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ount Hua Sect RAW novel - Chapter 1714
1714화. 그걸로 됐소. (9)
“쿨럭!”
“자, 장로님!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
허공이 힘겹게 기침을 토하자 무당의 제자들이 사색이 되어 만류했다.
당연한 반응이다.
허공은 사람이 숨을 이어 가게끔 하는 생명의 근원, 즉 선천지기까지 끌어다 썼다. 당장 피를 토하고 절명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장로님!”
“물러나라.”
그러나 만류하던 이들은 이내 단호한 허공의 손짓에 주춤하며 멈출 수밖에 없었다. 허공의 낯빛은 시체처럼 창백할지언정, 눈빛은 감히 거역할 수 없는 위엄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쿨럭.”
다시 잔기침을 토한 허공이 침상에서 내려선다. 느리지만 작은 휘청임조차 없는 움직임이었다.
당군악을 고요하게 바라보고 선 그가 이내 나직이 말했다.
“장문대리의 육신에 화기가 가득하다 하셨습니까?”
당군악이 살짝 얼빠진 얼굴로 그런 그를 바라보았다.
백천도 백천이지만, 허공의 상태 역시 위중하다. 의식을 유지하기도 쉽지 않을 게 분명하거늘…….
“가주님.”
“……아.”
허공이 다시 한번 단호히 부르자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린 당군악이 한숨을 내쉬었다.
“말하지 않았는가. 장문대리의 육신은 이미…….”
의식 없이 누운 백천을 허공이 가만히 응시했다.
확실히 그의 육신에는 오직 화기만이 가득해 보였다. 당군악이 손도 쓰지 못하겠다고 말한 이유가 충분히 짐작될 만큼.
“지금의 장문대리에게는 백약이 무용(無用)하네. 어떤 치료도…….”
“예. 의미가 없겠군요. 이미 조화가 깨진 상태이니.”
고개를 끄덕이는 당군악의 얼굴에 다시 한번 안타까운 기색이 스치는 그때, 허공이 말했다.
“하지만…… 깨어진 조화를 다시 바로 잡는다면 가주님의 의술로 그를 살릴 수 있겠지요.”
잠깐 침묵하던 당군악이 당혹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지금 뭐라 했는가?”
허공은 대답 대신 심유한 눈으로 백천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렇게 한참 동안 응시하던 허공이 마침내 바짝 긴장한 무당의 제자들에게 명했다.
“신단(神丹)을 가져오거라.”
“장로님!”
신단이라는 말에 무당 제자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설마 태, 태극신단(太極神丹)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태극신단은 무당의 영약으로 널리 알려진 태청단(太淸丹)보다 더욱 귀한 무가지보다. 무당의 장문인조차 쉽사리 손을 대지 못할 정도이니 그 가치를 짐작할 만했다.
하지만 지금 무당의 제자들이 놀라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설마 태극신단을 화산의 장문대리에게 쓸 생각이십니까?”
허공은 놀란 무당의 제자들을 빤히 바라보며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무당의 제자 하나가 아연실색하여 외쳤다.
“아, 안 됩니다! 안 됩니다, 장로님! 지금 무당에 신단은 단 한 알밖에는 남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신단은 장로님께서 사용하셔야 할 귀물(貴物) 아닙니까?”
당군악이 움찔했다.
그도 그럴 게, 허공 역시 선천지기를 모조리 소모한 위중한 상태다. 웬만한 영약으로는 상한 진원지기(眞元之氣)를 회복할 도리가 없을 터.
“그 명을 물려 주십시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아, 아무리 저분들께서…….”
“말을 가려라.”
허공이 엄중한 목소리로 말허리를 끊었다.
“나의 상세가 좋지 않다고는 하나, 감히 장문대리와 비견할 수는 없다. 그리고 내 몸은 태청단으로도 충분히 다스릴 수 있다.”
“다스릴 수야 있겠지요.”
상황을 지켜보던 무진이 입을 열었다. 허공의 시선이 그에게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다스리는 수준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태극신단이 아닌 태청단을 복용한다면…… 사숙의 목숨은 구할 수 있을지 모르나, 무학은 영영 잃게 될 것입니다.”
“…….”
“사람인 허공은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무인으로서의 허공은 죽음을 피할 수 없단 의미입니다.”
이에 이 공간에 있는 모두가, 심지어는 초조하게 지켜보던 화산의 제자들마저 기겁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허공이 어떤 사람인가.
소림과 함께 강호의 북두(北斗)를 다툰다는, 무당의 기대를 한 몸에 짊어진 사람이다. 게다가 나이와 배분까지 고려해 본다면 지금의 무당 그 자체라 해도 과하지 않을 터.
화산의 제자들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청명에게 맞서 검을 펼치던 허공의 모습을. 물론 그 검이 청명에게 닿지 못했다 해도, 그가 다음 세대 강호를 이끌어 나갈 이임은 그 누구도 감히 부정하지 못했다.
그런 이가 무학을 영영 잃는다.
이번 일로 허공뿐 아니라 숱한 무당의 검수가 목숨을 잃었다지만, 허공이 희생되는 건 결코 그냥 넘길 일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그 많은 이들이 희생되었기에 더욱 심각할 수밖에 없다.
이제부터 긴 세월 동안 무당을 재건해 나가야 할 이들에게 허공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하겠는가. 그의 존재 여부로 무당의 미래가 달라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를 알다 보니 화산의 제자들조차도 지금은 차마 입을 열 수 없었다. 누가 감히 허공에게 무학을 버려 가며 백천을 살려 달라 요구하겠는가.
무진이 물었다.
“그럼에도…… 정녕 그리하시겠습니까?”
하지만 허공은 그저 가만히 고개를 내저었다.
“무진. 네 말은 틀렸다.”
“……장로님.”
“사람인 내가 살고, 무인인 내가 죽는 게 아니다.”
허공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어렸다.
“처음부터 도인이었던 내가, 여전히 도인으로 남을 뿐이다.”
실로 담담한 목소리였다. 눈빛은 바람 한 점 없는 호수 같았다. 이를 본 무진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뭣들 하느냐.”
“무진 사숙…….”
“장로님의 명이다. 신단을 가져와라!”
무당의 제자들이 입술을 질끈 물었다. 허공과 무진이 같은 명을 내린 이상 거부할 수 있는 이는 없었다.
몇몇이 신단을 가지러 달려가자, 허공은 침묵에 빠진 화산의 제자들과 의식을 잃은 백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당군악이 주저하다 입을 열었다.
“……이보게, 허공진인.”
“그저 허공이라 불러 주십시오. 진인은 과합니다.”
“호칭이야 아무려면 어떻겠는가? 대체 무슨 생각인가? 지금 장문대리의 몸은…….”
“의술로는 그를 살릴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무학이라면, 무당의 무학이라면 가능합니다.”
“정말인가?”
창백한 허공의 얼굴에 희미하게 미소가 드리워졌다.
“태극이란 그러한 것이지요. 깨어지고 흐트러져도 결국은 돌고 돌아 조화를 찾아가는 것. 그게 세상의 이치고 사람의 이치 아니겠습니까. 그저 그것을 조금 도울 뿐입니다.”
당군악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의술로는 깨어진 균형을 되돌릴 방법이 없다. 그러나 처음부터 음과 양의 조화를 기반으로 하는 무당의 무학이라면 저 몸의 화기를 다스릴 방법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럼…… 도장께서는…….”
윤종이 주저하며 말을 꺼냈지만, 허공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다소 무뚝뚝해 보이는 모습이 여느 때와 같았다.
“나는 살아 있소. 지금 이곳에.”
“…….”
“장문대리가 구해 준 목숨이오. 심지어 나뿐이 아니지. 화산과 장문대리가 천릿길을 달려와 도와주지 않았다면 이곳에 있는 이들 중 하나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오.”
허공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생생하다. 저 절벽을 뛰어올라 나타나 준 백천의 모습이. 그때 허공이 본 것은 그저 기쁨만은 아니었다.
“이걸로 은혜를 갚겠다는 말이 아니오. 고작 이런 걸로 모두 갚을 수 있다 여기지 않소. 그저 무당이 가진 것으로 우리가 입은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다면, 내가 내어줄 수 있는 것으로 장문대리가 살아날 수 있다면…….”
허공이 눈을 떴다. 백천을 응시하는 눈에 흔들림이라고는 없었다.
“그걸로 됐소.”
그 누구도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저 담담한 말이 얼마나 어려운 결정 끝에 나온 것인지 모를 수 없기 때문이다.
“도장…….”
“장로님!”
그때 나갔던 무당의 제자들이 다시 돌아왔다. 품에 무언가를 안은 채였다. 허공은 그들이 떨리는 손으로 내민 작은 옥함을 말없이 받아 들었다.
태극 문양이 새겨진 작은 상자를 열자 새끼손톱만 한 크기의 단환 두 알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는 희고, 하나는 검었다.
“이게…….”
“극양과 극음. 두 가지 기운의 영단입니다.”
당군악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아무리 당군악이라도 이 영단을 어찌 활용해야 하는지는 알 도리가 없었다. 감도 오질 않았다.
그때 허공이 흰 영단을 집어 당군악에게 내밀었다.
“이걸 장문대리에게.”
“먹이라는 건가? 하지만 그리되면…….”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그 뒤는 제게 맡기십시오.”
당군악이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허공의 말만 믿기에는 위험부담이 컸다.
‘하지만 달리 도리도 없다.’
이대로 두면 백천은 확실하게 죽는다. 그러니 지금은 그저 허공을, 그리고 무당을 믿어 볼 수밖에.
“장문대리를 호위하게!”
“예!”
당군악이 빠르게 결정을 내리자 화산의 제자들도 바짝 긴장한 얼굴로 백천의 주위를 지켰다. 당군악은 백천에게로 다가가 그 얼굴을 빤히 내려다보다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아니, 지금 내가 믿어야 할 건 오히려…….’
믿는다. 이 사내가 반드시 버텨 줄 것이라고. 이런 곳에서 죽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파앗.
금침이 백천의 목과 가슴에 연이어 꽂히기 시작했다. 백천의 입이 절로 벌어지자, 당군악이 백색 단환을 쥔 손에 기를 불어넣었다. 녹아내린 단환이 이내 백천의 입 안으로 주르륵 흘러 들어갔다.
“허공 도장!”
허공이 살짝 감았던 눈을 떴다. 이내 옥함에 남은 검은 단환을 제 입에 털어 넣고 그 자리에 가부좌를 틀었다.
우우우웅!
허공의 몸에서 양기가 들끓듯이 솟구쳐 올랐다.
신단의 기운을 전신으로 휘돌린 그는 느릿하게 몸을 일으켜 백천에게로 다가섰다.
‘음은 곧 양이고 양은 곧 음이니, 맞닿아 휘돌아…….’
음과 양은 다르지만 결국 다르지 않다.
무당의 태극이 끝끝내 닿고자 하는 곳. 허공이 그곳에 잠시라도 닿을 수 있다면, 이 사내의 생명 역시 여기서 끝나지 않으리라.
저벅.
백천의 주위를 둘러싼 이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마치 한 사람인 것처럼, 하나의 운명을 짊어진 것처럼 그의 곁에 서 있었다.
허공의 입가에 저도 모르게 미소가 피어났다.
‘좋은 문파군.’
어쩌면 지금 그는 진정으로 화산이라는 문파를 인정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사형! 사숙의 몸이……!”
“……진정해라, 걸아.”
백천의 몸이 얼어붙었다. 동시에 타오르고 있었다.
몸속에 채워진 양기가 음기와 충돌하며 몸 밖까지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한없이 쇠약해진 백천의 육신은 이 충격을 이겨 내지 못할 터.
오검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찰나, 허공이 백천의 이마를 가볍게 짚으며 말했다.
“걱정할 것 없소. 나의 도와 당신들의 도가 다르지 않을 것이고…….”
그러더니 천천히 눈을 감았다.
“화산의 도와 무당의 도 역시 다르지 않을지니.”
그에게서 청아한 선기가 흘러나와 백천에게로 들어간다.
“결국에는 이르리라.”
바로 그곳에, 도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