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ount Hua Sect RAW novel - Chapter 1712
1712화. 그걸로 됐소. (7)
파아앗!
화산의 제자들은 불길이 번져 가는 숲을 헤치며 무당산을 단숨에 올랐다.
‘제발! 제발!’
백상은 단전이 으스러지도록 내력을 끌어 올렸다.
알고 있다. 자신이 화산에서 그리 강한 편에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러니 사실 더 강한 이가 백천을 업고 산을 오르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리라. 백천을 위해서라도.
하지만 백상은 등에 업은 백천을 다른 이에게 내주지 않았다. 이건 그가 해야 하는 일이다.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그의 역할이다.
쾅!
땅을 힘껏 박찬 그의 몸이 한 줄기 섬광처럼 산을 타 올랐다.
“이쪽으로!”
숨이 턱 끝에 차오르도록 가파른 산길을 쉼 없이 오른 그의 앞에 고풍스럽고 창연한 전각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화산의 것과는 확연히 다르나 익숙한 도가의 향이 물씬 풍겼다.
“무당……!”
“의약당은 어느 쪽이오!”
“이…… 이쪽.”
“안 됩니다! 무당의 의약당에는 이들을 모두 수용할 만한 공간이 없습니다!”
“빌어먹을! 그럼 당장 위급한 이들만 먼저 들여보내면 될 일 아닙니까!”
갑갑한 마음에 백상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그러자 무당의 검수가 흠칫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라고?”
“저기! 저 전각입니다!”
단숨에 달려간 백상이 의약당의 문을 박차려던 바로 그때였다.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안 됩니다!”
누군가가 황급히 소리치며 백상을 말렸다. 백상을 비롯한 화산의 모든 제자들이 소리친 이를 돌아보았다.
상대적으로 부상이 깊지 않은 무당의 제자 하나가 사색이 되어 그들을 보더니 다시 외쳤다.
“의, 의약당은 안 됩니다!”
“또 무슨 개소리를 하는 겁니까? 안 된다니?”
“무당은 아직…… 정식으로 봉문을 풀지 않았습니다. 원칙적으로는 이렇게 내부에 외부인을 들이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습니다.”
“……뭐?”
“그런데 심지어 의약당이라니요! 이, 이건 저희의 권한을 넘어서는 일입니다. 장문인께서 오셔야…….”
순간 기가 막힌 곽회가 거칠게 욕지거리를 뱉었다.
“장문인이라니, 빌어먹을! 여기 있지도 않은 사람을 어디서 찾으란 말입니까? 싸우는 내내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사람인데!”
“어, 어쨌든 그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그럼? 그럼 어쩌란 겁니까? 이대로 죽자고?”
“원…칙적으로는 무당의 제자들은 의약당을 출입할 수 있지만, 화산 분들은…… 그, 전각 밖에서…….”
곽회의 두 눈에 새파란 살기가 돋았다.
“지금 뭐라고 지껄였어? 전각 밖?”
다른 화산의 제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온몸에서 살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모두가 백상이 업은 백천을 살피며 분노를 참지 못했다.
“지금 전각 밖이라 했습니까?”
“아, 아니…….”
애초에 만류하며 나섰던 이도 백천을 보더니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한눈에 보아도 백천의 상태는 심각했다. ‘위중’이라는 두 글자만으로 설명할 수준이 아닌 것이다.
“이 개자식이! 목숨 걸고 도와줬더니 무슨 소릴 지껄이는 거야!”
“봉문을 안 풀었는데 너희는 왜 밖을 돌아다니고 있는데!”
“그건…… 상황이 상황인지라 임시 장문께서 일시적으로 선포한 것입니다. 정식으로 봉문을 풀었다 볼 수 없습니다.”
“이……!”
“물론 마, 마음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무당의 법도가 그러합니다. 부디…….”
“법도?”
싸늘하게 누군가가 반문했다.
그게 신호탄이라도 된 것처럼 화산의 제자들은 각자 업고 있던 무당의 제자들을 모조리 땅에 내려놓았다.
악착같이 사람을 구해 내었던 손이, 지금은 차디찬 공기를 움켜쥐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한 줌 배신감도 함께.
내동댕이쳐진 무당의 제자들은 일제히 당황하여 화산의 제자들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그들은 새파란 적의로 가득 찬 눈빛을 감당해야 했다.
화산 제자들이 이를 악물고 뇌까렸다.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더니.”
“은혜를 원수로 갚아도 유분수지.”
자신이 이런 취급을 당했다면 이토록 화를 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백천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백천이 이런 취급을 받는 건, 화산에 몸을 담은 이라면 결코 용납하지 못할 일이었다.
“이해해 주시면…….”
“그 입 닥쳐, 이 개 같은 놈들!”
백자 배들은 이제 아예 검을 빼 들 기세였다. 백상이 이를 악물고 외쳤다.
“그만!”
“하지만, 사형! 저놈들이……!”
“그만하라지 않느냐! 아가리 처다물어!”
백상이 진노하여 포효하니 모두 입을 꾹 다물었다. 백상 역시 제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속이 타는 걸로 치자면 그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테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시시비비로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
“좋습니다. 여기서 치료하지요!”
“사형!”
핏발 선 눈으로 노려보는 것으로 반발하는 이들을 잠재운 백상은 이를 악물며 고개를 숙였다.
“대신 치료에 필요한 의약품은 지원해 주실 수 있겠지요. 지금 당장 필요합니다! 우선 금창약과 약수(藥水)부터!”
“그, 그게…….”
그러나 화산을 막아섰던 이, 무의(無疑)는 이번에도 난색을 표했다.
“그것 역시…….”
백상은 침묵했다. 무의를 바라보는 눈길에는 그 어떤 적의도, 분노도 없었다. 그저 투명했다.
무의는 오히려 당황하여 더듬더듬 설명했다.
“보, 봉문을 한 문파의 모든 것은 문파 밖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외인은 결국 밖(外)이라 보아야…….”
“하하…….”
백상이 피식 웃고 말았다.
수하들을 제 손으로 희생시키는 사패련의 간악함에 치를 떤 지 고작 일 각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지옥도에서 빠져나와 마주한 게, 사패련보다 더한 정파의 구태의연한 모습이라니.
“내어 줄 수 없다고…….”
탁.
백상이 차가운 눈길로 모두를 바라보다 검을 움켜잡았다.
“그럼 별수 없지. 내어 주지 않겠다면 얻어 내는 수밖에.”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비켜. 죽고 싶지 않으면!”
백상이 검을 뽑아 들었다. 무당 제자들의 얼굴이 일제히 굳어졌다.
“이것 보시오! 무당의 경내에서는 검을 뽑는 게 금지되어 있음을 모르시오? 해검(解劍)의 예는 취하지 않더라도 최소한의…….”
“그래, 어디 계속 지껄여 봐. 그 입에 검이 쑤셔박혀도 지껄일 수 있는지 보게.”
“이 무슨 무도한……!”
백상은 무당의 제자들을 향해 성큼성큼 걸었다. 한 손으로는 백천을 등에 업고 지탱한 채로.
그 모습을 본 무당의 제자들이 남은 힘을 애써 짜내며 몸을 일으켰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사패련과는 또 다른 양상의 상잔이 벌어지려던 그때.
“의약당을 개방하고 장문대리를 안으로 모셔라.”
“사, 사숙!”
모두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무진의 부축을 받으며 허공이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바로.”
“하지만, 사숙! 장문인께서…….”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모셔라.”
“……예, 사숙. 이, 이쪽으로 오십시오!”
무당의 제자들이 다급하게 의약당 문을 활짝 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백상이 슬쩍 허공을 일별했다. 허공이 기침을 토해 내고는 말했다.
“법도란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거늘.”
“…….”
“감히 무당을 대신해 사죄드리오.”
고개를 숙이는 것마저 힘겨워 보였다. 성치 않은 모습으로도 최선을 다해 예를 표한 것이다. 이 모습을 보던 백상은 이내 별다른 말 없이 의약당으로 쏘아지듯 들어갔다.
지금은 백천을 살리는 것이 우선이다.
“가주님!”
“알겠네.”
황급히 백천을 침상에 눕혔다. 당군악이 거침없이 백천의 상의를 찢어발겼다.
“으…….”
“허어.”
순간 여기저기서 숨을 들이켜거나 탄식하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끔찍하단 생각조차 안 들 정도였다.
저토록 붉고 까맣게 타 버린 몸을 보니 서글픔보다도 기이한 이질감이 들었다. 사람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침상 위에 누운 광경을 보는 기분이다.
그러나 아무리 부인해 보려 해도, 이 몰골로 누워 있는 이가 백천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가주님! 사형은 괜찮겠습니까?”
“물러서게!”
“아, 알겠습니다! 물러서!”
백상이 모여든 사형제들의 옷을 잡아끌며 뒤로 물러났다. 당군악은 한없이 진지한 얼굴로 백천의 상세를 살피다 자신의 품 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저, 그런데 가주님도 지금 치료가 필요한…….”
“조용!”
당군악이 단호하게 모두의 입을 틀어막았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천면수사를 상대하느라 그 역시 극심한 부상과 피로가 쌓인 상황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다. 백천은 지금 생사의 기로에 서 있다. 그런 이를 앞에 두고 어디 피륙의 상처를 논할 수 있겠는가.
딸깍.
당군악은 품에서 꺼낸 자그마한 함을 열었다. 극심한 싸움 중에도 제 모습을 지킨 상자 안에는 푸른빛 비단에 싸인 금침이 놓여 있었다.
“주변을 지키게. 머리카락 한 올 차이로도 숨이 끊길 수 있으니 어떠한 방해도 있어선 안 되네.”
“예, 가주님!”
화산의 제자들이 철통같이 주변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접근하는 이가 있다면 그게 누구라도 베어 버리겠다는, 살기 어린 의지가 모두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우우웅.
이윽고 당군악은 손에 쥔 가늘디가는 금침에 내력을 불어넣었다. 연한 금빛을 띤 침이 내력을 받자 한 치쯤 불쑥 늘어났다.
당군악이 신중히 백천의 몸에 금침을 가져다 대었다.
그러나 차마 몸에 찔러 넣지 못하고 주저했다. 검게 타 버려 살갗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피부에 슬쩍 대었다 물리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또옥.
송골송골 배어난 땀이 턱에 맺혔다가 아래로 떨어진다. 한껏 집중한 그는 어느새 비 오듯 땀을 쏟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스슷.
더없이 신중하게 백천의 어깨 부근에 금침을 박아 넣었다.
하나.
파삭.
당군악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침이 파고들었던 피부가…… 가루처럼 부서진 것이다.
서둘러 침을 회수한 당군악은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다시!’
금빛 기운을 휘감은 침이 다시금 백천의 어깨로 천천히 파고들었다.
파스스.
하지만 이번에도 절반도 채 진입하지 못한 채 회수되고 말았다.
“이런…….”
당군악의 손이 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번이고 침을 찔러 넣을 곳을 찾던 그는 한참을 주저한 끝에 이내 눈을 감으며 숙였던 허리를 폈다.
“……가주님?”
백상이 넋 나간 목소리로 물었다. 가슴속에 차오르는 불길한 예감을 애써 외면하며.
“왜 치료를……?”
당군악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백상을 마주 보는 두 눈이 어두웠다.
“나는…… 무리일세.”
“……예?”
“본디 의술이 그런 법이지만, 당가의 의술은 특히 환자의 육신에 남은 기운을 북돋는 데 중점을 둔다네. 한데…… 지금 장문대리의 몸에는 의술의 촉매가 될 만한 기운이 남아 있질 않네. 심지어는 내 기운을 육신이 버텨 내지 못하는 상황일세.”
“그게,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백상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단 얼굴로 당군악을 바라보았다. 절실함에 표정이 한껏 일그러졌다.
“가주님!”
“…….”
“그러니까…… 그게 대체…….”
하나 그도 잠시, 백상의 온몸에서 점점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당가는 독의 조종이자 의술의 조종. 고로 당가의 가주인 당군악은 천하에서도 손꼽히는 의원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런 그가 지금 이상한 말을 하고 있다.
“내 의술로는…….”
“가주님!”
백상이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입을 막고 싶었다. 듣고 싶지 않았다.
당군악 역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내 모두가 그토록 거부하고 싶어 하는 그 말을 입 밖에 내고 말았다.
“내 의술로는 장문대리를 살릴 수 없네.”
차마 백상을 더 볼 수 없다는 듯, 당군악이 눈을 질끈 감았다. 백상은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털썩.
그가 망연한 얼굴로 백천과 당군악을 번갈아 보았다.
“거짓말…….”
저항할 수도 없는 이 선고는, 심장에 칼이 꽂힌 것보다도 더욱 시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