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ount Hua Sect RAW novel - Chapter 1739
화산귀환-1739화(1740/1753)
1739화. 버텨 낼 수 있을까? (4)
윤종은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귀로 듣기는 했으나 이해가 되질 않는다. 백치가 되기라도 한 것처럼 머리가 멍하다.
그런 그의 눈앞에서 새로운 사태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현종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장로들이 일어나 백천을 향해 다가간 것이다. 두 사람이 백천의 팔을 각각 움켜잡고 좌우로 당겼다.
“어…….”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조걸이 더는 못 참겠다는 듯 들썩였다. 그런 그의 어깨를 당소소가 꽉 잡아 눌렀다.
윤종은 이 모든 광경이 하나의 촌극처럼 느껴졌다. 모두 현실 같지 않았다.
‘뭘 하는 거지……?’
지금 대체 뭘?
부우우욱!
백천의 무복이 찢겨 나간다.
화산의 무복. 화산의 제자임을 증명하는, 오직 화산의 제자만이 입을 수 있는 의복이 가차 없이 훼손되었다.
찢긴 무복 한편에 새겨진 붉은 매화가 윤종의 두 눈에 들어왔다. 만취한 듯 멍멍한 그의 시야를, 세상을 그 떨어진 매화가 가득 채웠다.
“사숙…….”
괴롭게 입술을 깨문 장로들의 얼굴. 저항할 의욕조차 잃은 것처럼 축 늘어진 백천의 뒷모습…….
모두 우스꽝스럽다.
현상이 굳은 얼굴로 백천의 매화검을 움켜잡았다.
규율대로라면 저 검으로 백천의 사지근맥을 잘라야 한다. 화산에서 얻은 모든 것을 화산이 다시 거둬 간다는 상징적인 의미다.
그러나 현상은 그저 매화검을 들고 몸을 돌렸다.
현영은 안타까운 기색을 숨기지도 못하고 안절부절못했지만, 이내 마찬가지로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 자리에 남은 건 등을 훤히 드러내고 긴 머리를 산발하여 늘어뜨린 백천, 오직 그뿐이었다.
‘거짓말이지?’
“어떻게 좀……!”
물속에서 듣는 듯한 어떤 목소리가 귀에 간신히 들어왔다.
느리게 돌아보니 조걸이 청명의 멱살을 움켜잡고 있었다. 조걸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는데, 화가 났다기보단 겁을 먹어 어쩔 줄 모르는 듯 보였다. 어린아이처럼 말이다.
“어떻게 좀 해 봐!”
조걸이 청명을 간절히 바라보며 손으로 대전을 가리켰다.
하지만 청명은 굳은 얼굴로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감정이 지워진 듯한 청명의 눈과 간절하기 이를 데 없는 조걸의 눈이 선명한 대조를 이뤘다.
윤종은 이상하게도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현실감이 없어서. 우스워서. 눈물조차 나지 않아서. 그 어떤 이유를 가져다 붙여도 어색하기만 하겠지만, 어쨌든 웃음이 멎질 않았다.
“뭐라도 하라고!”
외침이 멀어진다. 세상이 먹먹해지며 웅웅거리는 소음이 끝도 없이 주위로 퍼져 나간다.
모든 것이 그저, 꿈만 같았다.
* * *
대전을 빠져나온 현영과 현상은 자신들의 처소가 아닌 다른 곳으로 향했다. 이 낯선 곳에선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데가 달리 없을 테니 말이다.
“사형.”
현종에게 내어진 처소 문 앞, 현영이 가만히 목소리를 내었다.
“사형……. 문 좀 열어 보십시오.”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한숨을 내쉬고 다시 한번 현종을 부르려는데, 현상이 고개를 내저으며 그를 막았다. 그러더니 조심스레 문을 밀었다.
끼이이익.
잠기지 않은 문이 힘없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반쯤 열린 문 사이로 정좌한 현종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이 오늘따라 어쩐지 왜소하고 쓸쓸하게 느껴졌다.
“사형…….”
현영의 입에서 안타까움을 실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솔직히 익숙한 모습이다. 그토록 험난한 화산을 헤쳐 오지 않았던가. 그들에게는 슬픔도, 절망도 그리 낯선 감정이 아니다.
하지만 오늘은…… 오늘 현종의 뒷모습은 지금껏 현영이 보아 왔던 것과 다르다.
흐려지고 옅어진 것 같다. 아니, 어쩌면 바래 버린 걸지도 모른다.
한참 동안 현종의 뒷모습을 응시하던 현영이 힘겹게 발을 떼어 다가갔다. 그러고도 차마 몸에 손을 대진 못하고 긴 한숨만 내쉬었다.
“사형. 잘하신 겁니다.”
“…….”
“지금은 힘들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그 아이도 이해할 겁니다. 사형의 마음을.”
현종은 대답 대신 창밖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바깥에 쏟아지고 있는 햇살이 눈 부시다. 시릴 만큼.
그래서일까. 차마 바라보기 힘겨웠다.
“다르겠지. 걸어갈 길을 바라보는 이와 걸어온 길을 돌아보는 이는 다를 수밖에 없겠지.”
“사형…….”
현종의 입에서 헛헛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다만…… 현영아. 나는 무섭구나.”
“…….”
“그 아이를 이 길에서 몰아낸 것이, 정녕 그 아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내가 걸었던 고된 길을 다시 걸으려는 이를 눈 뜨고 보기 힘든 내 두려움 때문은 아니었는지.”
“사형…….”
“나는 그게 무섭구나.”
현영은 또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현종이 물었다.
“옳은 결정이었더냐?”
현영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
“화산을 이끄는 이가 내릴 결정은 아니었습니다. 이번 일은 남은 제자들에게 깊은 상처가 될 겁니다. 어쩌면 그들이 걸을 수 있는 길을 사형께서 막아 버린 걸지도 모르지요.”
“……그렇겠지.”
“장문으로서 내린 결정 중…… 최악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겁니다.”
현종이 예상했다는 듯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생각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백천은 그만큼 화산에 필요한 인물이었으니까.
“그래서 실망했느냐?”
“아니요.”
현영이 주저 없이 담백하게 답했다.
“오히려 사형이 이런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면 실망했겠지요. 뭘 어쩌겠습니까. 사형이 그런 사람이고, 우리가 그리 살아온 것을.”
현종은 잠시 침묵했다. 이윽고, 세상에서 가장 무거워 보이던 어깨가 잘게 떨리기 시작했다.
“사형…….”
현영이 다시 입을 열려는데, 현상이 그의 어깨를 잡았다. 뒤를 돌아보니 현상이 가만히 고개를 내저었다.
결국은 현영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자책하지 마십시오, 사형.”
“…….”
“내일 다시 문안드리겠습니다.”
두 사람은 더 이상 말을 건네지 않고 조용히 방을 빠져나갔다.
탁.
문 닫히는 소리를 끝으로, 현종은 다시 홀로 방 안에 남았다. 그러고는 다시 창을 통해 쏟아지는 햇살을 바라보았다.
‘원시천존이여…….’
겨우 한 줌뿐이지만, 그렇기에 눈부셨다.
* * *
기억이 흐릿했다.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도 알 수 없다.
정신을 차려 보니 이미 한참이 지났고, 윤종은 자신의 방에 돌아와 있었다. 청하지 않은 객들도 함께 말이다.
“…….”
지독한 침묵이 방 안에 자욱했다. 누구도 선뜻 그 침묵을 흐트러뜨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말이라는 하찮은 수단으로 담아 내기엔 감정이 너무도 격해서인지, 혹은 감당해야 할 게 너무도 커서인지.
“……말도 안 돼.”
겨우 침묵을 깨고 입을 연 조걸의 목소리마저 희미했다.
“이게……. 이게 맞습니까, 사형?”
“…….”
“이게?”
윤종은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백천을 어떻게든 종남으로 보내야 한다고 생각한 건 그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건 경우가 다르다. 그 누구도 파문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생각한 적은 없다.
상처에 찬 고름을 짜내는 것과, 상처가 생긴 부위를 송두리째 잘라 내는 건 엄연히 다르지 않은가.
“파문이라니……. 이건 아니잖아요, 이건……. 이건 정말 아니잖습니까.”
암담한 얼굴로 중얼거린 조걸이 고개를 푹 숙였다. 화조차 내지 못하는 듯 보였다.
윤종이 한참 망설이다 간신히 입을 열었다.
“……사숙께서는?”
“아직 거기 계세요.”
당소소가 힘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때부터…… 계속.”
윤종은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인정할 수 없을 것이다. 받아들일 수도 없겠지.
“빌어먹을…….”
거칠게 마른세수하던 조걸이 두 손에 얼굴을 푹 파묻었다.
다혈질인 그도 아는 것이다. 이번 일은 단순히 화내고, 역정을 부린다 해서 해결될 게 아니라는 사실을. 현종의 태도가 그만큼이나 단호했으니까.
그들은 그런 현종에게 대항하지 못한다.
그러니 이런 순간이면 유일한 해결책으로 한 사람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청명이는? 놈은 뭐라더냐?”
각자의 생각에 빠져 있던 이들이 일제히 윤종을 응시했다. 조걸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태상장문인께서 정한 일을 자기가 어쩔 수 없답니다. 그게 화산의 제자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이라고…….”
윤종은 저도 모르게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부정할 수 없는 말이다. 모두 저 사실을 알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돌아섰던 게 아닌가.
하지만 그럼에도…….
“차라리 잘된 것 아닐까?”
“……예?”
화산의 제자들이 백상을 돌아보았다.
날카로운 눈빛이 쏟아지니 잠시 흠칫했지만, 백상은 이내 마음을 다잡은 듯 목소리를 냈다.
“사형에게는 말이야.”
“무슨 그런 말이 있습니까?”
“너희도 알잖아. 그 양반…… 이렇게라도 안 하면 절대 화산을 안 떠날 거라는 걸.”
“…….”
“우리에겐 서글픈 일이지만, 사형에게는…….”
“사숙의 말을 다 듣고도 그리 말씀하시는 겁니까?”
윤종이 날카롭게 물었다. 백상이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럼? 너는 사형이 저대로 화산에서 말라비틀어지면 좋겠다는 거냐?”
“그런 말이…….”
“너희에게는 화산이 사형보다 더 중요할지 모르지만, 나는! 나는…….”
백상이 말끝을 흐렸다. 차마 뒷말은 할 수 없다는 듯.
“모르겠다, 빌어먹을.”
욕설을 내뱉은 그가 벅벅 얼굴을 쓸었다.
각자 다른 입장을 지닌 것도 아니다. 자신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조차 잘 모를 것이다. 그만큼이나 혼란스럽고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또다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혼란스럽지만, 이 혼란의 정체를 그들 역시 정확히 알지 못했다.
작은 창으로 노을빛이 새어 들어온다.
그 빛이 점차 붉어지고 흐려지다 이내 방 안이 어둠에 잠길 때까지, 침묵은 길게도 이어졌다.
* * *
대전을 바라보는 진금룡은 그 자리에 굳어 버린 사람 같았다.
시선 끝에는 내내 한 사람의 모습을 둔 채였다. 찢긴 상의를 갈무리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꼼짝도 하지 않는 한 사람.
어쩌면 옷이 찢기고 매화검을 빼앗긴 순간, 화산에서 파문당한 그 순간부터 백천의 시간은 그대로 멈춰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백천이 멈춰 있는 만큼 진금룡도 멈춰 있었다.
“사형.”
걱정스러운 이송백의 목소리가 귓가를 스쳐도 진금룡은 시선 한 번을 돌리지 않았다.
알 수 없는 노기가 저 깊은 뱃속에서부터 치밀어 오른다.
눈앞에 보이는 비참한 육신 때문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저 비참한 처지 때문일지도 모른다.
참으로 이율배반적이다. 백천의 처지를 지금의 저 꼴로 만든 게 자신이라는 걸 명확히 알면서도, 설명하기 어려운 울분이 그를 휘감았다.
‘친애…….’
종리곡의 말이 맞았다.
백천의 처지를 버티지 못하는 건 백천이 아니다. 그를 지켜보는 이였다.
너무도 아끼기에 내버릴 수밖에 없다. 너무도 아끼기에 밀어낼 수밖에 없다. 너무도 아끼기에 막아설 수밖에 없다.
마치 그때의 진금룡처럼.
“……가자.”
“사형.”
“장문인을 뵈어야겠다.”
입술을 한차례 질끈 깨문 진금룡이 마침내 몸을 돌렸다.
“백천 도장은…….”
“이젠 진동룡이다.”
“…….”
“결국은 오게 될 것이다, 종남으로. 그리고 그때는…….”
진금룡의 목소리에 복잡한 감정이 어려 있었다.
“녀석이 지금껏 잃어야 했던 것들을 모두 되찾게 만들어 줘야겠지. 그때까지 잠시일 뿐이다. 아주 잠시.”
그 말을 끝으로 진금룡이 성큼성큼 걸어갔다. 뒤를 따르려던 이송백이 멈칫하더니 고개를 돌렸다. 어둠이 내려앉은 전각 안에 홀로 우두커니 앉은 백천이 너무 외롭고 고독해 보여서 쉬이 두고 가기 어려웠다.
이송백은 그 등이 때때로 자신이 보던 진금룡의 것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진금룡의 말대로 그가 종남으로 올 수 있다면, 전화위복이 될지도 모른다. 적어도 지금처럼 외로워 보이지는 않겠지. 백천도, 진금룡도.
하지만…….
‘사형. 세상에는…… 꺾이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송백의 입에서 끝내 짙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려던 이송백이 순간 멈칫하더니, 무언가를 느낀 듯 고개를 돌렸다.
백천에게 다가가는 한 사람이 있었다.
‘청명 도장.’
이송백은 미동 없는 백천에게로 걸어가는 청명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돌렸다.
감히 그가 끼어들 만한 대화는 아니리라.
저벅. 저벅.
청명이 백천의 앞에 선다.
어슴푸레한 달빛이 그의 얼굴에 반쯤 드리워져 있었다. 백천을 내려다보는 두 눈엔 어떤 감정도 뚜렷하게 담겨 있지 않았다.
흡사, 감정이랄 게 본래 없는 석상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