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ount Hua Sect RAW novel - Chapter 1722
1722화. 잃지 않을 수는 없어. (2)
“형!”
아이가 있는 힘을 다해 내달린다.
“혀어어엉!”
자그마한 손은 누군가의 닿지 않는 등을 향해 안타까울 만큼 쭉 뻗어 있다. 작디작은 아이의 손과는 달리 너른 등. 아이의 눈에는 한없이 강인해만 보이는 등이 점점 멀어진다.
“같이 가! 같이 가, 형!”
온 힘을 다해 목소리를 높여 보지만, 그 등은 점점 멀어지기만 했다. 아무리 필사적으로 내달려도 거리가 조금도 좁혀지질 않았다.
“혀어어어어엉!”
앞선 이를 더는 따라잡을 수 없음을 직감한 아이가 목이 터지도록 고함을 내질렀다.
그 순간, 까마득하게 멀어졌던 이가 느리게 고개를 돌렸다.
전력으로 달리던 아이는 움찔하며 멈춰 섰다. 돌아선 이의 눈빛이 너무나도 무심해 보였기 때문이다.
– 돌아가.
우렁우렁 울리는 듯한 목소리. 그 안에는 감정의 편린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 네게는 무리다.
꽉 쥔 아이의 주먹이 파르르 떨린다.
“어, 어째서?”
아이의 두 눈에 원망이 들어찬다.
“나도……. 나도 할 수 있을지 모르잖아요! 노력하면! 더 열심히 노력하면…….”
– 네겐 무리다.
하지만 아이의 간절한 외침에도 사내의 눈빛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 돌아가. 분에 넘치는 바람은 너를 불행하게 할 거다.
이를 악문 아이가 다시 한번 고함을 내지르려 했다. 하지만 저 멀리 보이던 이의 모습은 이미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린 뒤였다.
“아…….”
아이의 두 눈이 크게 흔들린다.
“형!”
어째서일까? 어째서 기회조차 주지 않는 걸까? 그저 같은 곳에 설 기회를 바랐을 뿐인데.
앞서고 싶었던 게 아니다. 뛰어넘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싶었던 것도 아니다. 아이가 원한 것은 그저 곁이었다. 함께 걸을 수 있는 옆자리에 불과했다.
그런데 어째서 그것조차 내주지 않는가?
“아…….”
그래서, 갖지 못했던가?
아니다. 가졌었다.
“너희들?”
아이의 눈앞에 또 다른 이들이 나타난다.
검은 무복과 그 가슴에 새겨진 매화 문양. 아주 머나먼 길을 넘어 마침내 찾아내었던, ‘그가 있을 곳’.
“사매……. 윤종아, 걸아!”
반드시 진금룡의 곁이 아니어도 좋았다. 이제 그에게는 함께 길을 걸을 이들이 있으니까.
그런데…….
“왜 그런 눈으로 봐……?”
그를 봐 오는 이들의 눈빛이 전에 없이 낯설다. 언제나 따뜻한 시선을 주던 그들이, 북풍한설이 몰아치듯 얼음장 같은 시선만을 던지고 있다.
“얘들아?”
조심스럽게 불러 보자, 그를 보던 세 사람이 일제히 몸을 돌리며 등을 보인다. 동시에 그들 역시 마치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얘, 얘들아! 어디……. 어디가!”
아이는 저도 모르게 다급히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 손에 잡힌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함께 걷던 이들이 사라진 곳에 남은 건 그저 빈 허공뿐.
“왜……?”
왜 그를 두고 가 버리는가? 어째서?
아이는 황망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다. 황량하고 메마른 공간. 빛조차 희미한 이곳에 서 있는 건 오직 그 하나뿐이었다.
“다들 어디로 간 거야!”
아이의 얼굴에 공포가 어리기 시작했다. 아니, 사실은 공포가 아닌 서글픔일지도 모른다.
“왜…….”
아이가 필사적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막막할 만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
그런데 그때, 저 멀리서 희미한 빛이 보였다. 금방이라도 꺼질 듯하지만, 확실히 빛이었다.
아이는 더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 그 빛을 향해 내달렸다.
“허억! 허억!”
거친 숨이 차오르고, 몸이 천근처럼 무겁다.
그럼에도 오히려 몸이 부서지도록 내달렸다. 희미한 빛에 휩싸인 이의 이름을, 목이 터지게 불렀다.
“청명아아아아아!”
익숙하면서도 어쩐지 낯선 그 뒷모습의 주인이 천천히 시선을 돌려 아이와 눈을 마주쳤다.
“처, 청명아. 나도……. 나도 같이 가! 나도!”
무심에 젖은 듯 미동도 없던 청명의 입이 느리게 열렸다.
– 올 수 있어?
“뭐……?”
– 올 수 있냐고.
아이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갈 수 있어! 나도, 나도 할 수 있다고!”
그러나 청명의 눈빛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살아 있다기보다 무기질에 더 가까워 보이는 그 눈빛이 아이를 꿰뚫었다.
– 어떻게?
“……뭐?”
– 정말 올 수 있어? 이제 네겐 남은 게 없는 것 같은데?
“그게 무슨 소리야…….”
의문으로 물든 아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때, 청명의 얼굴에 이제껏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조소가 번졌다.
– 정말 몰라?
그 순간이었다.
“어?”
주위가 일순 흐려졌다. 아니, 사실은 아이가 부서지는 것이다.
시커먼 먹물이 발끝부터 전신으로 번져 오는 것처럼, 아이의 몸이 말 그대로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아, 아아…….”
제 몸이 칠흑과도 같은 어둠에 물드는 것을 내려다보던 아이가 결국은 찢어지는 비명을 내질렀다.
“으……. 으아아아아아악!”
* * *
부옇고 흐리멍덩하던 시야가 서서히 선명해져 간다.
물속 깊은 곳까지 침전한 느낌에 이어 조금씩 찾아오는 부유감이 느물거리는 불쾌감을 주며 목을 죄었다.
‘여긴……?’
낯설다. 코끝을 스치는 건 익숙한 향이지만, 아직도 조금 흐린 시야에 들어오는 건 낯선 광경뿐이었다.
천근 같은 눈꺼풀을 겨우 들어 올린 백천이 천천히 옆으로 시선을 틀었다.
익숙한 곱슬머리가 보였다.
‘조걸…….’
그리고 그 옆에는 조금은 낯선……. 아니, 정확히는 침대에 엎드려 잠든 모습이 낯선 사람도 있었다.
‘사매.’
그들을 조용히 보던 백천이 다시 천천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살았다.
‘잘도 살아남았구나. 잘도.’
잔기침이 새어 나왔다. 숨이 붙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기 무섭게 전신에 저릿한 통증이 밀려왔다.
‘내가 얼마나 의식을 잃었던 거지?’
머릿속에 짙은 안개가 낀 것 같다. 생각이 잘 돌지 않는 느낌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수마가 다시 그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백천이 자꾸 밀려오는 잠을 어쩌지 못하고 비몽사몽이던 그때, 침상 주위로 둘러 있던 천막 한쪽이 걷히더니 누군가가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사숙? 의식을 찾으셨습니까?”
“어, 응?”
그 말에 졸고 있던 조걸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러더니 눈을 뜬 백천을 보자마자 펄쩍 뛰며 머리맡에 바짝 다가왔다.
“지, 진짜 깨셨네? 아니, 사형! 제가 잔 게 아니고…….”
“쉿.”
조걸을 슬쩍 밀친 윤종이 굳은 낯으로 백천에게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반쯤 감겼던 백천의 눈이 다시 힘겹게 뜨였다. 무언가 말하기 위해 입술을 벌리자 바짝 마른 입술이 쩌적 갈라졌다.
“물! 걸아. 물 좀 가져와라!”
“여깄습니다, 사형.”
조걸은 이미 눈치 빠르게 주전자에 담겨 있던 물을 그릇에 따르던 참이었다. 그릇을 받아 든 윤종이 백천의 입 안에 조심스레 물을 흘려 넣었다.
“쿨럭.”
백천이 또다시 기침을 터트렸다.
물이 아닌 가시를 삼키는 듯 이물감이 극심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고통 덕에 오히려 흐려지던 의식이 조금쯤 선명해졌다.
“사숙.”
“일…….”
말이 잘 나오질 않는다. 입술을 잘근 깨문 백천이 다시 힘껏 입을 열었다.
“일…으켜…….”
“걸아.”
“옙!”
조걸이 재빨리 윤종의 반대편에 가 붙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윤종과 함께 백천의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앉으실 수 있겠습니까?”
백천이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부르튼 입에서 탁한 음성이 드문드문 새어 나왔다.
“내가…… 얼마…나 의식을 잃고…… 있었느냐?”
윤종이 살짝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사숙께선 닷새 동안 의식을 찾지 못하셨습니다.”
“그렇게나…….”
“예. 정말 위험했습니다.”
백천이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여긴?”
“무당입니다.”
“사…패련은?”
“물러났습니다. 그 이후로는 딱히 준동이 없는 상태입니다.”
백천이 윤종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 윤종은 묻지도 않은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사숙. 사형제들은 다들 무사합니다. 다친 놈들이 조금 있긴 하지만 그 정도는 금세 회복될 겁니다.”
“…….”
“그리고…… 무당은 피해가 크긴 하지만, 어쨌거나 최악의 사태는 면했습니다. 무당의 제자들이 노력한다면 문파의 명맥은 이어 갈 수 있을 겁니다. 이게 다 사숙 덕입니다.”
백천의 눈빛이 조금씩 침전했다.
“예, 사숙. 정말 큰일 하셨습니다. 정말이라니까요.”
심지어는 조걸이 놈마저 평소에 하지도 않던 공치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 표정이 아주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
멍하니 두 사람을 보던 백천이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유이설. 그의 사매는 앞선 두 사람과는 달리 침상 발치에서 말없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처럼 무심한 눈빛이 아닌, 묘하게 우울한 눈빛으로.
윤종이 말했다.
“지금은…… 몸이 무거우시겠지만, 부상이 워낙 커서 그렇습니다. 잘 치료되었다고 하니 곧 회복할 겁니다.”
백천은 그 말에 대한 대답 대신 다른 질문을 던졌다.
“청명이는?”
“아……. 그 자식은……. 이 새끼, 사숙이 깨셨는데 어딜 간 거야!”
조걸이 대뜸 버럭 화를 냈다.
백천의 눈에는 이 모든 광경이 괴이하게만 보였다. 모두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연극을 하는 것만 같다.
“너희…….”
스르륵.
백천이 몸을 조금 움직인 순간, 상체에 덮여 있던 천이 아래로 흘러내렸다. 무심코 내려다본 백천이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꽉 다물었다.
붕대에 감겨 있어도 몸의 형태는 드러난다. 칭칭 감긴 채 숨겨진 두 팔이 그의 기억과 달리 볼품없이 가늘었다.
“어엇.”
조걸이 다급히 천을 잡아 다시 백천의 목까지 끌어 올렸다.
“지금은 몸이 좋지 않으니 일단은 좀 더 쉬셔야 합니다.”
“걸아.”
“조금 더 주무신 뒤에…….”
“걷어 봐라.”
“사숙.”
“어서.”
힘이 실리지 않았음에도 단호한 목소리였다. 거듭 채근하는 목소리에, 조걸이 눈빛으로 윤종에게 도움을 구했다.
하지만 윤종이라고 뾰족한 수가 있을까. 윤종 역시 이내 체념한 듯 눈을 질끈 감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조걸이 짧게 한숨을 쉬고는 백천의 몸을 덮고 있던 천을 마지못해 내렸다.
정적 속, 백천의 눈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앙상한 나뭇가지.
백천이 처음 떠올린 건 바로 그것이었다. 붕대에 감긴 그의 팔은 이미 기억 속의 것이 아니었다.
윤종이 참담한 기색을 애써 숨기며 말했다.
“부상이 깊어서 그렇습니다, 사숙. 당가주님께서 최선을 다하고 계시니 곧…….”
“붕대를 풀어 봐라.”
“사숙. 지금은…….”
“윤종아.”
“…….”
“풀어 봐.”
윤종이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러다 이내 각오한 듯 백천의 팔에 감긴 붕대를 잡았다. 붕대를 푸는 동작이 내키지 않는 것처럼 느렸다.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백천의 팔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곳곳이 검게 변색한 앙상한 팔. 마치 백 살 먹은 노인처럼 뼈와 가죽밖에 남지 않았다. 백천의 눈에 그 모습이 아프도록 박혔다.
“사숙.”
“…….”
윤종의 부름에도 백천은 말없이 한참 제 팔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유이설이 말없이 침상 주위로 둘러쳐 있던 장막을 걷어 냈다. 그러자 활짝 열린 창 너머로 맑은 창공이 펼쳐졌다.
백천은 그 하늘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랬구나…….’
손끝조차 떨리지 않는다. 그의 의지는 더는 그의 팔에 머물지 않았다.
‘그랬어…….’
– 이제 네겐 남은 게 없는 것 같은데?
이건 부러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