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ount Hua Sect RAW novel - Chapter 1753
화산귀환 1753화. 나 역시 도리를 지키지 못한 사람이니까. (3)(1754/1762)
1753화. 나 역시 도리를 지키지 못한 사람이니까. (3)
“피해 규모가 어떻습니까?”
“지금까지 확인된 사상자는 쉰 정도입니다. 그중 불귀의 객이 된 이들은 스물 정도로 보입니다.”
“스물……에 쉰이라…….”
보고한 제갈자인의 표정은 자못 담담했지만, 이를 들은 당군악의 얼굴은 한껏 굳어졌다.
갑작스러운 습격이었다고는 하나, 막상 교전이 벌어진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이를 고려한다면 적다고 할 수 없는 피해였다.
“지금까지 ‘확인된’이라는 건 무슨 의미입니까?”
“아직 복귀하지 못한 이들이 있습니다.”
“…….”
“넓은 산에 흩어져 움직였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대부분은 사망했을 거라고 추정되지만, 혹시 부상으로 복귀하지 못한 이들이 있을지 몰라 수색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당군악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사그라들었다.
이번 습격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곳은 다름 아닌 제갈세가다. 그렇다면 행방이 묘연한 인원도 제갈세가의 비중이 가장 높을 터였다.
“수색에 인원을 아끼지 마십시오.”
“물론입니다. 다만…….”
“문제라도 있습니까?”
“문제라고 할 일은 아닙니다만, 산을 수색하기 위해서는 응당 인원을 나눠야 합니다. 같은 일이 또 벌어질까, 그 점이 우려됩니다.”
당군악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그렇다 한들 혹시 모를 부상자를 방치할 수는 없습니다. 인원을 더 확충하면 위험은 줄 것입니다.”
“말씀대로 해 보겠습니다. 아, 그리고 또 아셔야 할 게 있습니다.”
“예.”
“혈궁을 상대한 이들이 괴이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괴이한 이야기요?”
“예. 혈궁 놈들이 부상을 입고도 그 자리에서 상처를 회복했다 합니다.”
그러자 내도록 침묵을 지키던 모용위경과 풍영신개가 놀란 목소리를 내었다.
“그게 무슨……?”
“지금 회복이라 하셨소?”
“예. 게다가 같은 증언이 여러 곳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아, 괴이한 사술을 쓴 이들이 특정 한둘이 아닌 모양입니다.”
“그 회복이라는 게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다 합니까?”
“들어 봤을 때, 몸속에 무언가를 심은 모양입니다. 괴이한 벌레 같은 게 꿈틀대더니 순식간에 상처를 수복해 버렸다고 하더군요.”
“이런…….”
모용위경의 얼굴이 전에 없이 심각해졌다.
강호는 사술을 비천하게 여기고 배척한다. 사술을 하찮은 잡기로 취급해서가 아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대처할 수 없는 사술이 얼마나 강력하고 위험한지, 오히려 강호의 명숙이라면 모두 알고 있다.
그럼에도 사술을 천히 여기는 까닭은, 사술이라는 건 반드시 그 대가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사술에 심취한 이들은 인성이 메마르게 된다. 심지어는 사람으로서 상상도 할 수 없을 짓을 태연하게 저지르는 마귀가 되고 마는 일이 허다했다.
“그놈들을 상대한 이들의 실력이 낮아서는 아닙니까?”
“……화산의 제자들도 같은 말을 전해 왔습니다.”
“화산까지?”
“그중에는 일검분광도 있더군요. 전혀 대처가 안 되었다고 합니다.”
이 말이 쐐기와도 같았다.
일검분광 조걸. 현 강호에서 가장 기세가 높은 후기지수 중 하나.
사실상 그의 실력은 이미 후기지수의 영역이 아니다. 무위라는 게 정확한 측정이 불가능하다고는 하나, 그가 지금까지 보여 준 행적만 보아도 대문파의 장로와 비견하는 것이 그리 말도 안 되는 일만은 아니다.
그런 조걸조차 대처할 수 없었다면 이는 무척 심각한 문제다.
그때, 풍영신개가 무거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해하기가 어렵군. 그런 이들이 다수라면 혈궁의 전력은 우리가 애초 생각한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것이외다. 아마…….”
잠시 말을 멈춘 풍영신개가 슬쩍 눈치를 살폈다. 그러자 야수궁주 맹소가 피식 웃으며 이어질 말을 대신 해 주었다.
“새외의 다른 사궁은 비견조차 되지 못하겠지.”
풍영신개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런 전력을 지금까지 활용하지 않은 까닭이 무엇이란 말이오? 그럴 이유가 없지 않소?”
배석한 이들이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무시무시한 전력이 있었다면 호북에서 벌인 대전에서도 좀 더 수월하게 이길 수 있었을 것이다. 한데 장일소가 그런 이들을 그저 놀려 두었을 리 없잖은가.
“이유 같은 게 중요한 상황은 아니나, 굳이 생각해 보자면 두 가지 정도를 예상해 볼 수 있을 겁니다.”
“두 가지?”
“예. 하나는 장일소가 혈궁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일 경우입니다. 사패련이 강대하다고는 해도, 애초에 새외의 문파는 중원의 법칙을 따르지 않으니까요.”
이번에도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이곳에 있는 이들 역시 천우맹에 속한 야수궁과 빙궁을 다른 문파처럼 쉽게 대하진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는 중원인이 아니라는 데서 나오는 거리감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문제였다.
모용위경이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여전히 의문이 전혀 가시지 않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지금 와서…….”
“이런 상황이기 때문이겠죠. 이것이 추정되는 이유 두 번째입니다.”
“예?”
“소림과 무당이 힘을 잃지 않았습니까?”
“아…….”
모용위경이 헛숨을 내뱉었다.
사술의 위력은 평범한 무학으로 대처하기 힘들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술이 중원에서 밀려났던 이유는 너무도 간단하다. 그런 사술의 천적인 문파들이 중원에서 가장 강대한 힘을 발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림, 그리고 무당.
소림의 불법과 무당의 도력(道力)은 만사의 천적. 어떤 사술도 그 앞에서는 힘을 잃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지금 소림은 전력의 태반을 잃은 채 봉문 했고, 무당은 문파의 존립마저 위태롭게 되었다.
“……사술을 익힌 이들이 더는 중원을 껄끄러워할 이유가 없어졌다는 의미로군요.”
“정확합니다.”
당군악은 깊은 고민에 잠겼다. 상황이 생각 이상으로 심각하다.
‘짧은 교전에도 괴이할 정도로 피해가 크다 했더니.’
사술에 대처하지 못하여 발생한 상황이라면 납득이 갔다.
“이는 실로 큰일이 아닙니까?”
“……확실히 간단히 여길 현상은 아니지요.”
“으음…….”
“이미 벌어진 일이야 어쩔 수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앞으로도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겠지요.”
잠시 정적이 고였다. 모두의 얼굴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하면…… 소림에 요청하는 건 어떻습니까? 지금 봉문을 할 때가 아닌 것 같은데.”
“불가능할 것입니다.”
“아니, 아무리 그들의 피해가 크다고 하나…….”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소림의 무학을 익혔다고 모두 사술을 억제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사술을 억제할 정도가 되려면 반드시 깊은 이해와 수련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지금 소림은…….”
그 정도로 오래 수련을 거치고, 깊은 이해도를 지니고 있을 장로급이 전멸한 상황이다. 남은 소림의 제자들은 아직 그 수련의 깊이가 얕다.
그러니 그들을 어찌어찌 불러온다 한들, 이곳에 있는 이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하면 무당도 그리 다를 바 없겠군요.”
“그렇습니다.”
“빌어먹을. 허도 그 작자가 쓸데없는 짓을 해서는.”
모용위경이 체면에 맞지 않게 노골적으로 악담을 퍼부었다. 그러나 이곳에 있는 누구도 그를 제지하지 않았다. 허도진인이 장일소를 잡기 위해 장로들을 동원하여 막대한 희생을 내지만 않았어도 이토록 갑갑한 상황에 놓이진 않았을 테니까.
“그럼…….”
마땅한 대처법을 찾지 못한 이들이 앓는 소리만 흘리고 있을 때, 종남 장문인 종리곡이 입을 열었다.
“사술은 대처하기 어렵기에 사술입니다. 우리끼리 머리를 맞댄다고 해서 쉬이 답이 나오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그 전에 저는 그 답을 내어야 할 이유부터 따져야 한다고 봅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사술에 불과합니다. 대처하지 못할 것도 없습니다. 베어서 죽지 않는다면 잘라 내면 되고, 잘라서 죽지 않는다면 부숴 버릴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제갈자인의 입에서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원론적으로는 틀리지 않은 말씀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남궁의 소가주가 장문인께서 말씀하신 방식으로 그들을 상대했다고 합니다.”
“그럼 걱정할 문제가…….”
“그게 가능한 이가 몇이나 되겠습니까?”
“…….”
“이곳에 계신 분들이라면 쉬이 상대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적들의 수가 적지 않을진대, 그 마당에 전장 곳곳으로 흩어진 혈궁도들을 일일이 찾아다니실 요량입니까?”
잠깐 말문이 막힌 종리곡이 이내 한숨을 쉬었다.
확실히 그렇다. 천우맹의 적은 혈궁뿐만이 아니니까.
대책이 없는 상황에 잠시 침음성을 흘리던 당군악이 문득 제갈자인에게 시선을 주었다.
“잠깐. 그렇다면 저들은 어째서 그리 쉽게 물러난 것입니까?”
“바로 그 문제에 대해 논하고자 이 자리를 청한 것입니다. 화산의 제자인 윤종이 사술을 쓰는 적들을 일검에 무찔렀다고 합니다.”
“윤종? 그게 사실입니까?”
당군악이 눈을 끔뻑였다. 유이설도, 조걸도 아니고 갑자기 윤종이?
제갈자인이 살짝 눈을 빛냈다.
“자세한 건 본인에게 직접 듣는 게 낫겠지요.”
모두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리된 겁니다.”
“으음. 선기라…….”
부상자들을 수습하다 급히 달려온 윤종은 사방에서 쏟아지는 시선이 무거워 어깨를 살짝 움츠렸다.
“어떻습니까?”
“가능합니다. 애초에 무당이 사술을 쓰는 이들의 천적이었던 것도 도력……. 즉, 선기를 검에 실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같은 도가인 화산이 못 할 이유는 없겠지요.”
물론 아주 정확한 설명은 아니다.
화산은 무당보다 속가적 색채가 강한 문파. 아무래도 폐쇄된 환경에서 도를 추구하는 무당에 비해서는 선기를 활용하는 데 있어 모자람이 있다. 그게 지금까지의 상식이었다.
‘지금까지는 말이지.’
제갈자인이 날카로운 눈으로 윤종을 주시했다.
선기를 쓰면 상대의 사술을 약화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손쉽게 상대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조금 전 당사자의 설명과 목격자들의 증언을 들었을 때, 윤종은 상대의 사술을 거의 무력화해 버리는 수준에 이른 것 같았다.
이는 윤종의 선기가 무당의 장로들보다 더욱 뛰어나다는 뜻일 터.
‘이치로만 따진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화산에서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게 어디 한두 번도 아니고.’
짧게 숨을 내쉰 제갈자인이 입을 열었다.
“먼저 하나 묻겠네. 선기라는 걸 원래부터 쓸 수 있었나?”
“질문이 조금 모호합니다만…….”
“음?”
윤종이 제갈자인을 똑바로 보며 답했다.
“애초에 제게 그런 힘이 있었느냐 물으신다면 그렇다고 대답해야 할 것이고, 이전부터 써 왔냐고 물으신다면 아니라고 답해야 합니다.”
제갈자인은 윤종이 한 말의 의미를 곧장 이해했다.
“음, 힘은 가지고 있었으나 활용할 수 있게 된 건 이번부터라는 의미군.”
“정확합니다.”
“그럼 화산의 다른 제자들 역시 자네와 같은가?”
윤종이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품은 도가 서로 다르니 제가 섣불리 대답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크기는 다를지언정, 화산의 이름을 쓰는 이들이라면 모두 저와 같은 기운을 품고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그렇다면 그 힘을 끌어낼 수 있겠는가?”
“……예?”
제갈자인이 다른 이들을 슬쩍 살폈다. 이미 모든 걸 일임했다는 듯, 누구도 특별히 반발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이건 무척 중요한 문제일세. 그게 가능한가, 아닌가로 중원의 운명이 바뀔지도 모르네.”
“…….”
“자네도 느꼈겠지만, 적의 사술은 대처하기 까다롭네. 더 큰 문제는 우리가 그 사술을 쓰는 이들의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지도 못하고 있단 점이겠지. 만약 우리가 대처하지 못할 만큼의 인원이 전장에 투입된다면?”
굳이 생각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윤종조차도 적의 사술에 당황한 나머지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 그런 괴물들이 전장 곳곳에서 날뛴다면 그 피해는 불 보듯 뻔하리라.
“알겠는가?”
“……예.”
“그 괴이한 힘에 대항할 수 있는 이를 하나라도 더 늘려야 하네. 어떤 것보다 급선무일세.”
윤종은 잠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당군악이 나섰다.
“……윤종 도장. 지금 혼란스러운 상황이라는 건 이해하네. 하지만 우리는 지금 귀문의 사정을 모두 살필 수 있을 만큼 여유롭지 못하다네. 언제 적이 이를 드러낼지 모르니 대비하는 게 먼저일세.”
잠시 말을 멈춘 당군악이 윤종을 지그시 보았다.
“그리고 이 일을 할 수 있는 건, 현재 실질적으로 화산의 장문제자인 자네밖에 없다고 보네. 어떤가? 할 수 있겠는가?”
여러 의미가 내포된 말이다.
지금 천우맹도 혼란에 빠져 있긴 하나, 화산은 그 이상의 혼란에 시달리고 있다. 백천의 부재는 주변에서 지켜보는 모두의 예상보다도 더 화산을 흔들어 놓았다.
이러한 상황을 수습할 이는 오직 윤종뿐이다. 그 모든 의미가 이 말에 담겨 있었다. 윤종 역시 그 뜻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윤종이 말없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잠깐의 침묵이 흐르는 동안, 당군악을 비롯한 천우맹의 중진들이 모두 간절하게 그를 응시했다. 윤종의 어깨가 무거웠다.
마침내 윤종이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우선…… 실질적인 화산의 장문제자라는 말씀은 거둬 주십시오. 그 자리가 누구의 것인지는 저를 포함하여 화산의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이를 거절의 의사라 생각한 당군악의 눈에 안타까움이 어렸다.
그러나 윤종은 이내 고개를 들며 말을 이어 갔다.
“다만 장문제자로서가 아닌, 화산의 일개 제자로서 짊어져야 할 임무라면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
“그게 지금 제가 해야 할 일일 테니까요.”
눈빛이 차분하고 선명했다. 이를 본 당군악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하겠네.”
“예.”
지금은 화산, 그리고 윤종에 기대할 수밖에 없다.
당군악은 남몰래 한숨을 쉬었다.
‘쉽지 않군.’
윤종은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러나 배분과 입지상 분명히 한계가 있을 터.
‘이럴 때…….’
저도 모르게 떠오르려는 생각을 떨쳐내려는 듯, 당군악이 고개를 저었다.
어쩌면 백천의 부재를 가장 절감하는 건 화산의 제자들이 아닌 천우맹의 다른 중진들인지도 몰랐다.