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ount Hua Sect RAW novel - Chapter 1713
1713화. 그걸로 됐소. (8)
“이쪽으로!”
그사이 부상이 심각한 무당의 검수들이 의약당 안으로 옮겨졌다. 빈 침상에 환자를 누이고 의약품을 찾는 소리가 소란스레 울리기 시작했다.
“허공 장로님부터!”
“빨리 금창약과 요상단을 가져와라! 상태가 너무 좋지 않다!”
“무진 사숙도 이쪽으로.”
“제기랄, 붕대! 붕대 어디 있냐고! 의약당 놈들은 뭘 하는 거야!”
다급하고 절박한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그래서 그 소란은 더욱 격렬할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도 화산의 제자들은 다 죽어 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침묵했다.
숨 막히는 정적이 흐른 끝에야 곽회가 망연하게 중얼거렸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가주님? 살릴 수 없다니요. 그럴 리 없습니다.”
“…….”
“그럼 백천 사숙이 죽……기라도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실로 멍청한 질문이지만, 당군악은 곽회를 탓하지 못했다. 그저 지그시 감고 있던 눈을 뜨며 깊은 한숨만 내쉴 뿐.
그 반응에 곽회가 격렬히 말을 토했다.
“잠시만요, 가주님! 그저 피륙이 조금 타들어 간 것뿐이지 않습니까! 무, 물론 화상을 치료하기가 쉽지 않단 것은 압니다만, 그래도 백천 사숙입니다! 사숙쯤 되는 사람이 이 정도로…….”
절절히 외치며 저도 모르게 백천을 본 곽회는 차마 말을 완성하지 못하고 숨을 들이켰다.
제 입으로 뱉은 ‘이 정도’라는 말이 너무도 황당하게 느껴져서다. 백천쯤 되는 이니까 아직 숨이 붙어 있는 거지, 평범한 사람이 이만한 화상을 입었다면 이미 진즉에 숨이 끊기고도 남았을 것이다.
“정말로 피륙의 상처라면…… 자네 말이 맞았겠지.”
“……예?”
당군악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지금 장문대리의 상처는 고작 그 정도가 아닐세. 자네 말처럼 겉으로 보이는 화상은 별것 아닐 수 있네. 정말로 큰 문제는…… 내부에 입은 화상일세.”
“…….”
“피부의 상처가 문제라면, 깊숙이 침을 찔러 넣어 기운을 북돋워 회복력을 이끌어 볼 수 있겠지. 그러나 지금 장문대리는 침이 닿을 수 있는 곳은 모조리 타 버려 기운을 끌어내기 어려운 상황이네. 아니, 애초에 기운이랄 게 남아 있는지도 의문이네.”
모두 귀를 틀어막고 싶은 마음을 애써 눌렀다.
귀를 틀어막고 현실을 외면하는 대신, 침상에 누워 있는 백천을 다시 한번 응시했다.
“아직 숨이 붙어 있는 게 기적일세. 더는…… 의원으로서 더는 해 줄 수 있는 게 없네. 미안하네.”
죽는다.
백천이 죽는다.
“어…….”
백상의 입에서 얼빠진 탄식이 새어 나왔다.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다. 죽음을 무릅쓰고 있다고, 언제고 죽을 수 있다고 입으로는 수없이 되뇌어 왔다. 그러나 정작 죽음이 이렇게 맞닿을 줄은 몰랐다.
아니, 정확히는 백천만은 죽지 않을 줄 알았다. 자신들은 죽을지언정, 백천은 언제고 그 자리에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 사람이니까. 그는 죽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니까.
‘안 돼.’
그렇다. 백천만은 죽어서는 안 된다. 저 사람이 저렇게 허망하게 가도록 둘 수는 없다.
그때, 돌연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어 백상은 덜덜 떨며 품 안을 뒤졌다.
“기, 기운이 문제라 하셨지요? 여, 여기 있습니다! 기운은 영단으로 보충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허겁지겁 당군악에게 꺼낸 걸 들이밀었다.
“화산에 몇 개 남지 않은 자소단입니다! 제가 장문인께 받아 왔습니다. 일단 이걸로 기운을 북돋고 치료를…….”
“무리일세.”
백상과 그가 손에 쥔 자소단을 보던 당군악의 두 눈에 안타까운 기색이 스쳤다. 백상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외쳤다.
“어, 어째서입니까? 영단이 이렇게 있는데!”
“자소단은 극음의 기운과 극양의 기운을 모아 혼원(混元), 즉 중도를 이룬 영단일세.”
“…….”
“장문대리의 육신은 이미 자소단의 기운을 받아들일 만큼 받아들였네. 거기에 더 많은 기운을 불어넣는다 한들 흘러넘칠 뿐이네.”
“하지만 기운이 모자란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이젠 또 흘러넘친다니요. 그게 무슨 괴상한 소리입니까?”
당군악은 다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는 얼핏 같은 선상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다른 이야기다. 하지만 지금 이들은 그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 정확히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마음은 이해하네.”
“…….”
“하지만 더는 도리가 없어. 미안하네, 다 내가 부족해서 벌어진 일일세.”
당군악이 화산의 제자들을 향해 깊이 고개를 숙였다. 물론 그가 사과할 일은 아니다. 이는 화산의 제자들은 물론이고, 당군악 자신도 잘 알았다.
그럼에도 그가 귀한 고개를 숙인 까닭은, 백천이란 사람과 그 인물의 죽음이 화산의 제자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충분히 헤아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
오히려 이런 당군악의 모습이 화산의 제자들로 하여금 현실을 절감케 했다. 장문대리인 백천의 숨이 이제 곧 끊길 거란 사실을 말이다.
막막하고도 무서운 현실 앞에 누구도 감히 입을 떼지 못했다.
그런데 그때, 날카로운 고함이 벼락같이 터져 나왔다.
“개소리하지 마십시오!”
“사형!”
“비켜!”
조걸이 당황한 곽회의 어깨를 거칠게 밀치며 절뚝절뚝 백천을 향해 나아갔다. 당군악이 그 앞을 막아섰다.
“어쩌려는 건가.”
“기운이 모자라면 기운을 불어넣으면 될 일 아닙니까?”
“소용없네. 지금 장문대리는 받은 기운을 몸 안에 잡아 둘 기력조차 없는 상황이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란 말일세.”
당군악이 단호하게 만류하자 조걸이 핏발이 선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가주님께서는 의술은 잘 아시면서 이치는 모르시는 모양입니다?”
“……그게 무슨 소린가?”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우는 방법은 빠져나가는 것보다 더 많은 물을 붓는 겁니다! 빌어먹을, 다 빠지기 전에 또 밀어 넣으면 될 거 아닙니까!”
당군악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럼…… 독이 부서지네.”
“그건 해 봐야 아는 일 아닙니까?”
“이보게. 조걸 도장.”
“비키십시오. 이 이상 막아선다면 아무리 가주님이라도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조걸의 온몸에서 형형한 살기가 쏟아졌다. 당군악은 눈을 질끈 감았다.
당군악은 알 수 있었다. 조걸이라고 몰라서 이러는 게 아니다. 멍청해서 이러는 것도 아니다.
자신이 하는 일이 어쩌면 백천을 더 빨리 죽음에 이르게 한다고 해도, 그저 손을 놓고 이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그토록 절실한 이 앞에서 대체 무슨 말이 소용 있을까.
“가, 가주님.”
거의 기다시피 다가온 백상이 당군악의 옷자락을 움켜잡았다.
“사, 사형을…… 사형을 살려 주십시오, 가주님.”
“…….”
“안 됩니다. 사, 사형은 안 됩니다. 이렇게 죽어서는 안 되는 사람입니다. 차라리 저한테 죽으라고 하면 죽을 테니, 사형은…… 사형만큼은 살려 주십시오!”
“이보게…….”
“안 된다고요, 빌어먹을! 사형은 여기서 이렇게 죽을 인간이 아니란 말입니다!”
거의 실신할 지경인 백상을 누구도 어찌하지 못했다. 결국은 윤종과 혜연이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그를 붙잡고 뒤로 당겼다.
“사숙…….”
“시주.”
넋을 놓은 듯 잠시 초점이 없던 백상이 돌연 죽은 듯 누운 백천을 향해 울분을 쏟았다. 그의 눈에 분노와 원망이 끓었다.
“저 망할 인간, 빌어먹을! 그래, 내 언젠가는 저렇게 뒈질 줄 았았지! 몸도 성치 않은 인간이 허구한 날 제 몸을 걸레짝처럼 던져 대니 언젠가는 이 사달이 날 줄 알았다고! 대체 뭐가 그렇게 중요한데! 제 목숨보다 중한 게 뭐가 있다고!”
“……사숙.”
“사형, 말해 보세요. 이 꼴이 되어서 이젠 속이 시원하십니까? 그렇게 떠벌리던 말을 지키니 아주 뿌듯하십니까? 이 머저리 같은 인간아, 대답해 보라고!”
“사숙, 말이 지나치십……!”
윤종이 이를 악물고 고함을 치려다 말고 움찔했다. 백상이 온 얼굴이 다 젖도록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이 머저리 같은 양반이……. 이 멍청한…….”
“…….”
백상은 그 자리에서 허물어지더니 통곡조차 하지 못하고 들썩이기 시작했다.
화산의 제자들이 하나둘 고개를 숙였다. 표현의 정도가 다를지언정 화산이라는 이름하에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같은 심정일 것이다.
어쩌면 백천은 제 운명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 결말을 향해 발을 내디딘 게 다름 아닌 그 자신일지 모른다.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서. 그리고 지금껏 해 온 말이 그저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니었음을 스스로 증명하기 위해.
하지만 이곳의 누구도 그런 백천을 자랑스러워하지 못했다. 위대하고 대단한 선택에 박수를 보내고 환호할 수 없었다.
“가주님…….”
혜연이 떨리는 손으로 반장을 하고는 당군악을 마주 보았다. 마음은 화산의 제자들과 같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소속은 다른 그가 이 어려운 일을 해야 한다. 나서서 대화를 나누고, 없는 방법을 거듭 찾아보는 것.
“정말…… 다른 도리가 없습니까?”
당군악이 씁쓸하게 말했다.
“지금 장문대리는 기운이 부족한 동시에 과한 상태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태양궁주의 양기가 그의 몸속에 가득 차 있네. 마치 극독에 중독된 것처럼.”
“…….”
“그 기운이 장문대리의 기를 살라 먹어서 말라붙은 사막처럼 만들고 있네. 그러니 자소단을 먹어 본들, 태양궁주의 양기가 그 기운까지 태우며 장문대리의 몸을 더욱 상하게 할 걸세.”
“그런…….”
혜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럼 극음의 영약이라도 있다면…….”
“마찬가지일세.”
당군악이 고개를 내젓는다.
“타는 불과 얼음장 같은 물이 만나면 곧바로 가라앉는 게 아니라 순간적으로 번져 오르게 되네. 지금 장문대리는 그 찰나의 충격조차 감당할 힘이 없네. 다 타 버린 집이나 마찬가질세. 어떤 식으로 불을 끄려 해도 결국 집이 무너지는 건…… 막을 수 없을 걸세.”
혜연이 아연한 얼굴로 백천을 바라보았다.
이제야 완전히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당군악의 말대로라면, 지금의 백천에게는 백약이 무효하다.
“아…미타불…….”
혜연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떨리는 목소리로 절박하게 불호를 외는 것뿐이었다.
‘이건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백천의 목숨을 건 일격이 아니었다면 태양궁주를 단번에 뚫고 길을 열기란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대가가 너무 참혹했다.
저벅.
참담한 분위기 속, 누군가가 백천의 머리맡에 다가가 섰다. 조걸을 막아섰던 곽회도, 당군악도 이 사람은 막지 못했다.
천천히 다가온 이 사람이 유이설이었으므로.
그녀는 침상에 누운 백천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 그럼 사매가 나를 지켜 주면 되겠네.
유이설은 지키지 못했다. 오히려 백천이 그녀와 다른 화산의 제자들을 지켜 냈다. 그런 몸을 이끌고.
강함이란 무엇인가. 무학이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나직한 목소리가 속삭임처럼 새어 나왔다.
“안 돼요, 사형.”
모두가 숨을 죽였다.
“이렇게는 안 돼요. 아직 나에게 기회를 더 줘야 해요.”
“…….”
“제발.”
목소리 끝이 떨려 나왔다. 제 숨이 끊어질 상황에 놓여도 흔들린 적 없던 유이설이 지금 떨고 있었다. 생각지 못했던 광경이 화산 제자들의 마지막 끈을 끊어 버렸다.
털썩.
누군가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고, 또 누군가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천하의 조걸조차 치미는 감정을 어쩌지 못해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짙은 무력감이 모두를 휩쓸었다.
강해지면 무엇 하는가. 올바른 뜻을 관철해 나가면 무엇 하는가. 정작 지켜야 할 것은 지키지 못하는데.
이토록 큰 상실감과 깊은 고통을 대체 어찌 감당해야 하는가.
“제기랄!”
콰앙!
조걸이 이를 악물며 바닥을 내리쳤다. 그런데 그때. 생각지 못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당군악이 움찔 놀라며 시선을 돌렸다.
“자, 장로님!”
“사숙!”
“아직 일어나시면 안 됩니다, 사숙!”
줄곧 시체처럼 침상에 누워 있던 허공이 상체를 일으켜 이쪽을 바라봐 왔다. 호수처럼 잔잔한 눈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