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ount Hua Sect RAW novel - Chapter 1728
1728화. 잃지 않을 수는 없어. (8)
“저기…….”
힘없는, 정확하게는 힘이 빠진 목소리가 슬그머니 흘러나온다.
“여긴 제 방인데, 다들…….”
“조용히 좀 해라.”
“방해돼.”
“아미타불. 시주께서는 굳이 말을 하지 않으심이 좋을 것 같소.”
“으음, 죄송하게 됐습니다.”
조걸의 두 눈동자에 망연한 서글픔이 서렸다.
‘망할 인간들 같으니라고.’
이곳은 엄연히 무당이 그에게 내준 처소다.
심지어 무당 역시 도가인지라 검소함을 미덕으로 삼는다. 그러니 독실로 내어준 방이 비좁고 불편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한데 그 좁아터진 방에 왜 이렇게나 많은 인간이 모여 빽빽하게 들어차 있단 말인가!
침상은 유이설과 윤종에게 빼앗겼고, 나머지 공간은 혜연과 남궁도위에게 빼앗겼다. 문간에나 겨우 쪼그려 앉은 조걸이 억울한 마음에 연신 투덜거렸다.
“아니, 그러니까 왜 하필 여기에…….”
“딱히 할 일도 없잖으냐?”
“할 일이 없으면 수련이나 하지!”
“남의 문파에서 수련은 좀.”
“맞아.”
“아미타불. 아니 될 일입니다.”
“그러고 보면 참 넉살도 좋으십니다, 조걸 도장.”
“…….”
조걸은 그냥 대화를 포기하고 눈을 감아 버렸다. 이들과 말을 섞느니 벽이랑 이야기하는 게 낫지.
조걸이 입을 닫으니 방 안에 다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평소 모이기만 하면 쉴 새 없이 말을 늘어놓던 이들이 오늘은 죄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닫은 채 하염없이 시간만 보내고 있다.
침묵을 깨고 먼저 입을 연 사람은 혜연이었다.
“장문대리께서 방에서 나오지 않으신 지 이틀째입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정처 없이 빈 곳을 향했다. 다들 알고 있지만 차마 꺼내지 못하고 있던 사실이다.
“한번…… 찾아가 보기라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옳은 말이다. 당연하기도 하다. 하루아침에 양팔을 쓸 수 없게 되었으니, 지금의 백천은 평범한 생활조차 영위하기 쉽지 않을 터. 누군가는 그를 보살펴 주어야 한다.
하지만 이를 알고 있음에도 누구 하나 감히 백천의 방문을 두드릴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물론 어렵다는 건 저도 알지만…… 언제까지…….”
계속해서 혜연 혼자 중얼대게 둘 수 없었던 조걸이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압니다. 아는데…… 그게 참 쉽지 않네요, 스님.”
“……아미타불.”
“사형. 그러지 말고, 슬쩍 다른 사람이라도 보내 볼까요?”
“다른 사람 누구?”
“……거, 야수궁주님이라든가.”
윤종이 대번에 고개를 내저었다.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다. 거기에 사패련은 여전히 멀지 않은 곳에서 진을 치고 있지. 언제 다시 전쟁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아니…….”
“그런 와중에 부상 당한 한 사람의 상세를 살펴 달라 청하는 건 과하다.”
“과하다니요! 사숙은……!”
“나도 마음이야 너와 같다. 하지만 타문 사람들이 우리와 같은 눈으로 사숙을 보아야 할 이유도 없잖으냐?”
조걸이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짓씹었다. 윤종이 한숨과 함께 말했다.
“그리고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은…….”
그가 말끝을 다 잇지 못하고 망설이자, 조걸의 눈매가 사나워졌다.
“왜요? 사숙의 부상 같은 작은 일에 연연할 게 아니라, 다음 전투에 대비해야 한다고요?”
“…….”
“어떻게 그런……. 아악!”
그 순간, 유이설이 검집을 대뜸 쭉 뻗어 조걸의 머리를 쿵 내려찍었다. 조걸의 눈이 커다래졌다.
“왜, 왜 때립니까, 사고!”
“화풀이하지 마.”
유이설이 얼음장 같은 눈으로 조걸을 쏘아보았다.
“뻔히 알면서.”
조걸이 말없이 눈을 내리깔았다.
사고의 말이 백번 맞다. 윤종의 말이 그의 본심과 다르단 것쯤은 조걸도 안다. 만일 윤종이 진짜로 그리 생각한다면, 괜히 이 좁은 방에 와서 죽치고 있지도 않을 테니까.
윤종은 그저 제 위치에서 해야만 하는 말이 있을 뿐이다. 조걸이 웅얼거렸다.
“그냥 저는 사숙이 밥이나 제대로 먹는지 걱정이 돼서…….”
“또.”
“아, 알았다고요. 그…….”
조걸이 조금 전에 벌컥 화를 냈던 걸 사과하려 우물쭈물했다. 그런데 그 틈에 남궁도위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산을 베고 강을 뛰어넘던 무인이…….”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쪽으로 향했다.
“제 손으로 식사도 할 수 없는 형편이라니…….”
무거운 침묵이 찾아왔다. 얼핏 무례하게 들릴지도 모르는 말이었다. 특히 화산의 제자들은 덮어놓고 화부터 낼 정도로.
그러나 이곳의 누구도 차마 화를 내지 못한 건, 그만큼 남궁도위의 말속에 안타까움과 씁쓸함, 슬픔이 가득 실려 있어서였다.
“장문대리께서 지금 어떤 기분이실지 저는 상상조차 가지 않습니다. 만일 제가 같은 처지라면…….”
차마 더는 말을 이어 가기도 힘든지, 남궁도위가 깊이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들이 바랐던 무인으로서의 삶은 빛으로 가득했다. 아니, 백천의 삶 역시 그러했을지도 모른다. 지금껏 백천이 걸어온 길은 남궁도위가 보기에도 부러움이 들 만큼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빛이 밝았던 만큼 어둠은 더욱 짙게만 느껴질 터. 아마 백천은 깊은 무저갱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것이다.
톡. 톡.
조걸이 괜스레 손가락으로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만이 퍼져 나갔다.
“정말 방법이 없는 겁니까? 뭐라도 좋으니까, 무슨 방법이라도 있으면…….”
“만일 방법이 있다면 어쩔 셈이냐?”
“당연히 구해 와야죠. 필요하다면 뭐든지, 어디든지요! 거기가 마교 소굴이든, 황궁이든!”
조걸의 격앙된 목소리를 들으며, 윤종이 한숨을 내쉬었다.
마음이야 그라고 다르겠는가.
하지만 세상 모든 것에 답이 있는 건 아니다. 당군악과 청명, 심지어는 천하의 모든 정보를 긁어모으는 개방의 태상방주 풍영신개마저 손을 들어 버린 일이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하나 조걸은 여전히 포기하지 못하고 외치듯 물었다.
“스님! 소림 대환단으로는 안 됩니까?”
“아미타불…….”
혜연이 난처한 얼굴로 답했다.
“저는 파문당한 몸인지라…….”
“그…… 혜방 스님한테 말씀을 좀 잘 드려 보면 어떻게 안 될까요?”
“받아 오는 것이야 가능할지도 모릅니다만…… 사실 대환단은 몸을 치유하는 물건이 아닙니다.”
“네?”
“영단이라는 게 본디 몸을 보하기 위한 것이기는 하나, 요상단과는 개념이 다릅니다. 부차적으로 몸을 치료하는 효과가 워낙 크기에 그리 알려진 것일 뿐.”
“아…….”
“영단으로는 지금의 장문대리를 치료할 수 없을 것입니다. 대환단이 아닌 천하의 어떤 영단으로도 말입니다.”
“아니, 뭐가 이래…….”
갑갑한 마음에 조걸이 볼멘소리를 늘어놓으려 할 때였다.
“맞는 말입니다.”
“아악!”
문이 벌컥 격하게 열렸다. 그 바람에 머리를 세게 박은 조걸이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정작 문을 벌컥 열어젖히고 들어온 이는 그 모습을 보며 미안해하기는커녕 눈살을 찌푸렸다.
“쯧쯧. 무인이라는 양반이 이것도 못 피하는 게 말이 됩니까?”
“사람이라는 게 남의 방문을 그렇게 콱콱 열어젖히는 건 말이 되고요? 예?”
“문은 열라고 있는 거고, 무인은 피하라고 있는 거죠.”
“이 산적 양반이 보자 보자 하니까 진짜?”
조걸이 눈을 까뒤집었다. 하지만 임소병은 부채를 쥔 채 안으로 들어오며 태연히 말했다.
“스님의 말이 맞습니다. 강호의 영단이라는 게 귀한 물품으로 소문이 나서 마치 만병통치약처럼 알려졌지만, 사실 요상을 위해 전문적으로 제조된 물건은 아니지요. 내력 증진을 위해 만들다 보니 부가적으로 요상의 효과까지 지니게 된 것일 뿐.”
“그럼 혼원단은? 약선이 만든 게 혼원단인데, 그건 영단이잖아요. 약선은 사람 치료하는 의원이고.”
“그러니까 그 인간이 강호에 붙어 있었지. 아니었으면 황궁으로 가 어의가 되었겠죠!”
“어? 듣고 보니 그렇네? 엥?”
강호의 상식으로 세상을 재단하다 보니 머리가 이상해진 느낌이다.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다.
“그럼…… 정말 방법이 없다는 겁니까?”
윤종이 조심스레 묻자 임소병이 눈을 의미심장하게 반개했다.
“모르죠.”
“음?”
“강호인들이 영단에 집착하듯, 권력자들은 보약에 집착합니다. 그 집념은 강호인들이 영단을 바라는 수준에 비할 바가 아닐 겁니다.”
“…….”
“듣기로는 세상에 그런 물건이 드물지만 몇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환자라도 말끔하게 자리를 털고 일어나게 해 주는 전설상의 약들이.”
“그, 그게 어디 있는데요?”
“알면 벌써 찾아서 제가 챙겼겠죠? 그냥 전설이 그렇다는 겁니다. 늘 느끼는 거지만, 정말로 이해력이 부족하시군요.”
“근데 이 인간이!”
조걸이 눈을 까뒤집고 일어나려 하자, 윤종이 발끝으로 가볍게 그를 툭 차서 다시 뒤집어 버렸다.
“……혹시 그에 대한 정보를 얻을 곳은 없습니까?”
“정보가 있었다면 이미 개방에서 알려 줬을 겁니다.”
임소병이 부채로 제 뺨을 쿡쿡 찔렀다. 그리 말하는 제 마음도 복잡하다는 듯이.
“아시다시피 이런 물건은 천하를 쥐 잡듯 뒤진다고 하여 나타나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인연이 닿기를 바라야겠죠.”
……인연이라.
윤종은 잠시 되뇌다 피식 웃고 말았다.
이런 이야기는 차라리 듣지 않는 것만 못하다. 결코 닿을 수 없는 희망은 절망보다 더 고통스러운 법이므로.
“빌어먹을. 뻔한 소리나 하고 있네. 그런 말이나 하러 왔습니까? 어지간히 한가하신가 보네?”
“아.”
임소병이 부채를 쫙 펼치더니 제 얼굴 쪽으로 살랑거렸다.
“이런, 여기 온 목적을 까먹고 있었군요. 이래서 사람이 정신머리를 챙겨야 하는데.”
모두의 눈에 의문이 스쳤다. 임소병이 방에 앉은 모두를 보며 말했다.
“맹주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어…….”
화산 제자들이 튕겨 오르듯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평소처럼 더없이 반기기는 어려웠다. 모두의 얼굴이 금세 어두워졌다.
* * *
“태상장문인!”
“오셨습니까?”
밖으로 달려 나가니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현종의 모습이 보였다.
먼 거리를 급히 오느라 어쩔 수 없이 피로한 기색이 배어났지만, 그래도 모두가 아는 현종과 그리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
하지만 현종을 향해 뛰어가려던 오검은 순간 멈칫하며 발을 떼지 못했다. 현종을 에워싼 이들의 면면이, 감히 그들이 끼어들 수 없을 만큼 대단해서였다.
“사형.”
“기다리자…….”
“예.”
새삼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현종은 화산의 태상장문인이기도 하지만, 나아가 천우맹의 맹주라는 것을.
커다란 전투를 치른 뒤이니 맹주로서 해야 할 중요한 일이 무척 많을 것이다. 그러니 여기서 어리광을 부릴 수는…….
그 순간.
고개를 돌린 현종과 그들의 눈이 우연히 마주쳤다. 잠시 어쩔 줄 모르던 조걸이 슬그머니 옆으로 비켜서려는데, 현종이 주위 사람들에게 단호히 말했다.
“잠시.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으니 양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부드럽지만 단호한 언사에 주위의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한 걸음 물러나 주었다.
현종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윤종과 조걸, 그리고 유이설을 향해 큰 보폭으로 다가왔다.
그가 한 걸음씩 다가올수록 세 사람의 얼굴이 굳어 갔다.
하지만 가슴에서 피어오르는 껄끄러움의 이유를 채 확인하기도 전에 현종이 다가와 그들의 어깨를 두드렸다. 부드러운 손길이었다.
“정말…… 고생들이 많았구나.”
“…….”
“애썼다.”
일순 조걸의 고개가 아래로 획 떨어졌다. 돌연 마음 한구석이 울컥해서였다. 그간 딱히 의식하지 않았던 감정이 현종을 마주하는 순간 둑 터진 듯 치밀었다.
“장문인…….”
현종은 그 마음을 안다는 듯 조용히 모두의 어깨를 도닥였다.
그때, 그들의 곁으로 다가온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너무 애쓰셨어요, 사형들.”
“소소야…….”
당소소의 얼굴은 말도 못 하게 수척해져 있었다. 물론 격무에 시달렸기 때문이기도 하겠으나, 그뿐만이 아니라는 걸 윤종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애초에 타고난 기운이 밝고 기운찬 당소소다. 그런 그녀의 표정이 저토록 어두운 건…….
‘들었구나.’
이미 알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백천의 상태에 대해서.
당소소의 마음이 어쩌면 그들보다 더 무거울지 모른다. 의원이기에. 아니, 의원인 걸 넘어서 그녀는 언젠가 화산의 제자들에게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 끊임없이 말해 왔고, 또 염려해 왔기에.
커다란 두 눈 속에 깊은 자책이 느껴지는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이겠지.
냉정하게 봤을 때 당소소가 자책할 이유는 전혀 없다. 그녀는 늘 최선을 다해 막아 왔으니까. 그녀의 말을 듣지 않은 건 백천이고, 또 그들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리 말해 주어도, 당소소는 스스로에 대한 자책을 멈추지 못할 것이다.
하고 싶은 말도, 해야만 하는 말도 많았지만 쉬이 입을 뗄 수 없었다. 이유는 하나. 당소소가 알고 있다는 말인즉…….
“그래, 녀석은?”
제자들을 도닥이던 손을 내리며 현종이 물었다.
“백천이는 어디에 있느냐?”
돌연 공기가 무거워진 듯, 앞에 선 세 사람의 어깨가 내려앉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