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ount Hua Sect RAW novel - Chapter 1691
335장 그럼 족하지.
서늘한 바람이 술잔 위를 스쳤다.
말없이 잔을 매만지던 장일소가 고개를 돌려 불타는 무당산을 바라보았다.
“저곳에 있단 말이지?”
나른한 목소리지만, 그 안에는 명백한 조소가 드리워 있었다.
“바로 네가?”
“…….”
청명은 가타부타 말없이 그런 장일소를 마주 보았다.
“이런, 이런.”
장일소가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느림에도 마치 경극 배우를 보는 듯 과장된 움직임이었다. 항시 배어 있는 그 과한 느낌이 마주 보는 이로 하여금 장일소의 진의를 짐작하기 어렵게 했다.
“내가 알기로 도인이란 작자들은 신선이 되고자 한다던데……. 지금 보니 너는 신선이 아니라 시선(詩仙)이 되고 싶은 모양이로군.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렇게 운치 있어서야…….”
장일소가 쿡쿡 소리 내어 웃었다. 기름한 두 눈이 하현달처럼 휘었다. 어울리지 않는 옷을 빼입은 광대를 보듯.
“나처럼 못 배워 먹은 놈에게는 영 뜬구름 잡는 소리로밖에 안 들리는구나.”
“장일소.”
“멍청한 소리만 자꾸 하니 내가 알려 주마. 지금 바로 여기에 있단다.”
“…….”
“네가 말이다. 저 불타는 산이 아니라, 바로 여기에.”
웃고 있지만 장일소의 시선은 금방이라도 청명을 꿰뚫어 버릴 듯했다. 그러나 청명은 그 도발적인 눈빛에 화답해 주지 않았다. 그저 예상했다는 듯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기대도 안 했다. 네가 내 생각을 알 수 있을 거라고는.”
“그래?”
장일소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어렸다.
“그럼 너는? 너는 내 생각을 알 수 있니?”
“넌…….”
“알 수 없겠지.”
“…….”
“그저 짐작하고, 스스로 확신할 뿐. 그렇지 않니?”
청명의 얼굴이 살짝 차가워졌다.
“그런 흉흉한 표정 짓지 말려무나. 너를 무시하려는 의도는 아니니까. 너뿐 아니라 모두가 마찬가지잖니?”
장일소의 두 눈이 요사스레 빛났다.
“사실은 누구도 타인의 속내 같은 건 알 수 없으니까.”
일견 무심해 보이도록 침잠한 청명의 눈빛과 들끓는 장일소의 눈빛이 허공에서 얽혔다.
“가련한 믿음이지.”
“…….”
“서로의 마음을 알고, 서로서로 이해한다. 한마음으로 한곳을 바라보고, 같은 생각을 한다.”
장일소의 나직한 웃음소리가 청명의 귀를 파고들었다.
“그런 건 불확실함과 모호함을 버텨 낼 수 없는 나약한 이들이 필사적으로 매달리곤 하는 허상이란다. 사람은 사람을 알 수 없어. 누구도 나를 바라보는 이의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완전히 알 수 없지. 그 사실을 직면할 용기가 없으니 적당히 지어낸 가짜를 믿고 싶을 뿐이란다.”
장일소는 운치 있는 풍경을 보듯 그윽하게 산을 구경하며 물었다.
“네가 정말 저기에 있을까?”
“…….”
“네 생각이, 네 의지가, 네가 믿으려 하는 것이 정말 저곳에 있을까? 네가 말하는 너의 ‘조각’들을 정말 저들이 품고 있을까?”
“……장일소.”
“꿈같은 소리.”
서늘하다.
청명은 그렇게 느꼈다. 조금 전과 다를 바 없이 선선하고 가벼우며 살짝 달뜬 저 목소리가, 이 순간만은 이상하리만치 싸늘했다. 어투에는 그런 기색이 한 올도 실리지 않았는데 말이다.
“사람은 혼자 태어나 혼자 죽는 거란다. 그건 누구도 바꿀 수 없는 진리지.”
“…….”
“그리고 살아가는 내내 한순간도 타인의 진의(眞意)를 볼 수 없단다. 기껏 볼 수 있는 거라고는 지어낸 표정과 둘러대는 말, 그리고 적당히 내보이는 겉치레뿐이지.”
“그건 너의 경우겠지. 모두가 너처럼 사는 건 아니야.”
“흐음……?”
장일소의 눈매가 조금 더 크게 휘었다. 그 눈빛 앞에, 청명은 저도 모르게 손에 쥔 술잔을 매만졌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니?”
“…….”
“정말?”
청명이 눈썹을 매섭게 꿈틀했다. 알 수 없는 불쾌함이 밀려들었다. 그가 한 마디 쏘아붙이려는 순간, 장일소의 입이 다시 열렸다.
“그럼…… 너는 정말 모두에게 네 속내를 있는 그대로 말해 왔던가? 그저 믿어 주길 바라며 적당히 꾸며 낸 말을 해 댄 게 아니라?”
청명의 눈꼬리가 희미하게 떨렸다.
“네가 말하는 그 ‘믿음’이란 것 앞에서 너는 정말 떳떳할까? 네가 저들을 믿는 만큼 저들이 너를 믿는다면, 너는 정말 그 믿음에 부응하는 사람일까? 정말?”
“함부로 지껄이지 마라. 너…….”
“아, 이해한단다.”
장일소의 눈이 일순 어둑해졌다.
“이유는 있었겠지. 말할 수 없는 것이라서, 모르는 게 나은 것이라서,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방법이라서, 더 먼 미래를 위한 일이라서…….”
손등을 스치는 공기가 갑자기 한없이 차가워진 듯했다. 그럴 리가 없을 텐데도.
“하지만 변명을 덕지덕지 붙여 감춘 그런 가면을 두고, 세상은 ‘거짓’이라고 한단다.”
장일소가 친절하게 웃어 보였다. 그럴수록 청명의 얼굴은 더욱 굳어졌다.
“그렇잖니.”
청명은 보았다. 장일소의 얼굴에 어린 조소를, 귀기를, 그리고 실망을.
그리고 그것들은 어쩌면 청명에게 향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토록이나 믿음을 설파하시는 분조차 쉬이 거짓을 논하고, 있는 그대로의 내가 아니라 적당히 꾸며 낸 나를 내보이려 하지. 제 진의는 속에 꼭꼭 감춘 채로 말이다.”
“…….”
“그러면서 자신은 타인의 마음을 알고 있다 믿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하하하하핫!”
청명의 얼굴을 가만히 본 장일소가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유쾌하다기보다는 어딘가 비어 버린 것 같은 웃음이었다.
“이래서……. 그래, 이래서 세상이란 한바탕 놀고 가는 경극에 지나지 않는 거지. 서로가 짙은 분장으로 얼굴을 감추고 제가 맡은 역할을 연기하는 거야.”
장일소가 손끝으로 입술을 서서히 그었다. 연지 발린 입술을 지나 입꼬리까지 간 손끝이 꾹 눌리며 서서히 위로 올라갔다.
억지웃음을 짓듯이.
“그 분장 뒤에 어떤 얼굴이 있는지 궁금하지 않니?”
“……대체 무슨 말을 지껄이고 싶은 거냐?”
“아, 혹시 확인해 볼 용기가 없는 건가?”
“장일소!”
채앵!
청명이 분노하며 외치는 것과 동시에 손에 쥐여 있던 잔이 그대로 터져 나갔다.
차가운 술이 손을 타고 흘렀다. 그 모습은 흡사 핏방울 같았다.
다탁 위로 방울방울 떨어지는 술을 말없이 바라보던 장일소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너라면 알 줄 알았단다.”
“무슨…….”
“내가 본 너야말로 가장 자신을 감추는 데 능숙한 사람이니까. 타인을 이해할 생각 따윈 없이, 오직 자기 자신만이 옳다 믿는 자기 확신의 화신 같은 사람이니까. 네게 있어 이해란 그저 또 다른 이름의 자비에 지나지 않지. 모자란 이들에게 네가 맞춰 주는 것을 너는 이해라 부르니.”
청명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
하지만 장일소의 조소가 청명을 향한 것이 아니듯, 그의 분노 역시 장일소를 향한 게 아닐지도 몰랐다.
“이 새끼…….”
장일소의 이야기는 청명에 대한 모독이었다. 그 어떤 욕설보다 더한.
“아닌가? 나는 그렇게 봤는데 말이지.”
그러나 장일소는 여전히 웃는 낯 그대로였다.
“우습잖니. 믿음을 논하는 너는 누군가에게 자신을 감추려 들고, 거짓을 논하는 나는 어느 하나 거리낄 것 없이 나 자신을 드러내는 게.”
“…….”
“이것 또한 재미있는 한 편의 경극이지. 어떠니? 너도 화장해 볼 테냐? 아니, 이미 하고 있던가? 나보다 더 짙은 화장을 말이야. 하하하하하하핫!”
어깨까지 들썩이며 웃는 장일소를 보며 청명은 침묵했다. 그 웃음은 아주 길게 이어지며 삭막한 밤을 휘저었다.
“믿음! 믿음이라! 하하하하하하핫! 이 얼마나!”
웃음을 참지 못하는 그를 보며 청명은 생각했다.
저 웃음에 단 한 점의 씁쓸함도, 서글픔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 웃음이 더없이 처량하게 들리는 건, 청명의 가슴속에 장일소에게는 없는 처량함이 배어 있단 뜻이리라.
알 것 같다.
어째서 이자를 마주하는 게 매번 이토록이나 역겨운지. 어째서 이자를 지켜보면 견딜 수 없이 속이 뒤틀리는지.
그때, 겨우 웃음을 그친 장일소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넌지시 말을 건네 왔다.
“그럼 하나 묻겠는데 말이야.”
“……뭐지.”
“그 믿음이라는 게 깨어진다면, 너는 어떻게 할 거지?”
“…….”
“저들이 네 기대에 부응할 거란 믿음, 저들이 너와 같은 생각을 할 것이라는 믿음, 네가 하려는 것이 저들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는 믿음. 그 꼴같잖은 믿음들이 산산조각 난다면…….”
장일소의 입꼬리가 삐딱하게 올라갔다. 깊은 지옥에서 형틀에 묶인 죄인을 바라보는 마귀의 것 같은, 비틀린 웃음이었다.
“그러면 그때는 뭐라 지껄일 셈이지? 응, 화산검협?”
* * *
“놈들이 모두 정상에 올랐습니다.”
“…….”
독심나찰 호가명은 대답 없이 백안암의 정상을 응시했다.
적들이 이곳까지 파고들고, 단 한 번의 머뭇거림 없이 산을 돌파했으며, 막아서는 이들을 모조리 베어 내고 마침내 무당이 기다리는 백안암까지 도달했다.
누가 상상했을까.
사패련이다. 구파일방을 짓밟고 천하의 삼분지 이에 달하는 영역을 발아래 복속시킨 이 시대의 지배자다.
그런 사패련이 모여 있는 이곳에서 이만한 신위를 보이는 게 정말 가능한 일일까? 이런 상황을 기대하며 저놈들을 그토록 믿은 사람이 과연 하나는 있었을까?
이러한 질문 앞에 호가명이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였다.
적어도 한 명. 단 한 명만은 그 사실을 의심 없이 믿었다고.
바로 독심나찰 호가명, 그 자신이 말이다.
“과연 훌륭하군, 화산.”
경탄해야 할지, 비웃어야 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제아무리 대단한 명검도 제대로 된 검수의 손에 들리지 않는다면 고작해야 날붙이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화산이라는 검이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청명이라는 검수의 손에 들리지 않으면 흔해 빠진 문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긴장하고 있던 내가 멍청하게 느껴질 정도로군.’
강한 문파 따위야 얼마든지 있다.
그 누구도 소림을 화산보다 약한 문파라 생각지 않는다. 그런 소림도 짓밟아 버린 사패련에게 있어 화산의 강함은 논쟁거리조차 되지 못한다.
화산이 특별했던 이유가 이제 더는 화산에게 없다.
호가명의 눈이 심유하게 가라앉았다.
“놈은?”
“녹림왕을 두고 말씀하시는 거라면, 그는 지금 절벽 아래에 있습니다. 본대를 두고 화산을 따르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입니다.”
호가명이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그의 눈은 백안암의 정상에서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았다.
“시작해라.”
“……하지만, 군사. 아직 천면수사께서 빠져나오지 못하셨습니다.”
“빠져나오지 않는다.”
“……예?”
호가명의 눈이 차갑게 빛난다.
“나는 천면수사에게 그런 말을 전한 적이 없으니까.”
부관들이 놀라 눈을 부릅떴다. 그러곤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호가명과 백안암의 정상을 번갈아 보았다.
“어…….”
“하오문주쯤 되는 이다. 살아 나온다면 그 이름값을 증명할 것이고, 그러지 못한다면 고작 그것밖에 안 되는 거겠지.”
“…….”
“시작해라.”
“예!”
부관들이 더는 이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옳은가, 옳지 않은가를 판단하기 이전에 그들은 호가명의 명을 거부할 권한이 없었다.
백안암의 정상을 빤히 주시하던 호가명이 마침내 시선을 천천히 옮겨 저 멀리 산 아래, 누군가가 있을 곳을 좇았다.
‘네 과신의 대가를 치를 때다, 화산검협.’
호가명의 두 눈에 필사적으로 억눌렀던 열기가 들어차기 시작했다.
파아아아앗!
섬전이라는 말도 이 검을 표현하기엔 부족했다.
인식하는 순간 닿아 있고, 느끼는 순간 꿰뚫려 있다. 말 그대로 빛살이었다.
콰드득!
느낄 수 있는 건 오직 하나. 뚫린 목에서 작렬하는 고통뿐이었다.
“끄륵…….”
단 한 번도 스스로 내어 본 적 없는 소리가 흘러나올 즈음.
파아앗!
내지른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회수된 검이 얼굴을 스치며 다시 재차 뻗어진다. 마치 십여 줄기의 빛이 몸을 스치는 것처럼.
“커헉!”
“끄윽!”
서서히 허물어지며 시선을 올리면, 그의 목숨을 끊은 이가 한껏 가까이 다가와 있는 게 보인다. 검을 휘둘러 대항하겠단 의지를 떠올릴 새도 없이, 그에게 달려든 이가 허물어지는 그의 몸을 타고 넘듯 지나친다.
털썩.
쓰러진 육신에서 혼백이 빠져나가기도 전, 조걸의 검이 다시 한번 강맹하게 허공을 내질렀다.
“하아아아아압!”
하나의 검기를 수십으로 쪼개 날리는 듯한 조걸의 공격은 백발백중이었다.
“이, 이놈이!”
거대한 박도를 든 칠 척 장한이 두 눈에서 불을 뿜으며 도에 힘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파아아앗!
도를 뒤로 젖히며 비트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섬전 같은 검기가 그의 육신을 향해 날아들었다.
‘엇?’
장한이 눈을 커다랗게 치뜬 순간, 조걸의 검기는 여지없이 그의 옆구리에 틀어박혀 있었다.
끔찍한 고통이 찾아왔지만, 장한은 이를 이겨 내며 있는 힘을 다해 도를 휘둘렀다. 아니, 휘두르려 했다.
그러나.
콰드득!
조걸의 검기가 그의 어깨와 팔꿈치를 끊어 내는 게 더 빨랐다. 있는 힘을 모조리 실어 젖혔던 도가 채 뻗어지지 못한 채 멈춰 섰다.
갈 곳 잃은 내력이 역류하며 내장이 온통 짓뭉개지는 듯한 고통이 장한을 찾아왔다.
순간 저도 모르게 쩌억 벌어진 장한의 입으로 새하얀 검신이 파고들었다.
푸욱!
날카로운 날붙이가 살을 뚫고 뼈를 끊는 감각. 그에 뒤이어 찾아온 건, 시야를 채우며 밀려드는 짙은 어둠이었다.
콰당!
장한의 몸이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조, 조장!”
“조장이 저렇게 단번에…….”
주변에 있던 이들의 눈에 공포가 차오르기 시작한다.
저 거무튀튀한 박도가 얼마나 많은 이들의 목을 베었던가. 얼마나 많은 이들의 육신을 토막 내었던가.
백정의 칼 같던 저 박도가 제대로 휘둘러지지도 못했다. 휘둘러지기만 하면 무엇이든 부수고 베어 낼 듯했던 도가.
“으…….”
이 광경이 전하는 의미는 하나였다.
그들이 사람의 목을 베는 데 익숙한 만큼, 저자는 그들의 목숨을 끊는 데 익숙하다. 그들이 어찌 칼을 휘두르고, 어찌 공격해 올 것인지를 제 손금 보듯이 알고 있다.
바로 저 곱슬머리의 어린 검수가 말이다.
“이, 일검분…….”
콰득!
일검분광 조걸의 검이 적의 목을 뚫었다. 얼굴에 튄 피를 닦아 낼 생각 따윈 없는 듯, 조걸의 두 눈은 곧장 겁에 질린 적들을 넘어 필사적으로 항전하고 있는 무당의 검수들에게로 향했다.
조걸이 피에 젖은 이를 드러냈다.
“비켜! 이 사파 새끼들아!”
“걸아, 무리하지 마라!”
“지금 무리 안 하면 언제 무리합니까! 빌어먹을!”
두 눈에 핏발을 세운 조걸이 흉신악살처럼 재차 땅을 박찼다.
“하여튼 저놈은……!”
윤종이 이를 갈며 그런 조걸에게 따라붙었다.
타앗!
땅을 박차는 윤종의 시야에 옆쪽 적의 어깨가 들썩이는 모습이 들어온다.
파앗!
생각보다 먼저 검이 움직인다. 수없이 베고 싸워 온 사파다. 그들의 의도 따위는 머리 이전에 몸이 알아챈다.
뻗어 나간 검이 조걸의 옆구리 쪽으로 날아드는 창을 단번에 쳐 내고는, 거기에 멈추지 않고 창수의 손목을 곧장 잘라 버렸다.
“아악! 손! 내 소오오오온!”
파앗!
약속이라도 한 듯 조걸의 검이 비명을 지르는 이의 목에 박혔다.
그들의 육신 곳곳에는 사파가 만든 흉터가 빼곡하게 자리하고 있다. 상처 하나하나가 그들의 스승이나 다름없다. 이는 여기 있는 모두 마찬가지였다.
파라라라락!
수백의 나비가 일시에 날아오르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화산 검수들이 뿜어낸 매화검기가 백안암 위를 채운 적들에게 쏟아진다.
경이롭다는 말 외에는 표현할 길 없는 환상적인 광경이 무당산의 모습을 일순 익숙한 화산의 정경으로 뒤바꾸어 놓는다.
만발한 매화가 불어온 바람에 흔들리고, 휘도는 매화 잎이 적들의 육신을 에워쌌다.
“매, 매화검기다!”
“피해!”
하늘거리며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은 모습이지만, 저 가녀린 꽃잎 하나하나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날을 감추고 있음을 모를 사파인이 아직 있겠는가.
사패련도들이 급히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빼내려 했지만, 이 좁은 공간에 빽빽이 서 있으니 물러날 공간 따위가 있을 리 없었다.
서걱! 서걱! 서걱! 서걱!
날아든 매화검기가 여지없이 적들의 몸에 박혀 든다.
살을 가르고 뼈에 박히는 검기가 주는 고통에 사패련도들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라차아아아!”
곽회가 윤종의 앞으로 뛰쳐나갔다. 매화검기에 꿰뚫려 발악해 대는 적의 목을 단번에 찔러 확실히 숨통을 끊기 위함이다.
“입 닥쳐!”
콰득!
목을 뚫고 들어간 검을 비틀며 휘둘러 낸 곽회는 굶주린 독사처럼 적들을 찾아 쇄도했다.
독하고 악랄하기 이를 데 없는 검.
“으아아아!”
사패련도가 절규하듯 외치며 제게 날아드는 검을 온 힘 다해 후려쳤다.
하나.
화악!
검과 도가 맞닿으며 응당 터져 나올 폭음 대신, 허공을 가르는 허망한 소리만 울렸다. 환상처럼 사라진 곽회의 검이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낸 건, 사패련도의 심장 바로 앞이었다.
콰득!
단번에 적의 심장을 격한 검이 다음 먹이를 찾아 날름거리듯 빈 허공을 타 넘었다.
지독하게 집요하고, 철저히 미혹한다.
오직 적의 숨통을 끊는다는 목적을 두고 철저히 발전한 화산의 매화검이 사파보다 더욱 사파스럽게 적들을 몰아치고 있었다.
“이놈이!”
두 눈에 핏발을 세운 창수가 돌출한 곽회를 향해 내력을 있는 대로 실은 창을 내질렀다.
콰아아아아!
주변의 공기를 휘감은, 가공할 위력의 창이 곽회의 몸을 두 쪽 낼 듯 날아들었다.
콰앙!
“사숙!”
하지만 백천이 곽회에게 쏘아지는 창을 일격에 쳐 내었다. 그리고 적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소리쳤다.
“멈추지 마라!”
“예!”
백천의 두 눈이 형형한 안광을 내뿜었다.
“화산이 여기에 왔음을 적들에게 똑똑히 알려 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