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ount Hua Sect RAW novel - Chapter 1685
1685화. 그건 내 알 바 아니고요! (5)
“으아아아아아아아!”
조걸이 폐를 뱉어 낼 기세로 포효를 내질렀다. 피로 칠갑한 손이 검을 쥔 채 덜덜 떨리고 있었다.
“망할, 해냈다고! 제기랄!”
주먹으로 백안암을 쾅쾅 후려친 조걸이 빠르게 몸을 돌렸다. 뒤에 선 이들이 더없이 상기된 눈으로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들은 안다.
이 산에서 길을 열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적이 언제 어떻게 불길 뒤에서 덮쳐 올지 모를 상황에서 선두로 나서 싸운다는 게 얼마나 공포스러운 일인지.
하지만 그 험난한 길을 이 사내가 당당히 걸어 마침내 여기에 도달한 것이다.
조걸이 이곳에서 증명한 건 단순히 검의 날카로움이 아니었다. 먼저 내디딜 수 있는 한 발. 세상은 그걸 용기라 부른다.
이곳에 선 당원들은 절감했다. 설령 이곳에서 만들어 내는 결과가 실패로 돌아가는 한이 있어도, 이젠 감히 누구도 조걸에게 자격이 부족하단 말은 할 수 없게 될 거란 사실을.
조걸이 명령했다.
“뭐 하십니까! 뒤를 경계해요! 합류하는 이들을 노리고 옵니다! 막아 주십시오, 당장!”
“예, 부당주!”
대답하는 목소리에 전에 없던 절도가 어렸다. 조걸은 흥분을 숨기지 않은 채 외쳤다.
“그 뒤도 꾸물대지 말고 빨리 오란 말입니다! 뭐 하십니까!”
“가고 있다, 이 자식아!”
우렁차게 귀를 찌르는 목소리에 윤종이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저 주둥이만 닫고 있어도 평가가 배는 올라가겠다, 망할 녀석 같으니!”
윤종은 혀를 차고 투덜거리면서도 제 당원들을 독려했다. 합류를 서둘러야 하는 건 사실이니까.
“여기로!”
그 순간, 백천이 검을 높게 들어 올렸다. 모두가 잘 볼 수 있도록.
“각 당은 이곳을 중심으로 방진을 짜십시오, 지금 바로!”
“예!”
백천이 주변을 빠르게 살폈다. 절벽에 도달한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 말인 곧 천우맹의 움직임이 멈췄다는 의미도 된다.
적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당연히 둘러싸고 포위하며 공격하려 들 것이다.
백천의 시선이 등 뒤로 자리한 절벽, 정확하게는 그 좌우로 난 소로를 향해 쏘아졌다.
‘좁다.’
가파른 절벽과 이어진 길이다. 이 많은 이들이 오르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동룡아, 온다!”
“제길!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
반사적으로 고함을 내지른 백천이 앞쪽을 바라보았다. 아직 채 잦아들지 않은 불길 사이사이로 적들이 성난 소처럼 밀고 들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응?”
“어라?”
“……거, 묘하네.”
백천, 조걸, 윤종이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 활활 타오르는 불길 너머로 적들이 우글우글 몰려들고 있다. 그런데 쉽사리 불길을 넘어서지는 못하고 있다.
우습게도 사패련이 일으킨 불길이 되레 천우맹이 단번에 포위되지 않도록 막아 주고 있는 셈이었다. 흡사 천우맹이 저들에게 대항해 커다란 불꽃 벽을 세우기라도 한 것 같지 않은가.
“이런 걸 두고 자승자박이라고 해야 하나?”
“오? 그런 말도 알아?”
“내가 청명이 놈인 줄 압니까?”
무시당한 조걸이 발끈했다. 윤종은 신경도 쓰지 않고 앞을 주시했다. 그 와중에 조금 뒤처져 있던 남궁도위와 혜연도 제 당을 이끌고 합류해 왔다.
“시주!”
“고생하셨습니다, 스님!”
“천만의 말씀입니다. 고생은 길을 뚫은 조걸 시주께서 하셨지요.”
“알아주셔서 감…….”
“아니, 그건 됐고요.”
“쟤는 별로 한 것 없습니다, 스님.”
시무룩해진 조걸이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어쩌다 이런 인간들이랑…….
“그럼 이제 어떻게 합니까, 장문대리?”
남궁도위의 물음에 백천이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다.
일단 절벽을 등졌으니, 뒤를 지키며 적과 싸울 수 있는 상황까지는 확보했다. 게다가 줄곧 후미를 공격해 오던 이들의 기세도 어느 정도 잦아들었다.
일단은 다소의 여유는 확보한 상황.
백천이 차분히 답했다.
“다를 것 없습니다. 우선은 여길 단단히 지키면서 소수의 정예를 중심으로 좌우의 소로를 돌파합시다!”
“사숙.”
“왜?”
“……그거 안 될 것 같은데요?”
“아니, 뭔……. 음?”
질문하려던 백천이 무언갈 느끼고 획 위를 올려다보았다.
쇄애애애애액!
쿠웅!
무언가 절벽에 처박히며 추락하고 있었다.
‘사람?’
백천의 얼굴이 확 굳어졌다.
“걸아!”
“이런, 제기랄!”
조걸이 곧장 땅을 박차며 몸을 띄워 올렸다. 그리고 추락하는 이를 낚아채며 내려섰다.
“으…….”
조걸의 손이 짧게 떨렸다. 몸에 두어 개의 날붙이가 박힌 채 처참하게 망가진 이가 그의 품에서 경련하고 있었다.
찢어지고 뜯겨 나갔지만, 추락한 이가 입은 건 분명 무당의 무복이었다.
“괘, 괜찮…….”
조걸은 습관적으로 괜찮으냐 물으려다 결국 입을 꾹 다물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 이 사람이 더는 가망이 없다는 걸 모를 수가 없으니까. 설령 당소소가 여기에 있다 해도 손을 쓸 수 없을 것이다.
“제길…….”
조걸이 분한 마음에 입술을 물어뜯었다. 그런데 그때, 추락한 이가 서서히 눈을 뜨며 입을 열었다.
“화, 화산……?”
“예! 화산!”
조걸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천우맹입니다. 정신이 드십니까?”
“위, 위에…… 사형…제들이.”
“…….”
“위…험……. 곧…… 전…….”
사내의 고개가 힘없이 옆으로 툭 꺾였다. 조걸의 품에서 경련하던 몸도 잦아들며 조용해졌다.
조걸은 이를 악물고 그 모습을 내려다보다 조용히 바닥에 눕혔다. 그러고는 굳은 얼굴로 백천을 보았다.
“마지막에 하려던 말이 뭔지 이해하셨습니까?”
“……곧 전멸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겠지.”
으득.
조걸이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백천의 시선은 절벽 끝에 머물러 있었다. 알에서 갓 태어난 새끼 거미들처럼 오글오글 매달린 이들이 지금도 무당을 노리며 절벽 상부를 악착같이 오르고 있었는데, 실로 흉물스러웠다.
무당의 상황이 예상을 뛰어넘을 만큼 좋지 않다. 적들이 절벽을 오르고 있는데, 무당에선 되레 그 절벽 밖으로 내몰려 떨어지는 이가 나오고 있다.
이것만 보아도 절벽 위의 상황을 짐작하기 충분하지 않은가.
“가자, 윤종아!”
“잠시만요. 사숙!”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우리가 여기에 왜 왔는지 알잖느냐?”
“무립니다! 저 소로에 적들이 진을 치고 있을 겁니다.”
“뚫고 가야지!”
“뚫는 게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빨리 가느냐가 문제입니다! 그런 방법으로는 우리가 절벽 위에 도달할 때까지 무당이 못 버팁니다.”
“그럼 어쩌…….”
“올라갑시다!”
“응?”
“뭐?”
백천과 윤종의 시선이 동시에 조걸을 향해 돌아갔다. 조걸은 제 검지를 위로 치켜든 채 등 뒤의 절벽을 가리키고 있었다.
“절벽은 특기잖습니까, 우리!”
“자, 잠시만, 걸아. 그건…….”
“뭘 고민합니까! 여기가 제일 빠른 길인데!”
“너무 위험하다!”
“아니, 그건 내 알 바 아니고요!”
조걸이 급기야 이를 드러내며 두 사람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다.
“위험하다고 안 할 겁니까?”
“…….”
“딱 봐도 방법이 하나밖에 없는데 고민할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당장 올라야지! 이게 제일 쉬운 방법이잖아요!”
그 말에 백천이 다시금 절벽을 살폈다.
가능한가, 하고 묻는다면 당연히 가능하다.
사패련도들이 오를 수 있는 절벽을 그들이라고 오르지 못할 리는 없다. 하지만…….
백천과 같은 생각을 했는지, 윤종이 냉정하게 조걸의 의견을 잘라 내었다.
“그건…… 우리가 화산일 때의 이야기다. 저길 오르는 순간 기껏 세워 둔 체계가 모조리 무너지고 만다. 절벽 위에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어. 그럼 희생이 너무 늘게 된다.”
“빌어먹을! 그럼 그냥 구경만 하자는 겁니까?”
“소로를 빨리 뚫으면…….”
“늦다고요! 늦는다고!”
쾅!
조걸이 절벽을 주먹으로 쾅 치며 눈을 부라렸다.
“뻔히 실패할 방법을 시도하자는 겁니까? 여기까지 온 게 아까워서? 면피나 하자고요?”
“걸아!”
“방법은 선택하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겁니다! 아닙니까?”
백천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조걸의 말이 맞다. 하지만…….
“뭘 고민하는 거냐? 멍청한 놈아.”
그 순간 귓가에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스쳤다. 백천이 이를 으득 갈았다.
“제길. 지금은 너랑 입씨름할…….”
“올라가.”
“……뭐?”
어느새 후미를 정리해 두고 다가온 진금룡이 오만한 눈으로 백천을 보고 있었다.
“너희 화산 원숭이 놈들이라면, 단숨에 올라갈 수 있겠지.”
“지금 나는 화산…….”
“여기 있다, 네 화산 놈들.”
진금룡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여기저기서 익숙한 이들이 달려 나왔다. 검은 무복, 그 가슴에 새겨진 매화.
너무도 익숙한 화산의 검수들이다.
“사숙!”
“저희는 준비됐습니다!”
“명만 내리십시오. 사형!”
백천의 두 눈이 짧게 흔들렸다. 갈등이 가슴속에 스쳤다. 하지만…….
“아니. 지금은…….”
“쓸데없는 소리 지껄이지 마라.”
“뭐?”
진금룡이 피식 웃었다.
“애초에 당을 만들어 문파를 쪼갠 건 각 문파가 제 잇속만 챙기지 말자는 의도에서였다. 그런데 설마 여기서 화산이 저 절벽을 오르는 걸 부러워할 미친놈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
“그러니 잔말 말고 꺼져. 여긴 내가 막을 테니까.”
할 말을 마친 진금룡이 검을 크게 휘두르듯 떨치고 몸을 돌렸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는 일도 없이 적을 향해 나아갔다.
“지금부터 내가 지휘한다!”
백천이 어처구니없이 바라보고 서 있자, 남궁도위가 피식 웃었다.
“사이좋은 형제네요.”
“누가?”
“솔직하지 못한 것도 똑 닮았고.”
“아니, 소가주님!”
쿡쿡 웃은 남궁도위가 제 검을 툭 치며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가십시오, 장문대리. 여긴 제가 맡겠습니다.”
“하지만…….”
“장문대리가 무당을 구할 때까지 버티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임무입니다. 그 정도도 못 해서야 남궁이라는 성이 울겠지요.”
빙긋 웃은 남궁도위가 이번엔 혜연을 보았다.
“여긴 제가 맡을 테니, 선두로 가십시오.”
“시, 시주?”
“스님도 그러고 싶으셨던 것 아닙니까?”
혜연의 얼굴이 살짝 붉게 달아올랐다.
“스님만 어른스럽게 굴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리고…… 아시겠지만, 여긴 우리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맞는 말씀!”
누군가가 끼어들며 성큼성큼 다가왔다. 부채를 크게 흔드는 모습에 아주 자신감이 넘쳤다.
“남궁 소가주께서도 이제 드디어 이 몸의 가치…….”
“각 당주들께서 계십니다. 그분들이 지금은 자중하고 계시지만 위기가 닥치면 나서실 겁니다.”
“……아니, 저도 있…….”
“그리고 저들 하나하나가 모두 명문의 정예들입니다. 무시하지 마십시오.”
“……저 얌생이 같은 인간이 끝까지 무시하네? 지체 높으신 분 눈에 사파 새끼는 보이지도 않으시나?”
남궁도위가 그제야 흘끗 시선을 주며 중얼거렸다.
“알면 좀 꺼지시든가.”
“뭐?”
두 사람이 여느 때처럼 옥신각신하기 시작하자 백천은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었다.
뭐가 잘 돌아간다 했다, 그래.
다시 고개를 들자, 주변에 서 있는 이들이 모두 눈에 들어왔다.
조걸과 윤종, 유이설과 혜연, 그리고 그 뒤에 선 매화검을 든 검수들까지. 백천은 순간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지긋지긋도 하지.”
“누가 할 말을.”
“그게 사숙이란 사람이 할 말입니까?”
“한동안 떨어져서 살 것 같았는데.”
“시끄럽다, 망할 놈들아! 한마디도 안 지지!”
버럭 일갈한 백천이 절벽 위로 시선을 주었다. 그의 얼굴에 진중함 대신 들끓는 열기가 서서히 차올랐다.
백천이 화산을 향해 명령했다.
“지금 무당이 목숨을 걸고 버티고 있다.”
화산 검수들의 표정이 일변한다.
“간다, 화산! 단번에 오른다!”
“예!”
파아앗!
검은 비조들이 절벽을 박차고 솟아올랐다.
두 눈에 보이는 세상이 바뀐다. 높게 솟아 있던 절벽이 평지처럼 아래로 내려오고, 그 앞으로 먹처럼 검은 하늘과 숱한 별들이 쏟아지듯 펼쳐졌다.
그 바뀐 세상을 일백여 자루의 검이 유성처럼 가르고 있었다.
화산귀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