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ount Hua Sect RAW novel - Chapter 1737
1737화. 버텨 낼 수 있을까? (2)
현종이 가라앉은 눈으로 제 앞에 앉은 이를 바라본다.
새하얀 화산의 무복을 입은 병색 완연한 청년.
짙은 고동빛, 거의 검은빛에 가까운 바닥과 대비되는 그 새하얀 모습을 보는 순간 현종은 ‘창연하다’라는 말을 떠올렸다. 여러 의미로.
바랜 듯한 흰색.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위태롭지만, 또한 함부로 손댈 수 없을 만큼 선연하다.
‘학인가…….’
선학(仙鶴).
현종은 어쩌면 과거의 선인들이 학을 도가(道家)의 상징으로 삼은 것은 그저 아름다움 때문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도란 그런 것이다. 사람이 따라야 할 가장 올바른 것. 하지만 그렇기에 사람으로서는 감히 따르기 어려운 것.
그 선도(仙道)를 걷는 도인의 삶이, 그 가녀린 다리로 제 몸을 지탱하는 학의 모습과 무엇이 다를 것인가.
하지만 사람은 학이 아니다. 물 위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학은 사람의 눈에 보이는 것과 달리 평온할지 모르겠지만, 그 학처럼 살아가는 인간은 수없는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그렇기에 도란 가장 선한 것인 동시에 가장 악한 것.
그렇기에 선도란 지고의 상징인 동시에 참혹한 형벌이다.
현종은 물어야 했다.
대 화산의 장문인, 그리고 대 화산의 태상장문인.
천하의 어떤 이도 부정할 수 없는 도인(道人)의 삶을 살아온 그였지만, 그는 진정으로 선도를 걸었던 적이 있었던가?
불가는 말한다. 세상은 고(苦).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고행(苦行).
유가는 말한다. 세상은 혼란, 살아가는 것은 질서를 되찾는 것.
그렇다면 도란 무엇인가.
있는 그대로가 자연(自然)하다면, 그가 겪는 고통도, 백천이 겪는 고통도 모든 것이 그저 자연스럽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 고통조차 자연히 받아들이는 것이 선도인가?
그렇다면, 정녕 그러하다면.
도인의 삶이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
그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그를 진정 도인이라 할 수 있는가?
“제자. 백천.”
그렇기에 현종은 자신이 없었다.
“감히 여쭙고자 합니다.”
저 투명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이에게 올바른 대답을 들려줄 자신이.
“장문인께서 저를 파문하신 것이 맞습니까?”
그 명을 내린 것은 현종이다. 운암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다. 하지만 백천은 현종이 아닌 장문인을 언급했다. 현종의 뜻은 개인의 것이지만, 장문의 뜻은 화산의 것이다.
그렇기에 백천은 물었다. 이 모든 것이 진정한 화산의 뜻이 맞는 것이냐고.
“그렇다.”
그리고 현종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는 월권이며, 또한 아집일지 모른다. 하지만 현종은 생각했다.
잘못된 것이던가?
도가는 말한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하라고.
설령 그가 몸담고 있는 모든 것의 법도와 규범이 그의 행동이 잘못되었다 소리친다 한들, 그의 마음이 흐르는 것을 부정할 도리가 있는가?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백천은 부정했다.
“그건 태상장문인의 의지이지, 화산의 의지가 아닙니다.”
현종의 눈이 가늘어진다.
“태상장문인께서 화산의 뜻을 가장 옳게 간직하신 분임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화산의 제자들도, 화산의 제자가 아닌 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
백천이 투명한 눈으로 현종을 바라본다.
“그렇다 하여 태상장문인의 모든 뜻이 화산의 의지와 닿아 있다 할 수는 없습니다.”
“…….”
현종의 얼굴에 어찌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어렸다.
그 말이 옳다. 더없이 옳다.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옳고 그름이란 옳게 걷겠다 다짐한 이에게나 의미가 있는 것. 스스로가 가진 생각이 아집임을 인정한 이에게 옳고 그름에 대한 논의는 얼마나 무가치한가.
“네 말이 맞을지라도.”
현종이 준엄하게 외쳤다. 아니, 서글프게 속삭였다.
“지금 화산의 의지를 행하는 이는 노도(老道)다.”
“…….”
“또한 화산의 방식을 정하는 이 역시 나일 터.”
현종이 단호하게 선언했다.
“그러므로 결정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화산의 정당한 태상장문인으로서 장문인에게 그 권한을 위임받아 대제자 백천의 파문을 결정한 것이다. 이에 어떠한 이의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현종의 얼굴이 작게 경련을 일으킨다.
하지만 그 단호함만은 확연했다. 바늘 하나 들어갈 틈조차 보이지 않는 암담한 철벽.
그리고 백천은 당연하다는 듯 그 철벽을 두드렸다.
“어째서입니까?”
“그것이 옳기 때문이다.”
“옳지 않다 하였습니다.”
“옳고 그름은 사람마다 다른 법. 내겐 그것이 옳다.”
“그건 화산의 뜻이 아니라 했습니다.”
“하지만 나의 뜻이다. 그리고 지금은 나의 뜻이 화산의 뜻이다.”
물러서는 법을 모르는 게 아니다. 현종은 물러서는 법을 너무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또한 알고 있다. 절대로 물러서서는 안 되는 때가 있다는 것을.
평생 모든 것에서 물러섰다. 하지만 이 순간 그는 물러서서는 안 된다. 그가 아닌 지금 눈앞에 선 이를 위해.
“태상장문인.”
파리한 안색의 백천이 그리 높지 않은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무엇을 위해서입니까.”
현종이 눈을 감았다.
비슷한 질문들. 하지만 다 다른 질문들. 이 모든 질문에 대답하는 건 끝이 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현종은 굳이 둘러대지 않았다.
“백천.”
그건 불러서는 안 되는 이름이었다.
그가 파문을 고하고, 장문인이 인정한 순간 백천이라는 이름은 화산의 도적에서 사라졌으니까. 그건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름이니까.
하지만 현종은 구태여 그의 이름 진동룡이 아닌, 그의 도호 백천을 불렀다.
“너를 위한 길이다.”
“궤변입니다.”
“또한 화산의 모든 제자를 위한 길이다.”
“그 역시 궤변입니다.”
“논쟁을 하고자 함이 아니다!”
“저 역시 논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백천의 형형한 눈빛이 현종을 꿰뚫는다. 마치 생명을 태워 타오르는 불꽃처럼 그의 두 눈은 더없이 강렬했다.
그리고 그 눈을 볼 수 없는 이들조차도 백천의 기백을 느끼고 있었다. 그의 등 뒤. 활짝 열린 문. 그 문 너머에서 수많은 이들이 이 선문답을 지켜보고 있었다.
차마 화산의 제자가 아니면 다가오지 못하는 곳.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화산의 제자들만은 그 두 눈으로 확연히 바라볼 수 있는 곳에서.
‘사숙.’
윤종의 시선이 꼿꼿한 백천의 등을 바라본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다. 바라보고 있는 이들의 손에 절로 땀이 배어날 만큼. 설령 멀쩡한 몸이었다 해도 현종을 비롯한 화산 장로들의 기백을 마주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터.
하지만 백천은 단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무엇이 위함입니까.”
백천이 단호하게 소리쳤다.
“무엇이 정녕 제자를 위한 길입니까?”
“백천아!”
“제자를 파문하는 것이 정녕 제자를 위함입니까?”
“…….”
“그리하여 제자가 무학을 다시 찾게 함이 정녕 제자를 위하는 길입니까?”
백천이 손을 펼쳤다. 그 앙상해진 손을.
“이 손에 검을 다시 들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상관이 없는 것입니까? 그게 정녕 제자를 위함입니까?”
그 목소리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윤종에게는 그 굳건한 목소리가 차라리 처절한 비명처럼 들렸다. 아니, 어쩌면 윤종뿐만이 아니라 모두에게.
저곳에 무(武)는 없다.
하지만 그 어떤 전장보다 치열했다.
“그렇기에 선조가 정한 법도를 어기고!”
현종의 눈썹이 꿈틀한다.
“화산이 이제껏 해 온 모든 것을 무너뜨리고!”
“그만.”
“장문인의 삶마저 부정하시려 합니까?”
“백천!”
현종의 입에서 커다란 고함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백천은 물러서지 않았다. 현종의 기세에 몸을 떨면서도. 아릿해지는 의식을 붙잡기 위해 입술을 짓깨물면서도.
하지만 백천의 기세는 어느 순간 힘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기백에 눌려서가 아니다. 오히려 기백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를 바라보는 현종의 얼굴에 아릿한 서글픔이 떠오른다.
“네게는…… 미래가 있다.”
“…….”
현종은 알고 있었다. 이미 많은 세월을 보낸 그이기에. 백천이라는 이의 미래가 얼마나 찬란할 수 있는지, 그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해낼 수 있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가장 찬란해야 했을 시기를 그저 설움으로 버텨야 했던 그이기에, 백천이 잃어야 할 것들에게서 눈을 돌릴 수가 없었다.
젊음의 치기는 때때로 많은 것을 앗아 간다.
가치란 영원하지 않은 것. 지금 당장은 더없이 소중한 것도 세월 앞에는 언젠가 빛이 바랜다. 그리고 돌아보면 알게 되는 것이다. 당시에는 더없이 하찮았던 것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지금은 조금 아플지 모른다. 아니, 뼈를 깎는 아픔이겠지. 하나 알게 될 것이다. 지금 네가 겪는 아픔이 언제고 겪어야 했을 아픔보단 나았다는 것을.”
“그걸 어찌 태상장문인께서 택하십니까?”
“백천아.”
현종이 깊고 무거운 숨을 토해 냈다.
“삶은 길다.”
“…….”
“너는 다시 오를 수 있다. 다시 빛날 수 있다.”
백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다.
“태상장문인.”
“너이기 때문이라 생각하느냐? 그렇지 않다. 네가 아닌 누구라도 내 선택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현종의 눈이 백천을 넘어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화산의 제자들에게로 향한다.
“문파를 위해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위해 문파가 있는 것이다.”
“…….”
“누구라도 마찬가지다. 나는 화산이 너희의 발목을 잡길 원하지 않는다. 화산이 너희의 굴레가 되길 원하지 않는다. 그건 나뿐이 아니다. 너희를 굽어보는 화산의 선조들께서도 결코 그건 원치 않으실 것이다.”
지켜보던 윤종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려는 순간.
윤종이 움찔하여 옆을 돌아본다.
어느새 그의 옆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청명아.’
최근 모습을 거의 보이지 않았던 청명이 그의 옆에 서서 대전 안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었다. 낯설지만 익숙한 무표정한 얼굴로.
“화산은 너희의 처마이자, 너희의 발판이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화산이란 이름에 무슨 가치가 있단 말이더냐?”
“…….”
“그런 허울이라면 내가 벗겨 내겠다. 화산의 이름이 너희에게 짐이 된다면, 내 손으로 화산의 이름을 지울 것이다!”
그쯤엔 모두가 알 수 있었다. 그 뜻이 옳건 그르건 현종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으리라는 것을.
현종에게 있어서 화산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 하지만 지금 현종은 그 화산의 이름조차 내어놓았다. 그만한 결심을 한 이를 무슨 수로 설득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비난할 수 있는가? 하지만 틀렸다 소리칠 수 있는가?
그럴 수 없기에 침묵하는 것이다. 그럴 수 없기에 안타까운 것이다.
다르지 않았을 두 사람. 어쩌면 가장 깊게 서로를 이해했을 두 사람이 지금 영원히 맞닿지 않을 평행선에 서 있는 것이.
윤종은 깨달았다.
어느새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이들은 화산의 제자만이 아니었음을.
혜연과 남궁도위. 그리고 당군악과 풍영신개. 심지어 백천의 형인 진금룡과 이송백마저도 멀지 않은 곳에서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 종리곡도 이 모든 것에 귀를 기울이고 있겠지. 백천이 화산을 떠나는 이 광경을.
‘사숙.’
윤종이 입술을 질끈 깨문다.
도리가 없다. 현종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 아니, 돌려서도 안 된다.
아마 모두 이해할 것이다. 현종이 어떤 마음으로 백천을 파문하는 것인지.
윤종의 마음은 이미 그 결단이 틀리지 않았다 외치고 있었다. 윤종이 하지 못한, 오검이 하지 못한 일을 현종이 짊어지고 있을 뿐이다.
‘한데 어찌 이리 쓰리단 말인가.’
윤종이 그 안타까움을 어찌하지 못하고 침음을 삼키려 하는 그때.
백천이 활짝 핀 손바닥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꽃피지 못한 앙상한 매화 가지 같은 그 손을.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