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ount Hua Sect RAW novel - Chapter 1724
1724화. 잃지 않을 수는 없어. (4)
“괜찮을까요?”
“…….”
“아니, 사형. 심정이야 알겠지만, 냉정하게 생각했을 때 지금 사숙은 평범한 사람만도 못한 상황 아닙니까? 당장 내일 숨이 넘어가도 이상할 게 없잖아요.”
“…….”
“그런 사람이……. 붓도 제대로 못 드는 사람이 저만한 업무를 수행하는 게 과연 맞는…….”
그때, 침묵하던 윤종이 조걸을 돌아보았다. 그 침중한 눈빛에 조걸은 흠칫하며 입을 닫았다.
윤종이 입술을 살짝 짓씹더니 입을 열었다.
“그래서, 너는 사숙에게 그만두고 쉬란 말을 할 수 있냐? 그 심정을 알면서도?”
“……할 수야 있죠. 들어 먹질 않아서 그렇지.”
조걸의 푸념에 윤종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조걸은 아직 실감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무인으로서 백천이 끝났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말이다.
윤종은 책자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놓기를 반복했다. 도통 진정되지 않는 그의 마음을 보여 주는 듯했다. 결국은 이 모습이 조걸의 눈길을 끌었다.
“그런데, 사형.”
“왜.”
“아까부터 손에 쥔 그건 뭡니까? 집무실에서부터 계속 들고 있었던 것 같은데, 또 딱히 보지는 않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윤종이 슬쩍 제 손의 책자를 내려다본다. 제목이 없는 무명책(無名冊).
“……사숙이 준 것이다.”
“예? 사숙이요?”
“그래.”
윤종의 눈이 한없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그가 쉽사리 열리지 않는 입술을 억지로 떼었다.
“화산의 인명부다.”
“엥?”
“그리고…… 화산의 규율과…… 화산 대제자가 지켜야 할 것들이 적혀 있지.”
잠시 침묵하던 조걸이 눈을 가늘게 떴다.
“아니, 어떻게……?”
“이리되기 전에 미리 준비하신 모양이다. 장문대리를 역임하면서 느낀 점과 당부도 같이 써 두셨더구나.”
그 순간, 조걸의 얼굴이 확 달아오르며 격앙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게 뭔……! 그걸 왜 사형에게 주는 겁니까?”
“…….”
“아니, 사형은 그걸 준다고 또 받았습니까? 그게 무슨 의민지도 모르고?”
“걸아.”
“정신이 있는 사람입니까? 눈치는 국에 말아 처먹었습니까? 오늘내일하는 사람이 그걸 내밀었는데 좋다고 받아 와서 만지작거리고 있습니까? 이…….”
“나라고 받고 싶어서 받았겠냐, 이 새끼야!”
윤종이 과격하게 반박했다. 그러나 조걸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벌떡 일어났다.
“이리 주십쇼.”
“……뭘 어쩌게?”
“어쩌긴 어쩝니까? 가서 사숙 얼굴에 던져 버려야지요!”
“…….”
“화산 장문대리가 어떤 자리인데 이렇게 제 맘대로 덜렁 넘긴답니까! 사흘 밤낮을 얻어맞아도 모자랍니다.”
“앉아라.”
“사형!”
“앉으라고!”
윤종이 끝내 노기를 터트리며 외쳤다. 조걸은 이를 꽉 악물며 마지못해 도로 털썩 앉았다. 그러나 팔짱을 굳게 끼는 모습이, 여전히 납득이 안 되는 기색이 역력했다.
윤종이 한숨 끝에 그를 타이르듯 불렀다.
“걸아.”
“어차피 예정되어 있었던 일 아닙니까?”
“…….”
“사숙이 무학을 잃을 거라는 사실은 모두 알고 있었잖아요! 그냥 그게 예상보다 조금 빨리 벌어진 것뿐이잖습니까.”
조걸이 화를 내는 이유는 이것이었다.
“그런데 이게 뭡니까? 다들 왜 그런 눈으로 사숙을 보냐고요! 무공? 그게 그렇게 대단한 겁니까? 검을 못 휘두르면 사숙이라는 사람은 가치가 없습니까? 나는 사숙이 나보다 세서 고분고분 말을 들었던 게 아니란 말입니다!”
“조용히 해라. 밖에서 듣는다.”
“빌어먹을, 들을 거면 처들으라지! 내가 뭐 못 할 말이라도 했습니까!”
쾅!
조걸이 격분하여 옆에 놓인 다탁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찻잔들이 충격에 못 이겨 엎어지며 차가 줄줄 바닥에 쏟아져 내렸다.
주르륵.
다탁을 타고 흐르는 찻물을 보던 윤종이 지그시 눈을 감았다.
언젠가 다가올 미래와 이미 닥쳐 버린 현실은 다르다. 아무리 대비한다고 해도 결코 같을 수 없다.
“어쨌든 저는 인정 못 합니다. 사숙은…….”
“걸아. 사숙께서 결정하신 일이다.”
“사형!”
“그리고…… 넌 정말 그게 사숙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전장에는…….”
“빌어먹을, 누굴 천치로 압니까? 내가 업고라도 가면 될 것 아닙니까!”
“사숙의 기분은?”
그 말에 조걸이 마침내 입을 닫았다.
“그래. 그리하면 너는 위안 삼으며 만족할 수 있겠지. 하지만 사숙은? 한 사람이라도 더 필요한 전장에서 제대로 무학도 쓰지 못하는 사람이 네 보호를 받으며 합류한다? 너는 그게 사숙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생각해 본 적 있느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조걸은 그저 쥐어진 제 손에만 연신 힘을 주었다.
윤종이 푸석해진 얼굴에 마른세수했다. 뭐라 말로 하기 힘든 고단함이 밀려왔다.
“이건 그냥…… 대비하는 것일 뿐이다. 너도 잘 알겠지만, 사숙은 그리 쉽게 모든 걸 놓을 사람이 아니다.”
이 말은 사실이다. 이 서책을 넘길 때의 백천도 같은 말을 했으니까.
하지만 윤종도 조걸도 안다. 대비라는 그 말 뒤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숨겨져 있는지.
– 사실 나는 조금 늦었다고 생각한다. 진작 했어야 할 일이지.
백천이 덧붙였던 말을 떠올리며 윤종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하지만 사숙……. 제게는 너무 빠릅니다.’
아무리 깊게 한숨을 내쉬어 봐도, 마음은 끝을 모르게 아득한 호수 바닥으로 침전하기만 했다.
* * *
따악.
백천이 바닥을 구르는 붓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풀린 붕대 사이로 붓이 손을 빠져나가 버린 것이다.
등잔불이 몇 번이고 일렁일 동안 그렇게 망연히 붓을 보던 백천이 애써 몸을 일으켰다.
욱신!
전신을 칼로 헤집는 듯한 고통이 엄습해 온다. 일순 휘청한 그가 가까스로 몸을 가누며 으득 소리가 나도록 이를 악다물었다. 고통을 참아 내기 위함이었다.
또옥.
턱에 고였던 땀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욱신! 욱신!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이 고통은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당군악이 말한 대로, 지금 그의 육신은 금이 간 그릇을 억지로 얼기설기 붙여 놓은 데 지나지 않는다. 아무리 나아진다 해도, 결국 균열을 완전히 없애지 않는 이상 이 고통은 앞으로 평생 그와 함께하게 될 것이다.
붕대가 반쯤 풀린 손을 있는 힘을 다해 뻗었다.
팔을 들고 내밀어 잡는다.
굳이 의식해 본 적도 없는, 그토록 간단한 동작이 지금의 백천에게는 천하의 그 어떤 복잡한 초식보다도 더 어렵게 느껴졌다.
사시나무처럼 떨리던 손끝이 끝끝내 붓에 닿았다.
탓.
하지만 야속하게도 붓은 그에게서 멀어져 더 멀리 굴러가 버렸다.
“…….”
백천은 망연히 그 광경을 보았다.
‘무학이 없어도 괜찮다고?’
반쯤 진심이었다. 마음의 준비는 해 왔으니까. 설령 일신의 무학을 모두 잃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쓸모없는 인간이 되지는 말자고 몇 번이고 거듭 다짐했으니까.
하지만.
“흐…….”
단순히 무학을 잃는 것을 넘어 이렇게 폐인이 되어 버릴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털썩.
백천이 그 자리에 허물어지듯 주저앉았다. 자꾸 실성한 것 같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검을 잡지 못하는 삶은 상상해 보았다. 하지만 붓조차 잡지 못하는 삶은?
살아 숨 쉬는 것마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삶을 감당할 자신이 있나? 정말로 그 모든 걸 각오했던가?
끝내 떠올리고 싶지 않던 말이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짐 덩어리…….”
죽음은 각오했다. 그것만으로도 비장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어쩌면 백천이 쉽게 본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일지도 모른다. 죽음만이 그에게 주어질 가장 큰 고통이라 믿어 버렸다. 순진하게도 말이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해야 하는가.
백천은 다시 엉금엉금 기듯 붓을 향해 다가갔다. 수십 개의 비수가 동시에 몸을 난자하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지만, 이런 피륙의 통증은 정신이 겪고 있는 고통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가 앙상한 나뭇가지 같은 팔을 힘껏 뻗으며 기어코 붓을 움켜잡았다.
스르륵.
하지만 그것도 잠시, 겨우겨우 잡은 붓이 다시 손아귀를 벗어나며 떨어졌다.
포기하지 않고 다시 붓을 움켜잡았다. 갓난쟁이의 손보다 더 힘없는 동작이었다. 하지만 그 맥없는 손짓을 위해 백천의 얼굴은 땀범벅이 되었다.
“……잡혀.”
그럼에도 잡히지 않는다.
“잡히라고…….”
늘 굳게 믿지 않았던가. 노력으로 해내지 못할 것은 없다고. 포기하지만 않으면 이기지 못할 건 없다고. 설령 실패한다 해도 의지는 이어진다고. 그렇게 누구보다 확고히 믿어 오지 않았던가.
하지만 지금 여기에 무엇이 있는가?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나? 승리가 있나? 아니, 무엇보다 이 하찮은 싸움으로 어떤 의지를 남겨야 하는가?
“잡히라고, 빌어먹을!”
투욱.
그러나 붓도, 손도 끝끝내 그의 말을 들어주질 않았다.
백천은 말없이 시선을 내렸다. 어느새 붕대도, 바닥도 먹물로 엉망진창이 되었다.
문득 제 꼴이 우습게 느껴졌다.
“흐…….”
전장에 강처럼 흐르는 피조차 극복했건만, 이제 와 이런 먹물 따위에 설움이 북받쳐 흐느끼게 될 줄은 몰랐다.
“흐으…….”
백천의 어깨가 잘게 떨렸다. 더는 그의 육신을 지탱하지 못하는 앙상한 팔이 꺾이며 몸이 바닥에 쿵 처박혔다.
백천은 바닥에 뺨을 댄 채 바닥에 나뒹구는 붓을 보았다.
휘둘러지지 못하는 검.
쓰이지 못하는 붓.
무엇도 하지 못하는 사람.
‘가치가 있을까?’
사람의 삶이 무언가를 남기기 위한 것이었다면, 그의 삶은 이미 끝을 맺었다. 닿았을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그는 전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면 여기에 남은 이 육신은 무엇인가.
더는 전할 것이 남지 않은 껍데기가 아닐까? 사라져야 할 때를 놓쳐 버린 망령이라 불러야 하지 않을까? 과연 가치란 것이 남아 있기나 할까?
똑똑.
그 순간이었다.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백천의 눈이 삽시간에 공포로 물들었다.
보이고 싶지 않다.
숱한 적과 맞서면서도 스스로 용기를 내 공포를 극복해 온 백천이다. 그런 그가 지금은 이 추태를 보이고 싶지 않다는 공포에 질려 버렸다.
“드, 들어오지 마!”
발작적으로 고함을 내지른 그가 황급히 주변을 훑어보았다.
바닥은 엉망이 되었고, 그의 몰골은 말할 것도 없이 만신창이다. 심지어 바닥에 쓰러진 몸을 일으키기도 어렵다.
“열지 마라! 돌아가! 누군지는 몰라도 지금은……!”
그건 명령도, 경고도 아니었다. 애원에 가까웠다. 그 누구에게도 이런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았다. 너무도 비참하고 처참했다.
“돌아가라니까! 제발…….”
끼익.
하지만 그의 간절한 목소리에 굴하지 않고 닫혀 있던 문을 열어 내며 한 사람이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섰다.
숨 막히는 정적이 흘렀다.
한 사람은 서 있고, 또 한 사람은 바닥을 기고 있다. 이토록 대비적인 상황으로 상대를 확인한 백천은, 저도 모르게 조소를 흘렸다.
차라리 다른 이였다면 동정이라도 샀겠지.
저곳에 선 이가 청명이었다면 울음이라도 터뜨렸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조차 비참하기는 매한가지지만, 지금보다는 나았을 것이다.
현실은 상상보다 가혹했다.
얼음장처럼 차갑게 굳은 얼굴을, 백천은 조소하며 올려다보았다. 백천을 더 절망하게 하는 건, 저 사람의 눈에 어린 게 비웃음이 아니라 진심에 찬 울분이란 사실이었다.
“……동룡아.”
“이……!”
백천이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문다.
“너…….”
“오지 마!”
다가와 부축하려는 이를 향해 백천이 악을 썼다.
“내 몸에 손대지 마! 빌어먹을, 손대지 말라고!”
“동룡아!”
“꺼지라고 했잖아, 진금룡! 내 몸에! 내 몸에…….”
악에 받쳤던 목소리가 잦아든다.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저 입술을 꽉 깨물며 젖은 목소리를 막는 게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그런 백천을 바라보는 진금룡의 얼굴도 이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꼴좋구나, 이 빌어먹을 자식아. 결국에는 이리될 것이라고 내가……. 내가 그토록!”
“입 닥쳐!”
백천의 두 눈에 핏발이 섰다.
흉흉한 기세로 대들었지만 진금룡은 더 이상 화내지 않았다. 깊게 심호흡한 그는 이내 단호해진 눈으로 백천을 똑바로 응시했다.
절망으로 핏발 선 백천의 눈과 차갑게 분노가 끓는 진금룡의 눈이 잠시 그렇게 얽혔다. 이윽고 진금룡이 입을 뗐다.
“다시 검을 잡고 싶으냐?”
“……뭐?”
“내가. 아니, 우리가 그리해 줄 수 있다.”
백천은 순간적으로 제 귀를 의심했다. 지금 무슨 말을…….
“화산을 버려라.”
진금룡의 단호한 목소리가 천둥처럼 느껴졌다. 백천의 두 눈이 커다래졌다.
“네가 화산을 버리고 본래 있어야 할 자리를 되찾는다면.”
그 한 글자 한 글자가 뇌리에 새겨진다.
“우리 역시 네게 되찾아 줄 수 있다. 가장 찬란했던 네 모습을.”
분노도 잊고 멍하니 바라봐 오는 백천에게 진금룡이 손을 뻗었다. 손길이 조심스러웠다.
“종남으로 가자, 동룡아. 너는 더는 이런 고통을 받을 필요가 없다.”
황망히 금룡을 보던 백천이 눈을 감았다.
이건 마귀의 유혹이 아니다. 하지만 그래서 더 치명적이고, 그래서 더…… 고통스러웠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