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ount Hua Sect RAW novel - Chapter 1711
1711화. 그걸로 됐소. (6)
임소병의 입이 경악으로 서서히 벌어졌다.
백색……. 아니, 적색으로 물든 절벽에 일순 수십 가닥의 금이 번져 갔다. 마치 굶주린 수십 마리의 용이 절벽을 치달리는 것처럼.
‘붕괴’라는 글자를 형상화하기라도 한 듯한 광경에, 임소병은 저도 모르게 목이 찢어지도록 비명을 내질렀다.
“물러나! 무너진다아아아아아!”
그와 마찬가지로 절벽을 망연히 보던 이들이 사색이 되어 뒤로 힘껏 몸을 날렸다. 그들이 물러나야 할 곳에 사패련이 가득한 상황이지만, 지금 상황에선 그리 큰 장해물도 아니었다.
절벽의 상황을 보고 몸을 빼려는 건 그들만이 아니었으니까.
쿠릉! 쿠르릉!
붉은 절벽이 말 그대로 뒤틀렸다. 거미줄처럼 그어진 금을 따라 쩌적쩌적 암석이 갈라지고 마찰하며 전신의 털이 곤두설 만큼 기괴한 굉음을 자아냈다.
그리하여 마침내…….
콰아아아아아아앙!
천붕지음과 함께 절벽이 붕괴했다.
모두가 혼비백산하여 절벽 반대 방향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쿠르르르르르르릉!
부서진 암석이 내구르고, 허공에서 암석끼리 부딪치며 파열음이 터져 나온다. 그 모든 것이 ‘공포’라는 이름으로 절벽 아래로 덮쳐 왔다.
“더! 더 물러나라! 더!”
모용위경은 목이 터지도록 고함쳤다.
호북에서 이미 다시없을 지옥도를 두 눈으로 목격했지만, 지금의 이 붕괴는 그때와 결이 다른 두려움을 그에게 선사했다.
“빌어먹을, 뒤로 더 물러나라지 않느냐!”
절벽이 무너지는 건 이미 예정되어 있던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미리 몸을 뺀 이들에게는 피해가 전무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머리로는 그 사실을 알아도, 눈앞에서 저리 거대한 붕괴를 보니 침착할 수 없었다. 모두 망연함에 낯빛이 흙빛으로 물들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아아아!”
거대한 굉음을 누군가의 비명이 비집고 나온다. 토사처럼 허물어지며 쏟아지는 절벽의 암석에 인간이 뒤섞이며 뭉개지고 있었다. 실로 참혹한 광경이었다.
콰아아아앙!
절벽 아랫부분에서 떨어져 나온 암석이 곤두박질치며 땅을 울렸다. 절벽에서 한참 멀리 몸을 빼낸 이들조차 발밑이 격렬히 진동하는 그 생경한 감각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심지어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더 큰, 더 많은 암석이 우박처럼 쏟아졌다. 절벽을 밟고 섰을 수백의 인원을 말 그대로 집어삼키며.
참혹하고도 경악스러운 광경을 넋 놓고 보던 임소병이 저 높은 곳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제발…….’
그가 저도 모르게 부채를 꽉 움켜쥐었다. 마른 손마디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남궁도위가 몸을 들썩였다.
붕괴가 시작되기 전에 절벽을 횡으로 빠져나와 풀과 흙으로 이뤄진 땅에 발을 디뎠지만, 그의 마음은 여전히 저 무너지는 절벽 속에 있었다.
콰르르르르르르릉!
저 거대한 붕괴는, 어쩌면 절벽 위에 있던 화산을 삼키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나 지금은 그걸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다. 그가 턱 근육이 다 불거지도록 이를 악물었다.
“이……!”
“안 된다, 도위야!”
남궁명은 남궁도위의 어깨를 강철처럼 꽉 붙들고 놓아 주지 않았다.
“아아아아아아아악!”
남궁도위의 눈에 핏발이 섰다.
이 와중에 그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 것은 또 있었다.
발 디딜 곳을 잃은 이들이 마치 비처럼 떨어지고 있다. 남궁도위의 단련된 안력은 흙먼지로 사방이 뿌연 와중에도 그들이 추락하며 보이는 표정을 정확하게 읽어 낼 수 있었다.
불신, 절망, 그리고 끔찍할 정도의 원망.
자신이 버림받을 것이라고 마지막까지 차마 믿지 못했던 이들이 확정된 죽음을 맞닥뜨린 순간 보이는 얼굴이었다. 이는 차마 눈을 뜨고 보기 힘들 만큼 처참했다.
“세…상에…….”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이송백의 넋 나간 목소리가 들려왔다.
붕괴의 규모가 그들이 예상한 수준을 훌쩍 넘어섰다.
이조차 애초에 사패련이 계획했던 붕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일지 모르나, 그럼에도 산이 통째로 무너지는 듯한 저 광경이 주는 충격은 퇴색하지 않았다. 이송백은 마치 얼어붙어 버린 듯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저 속에서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고민해 볼 필요도 없다. 피와 살로 이루어진 인간이라면 절대 살아나오지 못할 것이다. 절대…….
“경거망동하지 마라, 진금룡!”
그 순간, 종리곡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이송백의 귀를 파고들었다. 화들짝 놀라 돌아보니 종리곡이 검집으로 진금룡의 어깨를 찍어 누르고 있었다.
종리곡의 그 과격한 움직임에 놀란 것도 있지만, 더욱 충격적인 건 참혹하게 일그러진 진금룡의 얼굴이었다.
“진금…….”
“압니다, 장문인!”
종리곡의 말허리를 끊으며 진금룡이 외쳤다. 얼마나 짓깨물었는지 아랫입술에 피가 배어나고 있었다.
지금 진금룡이 나선다 한들,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지금은 기다려야만 한다. 그 사실을 모를 진금룡이 아니다.
다만…….
잠깐 침묵하던 진금룡이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저 우리만 살겠다고 이렇게 절벽을 빠져나온 꼬락서니가 비참해서 그런 것뿐입니다!”
“이놈…….”
진금룡이 말없이 절벽 꼭대기가 있던 자리를 노려보았다.
그들이라면…… 반드시 저 절벽에서 빠져나갔을 것이다. 화산이 그리 호락호락하게 당할 문파였다면, 천하의 종남이 굴욕을 당할 일도 없었을 터.
‘……진동룡.’
그래야만 한다, 반드시!
* * *
쿠르르르르르르릉!
곽회는 그만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털썩.
몸이 처박히는 충격 때문인지, 그 등에 업혀 있던 조걸이 움찔하며 눈을 떴다.
무거운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린 그는 애써 주위를 둘러본 후 곽회의 어깨를 움켜잡았다. 그 작은 움직임만으로도 입에서 고통 어린 신음이 새어 나왔다.
“으…….”
조금 전 그들이 발을 디디고 격렬하게 싸우던 절벽이 괴이한 형태로 변해 있었다.
하늘을 향해 높게 삐죽 뻗어 있던 절벽이 이젠 거대한 괭이로 들쑤신 것처럼 훅 파여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존재했던 이들도 사라졌다.
쿠르르르르르르릉!
보이지 않는 아래에서 들려오는 소음과 온몸으로 전달되어 오는 격렬한 진동만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설명해 주었다.
“맙소사…….”
어설프게나마 예측했던 것보다 훨씬 거대한 참사였다. 조걸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저 입을 벌린 채 전율하는 것뿐이었다.
새로이 생겨난 허공이 펼쳐져 있다. 퇴로를 막기 위해 서 있던 남해태양궁의 궁도들 바로 앞에.
조걸은 순간 모골이 송연해지는 걸 느꼈다. 식은땀이 흘렀다.
이게 무슨 뜻이겠는가. 조금만 늦었다면 모두 절벽과 함께 무너져 내렸을 거란 의미다. 단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기적이네…….’
실로 기적에 가까운 탈출에 성공한 것이 새삼 실감 났다. 그러나 차마 안도의 한숨은 내쉴 수 없었다.
무너져내린 절벽의 좌우, 가까스로 가느다랗게 남은 공간이 있었다. 겨우 이 산에 들러붙어 있는 그 부분에는 탈진해 주저앉아 버린 사패련도들이 남아 있었다.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죽음을 운 좋게 피한 이들이다.
물론 이 행운의 선택을 받은 이들은 절벽에 오른 이들의 채 절반도 되지 않는다.
그 선택을 받지 못한 수백의 사패련도는 한순간에 추락해 고혼이 되었다. 적이 아닌 아군의 계략으로.
으드드득.
누군가가 분노를 억누르며 이를 갈아붙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굳이 누구인지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이 광경을 바라보는 이들의 심정이야 다들 비슷할 테니까.
“아래에 있던 이들이 절벽에서 수작을 부리던 놈들을 어느 정도 막아 준 모양이야. 그러지 않았다면 이 절벽은 분명 통째로 몽땅 무너졌을 테니.”
당군악의 중얼거림을 들으며 조걸의 입에선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 말인즉, 사패련의 계획대로라면 모조리 죽었어야 할 사패련도들이 천우맹의 분전 덕에 절반이 좀 안 되는 인원이나마 살아남았다는 뜻이니까.
대체 이 상황을 뭐라 평해야 하는가.
“가주님, 저들은…….”
“전투는 끝났네.”
“……예?”
당군악이 무너진 절벽 너머의 어딘가를 지그시 응시했다. 눈 속 깊은 곳에서 분노가 차갑게 끓어오르고 있었다.
“그건 아마…… 이 일을 벌인 이가 가장 잘 알겠지.”
* * *
호가명이 돌처럼 굳은 얼굴로 무너진 절벽을 주시했다.
마치 그 자신이 무너진 절벽을 대신하여 바위라도 된 듯 그대로 옴짝달싹하지 않았다. 말은 고사하고 탄성 한 번 흘리는 일도 없었다.
부관들이 그런 그의 안색을 살피다 힘겹게 입을 뗐다.
“군사, 다음은…….”
호가명은 말없이 눈을 감았다. 그렇게 잠시간 호흡을 고른 그가 천천히 눈을 뜨며 의외로 피식 웃음을 흘렸다.
“다음이라…….”
그런 게 있을 리가 있나.
혀끝에 붙어 버리기라도 한 양 나오지 않던 말이 평온함을 가장하여 흘러나왔다.
“퇴각하라.”
“구, 군사! 지금 퇴각이라 하셨습니까?”
“……그렇다.”
“하나 아, 아직…….”
“이미 이곳의 전투는 끝났다.”
“그, 군사. 절벽 위에 병력이 남아 있습니다. 아직 우리의 전력이 저들을…….”
“그래서다.”
“……예?”
호가명은 채 다 무너지지 못한 절벽을 응시했다. 공간이 남아 있으니 반수 정도의 련도가 살아남았을 것이다.
단순히 생각하자면 전력을 보존한 것이지만, 냉정하게 따져 보면 언제 터질지 모를 폭탄을 떠안은 셈이다.
바보가 아닌 이상 자신들이 무슨 일을 당했는지 모르지 않을 터. 분노가 전투의 열기에 휩쓸리기까지 한다면 그 칼날의 방향을 통제할 방법이 없을 것이다.
절벽 아래에 포진한 천우맹은 결코 그 틈을 놓치지 않을 테고.
만일 이곳에서 모든 걸 걸어서라도 승부를 내야 한다면 위험을 감수하고 공격을 이어 가겠으나, 어차피 이 전투의 의미는 그렇게 거창하지 않다.
다만 한 점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차라리…….’
저 절벽이 모조리 무너져 절벽 위에 남아 있는 사패련도들마저 한 줌 고혼으로 만들어 버렸다면…….
‘아니, 아니다.’
그러나 이내 호가명은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이미 일어난 일이다. 붕괴를 저 정도로 막아 낸 것도 저들의 실력이니 그걸 부정할 수는 없다.
호가명이 이끄는 사패련이 천우맹에 패했다. 그게 전부다. 이 이상의 미련은 추잡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퇴각 신호를 보내라. 물러난다.”
“군사…….”
“몇 번이나 다시 말해야겠느냐?”
“아, 아닙니다!”
부관들이 얼른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주위에 있던 이들이 빠르게 신호탄을 사방으로 쏘았다.
잠시 말없이 서 있던 호가명은 조소를 흘렸다.
“애송이라…….”
그 애송이들에게 패했다. 변명의 여지조차 없이.
소림조차 처참하게 짓밟았던 사패련이 말이다.
‘장일소’라는, 그가 사용할 수 있는 가장 큰 패를 활용해 매화검귀를 이곳에서 떨어뜨려 놓았음에도 화산과 천우맹이라는 이름을 감당해 내지 못한 것이다.
“그저 내가…….”
나직이 중얼거린 호가명은 절벽을 한없이 바라보았다. 그곳에 박혀 들기라도 하겠다는 것처럼.
그러다 한참 후에야 획 몸을 돌렸다.
무너진 절벽을 등지고 산을 내려가는 그의 얼굴에 한 줄기 비장함이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