 고무된 남궁도위가 크게 검을 떨쳤다.
“현재 선두와 간격은?”
“조금 벌어졌습니다, 부당주!”
“뒤처지면 안 됩니다! 속도를 높입니다!”
“예!”
남궁도위가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 뒤를 돌아보았다.
“산이 저리 불타고 있으니 만일 진형이 흐트러지면 각개격파를 당할 수 있……. 뭐, 뭐야, 저거?”
남궁도위는 말도 채 다 잇지 못하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불타는 무당산 중앙으로 검은 길이 열리고 있었다. 너무도 확연하게 보이는 하나의 길이.
“……버, 벌목? 이 상황에?”
아니, 저게 말이…….
“갈 길이 확연히 보이니 좋군요.”
“예, 예?”
담담히 반응하는 혜연의 목소리에 남궁도위가 움찔했다.
하긴 생각해 보면 그랬다. 확실히 저래 놓으면 뒤따르는 이들이 혼동할 염려는 없을 것이다. 사람이 아닌, 길을 보고 뒤따르면 되니까. 따지고 보면 오히려 현명한 방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안 그래도 한시가 급한데 저 나무를 굳이? 아니……. 그게 더 빠른가?
‘제길, 모르겠다.’
남궁도위는 이내 피식 웃고 말았다. 생각이 있겠지. 저들이니까.
“속도가 빨라진 건 좋지만…… 자칫하다가는 진형의 허리가 끊길 수도 있겠군요.”
“그럼 저희가 더 빨리 따라붙으면 되겠죠.”
“으음. 실로 맞는 말입니다, 시주.”
혜연이 빙그레 웃자 남궁도위가 쿡쿡 웃음을 터뜨렸다.
‘하여튼 항상 사람을 괴롭힌다니까.’
뒤에서 따라붙는 이들을 물리치며, 앞만 보고 달려 나가는 이들을 따라잡는 게 쉬울 리 없다. 게다가 이 산에 진입한 이상 뒤뿐만 아니라 좌우에서 달려들 적도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남궁도위는 우는소리를 내뱉지 않았다.
이런 말을 입 밖에 냈을 때 돌아올 말이 선명하게 들리는 듯했으니까.
– 못 해? 왜? 그게 뭐라고? 하여튼 따뜻한 온실에서 뜨신 밥 먹고 자란 것들은 이래서……!
“틀린 말도 아니지.”
“예?”
“아니, 아닙니다.”
남궁도위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어려운 게 당연하다. 세상에 수월한 일 따위는 없다. 어떤 일이 수월하게 느껴진다면, 그건 가진 힘을 모두 쏟아내지 않은 것이다.
이제는 그도 안다. 자신을 끝까지 몰아붙이지 않으면 바라는 결과를 영원히 손에 넣을 수 없다는 것을.
한 발짝 뒤에서 젠체하며 보내는 시간만큼 아까운 것도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간단한 사실을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옵니다, 시주!”
“예!”
남궁도위가 머릿속을 비우며 검을 콱 움켜잡았다.
“한 놈도 못 지나간다!”
그의 검이 찬란하도록 새하얀 검기를 머금었다.
* * *
‘전황은?’
백천의 시선이 바쁘게 뒤쪽으로 향했다. 적들이 개미 떼처럼 후미를 따라붙고 있지만 남궁도위와 혜연이 완벽하게 막아 내고 있었다.
등 뒤에 두 개의 방패를 두른 것 같은 든든함이 느껴졌다. 심지어 저 방패는 쉽사리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백천은 다시 앞을 살폈다.
“죽고 싶으면 막아 봐, 이 새끼들아!”
경박한 입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조걸은 말 그대로 하나의 창이 되어 적을 꿰뚫고 있다. 그리고 앞을 지키고 있는 윤종이 언제든 조걸을 지원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날카롭게 주위를 살피던 백천이 명했다.
“윤종! 좌전방! 적들이 앞을 노리고 온다!”
“예, 사숙!”
윤종이 제 당원들을 이끌고 뛰쳐나갔다. 돌출된 조걸을 노리려던 적들의 앞으로 윤종이 끼어들었다. 누구도 조걸을 방해하게 두지 않겠다는 듯.
“사매! 우측방! 당원들을 이끌고 그쪽을 지원해라!”
“네.”
백천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유이설이 몸을 날렸다. 한 마리의 비조처럼 솟구친 그녀는 아직 적이 채 도착하지 않은 공간을 점거해 태산처럼 버티고 섰다.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존재감이었다.
윤종과 유이설이 자리 잡은 곳으로 한발 늦게 적들이 몰려들었다.
반 수. 아니, 한 수는 더 빠른 대처였다.
“……너?”
진금룡은 다소 놀랐는지 새삼스러운 눈길로 백천을 바라보았다.
백천이 살짝 주먹을 움켜쥐었다.
‘보인다.’
이상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이 산을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적들의 움직임이 손에 잡히고 있다.
분명 얼마 전까지는 그에게 존재하지 않았던 감각이다.
‘어처구니없군!’
백천은 알 수 있었다. 지금 자신이 손에 넣은 감각이 무엇으로부터 비롯되었는지.
과거의 백천은 굳이 전황을 모두 바라볼 필요가 없었다. 누군가 선두를 노린다면 직접 나서서 막으면 되고, 후방을 노린다면 몸을 날려 검을 휘두르면 그만이었으니까.
할 수 있는 것은 직접 해낸다.
가장 선두에서 누구보다 많은 것을 짊어지고자 하는 것이 백천의 방식이었으며, 화산의 방식이었다.
그런데 우습게도 백천이 더는 그 방식을 고수할 수 없게 된 순간, 그간 보이지 않던 게 보이기 시작했다. 가령…….
“후방과 거리가 벌어진다! 후방을 지원하고 진형 유지해!”
“……지금 나한테 하는 말이냐?”
“움직이라고, 당장!”
“빌어먹을.”
진금룡이 못마땅한 얼굴로 이를 갈면서도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 모습을 힐끔 본 백천은 시선을 곧장 앞으로 고정했다.
‘이게 평소 놈이 보던 전장인가?’
실소가 흘러나왔다.
그러니까 그 미친놈은 백천보다 더 앞에서 검을 휘두르면서도, 이런 눈으로 전장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거겠지? 더 넓고, 더 세세하게?
“여하튼 알면 알수록…….”
백천이 으득 이를 갈았다.
산이 얼마나 높은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아래에서 바라보는 이가 아니다. 그 산을 직접 오르는 이들이다.
청명이 섰던 곳을 향해 기어오르고 있는 백천이야말로 청명이 얼마나 괴물 같은 인간인지를 가장 확실히 실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감탄이나 좌절 따위에 잠겨 있을 시간이 없다.
화염의 대지 사이로 검은 길이 뚫리고 있다.
그리고 지금의 백천은 일렁이는 불길 너머의 작은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잡아낼 수 있었다.
‘온다.’
조여 오고 있다.
전방만이 아니다. 좌와 우, 그리고 후방까지. 삼면에서 적들이 접근해 오고 있다. 지금은 천우맹이 치고 나가는 속도가 빨라 그 포위를 벗어나고 있지만, 언제까지나 이 상황이 지속되지는 않을 터.
‘방법은?’
만일 과거의 그였다면 가장 단순한 방법을 택했을 것이다. 앞으로 치고 나가 조걸보다 더 빠르게 길을 열어 버리는 것. 그게 적의 포위를 뚫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하압!”
백천이 검게 그을린 땅을 박차며 윤종이 있는 쪽을 향해 내달렸다. 그러자 뒤따르던 당원들도 이를 악물고 백천에게로 따라붙었다.
“사숙?”
“합류한다, 윤종!”
백천이 윤종의 옆으로 뛰어들며 단번에 검을 휘둘렀다.
서걱!
검 끝이 사람의 육신을 베어 내는 감각이 더없이 생생하다.
“커헉!”
예상치 못한 백천의 난입에 제대로 저항도 하지 못한 사패련도가 피를 뿌리며 허물어졌다.
“사숙, 여기는 제가 맡겠습니다!”
“아니. 밀고 나간다!”
“예?”
백천이 다시 지시를 내리는 대신 더 앞으로 쇄도하며 검을 휘둘렀다.
지시를 내리는 이들도 완벽할 순 없다. 그 어느 쪽도 말이다.
가장 단순한 지휘체계를 갖춘 천우맹조차 이 상황에서 내릴 수 있는 명령은 제한된다. 그러니 천하의 사패련이라 해도 이 산에 퍼져 있는 모든 이들에게 세세하게 명을 내리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그 말인즉, 저들의 의도를 한번 꺾어 내기만 하면 태세를 재정비하는 데 반드시 시간이 소모된다는 뜻이다.
“모조리 박살 내 버려!”
“제길! 알겠습니다!”
백천의 명령에 어떤 의도가 담겼는지 윤종이 완벽히 이해했을 리는 없다. 하지만 그는 되묻는 대신 의심 없이 이행했다.
지금은 그걸로 충분하다.
“하아아아아아압!”
윤종의 검에서 뿜어져 나온 검기가 산산이 흩어지며 허공에 무수한 매화 잎의 형상을 자아냈다. 명산 무당에서 피어나는 화산의 매화가 달려들던 적들을 순식간에 뒤덮었다.
“으, 으아아!”
“물러서어어어어어!”
한층 더 강해졌다. 그렇기에 백천의 눈에는 더없이 찬란해 보이는 매화검기가 달려들던 적들을 휩쓸어 버렸다. 백천의 시선이 아주 잠깐 그 검기를 놓아주지 못하고 머물렀다.
그토록 화려하게 피어났던 꽃잎들이 서서히 스러진다. 눈부신 찬란함은 그저 한순간. 하지만 그렇기에 더없이 아름답다.
“사숙?”
쿵.
백천이 진각을 밟았다. 윤종의 목소리에…… 아니, 그 목소리가 미처 머릿속에 닿기 전에.
“선두에 서라, 윤종아! 내가 보좌한다!”
“예!”
그렇게 윤종이 앞으로 치고 나아가는 순간, 백천은 문득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그러고는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몸을 세워 주변을 돌아보았다.
여전히 전방에서 힘껏 길을 열고 있는 조걸, 지시에 따라 좌우를 공략하고 있는 윤종과 유이설. 그리고 후방을 완벽히 틀어막고 있는 혜연과 남궁도위까지.
이 모든 광경이 커다란 화폭에 거칠게 그려진 그림 같았다. 아니, 어쩌면 그저 꿈같기만 할지도 모른다.
그때, 거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진동룡!”
백천이 획 돌아보니 전력으로 달려오고 있는 진금룡의 모습이 보였다.
“뭐 해, 이 멍청아! 명을 내려!”
퍼뜩 정신을 차린 백천이 시선을 돌렸다. 선두의 조걸이 어느새 새하얀 절벽에 거의 도달해 있었다.
꾸욱!
백천이 힘껏 검을 움켜잡았다.
“물러난다! 선두에 합류해라!”
“예!”
백천이 이를 악물었다.
‘아직은 아니야!’
언제고 피할 수 없게 된다고 해도, 지금은 아니다.
아직 그는 끝난 게 아니다.
백천이 내달렸다. 청명의 등이 아닌 조걸의 등을 쫓아서.
“열어라, 걸아!”
“으라야아아아아아압!”
조걸의 검이 필사적으로 앞을 틀어막는 이들의 육신을 비정하게 갈라 낸다. 어느 틈엔가 길게 베인 조걸의 뺨에서 새빨간 피가 방울방울 튀어 올랐다.
콰득! 콰득! 콰득! 카각!
조걸의 시선이 앞으로 향했다. 적의 몸을 뚫고 그의 검이 닿은 곳, 그것은 절벽이었다.
검붉게 얼룩진 흰 절벽이 철옹성처럼 그의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빌어먹을! 뚫었다고요, 사숙!”
환희에 찬 발작적인 외침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백안암. 이제는 붉게 물들어 버린 그 절벽에 마침내 천우맹이 도달했다.
화산귀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