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ount Hua Sect RAW novel - Chapter 1741
화산귀환-1741화(1742/1753)
1741화. 보이지 않습니다. (1)
날이 밝았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조걸이 창 너머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을 멍하니 보다 몸을 일으켰다.
침묵으로 함께 밤을 새웠던 이들이 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걸아?”
조걸은 머리를 벅벅 긁적이며 말했다.
“아무래도 한번 가 봐야겠습니다. 새벽 공기가 찼는데 몸이 상하진 않았을까 걱정도 좀 되고……. 그…… 안 그래도 바쁜 의약당에 괜히 손 가게 하는 것도 그러니까…….”
말도 안 되는 변명이다.
“태상장문께서…….”
입을 뗐던 윤종은 말을 멈추고 고개를 저었다. 한숨이 새어 나왔다.
현종은 분명 파문된 제자에게 어떠한 온정도 베풀지 말라는 명을 내렸다. 하지만 조걸이라고 그걸 벌써 잊었겠는가.
이 일로 치도곤을 당하게 된다 해도 조걸 스스로 가고자 다짐한 이상 윤종은 그를 막을 수 없다.
“걸아.”
“아니, 사형. 잠깐만 다녀올게요. 혼나면 혼나는 거죠, 뭐. 사형은 그냥 깜빡 잠들어서 몰랐다고 하시면…….”
“같이 가자.”
“……네?”
윤종이 몸을 일으켰다.
“나도 가 봐야겠다.”
그러더니 조걸을 기다리지도 않고 문으로 향했다. 자리에 앉아 있던 다른 이들 역시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몸을 일으켰다.
“아니, 그…….”
일을 이렇게 키울 생각은 아니었는데. 조걸이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벅벅 긁었다.
“……이놈의 문파는 기사멸조가 기본 규율로 정해져 있기라도 한가?”
당장 어제 내려진 태상장문인의 명을 이렇게 다 같이 싹 무시하는 판이라니. 어느새 앞서 나가는 이들을 바라보다 조걸이 그 뒤를 따랐다.
“……몸은 괜찮으시겠죠?”
“그럴 거다.”
아무리 약해졌다고 해도 백천은 무인이었던 이다. 고작 하룻밤 찬바람을 맞았다 해서 크게 병들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몸이 아닌 마음의 병이 걱정되었다.
‘파문이라…….’
윤종은 자신이 같은 처지에 놓인다면 어떤 심정일지 헤아려 보았다.
짐작조차 어렵다. 화산을 떠난 삶 같은 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으니까. 화산의 종말이 거의 정해져 있던 시절에도 윤종은 떠날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았던 사람이다.
화산에는 그의 모든 것이 있다.
그 모든 것과 강제로 단절되는 심정을 어찌 알까. 감히 위로조차 건넬 수 없다.
“몸이 우선이죠, 몸이. 사람은 뭔 일을 해도 몸이 건강해야죠.”
윤종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런 와중에도 헛소리를 늘어놓는 조걸에게 살짝 화가 치밀어서였다. 굳이…….
“사형.”
“왜.”
대답하는 윤종의 목소리가 절로 차가워졌다.
“정말 종남에 가면 사숙의 몸을 고칠 수 있는 거죠?”
윤종이 고개를 돌려 조걸을 바라보았다.
“그렇겠죠?”
순간적으로 대답 대신 길게 탄식이 새어 나왔다.
‘그래……. 지금은 그거라도 부여잡아야지.’
“믿어 봐야지.”
“별문제 없을 겁니다. 사숙 집안은 부자잖아요? 몸만 고치면 다 잘될 거예요. 그럴 겁니다.”
진심으로 믿거나 안심해서 하는 말이 아님을 누구라도 알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럼에도 조걸은 끊임없이 비슷한 말을 반복했다. 이게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그래. 적어도…… 지금보다는 낫겠지.”
“근데 그럼, 만약에 말입니다. 사형이 몸을 회복하고 나면 파문을 취소할…….”
“조걸.”
윤종의 목소리가 싸늘하게 귀에 꽂히자 조걸이 움찔하여 목을 움츠렸다.
“말할 때는 생각을 하고 해라.”
“아니, 그리될 수도 있지 않냐는 말이죠.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그건 화산과 사숙, 모두를 욕보이는 짓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숙께서 그런 일을 받아들이실 리 없다.”
조걸은 갑갑한 마음에 긴 숨을 내뱉었다.
말이 안 된다는 건 그도 알고 있다. 설령 가능하다고 해도 백천이 그런 길을 택하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냥 해 본 말입니다.”
“…….”
윤종도 더는 조걸을 질책하지 않았다. 솔직히 그도 비슷한 생각을 안 해 본 건 아니므로.
하지만 이제는 받아들여야 한다. 백천은 종남의 사람이 될 것이다.
‘종남이라…….’
최근 들어 급격하게 관계가 좋아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하필이면 종남이다.
과연 종남과의 우호적 관계가 지속될까? 언젠가는 예전처럼, 어쩌면 예전보다 못한 관계가 되어 대립의 날을 세우게 될지 모른다.
그때 종남의 선두에 백천이 서 있다면 윤종은 어떤 시선으로 그를 봐야 하는 걸까.
‘어렵구나.’
윤종이 복잡한 마음을 애써 갈무리하려는 그때였다.
“사형, 저기.”
이 순간 가장 보고 싶지 않은 이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들은 윤종의 무리와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종남의 장문인인 종리곡을 비롯해, 진금룡과 이송백, 거기에 백천의 부친인 진초백까지…….
‘사숙을 데리러 가는 건가?’
윤종은 저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인데, 왜 이렇게 달군 쇠로 속을 할퀴는 느낌이 나는지 모를 일이었다.
눈이 마주치자 이송백이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여 왔다. 다른 일행들도 그제야 이쪽을 발견했는지 시선을 던졌다.
윤종이 정중하게 예를 표했다.
속이야 바짝 타든 말든, 상대는 타문의 장문인이다. 예를 갖추지 않는 건 화산의 얼굴에 먹칠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종리곡이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그들의 예를 받았다.
향하는 곳이 같으니 걸음을 옮길수록 거리가 가까워졌다. 서로의 거리가 일 장이 넘지 않을 만큼 가까워지니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신경이 곤두섰다.
먼저 입을 연 건 의외로 진금룡이었다.
“녀석을 보러 가는 건가?”
“……예.”
대체로 타문과의 배분은 엄중히 따지지 않지만, 어쨌든 배분으로 따지면 진금룡은 한 배분 위이다. 또한 사사롭게는 백천의 형 되는 사람이었기에 윤종은 충분히 예의를 갖추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무척 짧았다.
“굳이?”
그 안에 많은 뜻이 담겼다. 윤종이 순간 울컥할 만큼 많은 뜻이.
윤종은 이를 꽉 악물었다. 지금 입을 열면 험한 말이 나올 것 같았다. 어쨌거나 이곳에서 소란을 일으키는 건 모두에게 좋지 않다.
그때, 종리곡이 말을 꺼냈다.
“듣자 하니 귀문의 태상장문인께서 파문인과의 접촉을 금했다 하던데. 이런 행동은 문제가 될 수 있음을 모르는가?”
“알고 있습니다.”
“한데도 가겠다?”
말투야 부드럽게 타이르는 듯했지만, 결국에는 이만 물러나란 소리다. 그러나 윤종은 그 뜻을 알고도 쉽사리 물러나지 않았다.
“예. 죄는 청할 생각입니다.”
종리곡이 살짝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고 보니 물러설 생각이 없는 건 윤종뿐만이 아닌 듯했다. 마치 적이라도 보는 듯 쏘아보고 있는 조걸과 날카로운 눈빛의 유이설, 안절부절못하면서도 자리를 지키는 백상과 혜연, 무표정하게 침묵하는 당소소와 남궁도위까지.
현재 강호에서 가장 이름 높은 신진들이 모두 명을 어기고 벌을 자처하고 있다. 백천에게로 가기 위해서.
‘인덕인가…….’
사람을 끌어당기는 능력 하나만큼은 종남의 누구에게도 비할 수 없을 듯했다. 종남에는 날카로운 이성을 지닌 진금룡과 우직한 이송백이 있지만, 백천에게는 그 두 사람에게 없는 게 있다.
“음.”
종리곡은 짧게 침음성을 흘렸다.
억지로 이들을 멈춰 세울 수야 있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이다. 진동룡을 데려오는 자리에 함께함으로써 오히려 저들에게 현실을 일깨워 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같이 가세나. 양쪽 다 한 사람을 보러 가는 길이 아닌가.”
“……굳이 따로 가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함께 갈 수는 없습니다.”
“음?”
“지금 저희는 사숙을 배웅하러 가는 게 아니니까요.”
종리곡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윤종은 종리곡을 앞에 두고도 내내 담담한 신색을 유지하고 있다. 현종의 명을 어기고 파문된 이를 보러 가는 길에 타문의 장문인을 마주쳤음에도 말이다.
바람 없는 호수처럼 깊고 심유한 눈빛을, 종리곡은 유심히 보았다.
‘화산에선 어떻게 이런 인재가 자꾸 나오는 것인지.’
부럽다는 말은 후안무치하겠지만, 그런 생각이 드는 걸 막기 어려웠다.
“그럼 그리하세나.”
종리곡이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발을 옮겼다.
어쨌거나 지금은 한시라도 빨리 진동룡을 종남으로 데리고 와야 한다. 조금이라도 서둘러 진단하고 대법을 시행해야 더 나은 상태로 만들어 줄 수 있다.
종리곡의 걸음이 빨라졌다.
그 뒤를 따르던 진금룡이 날카로운 눈으로 윤종과 조걸을 쏘아보았다.
일정 거리를 두고 나란히 걷는 두 무리 사이에 차가운 긴장이 흘렀다. 서로의 입장을 어느 정도 정리한 이후로는 없었던 냉기다.
이송백이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답답하네.’
가까스로 두 문파의 관계를 이어붙였다. 그런데 백천의 일로 다시금 관계가 차가워지리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건 백천 도장도 원하지 않을 텐데.
갑갑한 마음을 애써 숨기며 백천이 있을 전각으로 향하는 모퉁이를 돌았다.
멈칫.
그런데 돌연 종리곡의 발이 멎었다. 동시에 윤종 역시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종리곡의 입에서 낮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백천……. 아니, 진동룡은 어디 있느냐?”
“예?”
그는 턱을 가볍게 쓸며 어두운 눈빛으로 말했다.
“이곳에 있을 줄 알았더니. 지금 당장 처소로 사람을 보내 보아라.”
어제 받은 충격이 그리 쉽사리 해소되지 않았으리라 여겼는데, 그새 마음을 정리하고 처소로 간 모양이었다.
‘생각보다 강건한 것인가? 그렇다면 오히려 다행이로군.’
종리곡이 담담히 생각하며 백천의 처소로 보낸 이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돌아온 소식은 예상과 달랐다.
“장문인. 처소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 그럼 의약당을…….”
제자 하나가 초조한 얼굴로 재빨리 종리곡에게 다가왔다.
“의, 의약당에도 아무도 없습니다.”
그제야 종리곡의 안색이 일변했다.
“……그럼 어딜 갔다는 말이냐, 그 몸으로?”
“그, 그게, 저도 잘…….”
“무당을 샅샅이 뒤져서 찾아라. 분명 새벽까지 이곳에 있지 않았더냐. 아직 경내에 있을 것이다!”
다른 문파의 경내를 함부로 뒤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사안이 중대한 만큼 종리곡도 어쩔 도리 없이 무례를 저지르게 되었다.
노기까지 어린 장문인의 명에, 종남의 제자들이 헐레벌떡 무당 곳곳으로 흩어져 달려갔다.
종리곡의 눈에 희미한 불안이 서렸다.
‘설마 현종에게 간 것인가?’
그럴 수도 있다. 명을 물러 달라고 사정하러 갔을지 모른다. 그라도 그리했을 것이다.
‘이럴 때가 아니구나. 직접…….’
하지만 상황이 이상해졌다.
“없습니다, 장문인.”
“보이지 않습니다.”
현종의 처소 쪽을 둘러본 이들도, 심지어 화산 제자들이 머무는 접객당을 둘러본 이들도 모두 백천을 찾지 못했다.
경내를 넘어 무당산을 샅샅이 뒤진 이들조차 마찬가지였다.
“이게…….”
종리곡은 점점 더 사색이 되어 갔다. 뒤늦게 소식을 들은 현종이 다급하게 달려왔다.
“장문인.”
“태상장문인! 백천……. 아니, 진동룡과 함께 계시지 않으셨습니까?”
“어제 이후로 만나지 않았습니다.”
“그런……!”
현종은 아연실색하여 다른 제자들을 돌아보았다.
“너희 중 백천을 본 이가 없더냐?”
“……태상장문인께서 파문인과 접촉하지 말라 하셔서…….”
“정녕 아무도 없단 말이냐? 그럼 오늘은? 오늘 본 이는 없느냐?”
당연히 어떠한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현종이 넋 나간 얼굴로 활짝 열린 무당의 정문을 응시했다.
“이, 이런……. 이게…….”
사라졌다.
아직 전쟁의 화마가 곳곳에 도사리는 이 위험한 땅에서, 백천이 연기처럼 모습을 감춘 것이다.
“이런 일이…….”
화산은 그를 내쳤다. 그리고 종남으로 가기를 바랐다.
하지만 백천은 종남으로 향하지 않았다.
누구도 생각지 못한 상황이었다. 모두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백천아…….”
현종의 망연한 목소리가 고요한 연무장에 퍼져 나갔다.
그리고 그 연무장에서 조금 떨어진 전각의 지붕 위.
이 모든 소란을 말없이 지켜보던 청명이 나직한 한숨을 흘렸다. 입 안에 도는 술의 향이 오늘따라 유난히 씁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