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ount Hua Sect RAW novel - Chapter 1747
화산귀환 1747화. 화풀이라고 해도 좋아. (2)(1748/1753)
1747화. 화풀이라고 해도 좋아. (2)
콰드득!
미처 몸을 빼내지 못한 혈교도의 목에 섬뜩한 흰빛이 꽂혔다.
암향매화검.
헤아리기도 힘들 만큼 수많은 사파인의 목숨을 앗아간, 사파에서는 마검(魔劍) 취급을 받는 화산검협 청명의 독문병기가 또 한 명의 목숨을 끊어 냈다.
“끄…….”
목을 뚫리고도 숨이 끊기지 않은 이의 육신이 푸들푸들 경련을 일으켰다. 차마 눈 뜨고는 볼 수 없을 끔찍한 광경이었지만, 정작 청명의 두 눈은 오싹할 정도로 무심했다.
“하나.”
파앗!
검이 목에서 뽑혀 나오며 피가 화살처럼 길게 허공으로 뿜어져 나왔다.
마치 그게 신호라도 된 듯, 혈교도들이 일제히 등을 보이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명령 같은 건 필요하지 않다. 생각이라는 게 있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밖에 없으므로.
“퇴각해라! 퇴각!”
콰각!
거친 소리와 함께 등을 돌린 한 혈교도의 척추가 끊어진다. 암향매화검이 꽂힌 것이다.
“컥!”
숨통이 죄는 듯 갑갑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연이어 또 한 번의 섬뜩한 소리가 울리고, 더 이상의 신음 따윈 없었다.
앞서서 달아나던 모두가 짐작할 수 있었다. 척추에 이어 목이 달아났으리라는 것을. 굳이 돌아보며 확인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어째서!’
가장 선두에서 전력을 다해 줄행랑치는 혈교도의 뇌리에 떠오른 의문은 오직 그것뿐이었다.
‘어째서 여기에 매화검귀가!’
이곳은 무당산의 저지대다. 산꼭대기에 있는 무당파까지는 한참 거리가 있다. 화산검협 같은 거물이 뜬금없이 나타날 만한 곳이 아니었다. 그런데 왜 저 괴물이 여기에 있단 말인가!
서걱!
“으아아아아아악!”
“둘.”
혼란스럽던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비워졌다.
검이 다른 이의 육신을 베고 지나가는 소리가 미세하게 겹쳐 들렸다. 한 번이 아닌 두 번. 그 말인즉, 뒤에서 검을 휘둘러 일거에 두 다리를 모두 잘라 버렸다는 의미다.
그러나 섬뜩한 소리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날카로운 검이 엎어진 이의 뒷덜미를 꿰뚫는 게 분명한 소리가 귀에 내리꽂혔다.
‘사, 살려…….’
이제 혼란은 온데간데없다. 머릿속을 메운 건 살아남고 싶다는 본능 하나뿐이었다.
순식간에 전신이 땀으로 젖었다.
공포에 질려서인지, 아니면 살아생전 단 한 번도 내어 본 적 없는 힘으로 내달리고 있어서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렇게 전력을 다해 달리면서도 몸은 점점 차가워졌다.
서걱!
“셋.”
콰득!
“넷.”
감정 없는 목소리는 멀어지기는커녕 더욱 가까워졌다.
검이 몸을 베고 지나가는 소리, 처절한 신음, 담담히 헤아리는 머릿수. 그 모든 게 공포였다. ‘끔찍함’에 나름대로 내성 있는 이들조차 진저리칠 수밖에 없었다.
“으아아아아악!”
“일곱.”
마침내 일곱이라는 소리를 듣는 순간, 혈교도의 머리카락이 쭈뼛 곤두섰다.
‘몇이었더라?’
이곳에 온 이가…….
콰득!
그 해답을 구태여 그가 찾을 필요는 없게 되었다.
“……컥.”
그의 아랫배를 꿰뚫고, 피로 얼룩진 흰 검신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쿨럭.”
내장이 갈기갈기 찢겼는지, 목구멍 깊은 곳에서 비릿한 피가 울컥 역류했다.
“으…….”
반사적으로 배를 뚫고 나온 검 부근을 더듬거렸다.
이 정도 상처, 이 정도 고통쯤은…….
“으아아아아아아악!”
그 순간, 혈교도의 입에서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등을 뚫고 몸에 박힌 검이 괴이한 각도로 비틀리며 내부를 한껏 휘저었다.
피륙의 고통까지야 어찌어찌 견딜 수 있을지 모르나, 검에서 흘러나오는 이 끔찍한 기운이 기혈을 찢어발기는 고통만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끄으……. 끄…….”
허물어지듯 쓰러진 그의 입에서 연신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이번에도 내려다보는 청명의 눈은 한없이 서늘했다.
“아가리 닫아.”
“끄…….”
콰득!
청명의 발이 쩍 벌어져 있던 혈교도의 입에 콱 박혔다. 이가 모조리 부서지고, 혀가 뭉개졌다.
발과 입 사이 겨우 남은 틈으로 검붉은 피가 꾸역꾸역 새어 나왔다. 고통에 사로잡힌 혈교도가 끝내 눈을 까뒤집어 핏발 선 흰자위만이 남았다.
“너희에겐 이런 죽음도 사치야.”
“……으, 크헉…….”
“지옥에나 떨어져.”
서걱!
암매검이 혈교도의 목을 꿰뚫었다. 벼락이라도 맞은 듯 한차례 펄떡 경련한 몸에서 이내 생기가 빠져나갔다.
촤악.
검을 회수한 청명은 더럽다는 듯 검을 세차게 휘둘러 피를 털어 내고는 빙글 돌린 검을 검집으로 집어넣었다.
“…….”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본 제갈관외는 뭔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했다.
‘저게…….’
화산검협 청명.
실력의 대단함이야 이제 누가 의심할 수 있을까. 그러나 실제로 보니 그 무위가 제갈관외의 예상을 한참 넘어섰다.
‘열에 가까운 혈궁도들을 고작 숨 몇 번 쉴 시간에…….’
물론 저들이 적극적으로 청명과 맞서 싸운 건 아니다. 냉정하게 보자면,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공포에 질려 달아나다가 하나하나 등을 꿰뚫려 죽은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게 더 굉장하지 않은가.
혈궁은 새외오궁 중 하나다. 그 궁도들의 실력은 제갈관외가 그 몸으로 이미 확인했다. 그는 한 사람의 궁도조차 제대로 상대하기 어려웠다. 무슨 조화인지 몰라도 검이 먹히질 않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런 이들을 겁에 질려 달아나게 하다니, 대체 얼마나 강해야 이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저들의 기이한 병기도, 무슨 사술을 쓴 건지 알 수 없는 질긴 몸뚱이도 무의미했다. 제갈관외를 궁지로 몰아넣었던 저들의 괴이함은 결국 압도적인 실력 차이 앞에서는 그저 잔재주에 지나지 않았다.
“부상자는?”
“……아.”
제갈관외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청명이 다가와 무심한 눈길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부, 부상자는…….”
비척거리며 일어난 제갈관외의 목소리에서 이내 힘이 빠져나갔다.
혈궁도의 병기에 난자당한 친지들의 모습이 다시금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저런 상처를 입고도 숨이 붙어 있길 바라는 건 욕심일 것이다.
“없는…… 것 같습니다.”
욱신.
기형도에 당했던 옆구리가 항변하듯 통증을 호소했지만, 제갈관외는 끝내 제 부상을 말하지 않았다. 이건 그에게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었다.
“빠르게 수습하고 지원한다.”
“예?”
“여기가 전부가 아니겠지. 다른 곳을 돕는다.”
“하지만 지, 지원은 위에서…….”
“만만한 놈들이 아니야. 자칫하다가는 희생자가 늘어난다.”
완전히 납득하기는 어려웠지만, 제갈관외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할 말이 끝났다는 듯 돌아섰던 청명은 문득 걸음을 멈추곤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혹시 몰라서 하는 말이지만…… 저놈들 시신에는 다가가지 마.”
“예?”
“경고했다. 먼저 간다.”
파앗.
청명의 모습이 퍽 꺼지듯 사라졌다.
그제야 제갈관외는 참았던 숨을 길게 뱉었다. 동시에 옆구리가 끔찍하게 아파 오기 시작해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혀, 형님! 괜찮으십니까?”
“……괜찮다.”
뒤늦게 그의 상태를 알아챈 이들이 놀라서 달려왔다.
“하지만 형님! 여, 옆구리가…….”
금방이라도 내장이 쏟아질 것처럼 크게 벌어진 상처를 보고 모두가 창백해졌다.
“당장 무당으로 모시겠습니다.”
“대충 꿰매고 붕대나 감아라.”
“형님! 상처가 이렇게 위중한데…….”
“됐으니까 붕대나 감아!”
제갈관외가 이를 드러내며 소리치자 호들갑 떨던 이가 움찔 놀라 목을 움츠렸다.
‘제길.’
제갈관외가 이를 악물었다. 누군가가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듯 허탈하게 말했다.
“분명…… 쓰러뜨릴 수 없었는데.”
“실력 차가 나니까.”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제가 검을 찔러넣었는데도 놈들이 멀쩡했단 말입니다.”
제갈관외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격차가 크면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그건 당연한 일이다.
“몇이나 죽었지?”
“……다섯입니다.”
참지 못한 앓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그 짧은 찰나에 다섯이라니.
“갑자기 사패련이……. 빌어먹을, 이 쓸데없는 수색만 아니었어도!”
제갈관외의 눈에 새파란 빛이 흘렀다.
“지금 그런 걸 논할 때냐?”
“…….”
“흩어져서 지원이 필요한 곳부터 확인해라! 발견 즉시 바로 호각을 불어서 알려.”
“예!”
상처를 입지 않은 제갈세가 무인들이 먼저 사방으로 흩어졌다. 제갈관외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런데 시신에는 다가가지 말라니, 그게 무슨 말이…….’
“혀, 형님! 저기!”
움찔한 제갈관외가 고개를 획 들었다.
“……뭐?”
“아니, 지금 분명 무언가가 움직…….”
제갈관외가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잘못 봤나……?”
소리쳤던 세가원이 머쓱하게 고개를 갸웃했다. 제갈관외는 저도 모르게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헛소리 지껄일 시간 있으면 빨리 붕대나 감아라.”
* * *
“이……!”
쾅!
직선으로 빠르게 휘둘러진 검의 손잡이가, 전력을 다해 달려들던 혈교도의 얼굴에 처박혔다. 평범한 이라면 얼굴 뼈가 모조리 부서지도고 남았을 강한 타격이었다.
하지만 혈교도는 잠시 주춤했을 뿐, 이내 다시 손을 뻗었다.
서걱!
그 팔이 다 뻗어지기도 전, 다시 한번 검이 맹렬하게 휘둘러지며 혈교도의 목에 박혔다. 질긴 고무 같은 목이 반쯤 베이며 끈적한 피가 느리게 흘러내렸다.
털썩.
목이 절반이나 떨어져 나갔지만, 몸뚱이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 듯 몇 걸음을 떼다가 이내 앞으로 철퍼덕 엎어졌다.
윤종의 두 눈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도가에 몸담은 이의 검이라기에는 손속이 과하고 잔인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그랬지만, 저들의 육신은 이런 방식이 아니라면 상대하기 쉽지 않았다.
‘수단은 수단일 뿐이다.’
잔인하건, 자비롭건, 사람의 목숨을 끊는다는 점에선 다르지 않다. 이미 손에 피를 묻힌 이상, 수단에 대해 논하는 건 비겁한 면피에 불과하다.
“유, 윤종 도장! 괜찮으십니까?”
다른 문파 사람이지만, 그의 이름을 아는 모양이었다. 윤종이 시선을 주자 다가온 이가 말했다.
“조심……하십시오. 저, 저놈들 괴이한 수를 씁니다.”
윤종도 이미 느끼던 참이다. 그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발이 부서지도록 달려왔건만, 이미 피해가 만만치 않다. 저 아래의 시신들을 보자 마음 한구석이 더욱 컴컴해졌다.
“잘도…….”
윤종의 소맷자락이 서서히 부풀어 올랐다.
적의 수는 그리 많지 않다. 그 말인즉, 적들이 흩어져서 습격하고 있다는 뜻이다.
‘걸이 놈과 사고는 다른 곳으로 갔지만…… 그렇다 해도 모든 곳을 방어할 수는 없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이곳을 정리한 후 다른 곳을 지원하지 못한다면, 피해가 얼마나 늘어날지 가늠하기 어렵다.
윤종 역시 잘 알고 있다.
이 습격으로 인한 피해가 커진다면, 그 책임이 누구에게로 향하게 될지. 그 상황만은 막아 내고 싶었다.
윤종의 검이 매섭게 검기를 뿜었다.
이윽고 그가 적과의 거리를 단숨에 좁혔다. 빠르면서도 유려한 경신. 마치 물이 흐르는 듯 이동한 윤종은 선두에 선 혈교도의 가슴팍을 향해 십여 송이의 매화를 피워 내었다.
서걱! 서걱! 서걱!
삽시간에 혈교도의 가슴에 수십 줄기 혈선이 생겨났다.
오싹.
그런데 그 순간 스치는 불길한 예감에, 윤종이 빠르게 몸을 획 굽혔다. 머리 바로 위로 스치듯이 혈교도의 손이 지나갔다. 강한 풍압에 두피가 찢어질 듯했다.
‘……이만한 상처를 입었는데도?’
격중한 검기 중 하나가 놈의 심장을 베는 감각을 분명히 느꼈다. 그 깊이가 얕다고 해도 심장은 심장이다.
한데 그렇게 다치고도 반격한다고? 그것도 이리 강하게?
“큭!”
윤종이 있는 힘을 다해 검을 아래에서 위로 올려 쳤다.
사아아아악!
검기 어린 검이 혈교도의 육신을 또다시 길게 갈랐다. 혈교도의 왼쪽 허벅지에서부터 오른쪽 어깨까지 긴 선이 선명하게 그였다.
그리고 그 순간, 뒤틀렸던 혈교도의 왼손이 윤종을 향해 단번에 내리쳐졌다.
카가가가가각!
왼손에 들린 기형도가 윤종이 조금 전까지 서 있던 바닥을 거칠게 할퀴었다. 마치 거대한 맹수가 내리치기라도 한 듯, 긴 흔적이 땅에 생겨난다.
“…….”
뒤로 물러선 윤종의 이마로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뭐지?’
분명히 베었다. 그런데 어떻게?
‘환술인가? 아니면…….’
그때, 더욱더 믿지 못할 광경이 윤종의 눈에 들어왔다.
“어?”
길게 베였던 혈교도의 상처가 아물어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분명히 쩌억 갈라져 내장이라도 쏟을 것 같았건만, 지금은 벌어진 틈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 짧은 틈에 아물었다고?’
그럴 순 없다. 그럴 리가. 그건 말이 안 된…….
꿈틀.
혼란에 빠졌던 윤종이 순간 저도 모르게 한 발 주춤 물러섰다.
다물린 혈교도의 상처에서 무언가 기다란 끈 같은 것이 수십 가닥 삐져나와 꿈틀대고 있었다.
‘지렁이?’
아니, 그런 게 아니다. 저건…….
“유, 윤종 도장! 뒤에!”
“예?”
윤종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이내 그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조금 전 그가 직접 목을 베었던 이가 몸을 괴이하게 꺾어 대며 일어서고 있었다.
“무슨…… 일이…….”
몸을 일으키는 이의 목에서도 똑같은 것이 꿈틀대고 있다. 눈이 반쯤 풀린 괴이한 꼴로 목각인형처럼 휘청이던 놈이 기괴한 웃음을 환하게 지어 보였다.
윤종의 얼굴에 짙은 공포가 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