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ount Hua Sect RAW novel - Chapter 1709
1709화. 그걸로 됐소. (4)
경악으로 부릅뜬 눈과 반개하여 가라앉은 눈이 거의 닿을 듯한 거리에서 마주했다.
“끄…….”
태양궁주가 검이 박힌 제 가슴께를 콱 쥐었다. 흘러나온 피가 검을 타고, 그의 손을 타고 진득하니 흘렀다.
고작 두 치다. 이 일격은 그의 몸을 완전히 꿰뚫지는 못했다. 목숨을 끊어 낼 만큼 치명적이지도 못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는 누구도 생각지 못한 일격이기도 했다. 이 검이 이곳에 꽂혀 있어선 안 된다.
가슴에 지글거리는 뜨거운 고통만이 지금 이 일이 사실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이…….”
우득!
태양궁주가 힘을 가하니 그 손에 잡힌 매화검이 비명을 질렀다. 가슴에서 검신을 타고 흐른 피는 태양궁주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열기를 이기지 못하고 붉은 증기로 피어올랐다.
이윽고.
콰아아아아아!
태양궁주의 좌수가 무시무시한 장력을 품고 조걸의 옆구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아직 무아지경(無我之境)에 빠진 조걸은 그 일격을 피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하나 그 순간, 윤종이 전력을 다해 검을 펼쳤다. 수백 개의 검이 허공에 흐드러진 듯했다. 채 매화로 피어나지도 못한 검영은 조걸에게로 직격하려던 태양궁주의 장력을 가까스로 막아 내었다.
콰아아앙!
울컥!
검영과 장력이 충돌하자 별안간 윤종의 입에서 피가 왈칵 뿜어져 나왔다. 단 일격만으로 오장육부가 모조리 뭉개지고 터져 버리는 듯했다. 그만큼 어마어마한 충격이었다.
그러나 윤종의 검 끝은 단 한 순간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가 흔들리면 조걸은 죽는다. 그렇기에 윤종은 절대 흔들릴 수 없었다.
“으아아아아아압!”
오히려 피를 토할 기세로 기합을 외쳤다. 그러자 뭉툭했던 검영이 한 송이의 꽃으로 화하기 시작했다. 단 일검에 모든 것을 쏟아 내는 검초였다.
밀려오는 거대한 열기의 폭풍에 맞서며 피어난 강철 꽃들이 한순간이나마 태양궁주의 열양장력을 밀어 냈다.
“오오오오오오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태양궁주의 좌수를 향해 선명한 황금빛 불광이 몰아쳐 왔다.
쿠우우우우우웅!
집채만 한 청동 종을 후려치는 듯한 타격음이 울렸다. 그 가공할 권력은 심지어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쿠우우우우웅! 쿠우우우우웅!
전력을 다해 뽑아낸 권들이 연이어 태양궁주를 들이받는다.
혜연. 소림이 심혈을 기울여 키워 낸 기재가 이 순간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남김없이 모조리 쏟아부었다. 오로지 하나의 목적을 위해!
“아―미―!”
사자후처럼 터져 나온 불호를 채 끝맺을 여유도 없이 혜연의 공격이 쉴 틈 없이 퍼부어졌다.
한껏 뻗치던 열양장력이 쏟아지는 매화와 불광의 조화를 이겨 내지 못하고 다 연소된 불길처럼 점차 움츠러들기 시작했다.
“이놈들이 감히!”
태양궁주가 악에 받쳐 고함쳤다.
육신에 입고 만 상처가, 저도 모르게 보인 약한 모습이, 이 비천하고 미약한 것들에게 밀리고 있단 현실이 그의 이성을 모조리 날려 버리고 말았다.
“흐아아아아아아아악!”
절규 같기도 하고, 광기에 찬 비명 같기도 한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고귀한 신분에 어울리지 않도록 내지른 이 고함은 짐승의 것이나 다름없었다.
태양궁주의 양손에서 번쩍이는 황금빛 장력이 솟구쳤다. 마치 세상의 값비싼 걸 모조리 모아 쌓아 놓은 것 같은, 세상을 짓눌러 버릴 기세의 광채였다.
여력을 모조리 쏟아 내는 한이 있다 해도 눈앞의 이놈들을 반드시 천참만륙 내겠다는 악의(惡意)가 물씬 피어났다.
콰아아아아앙!
여전히 태양궁주의 가슴에 박힌 검과, 그 검을 움켜쥔 조걸, 전력을 다해 막아서는 윤종, 열리지 않는 문을 필사적으로 두드리는 혜연까지…….
그 모든 것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 부풀어 오르는 황금빛 장력에 휩쓸려 버릴 것 같았다. 모두의 두 눈에 절망이 밀려들려는 찰나.
파아아아앗!
터지기 직전의 폭약처럼 응축된 기운 사이로 누군가가 번개같이 뛰어들었다. 갖은 검기와 권력, 태양궁주가 뿜어낸 열기까지 동시에 휘몰아치는 기운의 폭풍 속으로.
우우우우우웅!
붉은색으로 물든 검 끝이 태양궁주의 목을 향해 지독히도 느리게, 하지만 끈질기게 전진했다.
믿기지 않는 광경에 윤종이 두 눈을 부릅떴다. 한 걸음 앞에서 온몸으로 저 기운을 받아 내며 검을 뻗는 게 누군지 똑똑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숙?’
죽는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저 기운은 멀쩡한 몸으로도 버틸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다. 그걸 입마에 든 몸으로 맞받는다? 차라리 칼을 물고 앞으로 엎어지는 게 더 살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하지만 윤종은 무엇도 할 수 없다. 그가 검을 늦추는 순간, 백천은 물론이고 조걸, 혜연, 심지어 윤종 그마저 단번에 새까만 숯이 되어 버릴 것이다.
아니, 결과적으로는 이곳의 모두가 죽는다.
그극.
기운과 기운이 충돌하며 비명을 지른다. 그 끔찍한 소음의 향연 속, 백천이 발을 끌며 나아가는 소리가 섬뜩하리만치 선명하게 들렸다.
치이이이이익!
살이 타들고 녹아내렸다. 검을 쥔 백천의 손이 타다 못해 피부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아, 안…….’
치이이이익!
하지만 그 순간에도 백천은 조금씩, 미약하게나마 전진하고 있었다. 날카로운 검 끝을 정확하게 태양궁주의 목을 향해 겨눈 채로.
저 검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윤종은 직감할 수밖에 없었다.
설령 저 몸이 모조리 타들어 가도, 백골마저 남기지 못하고 녹아내리더라도 저 검은 태양궁주의 목에 박히는 그 순간까지 멈추지 않으리라.
그리고 이걸 느낀 것은 윤종뿐만이 아니었다. 사실 이를 가장 강하게 직감한 이는 바로 그 검 끝이 다가오는 걸 보고 있는 태양궁주 진평이었다.
‘어째서?’
대체 어째서 저렇게까지 하는 것인가.
어차피 저자의 죽음은 정해져 있다. 그렇다면 고통을 자처하기보단 곱게 죽는 편이 낫지 않은가.
열양장력을 맨몸으로 받아 내었다간 죽는 게 차라리 나을 고통을 느끼게 될 것이다. 아니, 곧이어 찾아올 죽음조차도 인세에 다시없을 고통으로 점철될 터.
그런데 대체 무엇을 위해 저런 미친 짓거리를 계속해서 이어 간단 말인가.
초열지옥(焦熱地獄)의 가장 뜨거운 곳에서 고통받는 죄인이나 다름없는 몰골임에도 서슴지 않고 다가오는 백천을 보는 순간, 태양궁주의 가슴속에선 이제껏 단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감정이 요동쳤다.
치이이이이이익!
곧 터지기 직전의 기운 너머로 일그러진 얼굴이 보였다.
상처투성이에 화상으로 엉망진창이지만, 백천의 두 눈만은 이미 득도한 고승처럼 한 치도 흔들림이 없었다.
태양궁주는 혼백이 달아나는 기분이었다. 그의 무위는 이들을 압도할지 모르나, 그라는 사람은 이들의 ‘강함’을 감당해 내지 못했다.
그의 마음이 점차 움츠러드는 만큼 그의 기운도 움츠러들고 있다. 아까처럼 마음껏 기운을 폭발시키기 힘들어졌다.
백천의 두 눈은 점차 감기고 있었다.
이제 고통도 없다. 남은 건 그저 나아간다는 의지뿐이었다. 육신이 한계를 넘고, 정신은 이제껏 닿지 못했던 곳에 발을 내디뎠다.
미약하지만 위대한 전진이 힘겹게 이어질수록 궁지에 몰린 짐승의 가슴엔 불길이 일었다.
“으, 으아아아아아아아아!”
태양궁주가 발악하며 전력을 실어 양손을 뻗었다.
궁지에 몰리면 쥐도 고양이를 문다고 하는데, 하물며 태양궁주는 너무도 강대한 짐승이었다.
파아아아앗!
기세를 잃어 가던 태양궁주의 장력이 순간 들불처럼 화르륵 번지며 뻗어 나갔다. 가장 선두에서 나아가던 백천을 향해.
윤종과 조걸은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그때, 백천이 목숨으로 열어 낸 그 길로 하나의 화살이 쏘아졌다.
사아아아아아악!
비단을 날카로운 검으로 단번에 가르는 듯한 소리와 함께, 유이설의 매화검이 솟구치는 화염을 뚫으며 태양궁주의 미간으로 쏘아졌다.
그 검에는 유이설의 모든 힘이 실려 있었다. 단 한 점, 그 어떤 것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담은 일격.
늘 무표정하던 유이설의 얼굴에 지금만큼은 지독한 각오가, 그 각오를 넘어선 간절함이 드리워 있었다.
‘제발!’
그 검 끝은 이내 유이설의, 모두의 바람처럼 태양궁주의 미간에 가 닿았다.
하지만 그 순간.
덥석.
태양궁주의 손이 유이설의 검을 움켜잡았다. 검기를 있는 대로 실었던 검이니만큼 태양궁주의 손도 희생을 치렀다. 검날이 손바닥을 파고들며 뼈를 끊어 놓았다.
하지만 태양궁주는 그럼에도 악착같이 유이설의 검을 잡고 놓아 주지 않았다.
‘아…….’
영원히 흔들리지 않을 것 같던 유이설의 두 눈이 크게 흔들렸다.
닿지 못했다.
모든 것을 건 일 합이, 단 한 치가 모자라서 실패로 돌아갔다.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러한 일격은 두 번 다시 없으리라는 것을.
안타까운 종말에 맞닿은 유이설의 두 눈에 처절한 절망이 어린 순간이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앗!”
그런데 그들의 등 뒤에서 어마어마한 기합이 터져 나왔다.
익숙지 않은 목소리였다. 그러나 너무도 간절하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그 고함은 인식하는 순간 이미 곁에 있었고, 깨닫는 순간에는 이미 앞서 있었다.
낯선 이의 뒷모습이 모두의 눈에 들어왔다. 얼핏 보아도 지독한 절박함과 독기를 뿜어내는 뒷모습이었다.
곧이어 모두가 본 건, 경악으로 물든 태양궁주의 두 눈과 한껏 벌어진 입이었다.
‘천면……?’
어느새 그들 앞에 나타난 천면수사의 장심이 조걸이 헤집어 놓았던 태양궁주의 가슴에 무참히 틀어박힌다.
퍼어어어어어어어억!
백색으로 물든 손이 가슴을 후려친 순간, 태양궁주가 선지피를 분수처럼 내뿜으며 뒤로 튕겨 나갔다.
화산의 제자들 모두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단 한 번도 상상해 보지 못한 상황에 그만 사고가 멈춰 버린 것이다.
“허억, 허억…….”
훌쩍 땅에 내려선 천면수사가 거친 숨을 토했다. 전신이 상처로 뒤덮인 그의 얼굴은 악귀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이게 무슨…….”
쿠웅!
괴이하기 짝이 없는 광경에 조걸이 무슨 말이라도 해 보려는 순간, 둔탁한 소리와 함께 쓰러졌던 태양궁주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두 눈이 지독한 노기로 물든 그는 천면수사를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듯했다.
“이, 이…… 무슨……. 이, 이……. 이 간악……. 쿨럭!”
“구, 궁주시여!”
한껏 노기를 쏟으려던 태양궁주 진평의 입에서 또다시 피가 울컥 터져 나왔다.
“이……. 이…….”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그가 천면수사를 이글거리는 눈으로 노려보았다. 분명 같은 편에 서서 싸워야 했을 이에 대한 증오가 극에 이른 바로 그 순간.
“개…… 같은…….”
그의 몸이 고목처럼 뻣뻣하게 굳으며 앞으로 쓰러진다.
쿠웅!
거인의 육신이 땅에 처박히는 소리였다. 달아오른 흙에 몸이 타며 치익 하는 소리가 뒤를 이었다.
모두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잠시간 적막이 흘렀다.
그 정적 속에서 천면수사 담여해는 덜덜 떨리는 제 손을 잠시 내려다보더니 이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빌어먹을.”
그러곤 태양궁주를 타 넘어 바람처럼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최후의 수문장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의 칼날 앞에 허물어진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