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ount Hua Sect RAW novel - Chapter 1723
1723화. 잃지 않을 수는 없어. (3)
무당 의약당.
화산보다 두 배는 더 커 보이는 전각 깊은 안쪽의 처소.
본디 외인에게는 쉽사리 그 문을 열지 않는 심처 중 심처에 무당과는 상관없는 복색의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있다.
한 사람의 얼굴은 무척 담담한 데 비해, 다른 한 사람의 얼굴은 어둡고 무겁기 그지없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직이 말하며 무의식적으로 찻잔을 들던 당군악이 흠칫 멈추었다. 붕대로 감긴 백천의 팔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그는 짐짓 태연한 척 찻잔을 도로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걸세.”
실로 뻔한 소리다. 앞에 앉은 이도 이런 말을 듣자고 이곳에 앉은 건 아닐 것이다.
이를 뻔히 알면서도 당군악은 구태의연한 말을 늘어놓았다. 마주 앉은 이가 진실로 듣고자 하는 말을 곧장 꺼내는 건, 독왕이라 불리는 그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으므로.
“팔은…… 지금은 불편하겠지만, 꾸준히 노력한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나아질 걸세. 그건 내 장담할 수 있네.”
이 상황이 실로 무겁다.
어떤 말에도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바라봐 오는 저 눈이 특히 그렇게 느껴졌다. 가주라는 직책에 짓눌려 자기 자신을 잃어 가던 때보다도 지금이 더욱 버겁게 느껴졌다.
결국 그 눈빛에 못 이긴 당군악이 한숨처럼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제 더는 무학을 쓸 수 없을 걸세.”
딱히 이렇다 할 반응은 없었다.
외려 그렇기에 당군악은 굳이 묻지도 않은 말을 계속 내뱉게 되었다.
“세상에는 기적이란 말이 존재하니 확언은 할 수 없겠지. 물론 무인으로서의 길을 걷는 것이 무척 어렵긴 하겠지만 말일세.”
백천의 안색을 살핀 당군악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꼭 무인이 아니라도, 도인으로서는…….”
“가주님.”
그 순간, 굳게 닫혀 있던 백천의 입이 열렸다.
“혹, 의원으로서의 의견만 듣고자 청한다면 무례가 될는지요?”
깍듯한 예가 담겨 있다. 이런 상황에도 흐트러짐 없는 그 말이 되레 당군악의 깊은 한숨을 불러왔다.
“육신은 기운의 그릇이고, 자네는 그 그릇이 깨어졌네.”
“…….”
“단순히 단전만을 의미하는 게 아닐세. 단전만 깨어진 거라면 자네가 지금껏 단련해 온 육체의 힘은 보전할 수 있겠지만, 자네의 육신 역시 이번 일로 심한 손상을 입었네. 다시 말하자면…….”
“나약해진 몸이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거군요.”
당군악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귀는 닫을 수 없으니 백천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여지없이 파고들었다.
“깨어진 그릇을 다시 붙인다 해도, 처음처럼은 될 수 없듯이.”
결국 당군악이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의원으로서 말하자면…… 그렇다네.”
실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가 보기에 지금의 백천은 큰 사고를 겪은 평범한 양민과 다를 바 없는 상태다. 아마 제대로 걷고 제대로 팔을 쓰기 위해 몇 달……. 아니, 어쩌면 몇 해의 시간이 소요될지도 모른다. 그것도 그가 부단히 노력한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그중에서도 팔은…….”
당군악이 제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최대한 담담해지려 해도 쉬이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백천은 강호에서 가장 촉망받던 기재 중 하나다. 그를 아는 이라면 모두가 괴팍한 청명 대신 후대의 강호를 이끌어 갈 동량이라고 인정했다.
천하제일인이 될 거라고는 말할 수 없어도, 천하에서 가장 영향력 높은 인물 중 하나가 될 거란 건 확실했다.
당군악은 지금 그런 이에게 무인으로서의 생명이 끝났다는 선언을 내려야 한다. 이는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어떤 수를 쓴다 한들…… 과거처럼 돌아올 수는 없을 걸세.”
“…….”
“물론 노력 여하에 따라 어느 정도는 좋아질 수 있겠지만…… 과거처럼은…….”
필사적으로 담담히 말을 지어내고 내뱉으려 애썼다. 사는 동안 이토록 말을 뱉기 힘들었던 적이 또 있었던가.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런 당군악을 백천이 구해 주었다. 백천이 당군악을 똑바로 보며 묻는다.
“혹 내력을 사용하지 못해도, 힘을 주어 휘두를 수 없다고 해도, 검을 다시 쥘 수는 없겠습니까?”
당군악은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백천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 보는 게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고, 전부였다.
“그렇군요.”
되레 백천이 흔들림 없이 말했다. 이미 아는 바를 다시 이야기하듯 담담하기만 한 목소리였다.
“그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장문대리.”
백천이 제 팔을 흘끗 내려다보았다.
“아무래도 무리했으니까요.”
당군악의 입에서 결국 참지 못한 탄식이 희미하게 새어 나왔다.
어쩌면 백천 역시 무학을 잃는 걸 각오했을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죽음마저도 각오했을 것이다. 그가 아는 화산의 장문대리 백천은 그런 사람이니까.
하지만 여기까지 각오했을까? 상상이나 했을까?
죽음마저 허락받지 못하고, 그가 원하고 바라던 모든 걸 잃은 채 그저 살아가게 되는 삶을?
이 청년은 정말 이런 결말까지 상상했을까?
당군악에게 후회는 없다. 설령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일말의 주저 없이 백천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결과를 뻔히 안다고 해도 말이다. 그는 당가의 가주이지만, 또 동시에 의원이므로.
하지만 백천은 어떨까? 이게 정말 그가 원한 결과일까?
당군악의 노력이 백천을 더없는 나락으로 밀어 넣어 버린 건 아닐까?
어쩌면…… 이 청년에게는 기적적인 생존이 아닌, 영웅적인 죽음이 더 나은 결말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차마 헤아릴 수 없다. 감히 단정할 수도 없다.
“자네는…….”
그렇기에 당군악은 입을 열고 말았다. 어른스럽지 못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묻지 않고서는 참을 수 없었다.
“괜찮은가?”
입술을 비집고 결국은 흘러나와 버린 그 물음에, 백천의 눈빛에 이채가 스쳤다. 마치 당군악이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는 듯이.
하지만 그도 잠시, 백천의 눈에 금세 고요가 내려앉는다.
“‘괜찮냐’라…….”
백천의 말끝이 살짝 흐려졌다. 그러나 이지러진 말꼬리에 담긴 감정이 서글픔은 아니었다.
“아무렇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일 겁니다.”
“……그렇겠지.”
“하지만…….”
백천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했다. 그의 눈에 고풍스러운 무당의 전각들이 보였다.
“이미 많은 이들이 아까운 목숨을 잃었습니다.”
“…….”
“그들에게도 이루고자 했던 것, 바라던 내일이 있었을 겁니다. 남겨진 이들도 잃은 이들의 빈자리로 신음해야 할 겁니다.”
당군악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마당에, 그래도 목숨은 건진 제가 투정처럼 우는소리를 늘어놓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분명 맞는 말일세.”
말과는 달리 당군악이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그건, 표면적인 문제 아닌가.”
그는 백천을 똑바로 보며 다시 물었다.
“난 자네의 마음이 정말 괜찮은지 묻고 있는 걸세.”
무거운 침묵이 두 사람 사이로 내려앉았다.
백천은 눈을 내리감았고, 당군악은 애꿎은 찻잔을 닳도록 매만졌다. 긴 침묵이 당군악을 결국 후회로 밀어 넣었을 즈음, 굳게 닫혔던 백천의 입이 열렸다.
“솔직히…… 아직 모르겠습니다.”
“…….”
“아직은……. 예,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제 마음이 정리되지 않아, 지금 어떤 상태인지 정확히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당군악이 매만지던 찻잔에서 손을 떼었다. 새삼 자신이 얼마나 애처럼 굴고 있는지 깨닫고 만 것이다. 고통도 후회도 서글픔도 모두 백천의 것일진대, 어째서 그가 옆에서 이리 채근해 대었단 말인가.
“그래, 그렇겠지. 내가 괜한 질문을 했군. 괘념치 말게.”
“하지만…….”
백천이 가만히 당군악을 응시하며 말했다.
“후회할지, 그러지 않을지는 몰라도…… 그 순간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저는 한순간의 망설임 없이 같은 길을 선택할 겁니다.”
거칠어진 얼굴로 빙긋 미소를 짓는 백천을 보며 당군악이 길게 탄식했다.
“그걸…… ‘후회하지 않는다’라고 하는 걸세. 이 사람아…….”
목소리에 한없는 안타까움이 배어났다.
* * *
“사, 사숙.”
화산과 천우맹을 위해 임시로 배정된 커다란 전각, 그 문을 통해 걸어 들어오는 백천을 보며 윤종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다른 행위를 하는 게 아닌, 그저 걷는 것뿐이다. 그럼에도 윤종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질린 이유는 하나였다.
지금 백천에게 걷는다는 행위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일지를 알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걸음을 내디디는 백천의 얼굴에선 식은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있었다. 백천이 다가오는 그 짧은 순간 윤종의 손바닥에도 땀이 흥건히 배어났다.
“사숙. 지, 지금은 안정을…….”
“윤종아.”
“예? 예! 예, 사숙!”
“그렇게 멀뚱히 보고 있지만 말고, 와서 부축해라.”
“……예?”
“뭐 하느냐?”
순간적으로 귀를 의심하며 멍하니 백천을 보던 윤종이 화들짝 놀라 그를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조심스레 허리를 잡아 부축했다. 팔을 건드려야 하는 어깨에는 손조차 대지 못한 채.
“사숙. 지금은 안정을 취해야 하는데 왜 나오셨습니까.”
“저기로.”
백천이 가리킨 곳은 전각 한쪽에 놓인 집무용 책상이었다. 평소 쓰던 것이 아니라 비어 있었다.
그게 무슨 뜻인지 깨달은 윤종은 아연실색했다.
“어서.”
하지만 백천의 채근에 결국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책상으로 향했다.
“후우.”
느리게 의자에 앉은 백천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앉으니 좀 낫구나.”
……그럴 리 있겠는가?
지금의 백천은 침상에 누워 버티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고작 의자에 앉았다고 편안함을 느낄 리 없다.
“뭘…… 하실 생각이십니까, 사숙?”
“내가 해야 할 업무를 가져와라. 아, 그간 네가 처리한 것도.”
“사, 사숙. 그건 제가 할 수 있습니다.”
“윤종아.”
윤종이 입을 꾹 다물었다. 담담하지만 확고하게 힘이 실린 백천의 얼굴을 보니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다.
“네가 할 수 있다는 건 알고 있다.”
“사숙…….”
“하지만 내가 해야 할 일도 있지. 시키는 대로 해 주거라.”
윤종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이 필요하십니까?”
“사패련의 동향 보고, 희생자 명단과 현황 파악, 보급 확보 진척 사항. 아, 그리고 지금까지 본단에 보낸 보고서들까지 모두.”
“예, 사숙.”
윤종이 몸을 돌려 빠르게 뛰어갔다.
이윽고 윤종이 가지고 있던 서류들과 이곳으로 날아들었던 전서들이 모두 백천의 책상으로 옮겨졌다.
앞에 놓인 전서들을 먼저 빠르게 훑은 백천이 윤종이 가져온 붓을 빤히 바라보았다.
순간 아차 싶었던 윤종이 입술을 짓깨물며 붓을 치우려 했다.
하지만 그 전에 백천이 사시나무처럼 덜덜 떨리는 손을 뻗었다.
전각이 점점 더 고요해졌다.
한때 백천의 검은 흑룡왕의 심혼에 닿았고, 태양궁주의 가슴을 꿰뚫었다. 그리고 그 검을 움켜잡았던 손이, 강호의 정상에 닿았던 손이 지금 한낱 붓을 쥐기 위해 애처롭게 뻗어지고 있다. 사력을 다해서.
볼품없이 앙상한 팔이다.
화산의 미래를 움켜쥔 채 이끌어 나아갈 것이라고, 모두가 의심치 않았던 든든한 팔이 이젠 비참할 정도로 망가졌다.
화산의 제자들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거나 입을 틀어막았다. 애처롭게 떨리는 손과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버린 백천의 얼굴을 보고 있기 힘들었다.
“……사형.”
“입 다물어.”
누군가가 참지 못하고 흐느끼듯 말하자, 또 다른 누군가가 노기 어린 목소리로 나직이 일갈했다.
“그냥…… 닥치라고.”
하지만 그 노기조차 울먹울먹 젖어 갔다.
백천은 이 모든 시선과 분위기를 느끼면서도 사력을 다해 붓을 향해 손을 뻗기를 멈추지 않았다.
– 이제 네겐 남은 게 없는 것 같은데?
‘아직……. 아직 아니야. 아직.’
떨리는 손끝이 기어코 윤종이 내민 붓에 닿았다. 하지만 끝끝내 제대로 움켜쥐지는 못했다.
“윤종아.”
“예……. 예, 사숙.”
태연한 척하려 했지만, 윤종의 목소리는 한없이 떨리고 있었다.
“내 손에 붓을 묶어라.”
“……사숙.”
“도와다오.”
윤종이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이내 백천의 손을 감싼 붕대를 풀고 붓을 고정하기 시작했다.
기진맥진하여 이 광경을 지켜보던 백천이 천천히 눈을 내리감았다.
‘아직은 아니야. 아직은…….’
긴 속눈썹이 잘게 떨렸다. 지독히 담담한 얼굴이었지만, 이것만큼은 채 감추지 못하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